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의 트레이드마크였던 분필과 칠판이 사라지고 있다. 교실에서 이뤄지는 수업활동을 컴퓨터, 대형 모니터, 태블릿 PC 등으로 디지털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3년부터는 모든 교실이 전자칠판과 이를 조정하는 전자교탁으로 이뤄진다. 이러한 전자칠판 국내 시장 1위 기업이 바로 아하정보통신이다. 이 회사는 지난해 12월 차세대 세계 일류기업으로 선정됐다.

태블릿 모니터 세계 세 번째로 개발

중동에 공장 설립…13개국 수출

김포골드밸리로 불리는 김포시 양촌산업단지. 이미 입주를 마친 벤처빌딩이 들어선 곳도 있었지만 또 다른 한쪽에서는 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입주를 마친 단지 중앙에 세계 일류상품 선정을 축하하는 커다란 현수막이 걸려 있는 3층 건물이 눈에 띄었다. 이곳 산업단지 1호 입주기업이면서 전자칠판분야 차세대 세계 일류기업인 아하정보통신이다.

1층 물류창고에서는 72인치 대형 전자칠판을 부지런히 트럭에 싣는 모습이 보였다. 2~3층에서는 전자칠판과 태블릿 모니터가 생산라인을 따라 조립이 이뤄지고 있었다.

아하정보통신의 올해 매출목표는 지난해 실적의 2배인 1000억원. 이는 정부와 지자체 등이 전자칠판 도입에 적극 나서면서 국내 시장 규모가 전년 대비 3배 이상 성장하고, 해외에서도 15억달러 규모의 관련 시장이 형성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손이나 펜 등 터치방식으로 자유자재로 입력

아하정보통신은 전자교탁에 설치되는 전자유도 방식의 태블릿 모니터를 일본·대만에 이어 세계 세 번째로 독자 개발한 기업이다. 기존엔 자판으로만 입력이 가능했으나 이 모니터는 손이나 펜 등 터치방식으로 색상에 상관없이 자유자재로 입력할 수 있다. 특히 전자유도 방식의 태블릿 모니터는 현존하는 필기 입력 기술 중 최상위 기술로 꼽힌다. 전자펜을 이용해 노트필기나 칠판 판서를 할 수 있으며, 특히 펜을 누르는 압력을 512단계로 감지하기 때문에 아주 정밀한 표현도 가능하다.

또 조달청 납품 순위 1위를 달리고 있는 이 회사의 72인치 LCD 전자칠판은 국내 시장의 95%를 점유하고 있다. 이는 가격 경쟁력이 월등하기 때문. 아하정보통신의 대형 LCD 모니터는 삼성전자의 제품과는 품질 면에서는 대동소이한 반면 가격은 5분의 1가량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70여 개로 추정되는 국내 업체들은 물론 글로벌 기업들도 이 회사로부터 전자칠판과 태블릿 모니터 등을 OEM 방식으로 공급받고 있다. 구기도 사장은 “최근 하루에 많게는 국내외 10여 개 기업이 방문해 제품 공급을 요청한다”며 “이 중에는 굴지의 글로벌 기업도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현재 아하정보통신의 태블릿 모니터와 전자칠판 등은 UAE·인도·러시아·네덜란드 등 전 세계 13개국에 수출되고 있다. 구 사장은 “해외에서는 대부분의 전자칠판이 스크린과 빔 프로젝터로 구성돼 있어 영상의 화질이나 사용의 편이성이 대형 LCD 모니터에 비해 떨어진다”며 “스크린과 빔 프로젝터가 대형 LCD 모니터로 바뀌는 추세이기 때문에 해외시장에서의 성장 가능성은 엄청나다”고 기대했다.

아하정보통신은 해외시장 공략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를 위해 사우디아라비아에 중동·유럽 시장을 겨냥한 현지 공장을 설립 중이다. 국내에서 완제품을 생산해 수출할 경우 배송비용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2~3년 후에는 미국·남미 시장 진출을 위해 멕시코에도 공장을 설립한다는 계획이다. 구 사장은 “이러한 해외시장 공략을 통해 2~3년 안에 현재 일본·대만 업체가 장악한 글로벌 시장에서 2위 업체로 발돋움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13억원어치 장비 도둑 맞은 뒤 빈털터리에서 재기

구 사장이 회사를 설립한 것은 1995년. 처음에는 학원·유치원 등에 컴퓨터 교육을 위한 방송시설 등을 설치하는 것이 주요 사업이었다. 한창 컴퓨터 배우기 열풍이 불면서 그의 사업은 승승장구했다. 한때 직원이 80여 명을 넘기도 했다.

하지만 행운은 오래가지 않았다. 1997년 외상으로 구입한 13억원에 달하는 장비를 도둑맞은 것이다. 그는 외상으로 장비를 구매한 업체를 찾아가 “벌어서 반드시 갚겠다. 지금 갚으라고 하면 나는 죽을 수밖에 없다”며 매달렸다. 다행히 그동안 쌓은 신뢰 덕분에 부채 상환을 유예할 수 있었다.

가지고 있던 집과 땅을 팔고, 직원들을 정리한 그는 서울 신림동에 사무실을 얻고 한쪽에서 살림을 해가며 ‘빚 갚기’에 나섰다. 아내와 단둘이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였다. 그는 그 당시를 ‘개고생’이었다고 회상했다. 2002년 빚을 다 갚은 그는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나섰다. 그것이 바로 전자칠판과 태블릿 모니터 사업이었다.

“컴퓨터 교육 사업을 하면서 결국엔 학교 수업에도 멀티미디어가 활용될 것이라는 것을 직감하고 있었어요. 처음에는 태블릿 모니터를 대만에서 수입했어요. 하지만 대만 업체를 방문할 때마다 너무 무시하는 겁니다. ‘열’ 받아서 직접 개발하기로 했죠.”

전 직원 8명 중 4명이 연구개발에 매달렸지만 쉽지 않았다. 국내 여러 대학의 교수들이나 연구소에서 기술개발에 번번이 실패한 분야였다. 주변에서도 극구 만류했지만 그는 한시도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낮에는 일하고, 새벽 3~4시까지 연구에 몰두했다. 개발에 나선 지 4년 만인 2006년 드디어 성공했다. 그는 “조금이라도 실의에 빠졌다면 회사는 아마 풍비박산이 났을 것”이라며 “하지만 어떤 실패에도 굴하지 않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연구에 매진해 성공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연구개발에 대한 열정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아하정보통신은 전체 직원 80명 중 외국인 연구원 3명을 포함해 15명을 연구진으로 두고 있다. 또 매년 매출의 10% 이상을 연구개발에 투자하고 있고 있다.

2002년 10억원에 불과했던 이 회사의 매출액은 지난해 500억원으로 급증했다. 이제 탄탄한 성공기반을 마련했지만 그는 3~4년 후 ‘아름다운 은퇴’를 꿈꾸고 있다.

“3~4년 후면 매출액이 3000억원에 달할 겁니다. 저는 엔지니어 근성은 강하지만, 3000억원 이상의 매출을 달성하는 기업을 경영하기에는 능력이 부족합니다. 그 때에는 전문경영인을 영입해 경영을 맡겨 더 크고 강한 기업으로 성장시킬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