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1000원 숍’의 개척자
소비문화 혁신 불을 지피다
선진국서 히트친 균일가 제품 유통사업 토착화 성공
값싸고 품질 좋은 제품 개발 위해 지구촌 곳곳 누벼

6월4일 오후 2시 무렵 경기도 용인시 기흥인터체인지 부근에 자리 잡은 다이소아성산업 본사를 찾았다. 다이소아성산업은 국내 최대 규모의 균일가 생활용품 유통업체다. 현재 ‘다이소’라는 브랜드로 전국에 걸쳐 540여 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본사 건물은 물류기지 역할을 겸하고 있다. 취재진이 도착한 시각에도 전국 각지로 제품을 실어 나르는 배송차량들이 끊임없이 드나들어 활기가 넘쳤다.
다이소아성산업은 지난해 3300억원의 매출액을 올렸다. 전년 대비 40%가 넘는 괄목할 증가세다. 한 해 반짝한 실적이 아니다. 최근 수년 동안 거의 매년 40%대의 꾸준한 매출 신장세를 나타내고 있다. 이처럼 가파른 성장의 비결은 과연 무엇일까? 박정부 회장의 말이다.
“항상 저렴한 가격에 좋은 품질의 제품을 공급하려고 노력한 것이 성장의 바탕이 됐다고 봅니다. 사실 저는 숫자에는 그다지 민감하지 못해요. 다만 매년 40~50%씩 성장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있지요. 다이소 매장이 많아지기는 했지만 아직도 신규 매장을 열 곳은 널려 있기 때문이죠. 소비자들이 보다 쉽게 다이소 매장을 찾을 수 있도록 계속 점포망을 확대할 계획입니다.”
다이소아성산업이 전국 매장을 통해 판매하는 품목은 무려 2만여 가지가 넘는다. 주방용품, 욕실용품, 사무용품, 인테리어용품 등 일상생활에 쓰이는 물건은 모두 망라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상품 가격도 무척 싸다. 모든 상품은 500원, 1000원, 1500원, 2000원, 3000원, 5000원 등 6가지 균일가로 판매된다. 그 중 1000원짜리 상품이 전체의 50% 정도로 가장 비중이 크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몇 천원만 있으면 다이소 매장을 찾아 쏠쏠한 쇼핑을 즐길 수 있는 셈이다.
540여 개 매장서 2만여 종 품목 판매
저렴하고 부담 없는 가격만이 효용의 전부는 아니다. 다이소 제품은 품질 측면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는다. 다이소에 관한 한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은 잘 들어맞지 않는다. 여기에는 박정부 회장의 확고한 철학이 깔려 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제품 가격이 싸다는 것 자체가 경쟁력은 아닙니다. 가격과 함께 고객이 신뢰할 수 있는 상품력이 뒷받침되어야만 하지요. 가령 1000원짜리 제품이라면 분명히 1000원 이상의 가치를 고객이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겁니다. 가령 고객에게 1000원 지폐와 1000원짜리 다이소 제품 둘 중에 하나를 고르라고 했다고 칩시다. 그 때 고객이 아무런 망설임 없이 다이소 제품을 선택해야만 비로소 우리 제품이 가치가 있다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다이소아성산업은 여느 기업들과 가격 책정 방식이 다르다. 기업들은 대부분 제품 원가에 적정 이윤을 붙여 판매 가격을 결정한다. 원가를 기준으로 가격이 정해지는 것이다. 다이소는 그 반대다. 즉 판매 가격을 먼저 정해 놓고 그 범위 안에서 어떻게든 제품을 개발하고 조달하는 것이다. 물가가 오르고 원부자재 가격이 올라도 판매 가격은 요지부동이다. 자칫하면 이윤이 줄어드는 것은 물론 손해가 날 수도 있는 구조인 셈이다.
