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고 맛있는 ‘더 스페셜 피자’로
1등 브랜드 영광 되찾겠다”

이승일(49) 피자헛코리아 사장은 지난 6월 본사 임직원들을 콜센터 교육장으로 데려갔다. 본사 직원들이 콜센터 요원들의 업무를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콜센터 직원들은 일상적으로 고객들과 접촉한다. 그들의 업무를 이해해야 효율적인 마케팅안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이 사장의 생각이었다. 본사 직원들에게 직접 고객들의 콜을 처리해보도록 했다. 본사 직원들이 쩔쩔맸단다.
“콜센터 직원들은 본사가 마케팅안을 건넬 때마다 곤혹스러워 합니다. 파악해야 할 쿠폰이 몇 종류고 할인은 몇 퍼센트며 유효기간은 언제까지인지 정확히 꿰고 있어야죠. 힘든 작업입니다. 본사가 쓸모없는 지침을 내릴 때면 콜센터 직원들은 그걸 외우느라 시간을 낭비하게 돼요. 본사의 잘못된 결정이 현장에 얼마나 큰 혼란을 만들 수 있는지 임직원들에게 가르쳐주기 위해서였어요. 마케팅은 그만큼 신중해야 합니다.”
이 사장은 마케팅에선 일가를 이룬 사람이다. 2001년부터 5년간 야후코리아 사장으로 재임했을 때 사업성과를 9배 이상 끌어올렸다. 2005년부터 피자헛으로 오기 전까진 삼성전자 디지털미디어 부문에서 국내외 마케팅을 진두지휘했다.
2008년 초 세계적인 식품체인 얌브랜즈(YUM Brands Inc.; 피자헛·KFC·타코벨의 모기업)가 이 사장에게 긴급콜을 날렸다. 피자헛코리아를 맡아달라는 것이었다. 이 사장의 별명은 ‘미스터 턴어라운드’. 침체된 사업을 다시 살려놓는 것이 그의 특기다. 세계적인 피자체인 피자헛의 한국지사에 무슨 일이 생겼던 걸까. “몇 년째 매출이 늘지 않고 침체상태였습니다. 미스터피자 등 국내 브랜드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급성장하는 것과는 반대였죠. 처음 제가 부임할 때 직원들 사기도 말이 아니었습니다.”
이 사장은 우선 불필요한 손실을 줄이기 위한 작업부터 시작했다. ‘마케팅 투자 대비 효과(ROMI)’란 개념을 업무에 도입했다. 투자 대비 산출효과(ROI)를 마케팅에 적용한 것이다. 마케팅 관계자들이 ‘20% 할인 쿠폰’처럼 흔한 판촉안을 낼 때도 ROMI를 측정해 제시하도록 했다. 마케팅에 소모될 합리적인 예산 규모와 효과를 예측하기 위한 것이다.
‘피자헛은 비싸다’는 이미지를 불식시키기 위해 ‘저가 마케팅’에 시동을 걸었다. 저렴한 메뉴를 개발하기 위해 직원들과 머리를 맞댄 것. 효과는 좋았다. 대표적으로 ‘스마트런치’의 경우 6000원의 싼 값으로 피자와 파스타를 곁들이도록 한 메뉴다. 소비자들의 반응을 조사한 결과 피자헛 메뉴 중 가장 선호도가 높았다. ‘더스페셜 피자’ 5종도 성공작이다. 덜 기름지면서도 쫄깃한 맛을 강화한 것이 제대로 먹혔다. 피자헛 전체 매출의 40%를 책임지는 효자상품이다.
속 쓰린 실패도 있었다. 파스타 라인을 전략적으로 강화하기 위해 ‘파스타헛’으로 잠시 브랜드를 개명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판촉을 진행하면 할수록 매출은 더 떨어지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브랜드가 갑자기 바뀌자 소비자들이 피자헛이 망한 줄 안 것이다. 일주일 만에 파스타헛 광고를 중단했지만 15%가량 파스타 판매가 늘었다. 결과적으론 파스타 전략은 성공한 셈이다.
“아직 경영실적이나 성과를 언급할 단계는 아닙니다. 성공뿐 아니라 실패도 반복하면서 소비자들을 파악하는 과정이지요. 지금은 피자헛이 침체기를 벗어나 실적을 회복하는 단계입니다. 하지만 아직 멀었죠. 피자헛 전성기 때처럼 ‘가장 사랑받는 피자’ 콘셉트가 실감나려면 할 일이 많습니다.”
제품 차별화에 ‘올인’
피자 시장은 포화상태다. 피자헛이 브랜드파워 1위를 고수하고 있다곤 하나 미스터피자, 도미노피자 등 경쟁업체들의 추격이 만만찮은 상황이다. 더구나 골목마다 널려 있는 6000~7000원의 저가 피자들도 이 사장의 신경을 곤두세우게 한다. 그만큼 제품과 서비스의 차별화가 절실한 상황이다.
차별화가 그러나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제품 개발에서만도 고려해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만들기가 쉬워야 한다. 피자헛의 전국 310개 매장에서 6000명의 직원들이 같은 모양과 맛의 피자를 만들어낼 수 있을 만큼 제작공정이 단순해야 한다.
맛은 유지하면서 재료비는 아껴야 한다. 재료가 많이 들어가면 제품 값은 오르기 마련. 값을 낮춰 달라는 소비자들의 요구를 외면하게 되는 상황이다. 히트작 더 스페셜 피자의 경우 생산 단가를 덜기 위해 치즈층 하나를 줄였다. 대개 피자는 겉에 치즈를 두 번 깔고 그 위에 소스와 토핑을 올린 후 다시 치즈 한 층을 더 올리는 것이 기본. 더 스페셜 피자는 치즈층을 줄인 대신 소스에 치즈를 넣어 쫄깃한 맛을 유지했다.
