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스타프 클림트의 명화를 입은 작은 와인 냉장고? 아니었다. 윗면에 달린 터치형 숫자 패드에 여섯 자리 암호를 입력하자 그제야 문이 열린다. 한 뼘에 달하는 두꺼운 내벽, 상하좌우로 뻗은 거대한 빗장, 120kg에 달하는 무게. 금고가 확실했다. 바로 선일금고제작(이하 선일금고)의 디자인 내화금고 ‘루셀’이다.

“디자인입혀 금고 패러다임 바꿨다”…

 초일류 회사 향해 ‘거침없이’질주

루셀은 내화성과 도난 방지 기능은 물론 아름다운 디자인을 갖춘 ‘일석삼조’ 금고다. 회색과 같은 어두운 색이 주를 이루던 기존 금고와 달리 블랙과 와인 색상의 스트라이프와 꽃무늬 같은 고급스럽고 세련된 디자인이 돋보인다. 구스타프 클림트의 유명한 <키스>가 인쇄된 ‘키스 루셀’은 생활 인테리어로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뛰어난 미적 감각을 발휘한다. 구스타프 클림트 작품은 색채가 고혹적이고, 화려한 금빛 색감은 부를 상징한다.

잠금장치도 기존의 투박한 다이얼 형식에서 벗어나 세련된 디지털 잠금 장치로 바꿔 디자인의 완성도를 높였다. 내화성을 유지하면서, 곡선형의 디자인과 업그레이드된 도난방지 기능으로 무장한 것이다. 김영숙 사장은 “루셀은 ‘금고도 인테리어 소품’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실현한 제품”이라고 말한다.

선일금고는 사무용 내화금고는 물론 가정용 금고 등 1000여 가지에 이르는 다양한 종류의 금고를 생산하고 있다. 이 회사의 고유 브랜드 ‘이글 세이프스’는 1976년 호주 수출을 시작으로 중동, 미국과 캐나다 시장에 차례로 진출했다. 현재는 세계 80여 개국에 금고를 수출하고 있다. 연매출 180억원 가운데 수출이 80%를 넘는다. 연간 10만 대가 넘는 금고를 수출한다.

화재에도 끄떡없는 기술력

선일금고제작은 1973년 설립돼 오직 금고라는 한 우물만을 파왔다. 김 사장의 남편인 창업자 고 김용호 회장은 고물상에서 산 고장 난 금고를 해체하고 조립하기를 수십 번 반복해 기술을 배웠다. 심지어 독일과 일본의 금고 회사까지 찾아가 하루에 햄버거 하나로 끼니를 때우며 선진 기술을 익히는 데 매진했다. ‘산업 스파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였다. 김 사장은 경기도 파주세무서 공무원 시절 남편과 만나 1976년 결혼했다. 남편을 도와 짬짬이 회사 경리업무를 봐 주다가 아예 눌러 앉았다.

선일금고가 금고 한 분야에서 37년간 선두 업체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은 기술력 덕분이다. 특히 화재에서 1시간 넘게 견딜 수 있는 내화금고 분야에선 2008년 세계 시장 점유율 35%로 1위를 차지하며 세계 일류상품으로 선정됐다. 일반 금고들은 불 속에서 한 시간 정도면 내용물이 대부분 타버리지만 선일금고의 제품은 내화성이 뛰어나다. 1000도 넘는 온도에서 3시간을 견딜 수 있다는 것이다.

선일금고는 1970년대 내화금고 공개 시험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당시 창업주였던 고 김용호 사장은 기자들이 보는 앞에서 금고를 불태우는 이벤트로 내화금고의 우수성을 증명했다.

최근에는 여러 차례 대형화재에서 기술력이 입증됐다. 2004년 4월 낙산사 화재와 2005년 경기도 파주의 대형할인마트 화재 때 모든 것이 잿더미로 변했다. 그러나 선일금고 내부의 현금과 보험증서를 비롯한 각종 문서들은 전혀 손상되지 않은 채로 발견돼 화제가 된 바 있다.

도난 방지 기술력도 여러 사례에서 입증됐다. 한 지방도시에서 도둑이 무차별적으로 금고를 훼손해 전자록 부분이 완전히 뜯겨져 해체됐지만 루셀은 여전히 빗장과 몸체가 꽉 물려 있어 내용물을 안전하게 지켜냈다.

선일금고는 아시아 기업으로서는 최초로 1999년 미국 UL(Underwriters Laboratories Inc) 내화·충격시험에 합격했다. 2007년엔 아시아 최초로 고기능성 방도금고인 ‘유로 그레이드 1’ 인증을 획득하기도 했다.

디지털 금고는 외문형 금고와 함께 선일금고가 세계표준으로 정착시킨 대표적인 사례다. ‘좌로 4, 우로 3, 다시 좌로 5’ 등 번호를 맞춰 여는 다이얼식 금고가 대세이던 20년 전, 선일금고는 전자식 잠금장치인 ‘디지털록 금고’를 개발했다. 처음에는 우려와 비난의 목소리가 높았다. 전자식 잠금장치를 보안성이 생명인 금고에 장착하는 것은 기술상 여러 난제가 따랐기 때문이다. 선일금고는 아랑곳하지 않고 3년간 5억원의 개발비를 쏟아 부어, 결국 이러한 우려를 말끔히 해소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유통되고 있는 금고의 80% 이상이 버튼으로 된 전자식 잠금장치를 사용하고 있다.

