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이란 고객이 미처 생각지 못했던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활동이다.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경제적 만족을 창출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혁신의 결과는 새롭고 남다른 제품, 새로운 용도 또는 새로운 욕구의 발견일 수 있다. 가장 좋은 혁신은 단순히 기존 고객의 욕구를 향상시키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만족을 제공할 수 있는 색다른 제품이나 서비스를 창출하는 것이다. 고객이 원하는 것만 기업이 찾는다면 혁신을 기대하기 어렵다. 백열등을 쓰는 경우라면 고객들은 더 밝은 백열등이나 더 오래가는 백열등만을 원할 것이다. 이때 혁신이란 백열등을 뛰어넘어 형광등이란 새로운 가치를 고객에게 제안하는 것이다. 이러한 혁신을 위해서는 기술 개발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세상에 없는 혁신을 부르짖은 ‘와해성 혁신’의 전도사

현대 기업이 태동하기 시작한 19세기 이후, 기술 개발은 경영자가 고민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의사결정 문제 중의 하나였다. 대부분의 경영자들도 기업의 핵심성공요소로 기술을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문제는 그동안 기술을 경영적인 측면보다는 주로 연구개발(R&D) 투자 차원에서 접근했다는 점이다. 경영자는 새로운 기술이 사업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체계적으로 이해하기보다는 투자 금액을 결정하면 그만이었다. 기술 문제는 기술 담당자나 외부 전문가에게 맡기면 된다는 식이었다. 물론 전적으로 틀린 말은 아니다. 경영자가 반드시 기술 전문가일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로운 기술의 등장은 기존 기업들에게 엄청난 기회일 수 있지만 치명적인 위협이 될 수도 있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클레이튼 크리스텐슨(Clayton Christensen) 교수는 1997년 출간한 자신의 첫 번째 저서, <혁신기업의 딜레마(The Innovator’s Dilemma)>를 통해 기술의 문제를 경영자가 고민해야 할 가장 핵심적인 과제로 부각시켰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와해성 기술(disruptive technology)’에 대한 대응이 기업의 운명을 결정한다.

패러다임을 바꾼 기술의 위력

크리스텐슨 교수가 초기에 중점적으로 연구한 대상은 컴퓨터의 핵심부품 중 하나인 하드디스크 드라이브(Hard Disk Drive) 산업이었다. 하드디스크 드라이브는 컴퓨터가 이용하는 정보를 읽고 쓰는 장치다. 이 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기술 혁신은 드라이브의 크기를 작게 만드는 구조적 혁신이었다. 즉 하드디스크 드라이브의 크기는 점차로 줄어드는 대신 기억 용량은 점차 커지는 것이 바로 기술 혁신의 핵심이었다.

IBM이 메인 프레임이라는 대형 컴퓨터를 최초로 출시했을 때 직경이 14인치였던 하드디스크 드라이브는 미니컴퓨터의 등장과 함께 8인치로 줄었고, 다시 데스크톱 컴퓨터의 급속한 확산과 함께 5.25인치, 노트북 컴퓨터의 등장과 함께 급기야 3.5인치로 축소되었다.

문제는 이 같은 기술발전 과정에서 한 시기를 주름 잡았던 하드디스크 드라이브 산업의 선도기업들이 기술적 우위를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술 변화와 함께 도태되었다는 점이다. 즉 14인치 드라이브 시장을 지배하던 기업이 8인치 드라이브의 도래와 함께 시장에서 자취를 감추었고, 8인치 드라이브 시장을 지배하던 기업은 5.25인치 드라이브 시장에서 힘을 쓰지 못했다. 왜 이렇게 시장을 지배했던 기업이 기술 발전과 함께 도태되었던 것일까.

놀랍게도 선도기업이 힘을 쓰지 못하는 진짜 이유는 기술 문제가 아니라 경영의 문제였다. 예컨대 PC 시장의 성장과 함께 등장한 시게이트(Seagate)는 5.25인치 드라이브 시장을 지배하는 선도기업이었다. 하지만 시게이트는 뒤이어 등장한 3.5인치 드라이브 시장에서는 자신의 명성에 걸맞지 않게 고전을 면치 못했다. 

위기의 발단은 경영진의 판단에서 비롯되었다. 시게이트 기술진들이 개발한 3.5인치 드라이브의 성장 잠재력에 대해 시게이트의 경영진들은 처음부터 부정적이었다. 일단 당시 시게이트의 기존 고객들은 신제품인 3.5인치 드라이브보다는 기존 제품인 5.25인치 드라이브의 성능을 더 높게 평가했다. 그 결과 3.5인치 드라이브의 예상 매출액과 시장 잠재력은 낮게 추정되었고, 시게이트의 경영진들은 이 결과를 바탕으로 3.5인치 드라이브 관련 프로젝트를 취소해 버렸던 것이다. 경영자들은 시장이 확실한 5.25인치 드라이브의 성능 향상에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시장이 불확실한 3.5인치 드라이브를 개발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수익을 거둘 수 있다고 단정했다. 그런데 무시했던 바로 그 3.5인치 드라이브가 노트북 컴퓨터의 등장과 함께 시장을 석권하면서 문제가 생겼던 것이다.

