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금융투자 해외주식팀 야간 데스크를 가다
“밤새며 고객들 주식매매 주문처리…
새벽별 보고 퇴근합니다”

2010년 6월3일 밤 9시30분 무렵, 하루 업무를 마치고 텅 비어 있어야할 사무실에 불빛이 환했다. 이곳은 신한금융투자 여의도 본사 빌딩 3층, 이 회사 해외주식팀이 일하는 곳이다. 이 팀의 정예요원 4명이 업무 준비에 한창이었다. 남들은 퇴근해 집에서 휴식을 취할 시간에 이들은 이제 본격 업무에 앞서 워밍업을 하는 참이다.
어쩌다 한 번 하는 야근이 아니다. 총 9명의 해외주식팀 멤버 중에서 3명이 붙박이로 밤 9시에 출근해서 새벽 5시30분에 새벽별을 보고 퇴근한다. 이들의 심야 점심시간(?)은 그래서 새벽 1시다.
기자가 찾아간 날은 이 팀의 실무 책임자 유진관 과장이 남아있어서 총 4명이 일하고 있었다. 유 과장은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밤 근무를 한다고 했다.
이들이 이렇게 한밤중에 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미국 증시의 개장시간과 폐장시간에 맞춰서 일을 하거든요.”
유 과장의 설명이다. 미국 증시는 우리 시간으로 밤 10시부터 새벽 5시30분까지 열리는데, 이 팀의 근무시간은 그 시간에 맞춰 움직인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 시간에 회사에서 대체 무슨 일을 하는 걸까?
“고객들의 전화 응대를 많이 합니다. 미국 등 해외 주식을 사달라는 주문 요청을 처리하고, 궁금해 하시는 종목의 시세나 관련 뉴스도 실시간으로 확인해서 알려드려요. 실적 시즌에는 실적도 전해드리고, 투자할 만한 종목을 소개도 해드리죠.”
미국 주식 인기 ‘짱’
2007년 야간 데스크 서비스 초기에는 새벽 2~3시 정도까지만 했는데, 1년 만에 서비스 시간을 미국 폐장시간과 맞춰 연장했다. 글로벌 금융 위기 발생 후에 전 세계 증시의 주가가 급락하자 한밤중이나 새벽에 해외 주식을 주문하려는 고객들이 증가한 데 따른 조치였다.
신한금융투자는 현재 북미, 유럽, 아시아 등의 총 25개국 주식 거래 서비스를 제공한다. 가장 최근에 합류한 국가는 그리스다. 남유럽 위기가 부각된 후 그리스 주식을 살 수 없느냐는 문의가 늘어 지난 5월에 추가했다. 25개의 해외 증시 가운데 미국>홍콩>중국>베트남>영국>인도네시아 등의 순으로 거래가 많은데, 고객 거래대금의 약 80%가 미국 주식 매매에 들어갈 정도로 투자자들의 미국 주식에 대한 편애가 강한 편이다. 6월3일 현재 신한금융투자의 해외 주식 거래 계좌 수는 1만7000개 정도라고 한다.
매매 가능한 25개국 가운데, 이 회사 고객들이 HTS(홈트레이딩 시스템; 주식 거래 프로그램)로 직접 주식을 사고 팔 수 있는 국가는 미국, 중국, 홍콩 등 세 나라뿐이다. 나머지 22개국의 주식은 해외주식팀에 전화로 매매 주문을 내야 한다. 고객들의 직접 HTS 거래가 가능한 미국, 중국, 홍콩 주식도 전화 주문량이 적지 않다. 이 회사의 해외 주식 주문에서 40%는 전화 주문이란다. (국내 주식의 경우는 HTS 주문이 80%, 전화 주문이 20% 선이다.)

낮에 HTS로 예약 주문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래도 아직은 많은 고객들이 미국 현지 개장시간에 매매를 한다. 해외주식팀 최천성 주임은 “밤 10시 미국 증시 시작 후 30분 사이에 거래가 가장 활발하다”며 “고객들은 개장 후 분위기를 보고 주문을 내는 경우와, 하루 증시 흐름을 다 보고나서 마감 1시간 전에 주문을 하고 새벽녘에 잠드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고객의 전화를 받아 민원을 처리한다니, 야간 데스크의 업무가 얼핏 콜센터 업무와 비슷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의 업무가 이게 다는 아니다. 영문 자료를 번역해 해외 주식들에 대한 리서치 자료를 만들고, 전국 지점의 영업사원들에게 해외 주식 업무와 관련한 교육도 맡아 한다. 연·기금, 자산운용사 등 기관 투자가들의 해외 주식 거래를 따내는 경쟁 프레젠테이션(PT)이 있으면 지원도 나간다. 영업과 리서치, 콜센터, 교육, 해외 거래 계약 등 아무튼 해외 주식 거래 관련된 업무는 모두 이 팀이 해결하는 체제라고 보면 된다. 본인들 스스로가 ‘해외주식팀 멤버들은 멀티플레이어’라고 말한다.
