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은 127대의 항공기를 보유하고 있다. 하루에 무려 400편의 항공기가 39개국 117개 도시를 오간다. 매 순간 지구촌 상공을 운항 중인 항공기도 약 70대에 달한다. 즉, 70대의 KAL기가 항상 하늘 위에 떠 있다는 말이다. 그 많은 KAL기의 움직임을 한 눈에 파악하고 통제하는 곳이 대한항공 종합통제본부다. 종합통제본부는 비유하자면 군(軍)의 작전사령부 같은 곳으로, 항공사의 모든 정보가 집결되는 컨트롤타워인 셈이다.

전 세계 KAL기 항로 한눈에 파악

무사고 비행 담보하는 컨트롤타워

기상정보·항공정보 분석 토대로 항공기 안전운항 ‘원격조종’

지난 3월4일 오후 서울 강서구 공항동 대한항공 본사. 종합통제본부 소속의 노연희 운항관리사(디스패처·dispatcher)가 취재진을 직접 안내하러 나왔다. 종합통제본부는 대한항공 본사 빌딩에서도 보안이 가장 철저한 곳이다. 다른 부서 임직원들도 함부로 출입할 수 없다고 한다. 

노연희 운항관리사의 말이다. “종합통제본부는 본사 건물 안에서도 2단계의 보안 관문을 거쳐야 들어갈 수 있는 곳입니다. 원칙상 본부 요원 외에는 아무도 들어갈 수 없게 돼 있지요.”

종합통제본부는 크게 스케줄운영부와 종합통제부로 나뉜다. 스케줄운영부는 말 그대로 비행 일정을 짜고 그에 맞춰 항공기와 승무원을 배분하는 역할을 하며, 종합통제부는 항공기 운항에 관한 전반적인 사항을 총괄 관리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종합통제부 산하에 이른바 통제센터(OCC: Operations Control Center)가 편제돼 있다. 지구촌을 운항 중인 모든 KAL기를 추적·감시하는 기능을 맡고 있는 곳이 바로 통제센터다.

박찬혁 종합통제본부 운영계획팀장의 설명이다. “항공기가 운항할 때는 여러 가지 변수가 얽힌 복합적 상황이 자주 발생합니다. 그런 경우에는 항공사 내의 다양한 유관부서 관계자들이 한데 모여 즉시 협의해야 할 필요가 생깁니다. 통제센터는 바로 그 기능을 수행하는 곳이지요. 따라서 통제센터에는 항공사의 모든 정보가 집결됩니다.”

항공기가 이륙한 뒤에는 조종사가 안전운항의 책임을 지게 된다. 하지만 하늘에는 조종사가 파악할 수 없는 변수가 항상 도사리고 있기 마련이다. 통제센터는 그런 변수를 미리 파악해 조종사의 안전운항을 돕는 역할을 한다고 보면 된다.

비행감시화면엔 1분 간격 항적 표시

안내를 따라 특급 보안구역인 통제센터에 들어섰다.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월스크린(wall screen)이 가장 먼저 시선을 잡아끌었다. 월스크린 중앙에는 이른바 ‘비행감시화면(ASD: Aircraft Situation Display)’이 자리잡고 있었다. 비행감시화면은 운항 중인 모든 항공기의 레이더 항적을 1분 간격으로 표시하는 첨단장치다.

이상기 통제센터장이 비행감시화면 위의 한 지점을 가리켰다. 이날 인천공항을 떠나 미국 워싱턴으로 향하던 KAL093편의 항적이었다. KAL093편은 마침 태평양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었다. 지상 3만6000피트 고도를 시속 900마일로 비행 중이라는 설명이 이어졌다.

