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야성은 흔히 번화한 도시의 밤을 일컫는 말입니다. 하지만 불야성이 도시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불이 꺼지지 않는 농촌도 부지기수입니다. 마을과 집 얘기가 아닙니다. 해가 지면 밭 한가운데 비닐하우스에 불이 환하게 켜집니다. 전등을 밝혀 태양 대신의 역할을 하게 하는 ‘전조재배’를 하는 것인데 농가의 소득 증대에 한몫 단단히 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전국 어느 농촌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입니다. 하지만 문제가 있습니다. 전기요금이 시쳇말로 장난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 문제는 곧 해결될 조짐입니다. 빛을 내는 반도체라 불리는 ‘LED’가 해답을 쥐고 있습니다. 시험적으로 몇몇 지역에 설치했는데 결과가 아주 좋게 나오고 있습니다. 전기세 절감은 기본이고 농작물이 여간 건강해진 게 아닙니다. 그 밖에도 좋은 점이 숱합니다. 농가의 불야성 현장으로 가보시지요.

재배 비용 ‘뚝뚝’ 작물 건강 ‘쑥쑥’

“빛의 마법이 시작됐다”

경상남도 창원시에서 국화를 재배하는 김종선씨의 비닐하우스. 스위치를 누르자 두터운 천이 비닐하우스 내부를 덮기 시작했다. 곧이어 칠흑 같은 어둠이 하우스를 뒤덮었다. 또 다른 스위치를 눌렀다. 이번에는 빛이 일제히 하우스 내부를 밝혔다. 잉크처럼 붉디붉은 빛이었다. 천장에 설치한 LED(발광다이오드) 전등에서 내려온 것이었다. LED 전등 옆에는 백열등이나 삼파장 램프도 나란히 걸려 있었다. 백열등과 삼파장, 그리고 LED. 이 세 광원은 농가의 고민과 발전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상징이다.

전조재배 전력소모량 80% 절감

시설원예 농가에서는 흔히 전조재배를 한다. 전조재배란 해가 진 후 전등을 밝혀 농작물을 재배하는 농법이다. 전등에게 해의 역할을 맡기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낮이 길어지는 데 따른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꽃이 피는 시점을 늦출 수 있고 생산량을 늘릴 수 있는 게 대표적이다. 김종선씨와 같은 국화 농가에서는 주로 개화시기를 조절하기 위해 전조재배를 활용한다.

전조재배가 확대되는 것은 물론 소득 증대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국화 농가의 경우 꽃 피는 시기를 조절하면 수익을 크게 늘릴 수 있다. 경남 창원의 국화 농가는 생산품의 상당량을 일본에 수출하는데 일본인들은 줄기가 긴 국화를 선호한다. 줄기가 다 자라기 전에 꽃이 피면 그만큼 상품가치가 떨어지므로 농가에서는 줄기가 충분히 자랄 때가지 국화의 개화를 늦추는 게 유리하다. 전조재배가 그 역할을 한다.

하지만 전조재배 농가의 상황은 좋지 않다. 먼저 유지비용이 골칫거리다. 전기세가 막대하게 들어가는 것이다. 현재 전국적으로 약 1만 가구가 전조재배를 하는데 이들이 사용하는 전력량은 연간 3억9900만kW, 전기요금은 148억원에 이른다. 전구 교체 비용도 만만찮다. 농가들은 이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절치부심해왔다. 백열등에서 삼파장으로 광원을 교체한 것도 전기세와 전구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였다.

고민은 비용에서 그치지 않는다. 사용할 수 있는 전력량이 제한돼 있는 게 오히려 더 문제다. 대개 비닐하우스의 전력용량은 3~5㎾ 정도다. 동시에 이 이상을 쓰면 과부하가 걸린다. 전력용량이 3㎾고 사용하는 백열전구가 100W라면 동시에 불을 켤 수 있는 전구는 30개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전조재배 효과를 볼 수 없다. 이 때문에 농가에선 고육지책으로 번갈아 전구를 켜고 있다. 300개가 설치돼 있다면 한 쪽에 1시간씩 10번에 나눠 점등하는 것이다. 전력용량을 늘리는 승압 공사를 할 수도 있지만 수백만~수천만원의 비용이 들어 현실적으로 선택하기 어렵다.

