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몽 뷔로 캐나다상공회의소 회장은 대표적인 ‘한국 통(通)’으로 꼽힌다. 한국에서 거주한 햇수도 올해로 12년째다. 그는 한국에 대한 사랑만큼 한국 경제에 대한 따끔한 조언과 함께 직언을 쏟아냈다.

“한국 경제 미래를 위해서

 중소기업 세계화 절실합니다”

 “한국 경제의 미래는 수출에 달려 있어요. 하지만 한국의 수출, 안 괜찮아요. 수출 아이템 중 톱 10은 자동차, 반도체, 선박 등입니다. 이들이 전체 수출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요. 수출 기업 중 80%가 삼성, 현대차 등 대기업이고요. 우수한 기술력을 가진 중소기업들 중 해외에 진출해 성과를 올리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뷔로 회장은 중소∙중견기업들의 수출 비중이 점점 줄어들고 있고, 수출이 몇몇 대기업 중심의 ‘스타 제품’에만 의존하는 것이 한국의 글로벌화가 뒤처져 있는 증거라고 했다. 그는 “한국 경제의 미래를 위해서는 중소기업의 세계화가 절실하다”고 단언했다.

1986년 유공(현 SK에너지) 국제금융부에서 일하게 되면서 한국과 인연을 맺은 그는 당시의 동료들의 매력에 끌려 한국에서 오랜 생활을 하게 됐다. 1998년부터는 아예 한국에서 살면서 한국 기업들의 글로벌 진출을 돕는 자문회사 벡티스(VECTIS)의 대표로 일하고 있다. 명예 서울시민이기도 한 그는 대통령 직속 국가브랜드위원회 위원, 서울시 외국인 투자자문회의 위원, 인베스트 코리아 자문위원, 서울 글로벌센터 자문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뷔로 회장은 전라도 반찬을 좋아하고 조용필, 정태춘의 노래를 즐겨 부른다. 그는 “한국을 사랑하기 때문에 쓴소리도 더 많이 한다”며 웃었다.

그는 “1953년부터 2010년까지 한국 경제가 급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수출 지향적인 경제구조 때문”이라며 “하지만 한쪽으로 치우친 수출구조가 결국엔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지금처럼 한국의 수출이 소수의 대기업에 집중된다면 전방에서 장군들(재벌)이 돌격하는 데 그 뒤를 따르는 보병들(중소기업)이 거의 없는 전투와 같은 모습입니다. 전쟁터에서 전투를 할 수 있는 보병들을 키우는 전략에 집중해야 합니다.”

대기업 중심의 수출 지향 구조가 큰 문제

한국이 지금보다 한 단계 도약하려면 강한 중소기업 글로벌화 모델을 새롭게 구축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는 독일을 예로 들었다. 지난해 중국에 추월당하긴 했지만 독일이 한동안 전 세계에서 수출 1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히든 챔피언’으로 불리는 중소∙중견기업 덕분이라는 것이다.

그는 중국과 인도의 중소기업들이 가격 경쟁력을 기반으로 한국 기업을 바짝 뒤쫓고 있기 때문에 시간이 없다고 말했다.

“물론 중국과 인도 기업이 단기간에 한국 중소기업의 기술력을 따라잡기 힘들어요. 한국 기업들 역시 도전과 경쟁을 좋아하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점은 강점입니다. 하지만 한국 중소기업들은 해외시장을 어떻게 개척하고, 마케팅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죠.”

그는 “한국 중소∙중견기업들의 글로벌화는 아직 멀었다”며 “한국이 지금보다 한 단계 도약하려면 강한 중소기업 모델을 새롭게 구축해야 하는 등 수출구조의 전체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선 완전히 다른 전략과 다른 사고방식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한국에서의 성공 요인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해외에 진출할 때 그것을 그대로 적용할 것인지 아닌지를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미국 시장에서 실패한 ‘싸이월드’를 예로 들었다. 한국에서의 성공요인이 해외에서 성공요인이 될 수 없다는 점을 아주 간명하게 드러냈다는 것이다.

“싸이월드는 한국 시장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뒀어요. 우수한 직원을 가진 대기업(SK커뮤니케이션즈)이었고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로는 페이스 북의 원조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미국 시장에서 실패했어요. 한국에서 아무리 크게 성공했다 하더라도 다르게 생각하지 않으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페이스 북이 성공을 거둔 반면 싸이월드가 실패한 것은 ‘일촌’이라는 한국의 고유한 문화를 내세웠기 때문이다. 미국의 정서를 생각하지 않고 한국의 정서를 고집해서 생긴 결과라는 것이다. 그는 한국 기업들이 국내 시장에서의 성공을 해외시장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 새로운 접근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르게 생각하지 못한 거죠. ‘싸이’라는 말은 ‘사이버’라는 의미와 ‘아주 가까운 사이’라는 말을 함축하고 있어요. 하지만 미국에선 사이버는 원조교제와 같은 약간 부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고, 일촌이라는 아주 중요하거나 가까운 사이를 이해하지 못해요. 한국과 미국의 소비자는 완전히 다른 거죠.”