“노란 점선이 항공기의 항로입니다. 노란 실선은 제트스트림(jet stream; 대류권 상부의 좁은 영역에 집중된 강한 편서풍으로 제트기류라고도 한다)이지요. 그리고 빨간 점선으로 둘러싸인 지역은 청천난류(clear air turbulence; 맑은 하늘에 생기는 난기류)를 표시한 겁니다. 비행감시화면을 보면 항공기가 예정 항로로 운항하고 있는지, 또 예정 항로에 어떤 기상변화가 있는지 등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통제센터에서는 35~40명의 요원이 24시간 3교대로 근무한다. 전체 근무자는 150명 가까이 된다. 이들은 각자 맡은 지역을 한시도 놓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감시한다. 당초 비행 계획과 실제 항공기의 운항 데이터를 실시간 모니터링으로 비교하는데, 만약 연료량·고도·비행시간·항로 등에 차이가 나면 자동으로 경보를 울린다. 또한 항로상에 난기류·뇌우·화산재 등 예기치 못한 악기상(惡氣象)이 발생하면 조종사에게 알려 고도 조정이나 우회 운항을 하도록 유도한다.

통제센터는 비행 감시만 하는 게 아니다. 조종사와의 교신도 주요 업무다. 여기에는 첨단통신체계가 활용된다. 항공기-지상간 데이터 통신 시스템(ACARS)이나 인공위성을 통한 데이터·음성 통신(SATCOM) 등이 그런 예다. 박찬혁 운영계획팀장은 “통제센터와 기장은 항상 교신돼야 합니다. SATCOM을 이용하면 이론적으로는 ‘블라인드 에어리어(blind area: 통신불통지역)’가 없습니다”고 말했다. 간혹 지상의 반가운 소식을 실시간으로 전하기도 한다. 김연아 선수가 밴쿠버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종목에서 금메달을 따냈을 때도 그랬다. 이는 승객들을 배려하는 세심한 서비스의 하나다.

통제센터 월스크린 오른쪽에는 공항기상관측장비(AMOS)를 통해 수집된 기상정보가 수치로 나타나는 화면도 설치돼 있었다. AMOS는 공항 주변 기상상태를 파악해 조종사의 이착륙 여부 판단에 도움을 주는 장비다. 미국해양대기관리처(NOAA)의 우주기상 관측 정보를 실시간으로 띄워놓은 화면도 눈길을 끌었다. 태양 활동이 전자장치나 나침반을 교란시킬 수 있기 때문에 비행 안전을 위해서 필요한 정보라는 설명이었다.

비정상 상황 발생 시 전사적 의사결정

통제센터는 항공기 운항에 관한 한 전사적(全社的)인 의사결정을 하는 조직이다. 당연히 운항에 관계되는 모든 유관부서 관계자들이 협의체를 이룬다. ‘비정상 상황’이 발생하면 즉각적으로 모두 모여 신속한 결정을 내린다. 이른바 ‘No Wall(부서간 장벽 없이)’과 ‘Face to Face(얼굴을 맞대고)’가 철칙이다. 안전운항에 관련된 조치는 화급을 다투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협의체 내에 의견차가 있을 때는 ‘고객’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보수적 판단을 내린다.

이 같은 수평적 의사결정 구조를 가진 대한항공 종합통제본부는 조양호 회장의 경영철학이 반영된 조직이기도 하다. 조양호 회장은 임직원들에게 “항상 시스템에 따라 움직여라. 누구 한 명의 독단으로 의사결정이 이뤄지면 안 된다”고 자주 강조한다고 한다. 항공사는 매우 다양한 분야와 부서가 어우러진 조직인데, 그 자원을 한데 모아 효과적으로 운영해야 한다는 취지라고 볼 수 있다.

대한항공은 2000년 이후 무사고 10년을 기록하고 있다. 이른바 ‘절대안전운항’이라는 슬로건에 담겨 있는 안전지상주의가 결실을 맺었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여기에는 지상에서 안전운항의 파수꾼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종합통제본부의 역할이 컸던 셈이다.

운항관리사는 어떤 직업

비행안전 책임진 ‘지상의 조종사’


▷▶▷ ‘하늘에 조종사가 있다면, 지상에는 운항관리사가 있다.’

운항관리사는 안전운항을 책임지는 숨은 조력자다. 조종사는 직접 항공기 조종간을 잡지만, 운항관리사는 그 조종사에게 필수적인 운항정보를 제공한다. 그뿐이 아니다. 운항관리사의 업무 범위는 생각보다 꽤 넓다. 비행 계획을 작성하는 것도 이들의 임무다.