최초라는 수식어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지문인식 금고, 경보기 부착 금고 등 신개념 제품 대부분은 선일금고가 국내 최초로 만들어 보급한 제품들이다. 세계 최초로 바이오 항균기능을 금고에 도입해 온갖 세균이 들끓기 쉬운 금고를 항상 청결한 상태로 유지시키기도 했다. 최근에는 터치식 버튼 방식을 채용하기도 했다.

‘루셀’ 역시 선일금고의 새로운 도전이었다. 김 사장이 루셀을 개발하게 된 것은 누구나 갖고 싶은 예쁜 금고를 만들어 보자는 여성적 감각에서 시도된 것이었다. 칙칙한 금고에서 탈피해 깔끔한 디자인으로 주부 소비자를 공략하겠다는 목표였다. 하지만 내화성과 보안성이 생명인 금고와 제조기술의 한계로 다양한 디자인이 쉽지 않았다. 기존의 틀을 깨는 기술상의 난제가 따랐고, 김 사장이 약 2년 동안 직원들과 공장밥을 먹어가며 개발한 것이 바로 루셀이다.

김 사장은 튼튼하기만 하면 충분하던 금고에 ‘나만의 보석상자’란 개념을 도입, 굳이 돈이나 값비싼 패물이 아니라도 일기장이나 사진 등 개개인의 소중한 추억거리를 보관하는 가정용 소품으로 탈바꿈시켰다. 실내 장식품으로서도 손색이 없도록 디자인도 신경을 썼다. 디자인을 강조하지만 금고의 가장 근본적인 역할인 안정성도 결코 소홀히 하지 않았다. 루셀에 장착된 디지털 잠금장치는 비밀번호 조합 가능 수가 1600만 개에 달한다. 일반 금고보다 가격이 세 배가 비싸지만 금고 업체로선 이례적으로 백화점에 입점해 인기를 끌고 있는 국내에서의 반응도 이 때문이다.

김 사장은 “금고는 부유층의 전유물이 아니라 가정에서도 집문서, 보험증서, 등기권리증을 보관할 수 있는 생활가구”라며 “루셀은 인테리어 기능과 도난방지 기능을 동시에 갖춰 침대 옆 협탁으로 사용해도 될 정도로 스타일리시한 제품”이라고 말했다.

“유독 한국에서만 금고가 부유층의 전유물로 인식되면서 생활수준에 비해 금고 사용률이 지극히 낮아요. 인테리어 가구와 금고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루셀을 시작으로 앞으로도 고객의 요구에 맞는 다양한 신제품을 개발할 계획입니다.”

지금은 최고의 자리에 섰지만 위기도 많았다. 1980년 다이얼식 금고에서 버튼식으로 전환한 디지털 금고는 내장 칩에 이상이 생겨 문이 열리지 않아 모조리 반품되기도 했다. 1995년에는 수출 중 태평양을 지나던 선박에서 고열과 습기로 녹이 슬어 수천 대가 반품되기도 했다. 당시 반품된 금고가 공장을 둘러 담을 쌓았을 정도였다고.

김 사장은 “당시는 견딜 수 없이 힘들었지만 제품을 다시 납품해 오히려 구매자의 신뢰를 얻고 기술을 확보하는 기회가 됐다”고 회고했다.

창업주 남편의 갑작스런 죽음이 최대 위기

회사는 이를 계기로 미국안전규격 인증(UL) 등 세계 3대 인증은 물론 각국 인증을 대부분 따내는 성과를 거뒀다. 미국 UL의 내화·충격시험에 합격하려면 섭씨 927도에서 일정시간 내부 온도를 섭씨 170도 이하로 유지할 수 있어야 하며, 그 후 10m 높이에서 떨어뜨리고 다시 가열해 견뎌내는 기준을 통과해야 한다.

김 사장의 남편이자 창업주인 김용호 회장이 2004년 출근길에 교통사고로 갑작스럽게 숨진 일은 창업 이래 최대 위기였다. 그동안 재무 등 관리업무만 맡았던 김 사장이 제조와 품질까지 책임져야 했다.

김 사장은 그 당시를 떠올리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회사를 계속 끌어나가야 하나, 아니면 문을 닫아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어요. 하지만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오로지 최고의 금고를 만드는 데 매달려온 남편의 모습이 떠올랐어요. 그래 다시 시작하자, 그렇지만 특별나게 해보자, 그래서 남편이 못 다한 일을 끝내자고 결심했죠. 그 뒤부터는 슬퍼할 겨를이 없었죠.”

하지만 직원들과 해외 바이어들은 달랐다. 김 회장의 부재를 회사 운명과 직결시켰던 것.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까지 회사가 곧 망한다는 말이 돌기 시작했다. 그럴수록 김 사장은 더욱 열심히 뛰었다.