이 연구를 통해 크리스텐슨 교수는 ‘와해성 기술’의 파괴력을 주장했다. 이미 주력 시장의 고객들이 알고 있는 기술 패러다임하에서 점진적으로 제품 성능을 향상시키는 지속성 기술(sustaining technology)과 달리 와해성 기술은 전혀 다른 패러다임에서 등장한 기술을 의미한다. 지속성 기술이 현재 주력 시장에서 기존 제품의 성능을 개선시키는 기술인 반면, 와해성 기술은 소수의 기존 고객이나 아예 새로운 고객들로부터만 높은 가치를 인정받는 급진적인 기술이었다.

와해성 기술에 기반을 둔 제품은 전형적으로 더 싸고, 단순하고, 작고, 사용하기에도 편리한 경우가 많았다. 예컨대 소니의 트랜지스터는 기존 진공관에서 제공하는 속성과는 전혀 다른 크기, 무게, 이동 시 간편하게 소지할 수 있는 점을 강조하면서 새로운 시장을 개척했다.

와해성 기술에서 와해성 혁신으로

크리스텐슨 교수는 와해성 기술이 등장하면 기존 기업들이 왜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지를 밝히는 연구로 출발했지만, 곧 자신의 이론을 ‘와해성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이라는 개념으로 확장했다. 그는 두 번째 저서 <혁신기업의 해결책(The Innovator’s Solution)>을 통해 자신이 제안했던 와해성 기술의 개념을 혁신이라는 틀을 통해 체계화했다.

굳이 첨단기술 산업이 아니더라도 거의 모든 산업에서 공통적으로 와해성 혁신의 등장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백화점을 파괴시킨 할인점, 기존 항공사를 궁지로 몰아넣은 저가 항공사, 반즈앤노블과 메릴린치를 긴장시킨 온라인 서점과 온라인 증권사, 레이저젯 프린트를 밀어낸 잉크젯 프린트, 외식 시장에서 영세한 소규모 식당들을 몰아낸 패스트푸드점 등이 모두 와해성 혁신의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와해성 혁신은 처음에는 저가 시장을 중심으로 제품이나 서비스를 공급하지만 점차 상위 시장으로 치고 올라가 궁극적으로 기존 경쟁자들을 대체하는 공통적인 과정을 거쳤다. 와해성 혁신은 작은 시장 규모, 낮은 마진, 단순한 제품과 서비스 등의 이유로 기존 해결책에 비해 열악해 보였지만, 결국 새로운 고객들을 끌어들여 기존 시장을 파괴했던 것이다.

철강 산업의 미니밀(minimill)은 와해성 혁신이 기존 경쟁자들을 상위 시장으로 어떻게 밀어냈는지 잘 보여준다. 세계 굴지의 철강 기업들은 대부분 용광로에서 완제품 생산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을 처리하는 종합제철소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소형 제철소에서는 전기로에서 잡동사니 고철을 녹인다. 이 같은 미니밀은 좁은 공간에서 효율적인 비용으로 철을 녹일 수 있기 때문에 용광로처럼 대규모 압연공정과 마감공정이 필요 없다. 다만 미니밀은 전기로에서 화학반응을 이용해 고철을 녹였기 때문에 품질이 조악했다.

처음에는 마진이 적고, 종합제철소들의 관심이 적은 콘크리트 철근 시장을 공략했다. 콘크리트 철근의 품질요건은 그리 까다롭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지속적인 혁신을 기반으로 좀 더 높은 마진을 확보할 수 있는 앵글 철강, 구조용 형강 등 상위 시장으로 올라갔으며 마침내 종합제철소들의 주력 시장인 강판 시장을 공략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때마다 종합제철소들은 미니밀과 맞서 싸우기보다는 저마진이라는 핑계하에 시장을 내어주면서 경쟁을 회피했다.

그렇다면 와해성 혁신은 어떻게 선도기업들을 마비시킬 수 있었을까. 우선 선도기업들은 언제나 상위 시장을 지향하기 때문에, 새로운 시장이나 저마진 시장을 지키기 위한 동기 부여가 되지 않는다. 와해성 혁신을 통한 제품은 일반적으로 기존 제품에 비해 저렴하기 때문에 높은 마진을 얻기 어렵고, 이런 이유로 기존의 주력 시장에서 높은 마진에 익숙해 있는 선도기업들은 와해성 혁신이 제공하는 낮은 마진을 받아들이기 어려워진다.

코닥의 일회용 카메라인 펀세이버는 내부에서 논란이 많은 사업이었다. 전통적인 코닥 필름이 벌어들이는 수익보다 적고, 고품질의 35㎜ 카메라로 찍은 사진보다 화질도 좋지 않았다. 사업이 제대로 활성화될 리 만무했다. 이후 코닥이 디지털 기술 도입에 어려움을 겪은 것도 같은 이유였다.