▷▶▷ 비행 계획은 항공기가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운항하는 데 필요한 제반 계획을 세우고 최적 항로를 선정하는 일이다. 비행 계획을 수립할 때는 기상조건, 비행시간, 연료 소모량, 영공 통과료, 운행 제한 사항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또한 비행 계획 작성에는 예약·여객·화물·정비·운송 등 사내 각 부문과의 조율도 필수다. 운항관리사가 작성한 비행 계획에 승무원이 서명하면 비로소 항공기가 출발할 수 있게 된다.  

▷▶▷ 항공기가 이륙한 뒤에는 목적지에 착륙할 때까지 비행 감시와 교신을 책임져야 한다. 항공기가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하더라도 할 일이 남아 있다. 운항 기록을 꼼꼼히 살펴 특이사항 등을 정리해둬야 한다.

▷▶▷ 운항관리사는 특히 기상에 대한 전문성이 중시되기 때문에 대기과학 등 기상 관련 전공자들이 많이 도전하는 분야다. 이밖에 항공교통학과나 일반 공대 출신자들도 운항관리사로 다수 활동하고 있다.

인터뷰

김흥식 대한항공 종합통제본부장

“규정·원칙 준수가 항공안전 최후 보루”

운항결정의 가장 중요한 기준은 안전과 고객편의

2005년 8월 어느 날. 인천공항을 출발해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향하던 대한항공 여객기에 타고 있던 한 어린이가 갑작스레 고열과 경련증세를 일으켰다. 상황은 심각했다. 점점 의식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 무렵 여객기는 인천공항을 이륙한 지 10여 분쯤 지났을 때였다. 대한항공 종합통제본부는 그 어린이를 구하기 위해 회항을 결정했다. 또한 안전한 착륙을 위해 떠날 때 탑재했던 항공유 가운데 73톤을 공중에 방출했다. 김흥식 종합통제본부장(전무)은 “당시의 일이 지금도 가슴 깊이 남아 있다”고 회고한다.

 “저는 개인적인 약속을 안 합니다. 약속하면 꼭 일이 터지거든요. 점심과 저녁도 회사에서 먹지요. 사생활은 거의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출근은 새벽 6시쯤 하는데, 밤 9시쯤 마지막 비행기가 뜨고 난 뒤에야 비로소 안도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일을 스트레스라고 생각하면 못 합니다. 저는 도전이라고 생각하고 일을 합니다.”

김흥식 전무가 종합통제본부장을 맡은 지는 벌써 만 6년이 지났다. 그는 정비사로 입사해 영업, 스케줄 업무 등 거의 모든 직무를 두루 거친 대한항공의 ‘올라운드 플레이어’다. 그의 말마따나 종합통제본부장은 사생활을 포기하다시피 해야 하는 자리다. 아무나 선뜻 맡기 어려운 그 직책을 김 전무는 자신의 천직마냥 받아들이는 듯하다.

“항공기 이륙 2시간 전부터 착륙까지 통제센터(OCC)가 책임을 지게 되는데 변수가 너무 많습니다. 하지만 그게 통제센터의 존재 이유이지요. 비정상 상황이 발생할 경우 신속한 의사결정을 통해 정상으로 복귀하도록 하는 게 통제센터의 주 임무라고 보면 됩니다. 따라서 항상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일하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도 저희 일의 숙명이죠.”

통제센터가 문을 연 것은 2000년 8월이지만 종합통제본부 체제로 확대 개편된 것은 2004년 1월이다. 김 전무는 이 때가 가장 중요한 전환점이었다고 회고한다. 종합통제본부가 출범하면서 항공사의 3대 경영자원이라고 할 수 있는 항공기, 운항승무원, 객실승무원의 통합 관리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종합통제본부는 이후 탑재관리, 연료관리 기능 등을 아우르면서 항공기 운항의 심장부로 거듭났다.

통제센터의 업무 내용을 자세히 설명한다면.

