지난해 한국이 세계 조선 1위 자리를 중국에 내줬다. 2000년 일본을 제치고 1위에 올라선 지 10년 만이다. 한국 조선 업체들이 조선 이외 신재생에너지 사업, 사업 다각화 등을 통해 다양한 생존전략 마련에 나서고 있다. 2010년 한국 조선 업계가 생존을 위한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을까.

태양광·풍력에 리조트 개발까지…

신사업 확장 비지땀

우리나라 조선 업계가 연간 수주량과 수주 잔량 경쟁에서 중국에 뒤진 것은 사상 처음이다. 한국의 지난해 수주량은 315만4721CGT(표준화물선 환산 톤수)로 349만2435CGT를 기록한 중국에 역전 당했다. 척수 기준으로도 우리나라는 113척을 수주해 191척의 중국에 크게 뒤졌다.

중국이 수주량 경쟁 등에서 한국을 압도한 가장 큰 이유는 중국 정부의 조선업 육성 의지에 따른 ‘국수국조’ 원칙이다. 국수국조는 ‘중국 내 발주 중국 내 건조’를 말한다. 중국 정부는 2015년에 한국을 추월해 조선 주도국이 되겠다는 중장기 계획을 세우고, 국가적으로 조선 산업을 집중 육성했다. 지난해 중국 선사들의 선박 발주량은 전 세계 발주량의 26%에 달했다. 중국 정부가 국내외 선주들에게 다양한 금융 및 세제 혜택을 지원하며 선박 발주를 유치했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의 지원하에 이 물량 대부분을 중국 조선 업체들이 수주했을 것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중국 탓으로만 돌리기에는 그동안 한국 조선 업계가 중국의 추격에 안일하게 대처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2000년 초부터 2008년 초까지 조선업은 최고의 호황을 누렸다. 한국 조선 업체들이 즐거운 비명을 지르는 사이 벌크선과 유조선 등 상선분야에서 중국의 추격이 가속화됐다. 신성장 동력을 발굴해야 한다는 위기의식이 싹텄지만 ‘태평성대’의 기운을 누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위기는 현실이 됐다. 2008년 금융위기로 인한 실물경기의 침체로 해상 물동량이 감소하자 선박 발주도 급격히 줄었다. 이에 따라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의 2009년 수주량은 전년 대비 84%나 급감했다. 선박 발주가 활발해질 때까지 버티기에 나섰던 한국 조선 업계는 지난해 11~12월 두 달 동안 52척의 수주고를 올리면서 안도의 숨을 쉬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수주량이 쉽게 회복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홍성인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올해도 수주 가뭄이 지속된다면 한국 조선 업계가 장기적인 불황에 시달릴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여기에 중국보다 확실한 우위를 점하고 있는 고부가가치 선박 건조 기술 분야의 격차도 점차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2~3년 앞서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이러한 격차도 조만간 사라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에 따라 한국 조선 업체들이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친환경 에너지, 건설, 전기·전자, 고부가가치선박 개발 등을 가속화하고 있다. 그동안 미뤄오던 생존전략을 본격 가동하고 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한국 조선 업계의 생존전략에는 절박함 마저 묻어 있다.

생존전략1

신재생에너지 집중 육성

조선 업체들이 친환경 에너지 분야에서 생존의 돌파구를 찾고 있다. 특히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분야를 차세대 성장 동력의 하나로 정하고 이를 집중 육성하고 있다.

국내외 조선 업계 1위인 현대중공업은 태양광·풍력 등 신사업 확장을 통한 다각화를 추진 중이다. 가장 먼저 가시적 성과가 나오고 있는 분야는 태양광발전 분야다. 지난 1997년 사업성 연구를 통해 2004년 전담팀을 구성, 2005년 울산 선암 20㎿급 태양광 모듈공장을 설립한 데 이어 2008년에는 충북 음성에 1만360평방미터 규모의 태양전지 생산 공장을 설립했다.

핵심소재인 폴리실리콘 분야에도 진출했다.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KCC와 합작법인인 KAM을 설립하고 2010년부터 연간 2500t의 폴리실리콘을 생산할 예정이다. 또 100㎿규모의 잉곳과 웨이퍼도 생산할 계획이다. 현대중공업은 이를 바탕으로 2010년에는 음성공장에서만 1조원의 매출을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11월부터 강원도 태백에 한국남부발전·효성 등과 공동으로 국산 풍력발전기 10기(20㎿)를 설치하고 있다. 이미 1057억원을 투자하여 군산 군장국가산업단지에 국내 최대 풍력발전기 공장을 완공하고 지난해 10월부터 본격가동에 들어갔다. 현대중공업은 올해 풍력과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부문에 전체 시설 투자액의 20%인 2800여억원을 집행할 계획이다.

