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하는 남자’ 인기 오르며 남자 회원 부쩍 늘었죠”

“틀에 부은 초콜릿 위에 다른 색 초콜릿을 한 방울 떨어뜨리세요. 떨어뜨린 초콜릿 방울의 가운데를 이쑤시개로 살짝 가로지르면 ‘하트’ 모양이 나타나요.”
“어머나, 신기해, 신기해!!”
지난 2월9일 저녁 6시40분 무렵, 80여 명의 청춘남녀들이 수제 초콜릿 만드는 방법을 배우는 데 여념이 없다. 시범을 보이며 입과 손을 바삐 놀리는 조리장을 둘러싼 이들은 바로 현대캐피탈·현대카드의 ‘요리 동호회’ 회원들. 앞치마를 두른 채 반짝이는 눈길로 조리장의 일거수일투족을 따라간다. 이들이 요리를 배우는 장소는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현대캐피탈·현대카드 본사의 지하 구내식당이다.
이날은 이 동호회가 매달 한 번씩 여는 정기 요리 실습시간으로, 이달의 실습 주제는 ‘밸런타인데이 수제 초콜릿 만들기’다.
30분가량 초콜릿 만드는 비법을 전수받은 직원들은 구내식당 테이블 위에 준비된 재료들의 포장을 풀고 꺼낸 내용물을 테이블 위에 늘어놓는다. 튜브에 담긴 굳은 초콜릿을 녹일 물도 끓인다. 조리도구들을 들었다 놨다 하며 움직임이 부산한 와중에도 다들 얼굴에는 웃음꽃, 입에는 수다꽃이 함박이다.
초콜릿 만들기, 2년째 인기 ‘짱’
회원들을 훑어보니 대부분이 여자다. 70여 명쯤 되는 여직원들 사이로 가뭄에 콩 나듯 보이는 남직원 수를 세어보니 달랑 4명.
“요리 동호회 남직원이 총 23명인데요, 밸런타인데이 초콜릿은 여자가 남자에게 주는 거라 그런지 여직원들이 집중적으로 많이 나왔네요.” 이 회사 요리 동호회 회장을 맡고 있는 현대캐피탈 경영분석팀 김찬 사원의 귀띔이다. 평소에는 실습하는 날이면 50여 명이 나오는데 작년에 이어 2년째 진행한다는 밸런타인데이 초콜릿 만들기 실습 때면 유독 참여자가 급증한단다.
현대차그룹 계열사인 현대캐피탈과 현대카드는 별도의 법인이지만 동호회 활동은 함께 한다. 요리 동호회의 전체 인원은 120명이고, 여자 97명, 남자 23명으로 여직원 비율이 상당히 높다. 요리에 관심 있는 미혼들이 대다수다. 그밖에 미식가형과 애인이나 배우자에게 요리를 해주고 싶어 가입했다는 사람들도 있고, 자취하는 이들 중에서는 동호회 덕분에 맛있는 것 좀 먹어보자며 가입한 경우도 적지 않다고.
재미있는 것은 남자 회원들이 최근 1년 새 집중적으로 늘어났다는 것이다. 버라이어티 TV프로그램 <우리 결혼했어요>에서 남자가수 알렉스가 직접 요리하는 이미지로 여성팬들에게 인기몰이를 한 뒤 부쩍 가입이 늘었단다. 이른바 ‘작업용 요리’를 배우고 싶다는 남직원들이 대거 요리 동호회의 문을 두드렸다나.
현대캐피탈·현대카드 요리 동호회는 초창기에는 갈비찜·아귀찜·김치·게장 등 한식요리를 많이 다뤘는데, 지금은 레스토랑이나 전문 식당에서 맛볼 수 있는 다양한 동서양 요리와 퓨전 요리에도 많이 도전한다.
요리 동호회 회장 김찬씨는 “매달 만드는 요리 주제는 회원들의 건의를 받아서 조리장과 상의해 결정하는데, 외식문화가 발전하면서 회원들이 내놓는 요리 아이디어도 다양해지고 있다”고 전했다. 2009년에 만들었던 요리들은 LA갈비와 프로슈토 햄 샐러드, 밸런타인 초콜릿, 토마토 & 크림 스파게티, 칠리새우 & 자장면, 떡갈비와 비빔냉면, 매운 돼지 등갈비, 안동찜닭, 또띠아 활용한 피자와 카나페 등으로, 요리의 국적과 재료가 세계를 넘나든다.
요리 실습은 회사 구내식당에서
직원들은 요리 실습을 하러 퇴근 후 굳이 건물을 나설 필요가 없다. 재료 및 조리도구, 앞치마, 식기 세팅까지 구내식당에서 맡아준다. 재료비는 어떻게 조달할까. 걱정 없다. 회원들이 매월 5000원의 회비를 내는데, 회사에서 동호회 회비로 1인당 5000원씩 더 도와주는 데다 매월 동호회 활동비를 별도로 50만원 한도 내에서 지원해준다. 예산이 넉넉한 셈이다. 회원들은 매월 요리실습하는 날이 되면 그저 ‘칼퇴근’해서 구내식당에 내려가기만 하면 된다.
이 회사 요리 동호회 회원들에게 요리를 가르치는 ‘사부’는 다름 아닌 이 회사 구내식당의 조리사들이다. 식사시간이면 늘 만나는 익숙한 조리사의 편안한 강의도 매력이다.
요리 실습장소인 현대캐피·현대카드 구내식당은 ‘디자인 경영’으로 유명한 회사답게 밝고 매끈한 분위기가 웬만한 고급 레스토랑은 저리가라다. 식당 한쪽에 오픈형 주방이 배치되어 있어 직원들이 요리 동호회 실습에 앞서 조리법 배우기도 편하다.
요리 동호회에 들어온 지 1년1개월 됐다는 김현철 대리(현대카드 인재개발팀)는 요리 동호회 활동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요리 실습하면 다 먹고 가니까 저녁이 해결되고요(웃음), 실습한 요리 레시피를 집에 가져가서 아내에게 요리해주면 좋아하죠. 요리 실습할 때 외부인 초청도 할 수 있는데요, 작년에 아내를 3번 데려와 함께 요리하면서 아내에게 점수를 많이 땄어요.”
김 대리는 이어 “평소에 접하기 어려운 다른 부서 사람들을 만나서 사내 인맥을 넓힐 수 있고, 회사에서 동호회 활동에 지원을 많이 해주는 것을 보면서 회사에 대한 로열티도 높아졌다”고 말했다.
동호회 회장 김찬씨는 “평소 깐깐하고 일 많이 시키시던 어느 남자 과장님이 실습날 전문가 수준의 칼솜씨를 보여주셔서 직원들이 깜짝 놀란 적이 있다”며 “음식을 함께 만들면서 업무를 할 때는 보기 힘들었던 회사 사람들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하다”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