연구 개발은 물론 생산과 영업 부문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직원들과 땀을 흘렸다. 해외 거래처 유지와 발굴을 위해 외국에도 더욱 자주 나갔다. 한편으론 과학적 경영방식을 도입해 기존 체제를 유지하면서도 조심스럽게 주먹구구식의 경영을 변화시키기 시작했다.

“직원들을 한 명씩 모두 만났어요. 독수리가 부리를 깨고 발톱을 뽑는 고통을 견뎌내야 더 강한 부리, 발톱으로 새롭게 태어나듯 혁신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어요. 또 원자재 수급에서부터 생산, 판매 등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시작했어요. 그동안 금고만 만들면 된다는 생각에 몇 대가 생산되고, 그 중 불량품이 몇 대인지도 사실 몰랐거든요.”

그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직원들은 마지못해 따라왔다. 김 사장은 매주 한 차례 불량 제품을 전 직원에 공개해 ‘보여주고 느끼게’ 하는 방식으로 혁신을 이끌었다. 또 외부기관의 컨설팅을 통해 의식 개선과 품질혁신 활동을 꾸준히 전개했다.

투박스런 기존 금고의 디자인을 깨기 위해 대학과 산학협력을 추진하고, 이와 함께 브랜드 알리기에도 적극 나섰다. 그는 주문자상표제작(OEM)의 경우에도 고유 브랜드인 ‘이글 세이프스’를 꼭 부착하도록 고집해 독수리 상표를 보면 선일금고에서 제작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도록 했다. 이 덕분에 김 사장이 경영 전면에 나선 2005년 선일금고는 금고 업계 매출 1위, 다음해 수출 1000만불 탑을 수상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경영혁신 활동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회사 로비와 사무실이 위치한 2층으로 이어지는 본관 벽면에는 경영혁신 활동 현황과 팀별 공정 개선 사항이 적힌 프린트물이 즐비했다. 배송 중 찌그러지거나 녹이 슨 제품, 버튼이 손상된 제품 등의 사례와 함께 이에 대한 처리 현황 등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최근에는 중국 업체 등의 거센 추격으로 인해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기술 개발과 제작 효율성을 높이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때 싼 가격의 중국 제품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바이어들이 돌아선 적이 있었어요. 거기다 짝퉁 제품까지 나돌아 다녔고요. 결국엔 싼 게 비지떡이라고 중국 제품의 낮은 품질에 실망한 바이어들이 저절로 돌아오긴 했지만 기술 개발에 소홀하다간 중국이나 동남아 업체에 따라 잡힐 수 있다는 위기감을 절실히 느꼈어요.”

워낙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인력 빼가기를 통한 기술 유출 우려도 클 수밖에 없다. 선일금고의 직원이 중국 업체로 이직한 경우도 있다. 또 경쟁사에서 사람을 보내 금고의 외부나 내부 모습을 빠짐없이 촬영해가는 것은 물론, 아예 제품을 구입해 부품을 모조리 분해하기도 한다고.

두 딸에 회사 물려 줄 것

김 사장은 30여 년 동안 남편 옆에서 어깨너머로 일을 배운 게 혼자서 회사를 꾸려나가는 데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특히 대학에서 제어계측공학을 전공한 뒤 제조 전반을 담당하고 있는 첫째 딸 김은영(33) 상무, 경영학을 전공하고 김 사장의 경영을 돕는 작은 딸 김태은(31) 차장이 김 사장에게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두 딸의 경영수업은 혹독하게 이뤄졌다. 2000년 입사한 김은영 상무는 생산 현장에서부터, 2001년 아르바이트를 하다 사무직 말단사원으로 입사한 김태은 차장은 ‘복사하기’부터 시작해 현업 부서를 다 거쳤다. 김 사장은 “두 딸들과 함께 밤늦게까지 회사에 남아 업무를 처리하고 휴일에도 거래처를 찾아다닌 적도 많다”며 “최근까지 10시 전에 퇴근한 적이 없을 정도였지만, 두 딸이 결코 힘든 내색을 보이지 않은 게 너무 고맙다”고 말했다.

“사실 남편이 두 딸에게 회사를 물려줄 생각이었어요. 그래서 큰 딸은 기술과 생산을 맡으라며 공대로, 작은 딸은 경영관리를 맡길 생각에 경영대로 보냈어요. 딸들이 있었기 때문에 수많은 어려움을 헤쳐 나올 수 있었어요.”

김 사장은 “혼자였으면 못했을 거예요. 양 옆에서 힘이 돼줬으니까 헤쳐 나왔죠”라고 다시 한 번 말했다. 인터뷰에 배석했던 김태은 차장이 이 말을 듣고 “진짜 그래요? 그 말은 처음 들어 보네”라며 김 사장을 쳐다봤다.

지난해 180억원의 매출을 올린 선일금고는 올해 240억원으로 목표를 높여 잡았다. 김 사장은 “36년간 축적된 기술력으로 금고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기업이 될 것”이라며 “이를 위해 수년 전부터 끊임없는 디자인 개발을 통해 금고의 패러다임을 바꿀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