LED는 농가의 이런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수 있는 ‘구원투수’로 주목받고 있다. 효율이 높아 전력 소모량을 80%가량 줄일 수 있고 수명도 반영구적이기 때문이다. 전기소모량이 적기 때문에 번갈아 전등을 켜야 했던 문제도 상당부분 해소된다. 현재 시험재배용으로 활용되고 있는 LED전등은 5~13W에 불과해 100W 백열전구에 비해 많게는 10배 이상 많은 등을 동시에 켤 수 있다. 전조재배의 효과를 싼 값에 충분히 누릴 수 있게 되는 셈이다.

딸기 생산량 20% 증가

LED라고 해서 모두가 전조재배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농촌진흥청이 개발한 LED 전조재배 기술은 ‘적색광’을 활용한다. 7가지 색이 모여 만들어지는 백색광에 비해 작물 재배에 월등한 효과를 발휘하기 때문이다. 이 기술을 개발한 농촌진흥청의 홍성창 농업연구사는 “빛은 색에 따라 작물에 미치는 영향이 각기 다르다”며 “적색광은 해의 길이를 연장시켜주는 효과가 백색광에 비해 5~6배나 강하다”고 설명했다.

적색광의 효과는 이번에 처음 발견된 것이 아니다. 미국 농무부 산하의 ARS벨츠빌연구소가 50년도 훨씬 전인 1952년에 이미 이를 찾아냈다. 원리는 이렇다. 식물들은 저마다 빛을 인식하는 광인식단백질인 파이토크롬(Phytochrome)을 가지고 있다. 파이토크롬은 평소에는 불활성 상태로 있다가 적색광을 감지하면 활성화해 해의 길이를 인식하게 된다. 그 결과 종자의 발아, 광합성 산물의 체내 이동, 작물의 길이 신장, 개화의 시기, 색소의 발현 등을 유도한다. 과장을 조금 섞으면 적색광을 활용해 작물 재배의 거의 모든 것을 조절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론은 이미 밝혀져 있었지만 실용화의 길은 멀고도 멀었다. 최적화한 적색광을 인공적으로 만들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실용화의 실마리는 LED라고 하는 첨단 광원이 개발되고 나서 풀리기 시작했다. LED는 파장이 일정한 붉은 빛을 만들어낼 수 있어서다. 현재 농가에 활용되고 있는 적색 LED의 파장은 660㎚다.

홍 연구사는 “식물은 수억 년 동안 태양광에 적응, 진화해왔는데 전조재배는 이를 활용한 것”이라며 “종전까지는 백색광만 사용됐던 것이 이제 적색광으로 발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적색 LED의 효과는 놀라울 정도다. 먼저 전기 사용량이 대폭 감소해 전기요금 부담이 줄어든다. 현재 전국적으로 148억원에 이르는 전기요금을 20억원까지 낮출 수 있다. 전기 사용량의 감소에 따라 온실가스인 탄소 배출량을 6만8000톤가량 줄일 수 있다.

생산량도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딸기의 경우 과실의 수가 20%가량 증가한 것이 확인됐다. 작물의 무게도 불어났다. 시험재배 결과 딸기는 22%, 국화는 34%, 잎들깨는 21%, 장미는 20% 정도 무거워졌다. 무게가 불어났다는 것은 그만큼 작물이 튼실해졌음을 의미하며 이는 상품가치의 상승으로 이어진다. 작물이 튼튼해지면서 수명도 길어졌다. 그만큼 싱싱한 상태로 오래 유통할 수 있다. 이 역시 상품의 가치를 올리는 요인이 된다.

이순섭 경남 창원시 농업기술센터 지도사는 “적색 LED를 활용해 국화를 재배하는 농가에 물어보면 전에 비해 확실히 무거워졌고 줄기도 탄탄해졌으며 잎 수도 늘어났다고 답한다”며 “상품가치가 좋아지면서 단가 상승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병충해 우려가 줄어들 것으로 기대된다는 점이다. 곤충들은 적색을 피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농가에선 별도의 노력을 들이지 않고도 유기농을 할 수 있다. 상품가치를 더욱 올릴 수 있는 것이다.

재배 농가의 일손이 줄어드는 효과도 있다. 종전 백열전구나 삼파장 램프는 고장이 많아 교체해야 하는 일이 잦았다. 그만큼 농가의 손길을 필요로 했다. 이에 비해 LED는 반영구적이어서 교체의 번거로움이 한결 덜하다.

