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도 사라진, 변할 대로 변한 세상 뒤에서 옛 모습 간직하며 해마다 봄이면 새로운 생명을 피워내는 곳이 있다. 꿈으로 흐르는 물길 따라 떠나는 충북 옥천 금강 기행.

 “도리뱅뱅이 먹고 가세요.”    푸른 물길이 산굽이를 돌아 흐르는 옥천은 물의 나라다. 금강 물줄기가 만들어 놓은 풍경을 따라 발길을 놓는다. 그 시작은 경부고속도로 금강IC 금강휴게소다.

경부고속도로 금강IC로 들어가면 휴게소가 있다. 화장실 통유리 넘어 강과 산의 푸른 풍경이 펼쳐진다. 화장실에서 보는 풍경도 이런데 휴게소 카페 야외테이블에 앉아서 바라보는 금강의 풍경은 어떠랴.

휴게소 아래가 금강유원지다. 푸른 금강 물 위로 오리배가 떠다니고 쾌속으로 물살을 가르는 모터보트도 탈 수 있다. 강가에는 경치를 즐기며 음식이며 술을 먹을 수 있는 야외 이동식 식당이 차려졌다.

휴게소에서 고속도로로 들어가는 굴다리와 국도로 나가는 길 말고, 굴다리가 또 하나 있는데 그 굴다리를 지나가면 이른바 ‘도리뱅뱅이’마을이 나온다.

‘도리뱅뱅이’란 피라미를 잡아 배를 따고 내장을 꺼낸 뒤 기름에 튀겨서 만드는 요리다. 기름에 튀긴 뒤 고추장 양념을 발라 손님상에 내는데 보기도 좋고 먹기도 좋다. 기름에 바싹 튀겨졌기 때문에 고소하고, 약간 매콤한 양념 맛 때문에 느끼하지 않다. 맥주 안주로 제격이다. 주인아줌마 말로는 5월 피라미가 살이 부드럽고 맛도 제일 좋다고 한다.

이 마을이 ‘도리뱅뱅이’마을이 된 건 1970년부터다. 고속도로가 생기기 전, 휴게소나 톨게이트 또한 없던 시절에 낚시도 하고 잠수해서 고기도 잡는 사람들이 마을 앞 강에 온 적이 있었는데 그때 그 사람들이 물고기를 잡아 해 먹을 수 있는 요리법을 가르쳐 줬다고 한다. 그 중 하나가 ‘도리뱅뱅이’였다.

그 전에는 강은 있었지만 물고기를 잡아 요리한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못했다. 그리고 때마침 경부고속도로가 생기고 금강휴게소가 생기면서 경치 좋은 곳을 찾아드는 사람이 하루에 수천 명이 넘었다. 그 사람들을 상대로 ‘도리뱅뱅이’를 만들어 팔았고, 금강휴게소 아래 유원지의 풍광과 함께 금강휴게소의 명물로 자리 잡게 됐던 것이다.

금강 따라 가는 길 ‘추억은 방울방울’

다시 휴게소로 나와 고속도로 진입로로 가지 말고 톨게이트로 나와 조금 가다가 U턴 하듯 차를 돌려 금강유원지 물을 막아 놓은 보 위로 강을 건넌다. 강을 건너자마자 좌회전. 이어지는 길 따라 강가의 햇살을 받으며 여유 있는 드라이브를 즐긴다.

고속도로 높은 다리 밑을 지나 금강을 따라 달리다 보니 ‘원당교’라는 다리가 나온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좌회전하면 길은 계속 강을 따른다.

해가 기우는 금강은 고향 같다. 누런 황소가 강둑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고 강에는 천렵 나온 아저씨들이 몇몇 보인다. 산그림자가 강으로 눕고 황금색 햇빛이 강을 물들인다. 사람의 손때를 벗어난 자연이다.

차의 속도를 줄이고 한가로운 풍경을 즐긴다. 물살 거칠어지는 여울목에 다리가 하나 놓였다. 물이 많아질 때 다리는 물속에 잠길 것 같았다. 조금 전에 지났던 고속도로 높은 고가다리의 횡포와 견주어 볼 때 이 다리는 순하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은 최소한의 범위에서 소박하게 사람 사는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고 있는 것이다. 다리를 건너 오른쪽으로 길을 따르니 학교 건물이 있다.