이 회사의 해외 주식 매매 서비스는 지난 2000년 5월 전화 주문 서비스를 시작한 것이 시초다. 2004년부터 HTS로 일부 국가의 직접 주식 거래를 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했다. 해외 주식 업무를 전담하는 해외주식팀은 2007년에 만들었다. 이후 금융 위기 발생 후에 고객들의 해외 주식 거래가 급증하며 현지 개장시간대에 문의하는 고객들이 부쩍 늘었다. 이것이 지난 2008년 1월부터 이 팀이 야간 데스크 서비스, 즉 밤 근무를 시작한 이유다.
“자, 이쪽은 ‘블 과장’, 저쪽은 ‘로 대리’입니다.”
유진관 과장이 가리키는 곳을 쳐다보니 책상 위에 모니터가 여럿이다. 어떤 화면에는 각종 금융시장 정보가 빼곡히 들어차 있고, 또 다른 화면에는 HTS가 띄워져 있다. 책상마다 모니터가 4~5개씩 올라가 있는 것이, 주식·외환 딜러들의 책상 위 모습과 비슷한 풍경이다.
‘블 과장, 로 대리’를 아시나요
유 과장이 소개한 ‘블 과장’과 ‘로 대리’는 사람이 아니라, 해외 금융정보를 보여주는 단말기다. 블 과장은 해외 금융정보제공업체인 블룸버그의 단말기, 로 대리는 로이터의 단말기다. 두 서비스의 한 달 이용료가 각각 과장·대리의 월급과 맞먹어서 그런 애칭으로 부른단다.
“얼마 전에 우리 팀 멤버들이 힘을 모아 미국과 홍콩 주식에 대한 투자 가이드 책자를 만들었거든요. 우량고객 대상으로 1000부를 만들어서 배포했는데, 반응이 좋습니다.”
국내 증시에 상장된 종목들은 관련 분석 자료들이 많지만 해외 주식들의 경우 한글로 작성된 자료를 구하기가 매우 어렵다. 당장 ‘블 과장’과 ‘로 대리’의 존재만 봐도 관련 정보를 얻는 데 드는 비용도 만만치 않은 게 현실이다. 그래서인지 유 과장은 사내 리서치센터의 도움 없이 해외주식팀 멤버들의 힘만으로 이런 자료를 만들었다는 것이 매우 뿌듯한 표정이었다.
해외 주식 가운데서도 유독 미국 시장의 인기가 높은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주가 등락의 제한선이 없다는 점이다.
“우리 증시는 최고 15%, 최저 -15%로 상한가와 하한가가 있지만, 미국은 상·하한가 제한이 없는 시장입니다. 한때 파산 위험이 제기됐던 AIG는 저점 대비 100% 이상 올랐던 적도 있어요. 우리 투자자들이 이런 부분에 흥분을 많이 하시는 것 같아요.”
등락폭의 한계가 없다 보니 미국 주식은 우리나라 주식보다 상승률도 훨씬 좋은 편이다. 비슷한 업종의 대표주들을 비교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자동차 업체인 우리나라 현대차와 미국 포드의 주가를 예로 들어 보자. 두 회사는 모두 2008년 후반에 바닥을 찍고 지금까지 꾸준히 상승 흐름을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현대차는 금융 위기 여파로 인해 2008년 11월 말 3만5750원에 최저점을 기록한 후 반등, 올해 6월15일 현재 14만7000원까지 치솟았다. 저점 대비 상승률은 5배가 약간 안 된다. 하지만 포드는 2008년 11월 말에 최저 1.02달러로 저점을 찍고 상승세로 전환, 올해 4월 말에 14.57달러까지 올랐다. 고점의 주가가 저점과 비교해 무려 14배 넘게 오른 것이다. 현대차 대비 더 짧은 기간에 더 높은 상승률이다.
미 증시, 등락폭 제한 없어 인기
유 과장은 “고객들 중에는 씨티그룹과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주식으로 높은 수익을 거둔 이들이 많았다”고 전했다.
“2008년 하반기부터 2009년 초까지 씨티그룹이 1달러 이하로 떨어졌을 때 관심 갖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1달러 이하면 담배 한 갑(보통 2500원)보다 훨씬 싼 값이니까요. 그때 1억원어치나 되는 큰 주문을 넣은 과감한 고객도 있었죠. 당시에 한국씨티은행 직원들도 씨티그룹 주식을 꽤 샀어요.”