“1000원짜리 제품에 마진을 붙이기가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하지만 내가 이윤을 추구해서 제품 가격을 올리게 된다면 고객들이 먼저 등을 돌립니다. 때문에 저이익 정책은 불변입니다. 어찌 보면 참 미련한 장사를 하는 셈이지요. 그래도 저는 천직으로 생각합니다. 할 줄 아는 사업도 이것밖에 없어요.”
다이소의 비즈니스 모델은 전형적인 박리다매형 사업이다. 요즘에는 1000원짜리 제품을 하나 팔면 10원 안팎의 이윤을 남긴다고 한다. 영업이익률로 따지면 1%쯤 되는 셈이다. 그런데 직접 다이소 제품을 체험해 보면 그 가격에 이윤을 남긴다는 사실이 신통할 때가 적지 않다. 그만큼 가격에 비해 품질이나 디자인이 썩 괜찮은 편이다.
물론 여기에도 비결이 있다. 그것은 다이소아성산업 특유의 상품 기획 및 공급 노하우다. 다이소는 직접 물건을 생산하지 않는다. 100% 글로벌 아웃소싱 체제다. 다이소와 거래하는 협력업체는 세계 28개국에 걸쳐 2000여 개나 된다. 품질 좋은 제품을 저렴한 가격에 공급할 수 있는 파트너를 찾아 박 회장이 지구촌 구석구석을 누빈 덕분이다. 박 회장은 연간 해외 출장 건수가 평균 20여 회에 달한다. 지금까지 해외 출장을 다닌 거리를 누적하면 지구 60바퀴를 돈 것과 맞먹을 정도다.

28개국 2000여 개 협력업체 통해 아웃소싱
박 회장은 상품 기획과 품질 점검도 손수 챙긴다. 그의 진두지휘 아래 30여 명의 디자이너들은 매달 400~500여 가지에 달하는 신상품을 기획하고 개발한다. 협력업체가 납품한 신상품은 박 회장의 최종 ‘눈도장’을 받아야 비로소 매장에 깔리게 된다. 그만큼 다이소 제품에 대한 박 회장의 관심과 열정은 유별나다. 그는 평소 임직원들에게도 철두철미한 장인정신을 강조한다. “상품 하나하나에 혼을 담아야 한다. 작은 일에 철저해야 큰일을 할 수 있다. 과정을 중시하고 잘 챙겨야 좋은 결과가 나오는 법이다.”
다이소아성산업이 지금까지 개발한 제품 가짓수는 무려 4만여 종에 달한다. 놀라운 것은 박 회장이 그 많은 제품의 대다수를 기억하고 있다는 점이다. “수만 가지 제품을 모두 머리에 담고 있다고 하면 믿기지가 않겠지요. 하지만 저는 어떤 제품을 보면 우리가 개발한 것인지 아닌지 금방 알아차립니다. 각 제품의 특징이 자연스레 머릿속에 저장돼 있기 때문이죠.” 그가 얼마나 꼼꼼하고 철저한 스타일인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박정부 회장은 대학 졸업 후 평범한 샐러리맨으로 살다 40대 중반에 뒤늦게 사업가의 길로 들어섰다. 1988년 처음 창업한 회사는 한일맨파워. 국내 기업 임직원들의 일본 연수를 매개하고 지원하는 일을 주로 했다. 이듬해 박 회장은 일본에 살던 동생으로부터 우연한 기회에 다이소(大創)산업이라는 회사를 소개받았다. 다이소산업은 2500여 개의 ‘100엔숍’을 운영하는 명실상부한 일본 넘버원 균일가 유통업체다.