담도 없고 교문도 없는 학교는 이제는 더 이상 재잘거리는 아이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는 폐교였다. 학교 건물 뒷마당은 바로 산으로 이어진다. 운동장 이곳저곳에 풀포기가 성기게 자라났다. 울타리가 있었을 법한 곳에는 커다란 활엽수가 저 혼자 커버렸다. 큰 나무 가지에 자동차 타이어로 만든 그네가 있다. 재잘거리며 뛰어놀던 코흘리개 아이들을 기다리는 양 그네는 바람이 부는 대로 흔들리고 있었다. 

운동장 한 쪽에 밭을 만들어 고추를 키우고, 다른 한 쪽에는 폐교를 닮은 늙은 개가 능구렁이처럼 눈만 껌뻑거린다. 푸른 풀밭 곳곳에 피어난 민들레 홀씨는 갓 태어난 우주의 은하 무리 같다. 학교가 처음 문을 열 때 심은 것 같은 오래된 나무, 그 나무 아래 세발자전거가 조용하다.

독락정, 기쁨도 숨길 줄 알았던 마음

다시 큰 도로로 나와 길을 달린다. 도로 오른쪽은 산사면이고 왼쪽 절벽 아래로는 금강이 흐른다. 강가에는 백사장과 돌멩이가 제멋대로 펼쳐져 있다.

거친 자연으로 해가 기운다. 금강의 낙조는 고즈넉했다. 황금빛으로 물든 금강에 아까부터 있었던 사람 하나 아직도 서있다. 물속에 들어가 낚싯대를 강물에 띄워놓고 있다. 고기를 잡는 모양이지만 아무런 움직임이 없는 것을 보면 낚시는 뒷전인 듯싶었다. 그 사람은 우리가 그 자리를 떠날 때까지 꼼짝하지 않고 그곳에 그대로 서있었다.

풍경을 뒤로하고 강은 그렇게 사람 사는 마을에서 멀어졌다. 안남면 소재지로 들어갔다. 오래 전부터 ‘한 번은 꼭 가봐야지’ 마음먹었던 ‘독락정’이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평범한 여행자들이라면 그냥 지나쳐도 상관없는 곳에 세워진 기와집 하나.

그 집에 붙은 이름이 ‘독락정’이다. ‘홀로 즐겁다’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 이름에 내가 관심을 기울이게 된 것은 다름이 아니라 그 이름에 깃든 정신을 알고부터다. ‘홀로 즐겁다’라는 말 속에는 ‘기쁨도 숨길 줄 알았던 미덕’이 살아 있었다. 내가 즐거울 때 고통 받고 있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나의 즐거움이 그에게는 소용없는 일일 수밖에 없어서 위로가 되기는커녕 독이 될 수도 있다는 옛사람들의 마음을 담은 이름이었다. 혼자 있어도 부끄러운 일을 하지 않는 ‘신독’의 개념이 기쁘고 행복한 마음을 다스리는 일까지 확대된 것이었다. 그리고 독락정 앞에는 금강 가 보리밭에 청보리가 바람을 안고 넘실대고, 더 멀리에는 산그림자 안고 흐르는 금강의 물이 유유자적하다.    

해가 진다. 옥천 구읍에서 한옥 민박을 할 수 있는 ‘춘추민속관’에 숙박 예약을 해놓은 터라 독락정에서 바로 옥천 읍내로 들어갔다.

금강이 흐르는 옥천에 가면 올갱이(다슬기)국 한 그릇은 먹어봐야 한다는 지인의 말에 저녁으로 올갱이국을 먹었다. 구수한 된장국에 쌉싸래한 올갱이 향이 그윽하다.

춘추민속관은 옛 양반집 분위기다. 돌담에 기와집, 회화나무가 있는 넓은 뜰이 보기만 해도 마음이 푸근해진다. 저녁을 먹었으니 술 한잔 해야겠다는 생각에 주인아줌마께 좋은 술 없냐고 했더니 담근 막걸리가 있단다. 막걸리 한 되에 하루가 녹록해진다.

실개천 휘돌아 나가는 들판으로 쏘아올린 꿈의 화살

춘추민속관에 숙박을 예약한 이유 중 하나는 시인 정지용 생가가 옆에 있기 때문이었다. 정지용은 현재 복원된 생가에서 4킬로미터 떨어진 ‘수북리(옛 지명은 꾀꼬리)’ 어딘가에서 태어났다. 한약방을 했던 아버지가 읍내로 이사하면서 그 또한 따라 나왔다.