또한 기존 시장의 주력 고객들도 낮은 성능으로 인해 와해성 혁신을 이용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외면했다. 선도기업에게 가장 높은 수익을 가져다주는 고객들은, 기존 제품에 비해 성능이 떨어지는 와해성 혁신에 기반을 둔 제품을 원하지 않을 뿐 아니라 처음에는 그것을 사용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이런 이유로 주력 고객의 목소리에만 귀를 기울이고 더 높은 수익과 성장을 보장하는 신제품을 선별하는 원칙에만 익숙해져 있던 선도기업들이 와해성 혁신에 투자하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투자하더라도 이미 시장에서의 리더십을 상실한 이후가 대부분이었다.

보잉과 에어버스로 양분되어 있는 항공기 산업에서 최근 가장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기업으로는 중소형 항공기를 제조하는 캐나다의 봄바디어(Bombardier)나 브라질의 엠브레어(Embraer)를 꼽을 수 있다. 이들은 보잉과 에어버스가 더 크고, 더 빠른 대륙 횡단용 대형 항공기에 심혈을 기울이는 동안 중소형 항공기 시장을 빠르게 장악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조직 내 역학구조가 그때까지 핵심기술인 지속성 혁신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도 문제였다. 선도기업의 경영진들은 그 기업의 성장을 이끈 일등 공신들인데, 이들은 지속성 혁신을 발전시켜 시장의 선두에 이르렀으며, 지니고 있는 대부분의 지식 또한 지속성 혁신과 관련된 것이었다. 이들은 조직 내 의사결정 권한의 많은 부분을 갖고 있어 자원 배분에 있어 큰 영향력을 미친다. 적어도 이들에게 와해성 혁신은 자신들의 위상을 위협하는 대상인 셈이다.

기존 조직과 독립된 혁신 조직을 구축해야

그렇다면 단기적으로 기존 사업의 경쟁력을 유지하면서도 궁극적으로 기존 기업의 몰락을 가져올 수 있는 와해성 혁신에 자원을 집중시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크리스텐슨 교수가 제시한 몇 가지 해법을 살펴보자.

우선, 기존 조직문화와 단절된 새로운 조직을 구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기업의 자원 배분 과정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집단은 고객과 투자자다. 기업은 고객이 원하면 기술적인 위험이 큰 프로젝트에도 과감히 투자하지만, 그들이 원하지 않으면 훨씬 간단한 프로젝트에도 자원을 배분하려고 하지 않는다. 따라서 주력 시장을 관리하는 기존 조직은 현재 고객들이 선호하는 기술을 개선하는 것을 원하게 된다. 그 결과 시게이트나 코닥의 실패 사례처럼 기존 조직은 시장 판도를 바꿀 수도 있는 새로운 기술 기반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사장시킬 수 있다.

결국 기존 조직에 새로운 기술을 활용하는 신사업 임무를 맡겨도 구조적으로 이를 수용할 수 없게 되고, 신사업은 주력 사업으로부터 핍박받는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하게 된다. 차라리 신사업만 전담하는 조직을 기존 조직으로부터 분리시켜 별도의 임무를 주는 것이 이러한 조직적인 모순을 피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일 것이다.

또한, 사전에 완벽하게 예측하기 힘든 혁신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기존 고객에 대한 시장조사를 통한 분석 중심의 계획보다는 소규모이지만 새로운 시장, 새로운 고객을 대상으로 한 발견 중심의 계획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혁신적 제품이나 기술에 대한 시장조사는 기존 제품이나 기술에 만족하는 대다수 고객들에 의해 거의 부정적인 결과가 도출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기존 휴대전화에 익숙한 고객들에게 한 번도 써 보지 못한 신제품인 스마트폰에 대해 조사한다면 과연 의미 있는 결과를 도출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 어떤 신시장에도 규모는 작지만, 위험을 부담하고 신제품을 남보다 먼저 사용하는 혁신적인 소비자나 초기 수용자(early adopters)들은 있기 마련이다. 바로 이들을 관찰해서 시장의 미세한 변화, 신기술의 수용 정도 등을 파악하는 일이 더욱 중요할 것이다.

20세기 역사가 증명하듯 새로운 기술 혁명은 언제나 기업의 판도를 바꾸어 왔다. 많은 미래학자들은 이미 시작된 21세기도 지난 20세기와 마찬가지로 기술 혁명의 시대가 계속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기술 혁명의 속도가 빨라지는 것은 물론 그 폭 또한 더욱 커질 것이란 설명이다.

이미 시작된 정보기술과 생명공학 이외에 나노기술, 환경공학 등 아직 가시화되지 않은 수많은 신기술들이 쏟아질 것이 틀림없다. 이러한 기술 혁명은 언제나 그랬듯이 새로운 기업을 탄생시키고, 기존 기업을 퇴출시킬 것이다. 분명한 것은 새로운 혁신의 의미, 특히 경영 차원에서 혁신이 미치는 영향에 대한 통찰력을 가진 기업은 반드시 생존할 수 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