홍 연구사는 적색 LED 장치를 활용할 수 있는 작물의 수를 늘려나갈 계획이다. 지난해 9종이었던 적용 작물을 올해 14종으로, 2011년에는 20종까지 확대한다는 구상이다. 홍 연구사는 “확실하게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적색 LED의 효과는 거의 모든 작물에서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작물마다 적색 LED의 효과를 확인하고 최적의 재배 방법을 찾아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초기 시설비용 부담 ‘넘어야 할 산’

적색 LED 광처리장치에 대한 기대감은 상당하다. 현장에서 이미 긍정적인 효과가 검증돼 논란의 여지도 거의 없다. 이 기술이 공식적으로 발표되자 수많은 농가와 관련 업체가 몰려든 것도 그래서다. 하지만 넘어야 할 산이 하나 있다. 가격이다. 아직까지 LED는 고가의 제품이다. 현재 가격으로 계산하면 1000㎡(약 300평)에 설치하는 데 3000만원 가까이 든다. 초기 설치비용이 떨어지지 않으면 농가로선 ‘그림의 떡’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LED 가격은 빠르게 떨어지고 있어 초기 시설비에 대한 부담도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LED 시장의 경쟁이 격화되면서 가격이 급락할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본 업체들은 최근 종전의 30%대로 가격을 인하하며 시장 선점에 나서고 있다. 국내 업체들도 가격 경쟁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분위기다. 반도체나 휴대전화를 봐도 가격은 시장 성숙과 함께 급속히 하락해왔다.

게다가 현재의 가격으로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농가에 이익이 된다. 홍 연구사의 계산에 따르면 10년간 백열등 대신 적색 LED를 사용하면 100㎡당 연간 80만원 정도가 오히려 이익이다. 전기요금 절감 효과와 작물의 상품 가치 상승(10% 기준)으로 인한 효과다.

Mini Interview

홍성창 농촌진흥청 농업연구사

“종자는 수입해도 LED기술만큼은 수출해야죠”

바구니처럼 생긴 적색 LED 광처리장치를 보는 홍성창 농촌진흥청 농업연구사의 표정은 만감이 교차하는 듯했다. 이 장치를 개발해 내놓은 것이 햇수로 2년이 됐지만 감격은 여전한 모양이었다. 2003년 개발에 착수해 현재의 장치까지 오는 데 5년이 걸린 데다 실제로 농가에 장치를 설치해 적용한 결과도 긍정적이니 그럴 만도 했다.

“처음엔 빛이 식물에 미치는 영향, 그러니까 광생리학의 기본 연구로 시작했습니다. 연구는 어느 정도 진척됐는데 실용적이지 않아 포기하려고 했죠. 그러다가 미국에서 생산되는 적색비닐필름을 알게 되면서 급물살을 탔습니다.”

적색비닐필름은 말 그대로 빨간색 비닐이다. 세계적인 광수용단백질 권위자가 개발한 제품이다. 용도는 우리 농가에서 씨를 뿌린 후 밭에 까는 검정색 비닐과 유사하다. 잡풀의 씨가 밭에 발아하는 것을 막아 작물의 성장을 돕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검정색과 빨간색의 차이는 컸다. 검정색은 그저 차단만 했지만 빨간색은 작물의 성장을 촉진했다. 비닐에서 반사된 붉은 빛이 비밀이었다.

“적색비닐필름은 굉장히 비싼 데다 해외 반출도 안 됐습니다. 미국에 사는 지인에게 부탁해 소량을 들여와 연구했습니다. 전문 업체에 의뢰해 같은 제품을 만들어 달라 했는데 품질이 나빠 오래가지 않더군요. 그 후 6개월 정도 자료를 검토하다가 비닐이 아니라 LED로 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적색과 LED라는 핵심 아이디어가 떠오른 거죠.”

처음에 만든 제품은 선형 LED이었다. 크리스마스트리에 쓰는 장식용 전구처럼 긴 줄에 LED 전구를 매단 형태였다. 효과가 있다는 것을 확인한 후 홍 연구사는 보다 실용화된 제품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막대형 제품이 그 다음 결과물이었다. 하지만 이 역시 실용성이 떨어졌다. 경제성이 부족한 데다 비닐하우스의 구조상 설치에도 문제가 있었다. 이를 해결한 것이 현재의 원추형 장치다.

“현재의 모양은 경제성을 높이는 동시에 적색광의 효과를 고르게 볼 수 있도록 설계됐습니다. 국내외에도 7건의 특허를 출원해 놓은 상태입니다. 종자는 해외에서 수입하더라도 이를 기르는 적색 LED 광처리장치는 수출하도록 해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