그때부터 박 회장의 사업은 일대 전환점을 맞게 됐다. 다이소산업에 생활용품을 공급하는 협력 파트너가 된 것이다. 유통의 달인으로 통하는 야노 히로다케 다이소산업 회장은 품질에 관한 한 매우 까다로운 인물로 정평이 나있다. 거래업체가 품질이 떨어지는 제품을 가져오면 면전에서 집어 던지는 경우도 왕왕 있을 정도다. 웬만한 업체들은 그의 눈높이를 도저히 맞출 수 없어 거래가 끊기곤 했다고 한다. 박 회장은 달랐다. 야노 회장이 원하는 값싸고 품질 좋은 제품을 공급하기 위해 발벗고 뛰어다녔다. 대부분 업체가 가격 경쟁력만 고려해 중국 시장을 노크할 때, 박 회장은 지구촌을 누볐다. 같은 가격이라도 가장 질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는 업체를 발굴하기 위해서였다.
이런 남다른 노력 덕택에 박 회장은 야노 회장과 굳건한 협력관계를 구축할 수 있었다. 이후 한일맨파워는 다이소산업이 해외에서 조달하는 제품 물량의 3분의 1을 공급하는 최대 파트너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현재 한일맨파워는 연간 5억 개에 달하는 제품을 다이소산업에 공급하고 있다. 일본 인구가 1억2700만 명 정도라는 점을 감안하면, 일본인 1명이 1년에 4개가량의 한일맨파워 제품을 구입하는 셈이다.
일본 최대 균일가 업체 다이소산업과 합작
박정부 회장은 다이소산업과 수년간 거래하면서 균일가 유통사업의 높은 잠재력을 확신하게 된다. 자연스레 ‘한국에서도 일본의 100엔숍 같은 비즈니스 모델이 자리 잡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는 곧 실행에 옮겼다. 균일가 유통사업을 위해 1992년 자회사인 아성산업을 설립한 것이다.
하지만 1990년대 초반 우리 사회 소비문화는 값싼 생활용품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별로 없었다. 고도 경제성장 덕분에 씀씀이가 커진 국민들이 ‘쩨쩨하게’ 1000원짜리 제품에 눈길을 줄 만한 분위기가 아니었던 것이다. 박 회장도 현실을 냉정하게 판단하고 ‘때’가 오기를 기다렸다.
그는 1997년 5월 마침내 서울 천호동에 첫 번째 매장을 열었다. 상호는 ‘아스코이븐프라자’, 국내 최초로 ‘1000원숍’이 등장한 순간이다. 처음 매장을 찾은 고객들은 제품과 가격표를 번갈아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곤 했다. “정말 이 가격이 맞느냐”고 되풀이해서 묻는 고객들도 많았다. 품질에 비해 가격이 너무 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당연히 입소문이 퍼져나갔고, 고객들의 발걸음도 점차 늘기 시작했다.
그 해 말 IMF 외환위기가 한국을 강타했다. 전대미문의 경제위기는 오히려 아성산업에게 절호의 기회로 다가왔다. 허리띠를 바짝 졸라맨 소비자들이 저가 균일가 제품의 가치에 눈을 떴기 때문이다. 언론에서도 불황을 넘는 지혜로운 선택으로 아스코이븐프라자를 주목했다. 아스코이븐프라자는 이듬해 ‘한국 프랜차이즈 대상’을 수상할 만큼 빠르게 인지도를 높여 나갔다.
수년이 지나 박 회장은 또 한 번 결단을 내린다. 일본 다이소산업과 합작 결정을 내린 것이다. 박 회장은 국내 균일가 제품 시장 확대를 위해 투자가 필요했다. 야노 다이소산업 회장도 핵심 파트너인 박 회장과 꾸준한 협력관계를 이어갈 필요가 있었다. 서로 뜻이 맞은 셈이다.
이렇게 해서 2001년 합작법인 다이소아성산업이 새로 출범했다. 매장 브랜드도 아스코이븐프라자에서 다이소로 변경했다. 일본 다이소산업이 34%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경영은 전적으로 박 회장의 몫이다. 양쪽의 신뢰관계가 그만큼 두텁다는 방증이다.