“통제센터는 항공기 출발 48시간 이전부터 운항통제 업무를 시작합니다. 먼저 운항과 관련된 정보 수집과 분석을 토대로 매 항공편의 운항결정 업무를 수행합니다. 이 때 가장 중요한 기준은 안전과 고객 편의입니다. 운항결정이 이뤄지면 항공기 출발 2시간 전에 최신 자료를 반영한 비행계획을 작성합니다. 이어 항공기가 운항하는 동안에는 비행감시 업무를 담당합니다. 비행계획 작성과 비행감시는 운항관리사의 몫입니다. 통제센터에서는 빠르고 정확한 의사결정을 위해 여객, 화물, 정비, 운항, 승무원, 스케줄 등 유관 부서 스태프들이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보다 안전한 운항을 위한 정보그룹도 운용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전 세계 공항과 항로 등에 관한 항공정보와 국지적인 기상정보를 담당합니다.”

조종사들은 통제센터의 지시나 정보제공을 전적으로 따르는가. 안전운항이라는 목표를 위해 통제센터와 승무원은 어떻게 역할분담을 하는가.

“대한항공은 미국 연방항공청(FAA)의 기준인 ‘Shared Responsibility(책임 분담)’ 체계를 운용합니다. 바꿔 말하면 하늘에서 운항 중인 기장과 지상에서 지원하는 운항관리사가 매 항공편에 대해 공동의 책임을 지는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긴급한 상황에서 최종적인 결정권은 기장의 고유 권한입니다. 다만 운항 중인 항공기 내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가 매우 제한적인 까닭에 기장은 지상의 운항관리사와 협의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통제센터 운영을 위한 각종 정보는 어떤 경로로 수집하는지.

“항공기 운항과 관련된 모든 정보는 다양한 소스를 통해 수집합니다. 항공 정보들은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 각국 항공 관련 기관에서 제공하고 있으며, 서로 긴밀한 협조체제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단순한 정보 수집 및 전파를 위주로 했지만 요즘에는 분석 기능을 강화해 비행안전 확보를 더욱 공고하게 하고 있습니다.”

항공기가 운항 중에 맞닥뜨리는 비상 상황은 어떤 것들인가. 그런 상황에 통제센터는 안전 확보를 위해 어떤 조치를 취하는가.

“승객을 쾌적하고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모시는 역할을 해야만 하는 우리로서는 사실 매 순간이 비상 상황이나 다름없습니다. 항상 최적의 운항결정을 내릴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갖춰 놓아야 하기 때문이죠. 일반적으로 비상 상황은 화산 폭발이나 태풍 발생 등 천재지변뿐 아니라 기내에서 응급환자가 발생한 경우도 포함됩니다. 특히 응급환자가 발생하면 24시간 비상연락망을 운영 중인 당사 항공의료센터 전문의가 직접 항공기와 교신하며 자문을 하게 됩니다. 또한 통제센터는 환자 상태가 위급해 비상착륙을 하는 경우에 대비해 최단시간에 회항할 수 있는 최적의 공항을 선정하는 등 신속한 대응 조치를 취합니다.”

당초 대한항공 통제센터는 미국 델타항공의 시스템을 도입해 만들어졌다. 이후 대한항공에 최적화된 시스템으로 점진적인 개선이 이뤄졌다. 요즘에는 대한항공 통제센터를 견학하러 오는 외국 항공사들도 많다고 한다. 김 전무의 말이다. “대한항공은 통제센터 구축 이후 10년간 무사고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자리를 잡은 셈이지요. 특히 회사에서는 글로벌 톱10 항공사에 걸맞게 통제센터에 대한 투자를 전폭적으로 해주고 있습니다. 안전에 관한 한 아낌없이 투자한다는 게 회사의 원칙입니다.”

대한항공 종합통제본부의 ‘결정률’은 92% 수준이다. 결정률은 의사결정의 결과가 타당했는지를 비율로 나타낸 것이다. 100차례의 결정 중 92차례가 들어맞았으면 수준급 성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종합통제본부는 일의 속성상 긴장을 늦출 수 없는 곳이다. 김 전무도 그것을 잘 안다. “일을 잘 하는 직원이 많아도 칭찬을 못 해줍니다. 잘 한다고 했다가 꼭 사고가 나거든요. 그래서 항상 규정과 원칙을 강조하는 말밖에 하지 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