삼성중공업은 지난해 11월, 풍력발전기를 해외에 수출하면서 풍력발전설비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출했다. 이 회사의 풍력발전설비는 기존 제품보다 발전효율이 10% 이상 높고, 내구성도 25년에 달해 미국과 캐다나 등지의 발전 사업자들로부터 주목받고 있다. 특히 삼성중공업에 풍력발전기를 처음 발주한 미국의 씨엘로(Cielo)는 향후 20기의 풍력발전설비를 추가로 발주할 전망이어서 추가 수주도 기대하고 있다.

삼성중공업은 지난해 5월 미국 휴스턴 풍력발전설비 영업지점 개설에 이어 올해는 미국 포틀랜드 지점, 2011년에는 독일 지점을 각각 개설할 계획이다. 2011년에는 물류 및 A/S센터도 가동하는 등 미국과 유럽을 본격적으로 공략한다는 복안이다.

회사 관계자는 “선박 건조 기술력을 활용해 풍력발전설비 전용운반선 개발에 착수했으며, 풍력에너지 추진선박, 부유식 풍력발전단지 등에 대한 사업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우조선해양은 올해 저탄소 배출 발전설비 사업을 본격화한다. 이를 위해 지난해 10월 노르웨이의 이산화탄소 포집 처리 전문기업인 사라가스와 협력관계를 맺었다. 사라가스는 발전단계에서 발생하는 모든 이산화탄소를 ‘연소 후 처리 방법’으로 모아 저장하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이 기술을 활용해 바다에 떠다니는 부유식 화력발전소를 개발한다는 계획이다. 지난해 뛰어든 풍력발전 사업도 더욱 강화할 계획이다. 지난해 8월 미국 풍력발전 업체인 드윈드를 5000만달러에 인수한 대우조선해양은 7000만달러를 추가로 투자해 텍사스에 20기 규모의 풍력발전단지를 조성할 계획이다. 또 2010년 하반기에는 중국에 대규모 풍력발전기 제조공장을 설립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STX조선해양은 풍력에너지 사업 진출 6개월 만에 첫 대형 수주에 성공했다. STX는 폴란드에 3억유로(약 5000억원)에 달하는 풍력발전단지 개발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생존전략2

고부가가치 선 개발로 차별화

국내 조선사들의 공통적인 경영 전략은 ‘고부가가치 선을 우선적으로 수주한다’는 것이다. 중국의 생산 선종은 저부가가치 선 위주로 고부가가치 선종에 있어서는 여전히 한국이 우위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는 열쇠는 결국 고부가가치 선에 있으며 중국 업체들이 따라올 수 없는 차별화된 기술로 이 시장을 확고히 선점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부가가치 선은 같은 생산요소를 투입해 보다 많은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선박이다.

선종별로 기대할 수 있는 부가가치의 수준은 철강재를 100으로 할 때, VLCC(원유운반선)은 219, 컨테이너선은 393, FPSO(부유식 원유생산저장설비)는 1250, 크루즈선은 2000이다. 부가가치 측면에서 크루즈선이 최고 수준이다.

국내 조선사 중 삼성중공업이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삼성중공업은 LNG-FPSO와 크루즈선 등 고부가가치 특수선 시장 석권을 통해 위기를 정면 돌파한다는 전략이다. 이 회사는 지난 1997년부터 크루즈선을 미래 전략 선종으로 지정하고 2010년 크루즈선 건조 사업에 진출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삼성중공업은 지난해 11월 미국의 크루즈선사인 유토피아가 실시한 11억달러 규모의 크루즈선 건조 입찰에서 계약 대상자로 단독 선정되기도 했다. STX조선해양이 인수한 ‘STX유럽’을 통해 크루즈선을 건조하고 있지만 국내 조선사가 크루즈선 건조 입찰에서 단독 선정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삼성중공업이 건조하게 되는 크루즈선은 조선과 건축기술이 복합된 ‘아파트형 크루즈선’이라는 신개념 선박이다. 기존 크루즈선은 통상 10일 내외의 단기 여행객을 대상으로 운항하는데, 아파트형 크루즈선은 장기 휴양 목적의 해상 별장으로서 개인에게 객실을 분양하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삼성중공업은 13년간에 걸친 치밀한 준비와 주상복합인 타워팰리스 등을 통해 축적된 건축부문의 노하우를 활용해 아파트형 크루즈선에 진입할 계획이다.

특히 삼성중공업은 고부가가치 선의 대표 선박이자 해양 분야의 성장엔진인 드릴십 분야에서 독보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삼성중공업은 지난해 세계 최고가 선박으로 기록된 1조원짜리 드릴십을 포함해 전 세계에서 발주된 드릴십 19척 중 11척을 수주하는 기염을 토했다. 드릴십은 북해 극지용으로 북해지역 해상 조건을 극복하고 원유를 캘 수 있는 특수 선박이다. 삼성중공업이 세계 시장 점유율 66%로 세계 1위다. 또 삼성중공업이 지난해 9월 세계 최초로 수주한 ‘천연가스 저장 및 생산설비(LNG-FPSO)’ 역시 조선 업계의 새로운 미래 성장 동력으로 떠오르고 있다. LNG-FPSO는 기존의 대형 LNG선보다 가격이 4배 이상 비싸다. FPSO는 1기당 가격이 15억∼20억달러에 이르는 초부가가치 해양설비다.

