곁다리 증정 사은품으로 쓰이던 마스크팩을 하나의 독립된 카테고리 시장으로 키운 기업이 있다. 바로 제닉이다. 제닉은 국내 화장품 대기업들의 마스크팩 대부분을 OEM·ODM으로 공급하고 있으며, 해외 30여 개국으로 수출하고 있다. 지난해 349억원의 매출을 올린 이 회사는 올해 800억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곁다리 증정 사은품 마스크팩,

독립된 상품으로 키워 ‘대성공’

제닉의 간판 제품인 ‘수용성 하이드로겔 마스크’는 얼굴에 붙이는 화장용 마스크지만 기존 제품과는 전혀 다르다. 이 제품은 겔 형태로 만들어져 얼굴에 부착하면 각종 성분이 체온에 녹아 피부에 그대로 흡수된다. 제닉은 이 제품으로 우리나라와 중국, 러시아 등지에서 특허를 획득했고, 세계 일류상품에 선정됐다. 미국과 일본에서는 특허등록이 진행 중이다.

“하이드로겔 마스크팩을 개발한 것은 2003년입니다. 소위 대박을 터뜨리는 데 7년이 걸린 셈이죠.”

유현오(40) 대표가 제닉을 창업한 것은 2002년. 대학에서 고분자를 전공한 그는 교수의 추천으로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고분자 하이브리드센터에서 3년 동안 바이오 폴리머를 연구했다. 그는 그동안 SCI(Science Citation Index)에 논문을 3편이나 게재할 정도로 열심히 연구 활동을 하면서 탄탄한 이론적 기반을 쌓았다.

그러나 대학원을 마치는 시기에 IMF 외환 위기가 터졌다. 대기업 입사 대신 그가 택한 것은 아이벡스라는 미국계 바이오 벤처기업이었다. 아이벡스에서 연구개발에서부터 판매에 이르는 전 과정을 경험하고 난 뒤, 그는 제닉을 창업했다. 창업 당시 1인 기업이었다. 제닉을 창업한 뒤 그가 처음 개발한 생체 친화성 연질 겔은 상처를 보호하고, 치료하기 위한 의약제였다. 이 기술을 토대로 상처 치료용 패치로 시장에 뛰어들었으나 시장 반응은 냉담 그 자체였다. 콘셉트의 전환이 필요했다. 시장에서 필요한 제품 콘셉트를 찾기 위해 각종 외국 전시회를 돌아다니면서 관련 샘플을 확보했다. 이러한 시장조사 끝에 치료용 패치를 여성용 마스크팩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이는 우연한 계기가 발단이 됐다.

“대학 시절 호주 배낭여행을 갔을 때, 뜨거운 자외선에 노출된 피부가 상해 어쩔 줄 모르고 있었는데 호주 현지 친구들이 차갑게 얼린 손수건을 상한 얼굴에 덮어주니까 피부가 진정된 것이 기억나더라고요. 그래서 치료용 패치를 상처 치유가 아닌 여성용 화장품 아이템으로 바꿔보기로 한 거죠.”

영남대와 화장품 회사와의 산학협력, 정부 과제 수행을 통해 1년여 만에 제품개발에 성공했다. 그가 개발한 하이드로겔 마스크팩은 기존 시트형 부직포 마스크보다 피부에 수분 공급량이 20%나 더 많다. 그러나 좋은 제품을 개발해도 판로를 확보하지 못하면 모든 것이 허사다. 국내 유통망을 전혀 갖고 있지 않았던 그에게 판로 확보는 가장 큰 난관이었다. 그는 그 당시를 회고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혼자서 직접 영업을 하러 돌아다녔죠. 하지만 잡상인 취급당하기 일쑤였어요. 국내 화장품 시장은 인맥이나 브랜드 밸류가 없으면 접근조차 되지 않는 시장이었어요.”

