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스마트카, 스마트그리드…. 최근엔 ‘스마트’ 바람이 TV에도 거세게 불고 있다. 인터넷 접속이 가능하고 애플리케이션도 설치할 수 있는 ‘스마트TV’의 급부상이 그것이다. 이미 가전업체들의 신경전은 시작됐다.

미국에선 구글·애플 치고 나가고

한국에선 삼성·LG ‘올인 모드’

지난 5월, 디지털TV 전문업체 지피엔씨의 신형 LED TV가 출시됐다. 외관은 여느 중대형 LED TV와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세계에서 가장 먼저 시장에 소개된 ‘안드로이드TV’다. 구글의 스마트폰 운영체제(OS) 안드로이드를 탑재한 것으로 스마트폰처럼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해 쓸 수 있다. 제품명도 안드로이드에서 따온 ‘레드로이’. TV 자체에 인터넷 접속 기능이 있는 ‘스마트TV’로 필요할 때마다 지피엔씨의 앱스토어에 접속할 수 있다.

지피엔씨가 현재 준비한 TV 전용 애플리케이션은 모두 8개. 그러나 숫자가 적다고 가벼이 볼 게 아니다. 웹 브라우징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하면 컴퓨터와 똑같이 어느 주소로든 접속할 수 있다. 트위터, 페이스북 유튜브, 구글맵스 등 스마트폰의 주력 애플리케이션도 쓸 수 있다. 조혜원 마케팅팀장은 “개발자들을 끌어 모아 보다 많은 TV 전용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할 것이며 내년부터 다운로드 유료화를 시작할 것”이라 말했다. TV뿐 아니라 콘텐츠 시장까지 노리겠다는 것이다.  

 

구글과 애플, 스마트TV 개발 시장 선점 나서

‘스마트TV’가 차세대 TV로 부상하고 있다. 5월19일 구글이 ‘구글TV’를 발표함에 따라 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영수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스마트폰 최강자인 애플과 ‘맞수’ 구글이 노리는 분야가 바로 스마트TV”라며 “세계 가전업체에 한바탕 치열한 TV 경쟁이 벌어질 것”이라 말했다. 스마트폰 전쟁 제2라운드가 TV에서 벌어질 수 있다는 소리다.

실제 TV 판매에서도 스마트TV의 비중이 급증할 것으로 보인다. KT경제경영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스마트TV 판매량은 전 세계 평면 TV의 10%였다. 그러나 2013년까지 전체 TV 판매량의 33%를 차지할 전망이다. 국내 TV 시장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올해 스마트TV 판매량은 전체 TV 판매량 226만 대의 10%인 29만 대로 예상된다. 2013년까지 전체 TV 판매량의 절반 수준인 130만 대로 급속히 늘 것이란 전망이다.

가전업체들은 이미 스마트TV ‘집중 개발’ 모드다. 삼성전자는 자사 LED TV와 3D TV 등 프리미엄 제품군에 인터넷 접속 기능을 삽입하고 있다. 자사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사고팔던 ‘삼성 애플리케이션 스토어’를 ‘삼성 앱스’로 재편해 올 7월부터 TV용 애플리케이션을 추가할 예정이다. 애플리케이션 적용 범위도 PC, 프린터, 캠코더, 카메라 등으로 확대해 ‘스마트 가전’ 시장을 창출한다는 계획이다. 

LG전자도 스마트TV 개발에 ‘올인’할 태세다. 남용 LG전자 부회장은 올 초 미국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전시회 ‘CES2010’에서 “미래 패러다임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는 ‘스마트’”라고 강조했다. 이 회사는 TV용 애플리케이션 전담 조직을 가동하고 ‘스마트TV’ 시장을 장악할 전략에 부심하고 있다.

스마트TV가 IT업계의 이목을 사로잡는 것은 특히 구글과 애플의 움직임 때문이다. 두 회사가 스마트폰에서 거둔 노하우가 스마트TV에 결합되면 시장에 태풍이 불어닥칠 것이란 게 업계 시각이다. 구글은 구글TV를 개발하기 위한 연합전선을 꾸렸다. 소프트웨어인 안드로이드 OS와 크롬(구글의 웹 브라우저)은 구글이 맡고, 반도체·TV기기 등 하드웨어는 인텔과 소니가 담당하는 방식이다. TV 시장에서 삼성전자와 LG전자에게 밀려 왕좌를 내준 소니는 구글TV로 ‘잃어버린 명성’을 회복하겠다며 의욕을 불태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애플은 이미 한 차례 TV 시장에 진출한 전력이 있다. 2007년 등장시킨 셋톱박스 형태의 ‘애플TV’로, 결과적으론 실패했다는 평가다. 그러나 최근 절치부심 끝에 스마트TV를 개발 중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애플의 아이팟, 아이폰을 위탁생산하는 대만의 홍하이가 소니의 멕시코 LCD 생산라인을 인수했기 때문이다. 애플이 TV 제품 출시를 위한 모종의 준비를 진행 중이라는 것. 2년 안에 2000달러 안팎의 스마트TV를 출시할 것이라는 구체적인 전망도 나온다. 애플 콘텐츠 지배력의 산실인 앱스토어의 적용 범위가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에 이어 TV까지 확장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애플 생태계’의 완성판이 탄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삼성·LG 스마트TV로 만회

전문가들은 스마트폰에서 나타난 치열한 공방전이 TV에서도 반복될 것으로 예상한다. 구글과 애플은 스마트폰 흥행의 핵심요소인 OS와 앱스토어에서 독보적인 사업자로 오른 상태다. OS와 TV용 애플리케이션이 스마트TV의 경쟁력을 좌우할 것으로 예측되는 만큼, 두 회사가 TV업체들의 강력한 경쟁자로 부상할 것이란 전망이다.

그러나 쉽사리 승패를 판단할 순 없다는 지적이다. 삼성전자가 전용 OS인 ‘바다(bada)’를 자사 스마트TV의 기반기술로 활용하고 TV용 애플리케이션과 앱스토어도 미리 마련해 뒀다. ‘사전조치’에 나선 것이다. 스마트폰 시장에서 벌어진 열세를 더 이상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스마트TV의 부상으로 가전업계 영역의 경계가 본격적으로 허물어지기 시작했다고 본다. 단적으로 PC업체였던 애플과 포털 구글이 삼성전자 등 세계적인 가전업체를 정면 겨냥하고 있다. 한영수 연구위원은 “무섭게 팔려나가는 애플 아이패드가 인터넷서점 아마존, 게임 회사 닌텐도를 동시에 타격하고 있다”고 환기시키며 “더 이상 ‘TV=삼성’, ‘게임기=소니’와 같은 공식이 통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업종을 뛰어넘는 무한경쟁이 시작됐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