합작법인으로 재탄생한 다이소는 더욱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주요 상권으로 영역을 확대해 나갔고, 매장도 대형화했다. 소비자들 사이에 인지도와 신뢰도가 동반 상승하면서 매출도 가파른 성장세로 돌입했다. 최근 다이소는 매달 평균 5~6개의 신규 매장을 개점하고 있다. 길거리 독립매장 개설뿐 아니라 대형할인점 출점 전략도 병행한다. 이제 브랜드 파워에 대해 확고한 자신감이 붙었다.
다이소의 상권을 보면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알 수 있다. 통념적으로 저가 균일가 제품은 생활수준이 낮은 지역에서 잘 팔릴 것 같다. 그런데 다이소는 그렇지 않다. 서울과 지방, 강남과 강북에 자리 잡은 주요 매장들은 지역 간 소득수준 격차에 관계없이 고른 매출 분포를 보이고 있다.

선진국 소비자일수록 합리적인 소비문화
무슨 이유일까? 박 회장은 저가 균일가 제품 유통산업이 발달한 나라들을 주목하라고 한다. 미국, 일본, 스페인 등 선진국에서 오히려 1달러숍, 100엔숍, 100페소숍 등이 성공했다는 것이다. 선진국 소비자일수록 오랫동안 다양한 구매 경험을 통해 합리적이고 알뜰한 소비문화를 형성했다는 게 박 회장의 지적이다. 일본만 하더라도 균일가 생활용품 시장 규모가 약 6조원대에 달한다는 추산이다.
“과거와 달리 한국인의 소비문화도 합리적인 방향으로 많이 바뀌었습니다. 사실 생활을 ‘명품’으로만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일상적인 소모품들은 다이소 같은 데서 저렴하고 알뜰하게 구매해서 쓰는 게 바로 합리적인 소비가 아닐까요.”
박 회장은 매장 관리에도 철저하다. 다이소 제품과 고객이 만나는 최종적인 접점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품질 좋고 값싼 제품을 판다고 해도 매장이 우중충하고 고객 응대가 서툴다면 고객을 만족시킬 수 없는 노릇이다. 자칫하면 ‘싼 게 비지떡’이라는 달갑지 않은 굴레를 다시 쓸 수도 있다.
그래서 내건 모토가 ‘상품에 정직한 매장’과 ‘고객에게 기쁨을 주는 매장’이다. 두 가지 모토는 다이소를 찾는 고객을 붙들어 매는 경쟁력의 또 다른 원천인 셈이다. 박 회장은 각 매장마다 지역 및 고객 특성을 반영해 운영하도록 하고 있다. 매장 내 제품 진열도 그런 원칙에 입각한다. 고객 서비스를 위한 직원교육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매장 관리와 운영은 점장 중심 체제를 도입해 책임성을 부여했다. “현장을 놓치지 말고, 하루하루 매장에 집중하자.” 박 회장이 늘 강조하는 말이다.
그는 무척 소박하면서도 일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임직원 4000여 명을 이끄는 큰 기업의 경영자라는 느낌이 잘 들지 않는다. 회사에서는 늘 노란색 다이소 유니폼 점퍼를 입은 채 분주하게 일을 챙기고 다닌다. 박 회장이 옆을 지나쳐도 직원들 역시 그저 자신의 일에 몰두하는 모습이다. 일을 ‘찾아서’ 하는 것은 다이소의 기업문화로까지 승화된 듯하다.
“저는 일에 가치를 둡니다. 돈을 생각하면 이 사업은 할 수 없어요. 어떤 사람이 1000원어치를 팔아 10원도 못 남기는 사업을 하겠습니까? 하지만 다이소가 대한민국 소비문화를 바꾸고 소비자 물가를 0.1%라도 낮출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게다가 판매가격을 정해놓고 상품을 개발하려면 얼마나 할 일이 많겠어요. 저는 일을 찾고, 그것을 풀어나가는 것이 행복이라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