이러한 현실적인 제약 때문에 국내 시장을 뚫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이것이 오히려 기회가 됐다. 국내 대기업과도 동등한 조건에서 경쟁할 수 있는 해외시장에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2003년 미국 법인인 유제닉(uGenic)을 설립하고 미국으로 무작정 건너갔다. 3개월간 자동차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미국 전역의 전시회를 발로 뛰어다니며 시장을 찾아 나섰다.

“그땐 사실 완제품이 개발되지 않은 상태였어요. 제조공장이 없으면서도 있는 척 하기도 했고, 막무가내로 고객이 될 만한 회사들을 찾아 다녔죠. 그러나 한국의 이름 없는 중소기업에게 미국은 너무나 어려운 시장이었어요.”

마침 정부에서 중소벤처기업의 물류와 마케팅 활동 등을 지원하기 위해 미국 동부 지역의 거점인 보스턴에 개설한 공동물류센터를 활용하게 되면서 자체 브랜드 개발, 바이어 발굴, 전시회 참가 등이 더욱 수월해졌다. 이를 기반으로 열심히 발로 뛴 결과 미국 최대 화장품 유통회사 중 하나인 스파사이언스와 10년간 1000만달러어치 수출 계약을 맺는 성과를 올리게 된다. 그가 처음으로 납품한 것은 2000개에 불과했지만, 그 뒤 미국의 약국 체인 1위 업체인 월그린과 영국의 의약품 및 화장품 전문점 부츠 등으로부터 주문이 이어졌다.

제닉의 제품들은 국내보다도 해외에서 먼저 인정받아 지금까지 미국, 영국, 스위스, 홍콩 등의 유수 화장품 회사에 납품됐다. 

입소문은 국내로 퍼지면서 홈쇼핑에서도 대박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2007년부터 시작한 홈쇼핑 판매는 화장품 비수기인 여름철 3시간 방송을 통해 총 1만 세트가 팔려 나가기도 했다. 이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15억원에 달한다. 지난 5월에는 한 달 동안 100억원에 가까운 매출액을 달성했다. 위기도 있었다. 그의 책상머리에는 ‘2006·2007년을 잊지 말자’는 조그만 표어가 붙어 있었다. 경영에 대한 경험 부족과 자만심으로 2007년 매출액은 전년 대비 100% 성장했지만 적자를 기록한 것이다. 그때의 위기는 그를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게 하는 약이 됐다. 그는 다시 조직을 슬림화하고, 연구개발에 매진했다. 최근에는 기능성 필름 화장품을 개발하면서 다시 주목받고 있다. 필름 화장품은 색소와 방부제 등이 첨가되지 않은 제품으로 필름상으로 제조돼 화장품 케이스가 없어도 휴대가 가능하다. 또 수용성이기 때문에 물을 이용해 간편하게 사용할 수 있다. 프랑스, 일본, 미국에 이어 네 번째로 제품화에 성공한 것이다.

꾸준한 연구개발·과감한 투자가 성공요인

제닉이 세계시장에서 마스크팩 분야 1위 업체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것은 꾸준한 연구개발과 과감한 투자 덕분이다. 유 대표는 매년 매출액의 10% 정도를 연구개발에 투자해 왔다. 또 7명의 석박사로 구성된 연구소도 갖추고 있다. 우수 연구 인력 확보를 위해 학부 출신 연구원은 전액 회사 경비로 대학원에 진학시켰다. 특히 2008년 충남 논산에 마련한 최신 설비의 공장이 글로벌 업체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됐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공장을 방불케 하는 클린룸 시스템을 갖춘 논산공장은 cGMP(우수 의약품 시설관리 기준) 인증을 받아 해외 진출의 전초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 국내 800여 개 화장품 제조 시설 중 cGMP 인증을 받은 곳은 20곳에 불과하다. 2003년 1000장에 불과했던 1일 생산량은 현재 17만 장에 이른다.

유 대표는 “바이오 화장품 전문기업으로 마스크팩과 패치 분야를 뛰어넘어 토털 바이오 스킨케어 전문기업으로 글로벌 바이오 화장품 시장을 선도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