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연세대 신동엽 교수와 얘기를 하면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얘기를 다시 듣게 됐습니다. 루이스 캐럴(Lewis Carroll)이 쓴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속편인 <거울 나라의 앨리스(Through the looking glass)>에는 붉은 여왕(Red Queen)이 앨리스의 손을 잡고 달리는 장면이 나오는데 신 교수는 이를 아주 재미있게 설명했습니다. 그가 묘사한 장면을 실제 소설 구절에서 찾아보았습니다. 소설 속의 장면묘사입니다.
Alice looked round her in great surprise. “Why, I do believe we’ve been under this tree the whole time! Everything’s just as it was!” (앨리스는 붉은 여왕을 돌아보며 이렇게 말했다. “왜 내가 이 나무 밑에만 계속 있는 느낌이 들지! 모든 것이 똑같아”)
“Of course it is,” said the Queen: “What would you have it?” (“그야 당연하지.” 여왕은 말했다. “뭘 원했던 거야?”)
“Well, in our country,” said Alice, still panting a little, “you’d generally get to somewhere else if you ran very fast for a long time, as we’ve been doing.”(앨리스는 여전히 숨을 헐떡거리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우리가 지금 한 것처럼 오랫동안 빨리 계속 뛰면 원하는 곳에 갈 수 있는데.”)
“A slow sort of country!” said the Queen. “Now, Here, you see, it takes all the running you can do to keep in the same place. If you want to get somewhere else, you must run at least twice as fast as that!”(“아주 느린 나라구나.” 여왕이 말했다. “여기서는 제자리에 머물기 위해서라면 아주 빨리 달려야 해. 만약 다른 곳에 가려면 지금보다 두 배는 빨리 뛰어야 하지.”)
생물학에서는 1970년대, 그리고 기업경영분야에서는 1990년대 후반 ‘붉은 여왕’의 가설이 나옵니다. 붉은 여왕의 가설은 기본적으로 자연의 변화를 따라가야지만 균형이 잡힌다는 이론입니다. 그 예로 아프리카의 치타와 영양을 듭니다. 아프리카에 서식하는 치타와 영양은 묘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치타는 먹잇감인 영양을 잘 잡아먹을 수 있도록 최고의 속도를 낼 수 있도록 진화했습니다. 이에 맞춰 영양도 치타를 잘 피할 수 있도록 엄청난 속도를 내도록 변화해 왔죠. 이 진화의 경쟁에서 탈락한 쪽은 생존할 수 없다는 가설이죠.
장기계획보단 일단 시장 진입 후 결단
기업경영에서는 다른 기업들이 공격적으로 사업을 펼치고 열심히 달리는 상황에서 현재의 수준을 유지하는 데 그친다면 결국은 그 기업은 몰락의 길에 들어설 수밖에 없습니다. 마치 <논어>에 나오는 ‘學如逆水行舟(학여역수행주) 不進則退(부진즉퇴)’, 즉 배움이라는 것은 마치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 같아, 앞으로 나가지 않으면 곧 물러나는 것이라는 얘기와 일맥상통합니다. 특히 요즘처럼 모든 것이 빨리 변하는 시대에는 기업도 빨리 움직여야 합니다.
요즘의 시장환경을 보면 시장은 성공적으로 초기에 진입한 기업에 잠깐이지만 무한한 기회를 제공합니다. 그러나 2위, 3위로 진입한 기업에게 돌아갈 몫은 극히 적습니다. 과거에는 시장이 1위 50%, 2위 30%, 3위 20% 등으로 순위에 따라 나름대로 규모가 정해졌던 데 비해 요즘에는 1등이 90%를 먹고 나머지 10%를 후발주자가 차지하는 사례가 흔해졌습니다. 또 산업의 수명주기(Industry Life Cycle)도 짧아져서 과거처럼 어떤 한두 분야에서 오랫동안 성숙기를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해졌습니다. 이제는 잠깐 열렸던 기회의 문을 활용해서 시장에 진입한 뒤 성과를 내고, 또 다른 곳으로 새로운 기회를 찾아 움직이는 노마드(Nomad)형 기업 체질을 가져야만 합니다. 생각하고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움직이면서 생각하는 자세가 필요하죠. 그래서 기업들은 의미 없는 장기계획보다는 일단 시장에 진입한 뒤 상황을 보면서 지속적으로 결단을 내리는 방식의 경영을 택해야만 합니다.
미래의 불확실한 환경하에서 어떻게 하면 효율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론이 개발돼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리얼옵션(Real Option)전략입니다. 기술적, 학문적으로 따져보면 리얼옵션전략은 복잡해 보이지만 간략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어떤 사업에 뛰어들기로 결정할 때 불확실성하에서 처음부터 하나의 대안을 확정하고 밀어붙이기보다는 일단 복수의 대안에 동시에 소규모 투자를 진행합니다. 장렬한 맛은 부족하지요. 그리고 시장에 뛰어들어 일을 하면서 상황을 잘 파악하고 역량을 확보한 후 단계적으로 각 대안의 성공 가능성과 예상수익률을 재점검해 투자를 확대할 것인지 아니면 중단할 것인지를 결정합니다.
‘시나리오 플래닝(scenario planning)’은 미래의 상황과 관련해 몇 가지 예상 시나리오를 상정하고 이를 기반으로 각 시나리오별로 대안을 마련해 행동방향을 정하는 것입니다. 또 ‘가설사고(Hypothesis Thinking)’도 있습니다. 정보가 부정확하고 확정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전체의 모습을 조각난 정보를 활용해 제대로 그릴 수 있을 것인가라는 것이 핵심적인 내용입니다. 이외에도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를 다룬 여러 가지 방법론이 있습니다.
작은 실패 통해 큰 성공 만들어야
하지만 이런 방법론에서 공통적인 것을 뽑을 수 있다면 바로 작은 실패를 통해 큰 성공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사실 급변하는 외부환경 때문에 목표를 향해 직진해서 곧바로 성공을 거두는 것은 번개를 맞을 확률보다 낮습니다. 따라서 작은 실패, 작은 갈지자걸음을 통해 미세조정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만 미래 기업으로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실패를 통해 배우는 학습능력과 좋은 실패는 처벌하지 않는 문화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일본 최고의 부자라는 유니클로의 야나이 다다시 회장도 1승9패의 정신을 강조한 것입니다. 적은 실패에 대한 관용은 미래 기업이 전속력으로 앞으로 달려가는 데 큰 도움을 주는 엔진이라고 할 것입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면 앨리스의 이야기에서처럼 두 배는 빨리 뛰어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