위기의 한 가운데 있었던 AIG 직원들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점심시간에 직접 신한금융투자 해외주식팀 사무실로 찾아와서 샌드위치로 점심식사를 때우며 상담을 하고는 AIG 주식을 매수하고 돌아간 일이 있었단다. 언론에서는 미국의 금융기업들이 휘청거린다고 호들갑을 떨었지만, 정작 그 회사의 내부 사정을 알고 있던 직원들은 오히려 자사 주식을 싸게 살 수 있는 기회로 여겨 높은 수익을 거둔 것이다.
“금융 위기가 한창이던 그 당시에는 하루에 야간 데스크로 걸려오는 전화만 100~200여 통이었는데요, 그때가 고객들에게 가장 많은 전화를 받았던 시기였지요.”
이 회사의 해외 주식 거래대금은 금융 위기의 한복판에 있었던 2008년 4분기에 1274억원, 2009년 1분기에는 2125억원을 기록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올해 1분기 거래대금은 3729억원으로, 꾸준히 상승하는 추세다. 유 과장은 “2009년 1분기부터 기관의 해외 주식 거래가 확대된 것을 감안하면, 개인 투자자들이 일군 2008년 4분기의 거래대금 1274억원은 상당히 큰 수치”라고 풀이했다.
등락폭의 제한선이 없다보니 미국 주식시장은 우리 증시보다 변동성이 상대적으로 크다. 그래서 성과가 좋을 경우 수익도 크지만 반대의 경우 손해도 더하다. 실제로 투자원금의 10배 이상 수익을 올린 행운아 고객도 있었고, 원금의 80%나 잃은 운 없는 고객도 있었단다.
유 과장은 “변동성이 크기는 하지만 미국 증시는 오히려 우리 증시보다 투자자들이 예측하기에는 더 좋은 시장”이라고 평가했다. 경제지표나 기업 실적 등 주가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이 정직하게 잘 반영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최천성 주임은 “미국에서는 주간실업자수당 청구 건수, 소비자 신뢰지수, 신규 주택판매 건수 등 각종 경기지수를 오전에 주로 발표하는데, 그 수치를 보고 나서 증시 흐름을 예측한 뒤 거래에 나서는 고객들이 많은 편”이라고 말했다.
미국 증시는 또 장중에 출렁이는 경우도 드물다고 한다. 우리 증시가 장중에 북한 관련 위기 등 급작스런 이슈가 부각되며 급등락 하는 일이 적지 않은 것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안정된 흐름을 보이는 것이다.
해외 주식 거래는 개인뿐만 아니라 기관의 거래도 늘어나는 추세다. 올 1분기 거래대금의 약 60%는 기관 투자가의 거래량이라고 한다. 유 과장은 “올해부터 기관 고객들의 거래가 두드러지게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국민연금 등 기관이 해외 주식의 직접 매매를 늘리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해외 펀드들이 금융 위기 여파에 빠르게 대응하지 못하면서 수익률이 저조해지자 기관 투자가들이 아예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금융 위기로 주식시장이 급락했을 때 기관들의 직접 매매 주문이 상당히 들어왔다고 한다.
“단순 투자 목적 외에도, 한국에 들어와 있는 글로벌 기업에서 자기회사 관련 주식을 사기도 하고, 해외 업체와 거래한 국내 기업이 거래대금 대신 거래처 회사의 주식을 받은 경우에 그 주식을 처분하려고 계좌를 트기도 합니다. 그밖에 글로벌 기업의 한국법인 직원들이 우리사주 받은 걸 팔기 위해 계좌를 만드는 일도 있고요.”
유 과장은 “상장된 거래 종목들이 다양한 것도 미국 증시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미국 증시에는 미국 외 다른 나라의 주식들도 많이 상장되어 있어요. 미국 주식 투자로 전 세계의 주요 기업 주식을 살 수 있는 거죠. ETF(상장주식펀드)도 우리 증시보다 종류가 많죠. 요즘 인기 좋은 금 가격 연동 ETF 중에는 상승폭의 2~3배 수익을 낼 수 있도록 설계한 것도 있을 정도거든요.”
유 과장은 해외 주식 투자와 관련해 몇 가지 유의사항을 전했다.
“해외 주식 매매의 매력이 많긴 하지만 위험도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먼저 해외 주식 투자에는 환율 리스크와 수익에 대한 양도세 부담이 있습니다. 국가별로 우리 증시와의 제도 차이도 숙지해야 합니다. 해외 주식은 관련 정보에 접근할 때 언어장벽이 존재하고, 리서치 자료도 부족하죠. 미국 증시처럼 상·하한가 제한이 없는 시장에서 대박을 노리는 분들도 많은데요, 요행을 바라는 투자는 삼가 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