웰빙에도 신경 써야 한다. 특히 피자에 대해선 염분을 낮추라는 요구가 많다. 언뜻 들으면 모순된 주문이다. 염분을 낮추면 음식이 싱거워져 맛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그러면 소비자들은 제품을 외면한다. “염분을 낮추면서도 맛을 전과 똑같이 유지하는 것이 관건이죠. 피자헛은 제품의 염분을 40~70%까지 대폭 줄였습니다. 햄버거 등 다른 패스트푸드들이 기껏 5% 내외 낮출 수 있었던 것과 현저한 차이죠. 피자헛만의 오랜 노하우입니다.” 이 사장이 강조한다.
품질에도 신경 써야 한다. 특히 재료의 유통기한이다. 피자헛에선 피자 도우(반죽)의 포장을 뜯은 지 3시간이 지나면 무조건 버린다. 또 당일 반죽이 아무리 많이 남더라도 매장 영업이 끝나면 모두 폐기하는 것이 철칙이다. 문제는 본사가 매장에 얼마만큼의 반죽을 보내느냐다. 반죽이 남아서도 안 되고 모자라면 더 곤란하다. 적당량을 계산해내야 하는데 이 작업이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다. “매장에서 당일 재료의 수요를 예측하는 것이 운영의 묘입니다. ‘과학’이라 할 만큼 복잡한 통계작업이 이뤄지는 부분이죠. 고객의 연령과 성별, 제품 가격, 광고량 등의 수치를 치밀히 고려해야 합니다.”
서비스의 질을 유지하는 것도 차별화의 관건이다. 피자헛은 매장의 위생과 친절, 시설 상태 등을 점검하기 위해 매월 암행어사들을 파견한다. 손님인 척 가장해 매장 상태와 직원들의 태도를 점검하고 불시에 주방으로 들어가 재료의 유통기한을 확인하는 것이다. ‘피자헛 올림픽’도 연다. 아시아 각 지역의 매장 직원들이 피자 제조와 서비스의 실력을 겨루는 것. 직원들에게 서비스 마인드를 키워주기 위한 동기 부여책이다.
피자 업체들은 품질과 서비스를 개선하느라 사력을 다하지만 사실 소비자들이 매장을 자주 찾는 것은 아니다. 소비자들의 피자 구매 주기는 대략 40일. 한 달에 한 번꼴도 안 된다는 것이다. 고객들이 이 기간 중에 같은 브랜드를 선택하도록 하는 것이 마케팅의 관건이다.
“제품은 가격도 싸야 하고 맛있어야 하는 데다, 만들기도 쉬워야 합니다. 신제품 개발에만 꼬박 1년이 넘게 걸리는 이유죠. 인건비와 재료비를 줄여야 하는데 그렇다고 맛과 서비스 질을 떨어뜨릴 순 없고요. 다양한 업종에서 일해 봤지만 음식장사만큼 복잡한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정말 머리 아프게 공부 중입니다.”
이 사장은 현재 요리를 배우고 있다. “프랑스 요리를 배우고 있습니다. 서양 요리의 기본이기 때문이죠. 맛에 대한 감각을 익히고 조리법을 연구하기 위해서인데, 잘 익혀 두면 매장에서 직원들이 피자와 파스타를 만드는 과정에서 뭐가 잘못되었는지 금방 찾아낼 수 있게 되겠지요. 제 나름의 현장경영 시도죠.”
1주일에 한 번 매장 방문
이 사장이 강조하는 것은 ‘현장경영’이다. 그저 말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직접 행동으로 옮긴다. 이 사장은 일주일에 한 번씩 매장에 들러 피자 배달에 나선다. 주방일도 거든다. 매장 직원들과 친밀해지기 위해서다. 그래야 현장이 돌아가는 분위기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본사는 갑(甲)이 아니라 매장지원센터’라고 직원들에게 강조합니다. 일선 현장의 의견과 요구를 반영하라는 얘기죠. 본사 직원들이 갑 행세를 하려는 경우 그 회사는 위험해집니다. 현장과 괴리가 생기거든요.”
이 사장은 프록터&갬블, 씨티은행, 펩시콜라, SC 존스 왁스, 브리스톨마이어스큅 등 글로벌 기업들 사이에서 마케팅 담당자로 근무했다. 업종은 생활용품에서 금융, 제약까지 모두 제각각. 서로 다른 분야를 옮겨 다니다 보면 적응이 어렵진 않았을까.
“인터넷이든 전자든 음식이든 본질적으론 같습니다. 소비자들을 상대한다는 것이죠. 경영의 기본 방침에서도 같습니다. 고객들이 원하는 것을 찾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리더십도 마찬가지고요. 직원들을 한 식구로 뭉쳐서 같은 목표로 움직이게 하는 것입니다.”
이 사장이 직원들을 끌고 나갈 목표는 피자헛의 왕년의 영광을 되찾는 것이다. 여전히 가장 지명도 높은 브랜드지만 아직 과거 침체의 후유증을 완전히 극복하고 있진 못한 상황이다. “안정적인 성장세로 완전히 돌아서는 것이 올해 목표입니다. 현재 가족단위 고객들에겐 피자헛이 1위지만, 피자 주력 고객층인 20대 여성들에게 ‘피자헛이 1위’라고 말하긴 어려운 상황이고요. 직원들에게 위기의식을 갖고 일하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안주하지 않도록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