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채화보다는 유화, 종이보다는 캔버스 그림 ‘비싸다’

미술 시장을 찾는 많은 사람들은 어떤 작품이 멋있는지, 누가 그린 것인지를 따진다. 시각적 완성도와 그 작품을 그린 사람의 인지도나 작업 시점 등을 확인하는 것이다. 이는 투자의 ABC이자 결정적 요소라고 할 수 있다.

반면에 투자 초보자들이 간혹 놓치는 부분이 있다. 바로 작품의 재료다. 회화작품은 액자 속에 들어있을 때 육안으로 화폭의 질이나 물감의 종류를 알기 어렵다. 특히 서양화에서 유화물감과 아크릴물감을 일반인들은 같은 물감으로 인식하기 쉽다.

작품 보존기간 재료가 결정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표현하기 위해 여러 가지 도구를 이용한다. 물론, 작품의 특성상 한 가지 재료만 고집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작가들은 작업 과정상, 또는 특정한 목적에 의해 파스텔을 이용하거나 펜겳??등 다양한 도구를 채택한다. 이우환은 주로 캔버스에 유채로 그리지만 종이에 수채로 그린 작품도 많다. 박수근의 경우만 해도 특정 매체에 연재하면서 펜으로 그린 삽화만 책 한 권 분량이 된다.

캔버스(화판)는 흔히 그 재료가 천인 것으로만 알고 있다. 그러나 작품의 질감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린넨(천연섬유)겲틥?황모겦?등 여러 가지를 선택한다. 물감 역시 오일컬러겲팍㈇?수지)컬러겙享?불투명수채)겳緇羔첨?수채)겺첨?淪?등이 있다. 물론 보다 독특한 작품세계를 표현하기 위해 기존 물감에 다양한 보조재를 혼용하는 경우도 많다. 재료의 변용은 서양화와 한국화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수준까지 와 있다.

이런 재료의 차이는 작품 가격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이우환의 작품 중 같은 주제의 <조응> 시리즈라 하더라도 재료에 따라 그 가격 차이는 매우 크다. 캔버스에 유채로 그린 것은 호당 2500만원 선이지만 종이에 수채로 그린 것은 1000만원도 되지 않는다. 유화보다 과슈는 3분의 1 수준, 수채는 5분의 1 수준 정도의 가격이 형성되어 있다.

캔버스의 재질이나 물감의 종류에 따라 가격이 얼마나 다른지는 국내 생존 작가 중 최고령에 속하는 김종하의 작품을 보면 쉽게 이해가 간다. 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공모전인 조선미술전(선전)에서 15세의 나이로 최연소 입선했으며, 국내 최초의 상설 화랑인 반도화랑 개관 때 박수근과 함께 2인 전을 연 한국 미술사의 산증인이다.

그가 2007년 말 오랜 프랑스 생활을 접고 귀국하면서 그간 공개하지 않았던 많은 작품들을 인터넷 경매 사이트인 포털아트를 통해 한꺼번에 시장에 내놓으면서 화제를 모았었다. <여인의 뒷모습>은 캔버스에 오일로, <물고기 인 여인>은 종이에 오일로, <누드>는 종이에 파스텔로, 그리고 <스케치>는 종이에 볼펜을 이용한 작품이다.

<여인의 뒷모습>은 30호짜리로 1억7000만원에 팔렸다. 그리고 <물고기 인 여인>(20호)은 3200만원, <누드> 시리즈(15호)는 320만원에 각각 낙찰됐고   <스케치>는 50만원에 불과했다. 당시 팔렸던 작품들의 대략적 평균을 내보면, 캔버스에 오일 작품은 호당 700만원, 종이에 오일은 150만원, 종이에 파스텔은 20만원, 볼펜 드로잉은 12만원 꼴이었다.

판화지가 판화의 완성도 좌지우지

작가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유화 > 수채화 > 파스텔화 > 드로잉 순으로 차이가 나는 것은 공통적이다. 재료의 차이는 우선 투입되는 금전적 차이와 작품 보존, 나아가 작업하는 데 걸리는 노동 강도와 시간의 차이까지를 동반한다. 작품 가격 전문지 <아트프라이스>가 2008년에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박수근의 경우, 유화는 작품당 가격이 2억4200만원, 수채화는 3900만원, 조각이나 복합재료를 이용한 작품은 2400만원으로 나타났다. 판화는 2500만원, 드로잉은 800만원이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재료에 따라 작품의 완성도도 달라 보인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보다 고급의, 고가의 재료를 쓴 것이 느낌이 좋다. 크로키도 하나의 완성된 작품으로 인정은 받지만, 물감을 입힌 것만은 못하다. 또한 한 번 가볍게 수채물감를 칠한 것보다는 독특한 혼합재료를 개발해 여러 차례 칠하고 또 칠한 것이 깊이가 더 있어 보인다(자칫 수채화가 유화보다 못하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으나 이는 시장적 논리에 국한해 언급한 것이니 오해 없기를 바란다).

재료가 작품의 완성도에 미치는 영향력은 작가 자신이 더 잘 알고 있다. 때문에 작가들 중에는 굳이 고급 물감만 고집하는 경우도 많다. 한 통에 몇 십만원씩 하는 물감을 사용하기도 하며, 최고급 재질의 종이를 특별 주문하기도 한다.

판화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흔히 그 종이가 그 종이인 것으로 알지만 종이의 종류는 매우 다양하다. 판화는 판화지의 재질이 생명이다. 물감을 잘 흡수하여 작가가 의도하는 바를 잘 표현하고 또 오랫동안 보관해도 변질되지 않는지의 여부는 종이가 결정한다.

전문가들이 쓰는 고급 판화지는 펄프가 아니라 면으로 만들어진다. 악쉬, B.F.K, 라이싱, 절먼에칭, 파브리아노 디에쁠로 등의 수입 판화지는 100% 면으로 만든 수제 종이여서 일반 펄프지에 비해 20~30배는 비싸다. 일반인들은 잘 알지도 못하는데도 굳이 수십 배의 재료비를 아끼지 않는 것은 그만큼 작품에 대한 욕심이 많기 때문이다. 좋은 재료는 작가의 열정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며, 그 결과물의 가치는 시장가격에 그대로 반영된다. 작품을 구입할 때는 재료는 물론 액자까지 얼마나 고급 재료를 사용했는지를 따져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