어린 정지용은 물길 산길 사람길이 어우러져 흐르는 수북리에서 자랐다. 국민의 시가 된 <향수>에서 그는 그런 고향의 들판과 실개천을 노래했다.

지금 지용의 생가 앞에도 실개천이 흐르지만, 지용의 마음에 담은 실개천이 어디 그 실개천뿐만이겠는가? 물의 나라 옥천을 감싸고 흐르는 금강과 금강으로 흘러드는 모든 작은 개천들이 그에게는 실개천이고, 개천 옆으로 펼쳐진 들판에 화살 하나 쏘아 올려 사랑을 노래하고 꿈을 이야기했다.

지용 생가에 들렀다. 초가와 싸리문, 돌담이 아늑하다. 우물에는 물이 고이고 그 옆에는 장독대가 있다. 생가 옆에 지용의 동상이 서 있고 그 뒤로 문학관이 있다. 언젠가 만났던 지용의 큰아드님이 한 말이 생각났다.

“아버님은 책상에 앉아서 시를 쓰는 법이 없었습니다. 항상 시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했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머리로 구상을 하고 머리로 시를 쓰고 퇴고했습니다. 그래서인지 당신이 쓴 140여 편의 시 모두를 외우고 계셨습니다. 또 다른 시인의 시도 외우는 게 보통이었습니다. 시가 곧 삶이었고, 시에 대한 열정과 정열로 가득했던 분이지요. 저는 아버지를 따라 이곳 옥천 생가에도 자주 왔었습니다. 제가 태어나기 전에는 아버지는 생가를 찾을 때마다 집 뒤에 있는 ‘일자산’을 자주 올랐다고 합니다. 그 곳에서 분명 시를 구상하고 시를 썼을 겁니다.”

옥천의 들과 산과 물줄기는 시인 정지용을 키워냈고, 정지용은 그의 문학을 통해 옥천의 들과 산과 물줄기에 새 생명을 심었다. 지용이 꿈꾸었던 풍경처럼, 나도 봄 같은 꿈을 품을 수 있을까?

여|행|길|라|잡|이

가는 길

대중교통 : 동서울버스터미널(하루 4대), 대전버스터미널, 청주버스터미널, 인천버스터미널(하루 2대) 등지에서 버스가 옥천까지 운행한다. 대전역 앞 대한통운 길 건너편에서 640번 시내버스가 옥천까지 운행한다. 옥천에서 대중교통으로 금강을 따라 여행하는 것은 어렵다. 렌터카를 이용하는 게 좋다. 경치 좋은 곳에서 쉬고 드라이브를 즐기는 시간은 3시간이면 된다. 차를 반납하고 춘추민속관 등 숙박시설을 이용하고 다음 날 정지용 생가를 돌아보면 된다. 

자가용 : 경부고속도로 금강IC - 금강유원지 - 유원지 강물을 막아 놓은 보를 건너 원당교 지나 좌회전 - 청마리(초등학교 폐교) - 낙조가 아름다운 금강 풍경 - 안남면 독락정 - 옥천 구읍 춘추민속관 한옥민박 - 정지용 생가. 순으로 돌아본다.   

숙박 

춘추민속관에서 한옥민박체험을 할 수 있는데 예약해야 한다. 문의 043-733-4007.

음식 

옥천에서 유명한 음식은 올갱이요리와 도리뱅뱅이, 마주조림 등이다.

올갱이 요리에는 올갱이무침과 올갱이국이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올갱이국을 추천한다. 미락식당과 금강올갱이 등이 있는데 맛은 비슷하다. 개인적으로는 미락식당이 입에 맞는다. 아침에 먹는 올갱이국은 해장국으로도 쓸 만하다.

도리뱅뱅이는 피라미를 잡아 손질한 뒤 기름에 초벌로 튀긴 후 고추장 양념을 발라 살짝 한 번 더 구운 요리다. 고소한 맛과 양념의 매콤한 맛이 잘 어울린다. 맥주 안주로 좋다. 금강휴게소 안쪽 마을인 동이면 조령리에 식당들이 모여 있다.

마주조림은 옥천군 동이면 적하리 금강나루터식당이 유명하다. 마주조림은 모래무지로 만든 매운탕 겸 조림요리다. 국물이 자글자글하게 있으면서 진한 양념 맛이 부드러운 고기 맛과 잘 어울린다.

문의 043-732-36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