현대중공업은 초대형 FPSO 분야에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2009년 4월 세계 최초로 100만 톤급 FPSO 전용 도크를 완공했다. 이에 따라 일반 상선용 도크에서보다 FPSO 조업기간을 5.5개월에서 4.5개월로 1개월 단축하고 생산원가도 15∼20% 절감할 수 있게 됐다.

대우조선해양의 위기 돌파 전략은 고부가가치 선 건조 신기술 개발이다. 대우조선해양은 지난해 30만 톤급 초대형 VLCC 건조 시 고리모양의 초대형 블록을 제작해 건조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할 수 있는 ‘링타입(Ring Type) 블록탑재’ 공법을 개발하는데 세계 최초로 성공했다. 또 세계 조선 업계 사상 최대 무게인 5660톤의 중량물을 2개의 해상 크레인을 연동해 들어 올리는 기록도 세웠다. LNG 화물창 내 압력을 높여 증발가스 발생을 근본적으로 차단하여 가스 낭비를 크게 줄일 수 있는 기술의 개발과 적용에도 성공했다. 이러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대우조선해양은 현존하는 VLCC의 20%에 해당하는 100여 척을 건조·인도해 이 분야에서 세계 1위를 유지하고 있다.

STX유럽은 세계 최대 규모 크루즈선 ‘오아시스 오브 더 시즈(Oasis of the Seas)’호를 성공적으로 인도하며 한국 조선 업계가 꿈꿔오던 크루즈선 사업에 첫발을 내디뎠다. 이를 계기로 STX는 올해부터 크루즈선 사업을 가속화할 계획이다.

생존전략3

사업 다각화로 다양한 수익원 창출

조선 업계는 다양한 수익원 창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지난 연말부터 건설장비 시장 확대를 위한 마케팅 활동도 강화하고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제10회 베이징 국제 공정기계 전시회’에 참가해 굴삭기와 지게차 신모델을 전시하고 마케팅을 펼치기도 했다. 당시 전시회에 참석한 민계식 부회장은 “신제품 개발과 차별화된 마케팅 전략으로 중국 시장 점유율을 높이는 것이 제2의 도약을 이루는 길”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현대중공업은 점차 대형화되고 있는 LCD 시장의 경향에 맞춰 10세대 이상의 초대형 LCD 운반용 로봇을 개발하고 있다. 2011년에는 전자분야에서 가장 높은 기술력을 요하는 진공 로봇을 개발해 LCD 제조 공정에 필요한 모든 로봇 라인을 구축할 계획이다. 로봇 분야 블루오션으로 떠오르고 있는 의료용 로봇 분야 진출 계획도 세워두고 있다.

삼성중공업은 부유식 해상 구조물 시장 개척에 나서고 있다. 삼성중공업은 지난해 한국해양연구원과 공동으로 물에 떠다니면서 컨테이너를 하역할 수 있는 해상 설비인 하이브리드 안벽을 개발했다. 이 설비는 컨테이너선이 항구에 들어오면 선박의 다른 측면으로 이동해 양쪽에서 컨테이너를 하역하는 것이다. 이 설비가 도입되면 하역 시간도 20% 이상 단축된다. 삼성중공업은 지난 2007년부터 부유식 해상 구조물 개발 TFT를 만들어 이 분야에 대한 연구를 진행해 왔다.

대우조선해양은 ‘윙십테크놀로지’에 30억원을 투자해 세계 최초로 40인승 여객용 대형 위그선을 개발하고 있다. 2단계 공사가 끝나는 2015년부터 연간 20여 척의 위그선을 판매해 약 1조원의 매출을 올린다는 계획이다. 위그선은 초고속 선박 및 항공기술이 접목된 최첨단 선박으로 해수면의 1∼4m 위를 비행할 때 발생하는 해면효과를 이용해 기존의 선박보다 고속 및 고효율 운항이 가능하다.

대우조선해양은 최근 오만 두큼지역의 주거 및 관광단지도 개발 중이다. 오만 정부와 공동으로 2010년 가동 예정의 수리조선소를 구축하면서 확보한 파트너십을 통해 새로운 사업영역을 개척하고 있는 것이다. 회사 관계자는“200㏊에 걸쳐 오만 두큼지역의 주거 및 관광단지를 개발하는 것”이라면서 “현재 1차로 20㏊, 2000세대 규모의 주거단지를 개발 중”이라고 밝혔다. 대우조선해양으로서는 첫 번째 주거 및 관광단지 개발 사례다.

STX는 STX유럽의 노르웨이 플로로 조선소를 수리조선소로 전환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STX 관계자는“주요 선사들의 자금난 등 조선 산업의 변수가 생기다 보니, 다양한 수익 창출 방안의 하나로 검토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