‘일촌’과 같은 혈족의 관계성을 촌수로 구분하는 이러한 방식은 한국에서는 성공요인이었지만 그대로 미국에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한국 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해선 한국 시장에서만 가능한 가설에서 벗어나 독립적으로 사고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특히 그는 한국 기업의 해외 마케팅 기법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한국 중소기업 사장님들을 만나보면 기술 등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해요. 하지만 아무리 좋은 기술과 인재를 갖고 있어도 잘 포장해 팔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어요.”

뷔로 회장은 자신의 블랙베리를 꺼냈다. “캐나다에서 가장 잘 나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을 캐나다에서 팔 때와 해외에서 팔 때는 달라야 합니다. 이것(블랙베리)을 휴대전화라고 해선 안 됩니다. 음성통화도 하고, 메일도 확인하고, 결재도 할 수 있으니까요. ‘오픈 오피스’라고 세일즈 브로슈어를 만들어야죠.”

그는 그런 다음 어떻게 팔 거냐는 문제에서는 고객과의 소통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런 점에서 한국 기업들은 해외시장에 대한 정보 등 지식도 없고, 전문가도 없다고 했다.

“어떤 한국의 중소기업들은 글로벌 기업 못지않은 기술력과 제품을 가지고 있어요. 하지만 정작 물건을 파는 마케팅 능력은 현저히 떨어집니다. 기술도 중요하지만, 그 기술을 누군가에게 팔기 위해선 잘 포장하는 게 더 중요합니다. 기술 혁신 능력과 글로벌 시장에서 제품을 판매하는 능력 사이의 간극을 좁혀야 성공할 수 있어요.”

그는 “글로벌 마인드를 갖추는 것은 단순히 해외를 오가는 것에서 나오지 않는다”면서 “해당 시장의 소비자들이 무얼 원하는지 정확히 파악하고 이를 영업에 접목해 나가는 단계적인 접근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해외시장에 진출하려면 기술과 함께 상대를 설득할 구체적인 계획을 만들고, 제품 설명은 엔지니어 대신 상대방의 니즈를 잘 알고 있는 세일즈 전문가가 해야 한다는 조언도 덧붙였다. 기술력을 갖춘 이후 우선순위를 정하고 글로벌 마케팅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글로벌 시장에 대한 접근법을 ‘MIND-SET’ 이라는 두 문자어로 표현했다. M(mobility: 넓은 무대로 나아가라), I(independence: 독립적으로 사고하라), N(novel approach: 다르게 생각하라), D(diversity: 다양성을 추구하라), -(hyphen: 연결고리의 숨은 가치를 찾아라), S(situation awareness: 주변 상황을 제대로 보라), E(equality: 수평적 관계를 유지하라), T(two way street: 양방향으로 비즈니스 하라)가 바로 그것.

이러한 마인드 셋을 갖추는 것은 추상적인 콘셉트가 아니다. 그는 해외시장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자신의 강점을 친절하게 설명할 수 있는 자세가 마인드 셋에서 나온다고 강조했다.

인재 양성하고 조직문화 바꿔야

“중소기업의 경우 이러한 마인드 셋이 ‘아주 많이많이’ 부족해요. 충분한 기술과 능력을 가진 중소기업들이 미숙한 글로벌 비즈니스 에티켓과 원활하지 못한 커뮤니케이션으로 좌절하는 것을 여러 번 지켜봤어요. 또 기술력을 잘 설명했다 하더라도 직원들의 사업 개발 역량이 부족해 효과적으로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지 못한 경우도 많고요.”

뷔로 회장은 중소기업 스스로의 변화도 주문했다. 그는 중소기업들의 성공적인 글로벌화를 위한 ‘완전한 해결책(Silver Bullet)’은 없지만 우수한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삼성 등 대기업은 우수한 인력과 시스템을 갖추고 있고, 많은 경험까지 보유하고 있지만 중소기업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는 현재 중소기업에서 실시되고 있는 사내 교육을 ‘잘못된 짝짓기’에 비유했다. 기초적인 개념 수준에 머무르는 교육이 대부분이어서 세계시장에서 실제 활용할 수 있는 것은 드물다는 것이다.

“중소기업들이 하는 교육이라는 것이 신용장 개설, 세관, 물류, 금융 지원 등과 같은 기본적인 겁니다. 하지만 진짜 필요한 것은 이런 게 아닙니다.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전략을 기획하고, 마케팅과 커뮤니케이션을 어떻게 할 것인가입니다.”

그는 성공적인 글로벌화를 위해서는 조직문화도 혁신해야 한다고 말한다. “저도 ‘한 달 형’이 있지만 직장의 선후배간의 위계질서는 이해하기 힘들어요. 시간이 지나면 대리로 진급하고, 과장이나 부장으로 승진하는 호봉체제도 이상하고요. 나이나 타이틀보다는 업무 능력이 우선시돼야 하지 않나요.”

그는 이러한 조직문화에서는 대기업도 중소기업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꼬집었다. 대기업에 채용된 외국인 임원들 중 자신의 역할에 실망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는 것이다.

“부사장이나 상무 등의 직급을 달고 있지만 그에 걸맞은 결정 권한은 없다고 하소연하더군요. CEO들이 한국인 임원보다 자신들의 충고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어요.”

그는 진짜 미안하지만 고백할 수밖에 없다면서 한국을 사랑하는 만큼 건전한 비판으로 받아들여 달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