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장내고 선점하자” 당찬 목표설정
디지털도어록 전쟁에서 승리

서울 금천구 가산동에 있는 아이레보 사옥 복도의 벽은 낙서로 가득했다. 손님이나 고객, 신입사원들이 방문록처럼 벽에 낙서를 한다. 유명 은행장에서부터 기업인들의 낙서가 언뜻언뜻 보였다.
아이레보는 2003년 말 사옥을 장만하기 전에는 거의 매년 이사를 다녀야 했다. 하 사장은 사옥 마련 기념행사에서 임직원 및 초대 손님들과 함께 벽에 낙서하는 이벤트를 했다. 이렇게 시작된 낙서는 1층 계단 벽에서 5층까지 이어지며, 사장실 등 내부 벽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독특한 인테리어로 자리 잡았다. 하 사장은 “낙서를 보면서 이 회사는 다른 걸 추구하고 있구나. 그런 걸 첫인상에서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디지털도어록 시장 창출
‘게이트맨’ 시리즈로 디지털도어록을 대중화시킨 아이레보의 핵심기술인 ‘플로팅 ID(Floating ID)’는 우연한 계기로 개발됐다. 하재홍 사장이 대우전자 중앙연구소에서 소프트웨어 개발 엔지니어로 근무하던 시절이다.
“어느 날 ‘복제한 열쇠로 서울 강남의 고급 사우나를 돌며 훔친 5억여원으로 세 자녀를 유학까지 보낸 50대 여성이 잡혔다’는 기사를 읽었어요. 열 때마다 암호가 바뀌는 자물통을 만들면 열쇠를 복제해도 문제될 것이 없겠다는 생각이 번뜩 떠올랐죠.”
아이디어는 기술 개발로 이어졌다. 플로팅 ID기술은 열쇠를 사용할 때마다 비밀번호가 자동으로 변하는 디지털 보안 시스템이다. 천문학적 조합으로 생성되는 비밀번호는 로또 복권 1등에 연속 3번 당첨될 확률의 2000배가 넘을 정도다. 복제가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현재 이 기술은 한국, 미국, 중국, 대만 등 4개 나라에 특허 출원돼 있다.
회사 숙직실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연구에 매진해 개발한 그 기술은 세상에 나오지 못했다.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이유에서였다. 당시만 해도 디지털 방식의 도어록은 생소함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마침 숨 막히는 조직 생활에 염증을 느꼈던 그는 사장됐던 플로팅 ID기술로 사업화에 나섰다. 그는 1997년 아이레보의 전신인 ‘파아란테크’를 창업했다. 파아란테크는 2001년 아이레보로 이름이 바뀌었다.
무형의 기술을 유형의 상품으로 만드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처음 시작한 사업은 MP3라디오와 플로팅 ID를 응용한 ‘온라인 인감도장’이었다. 하지만 5000개를 생산했던 MP3라디오는 단 7개가 팔렸고, ‘온라인 인감도장’은 아무 반응이 없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외환위기가 닥쳤다.

회사가 어려워지니 어떤 일이 있어도 집에는 손대지 않겠다는 아내와의 굳은 약속을 깰 수밖에 없었다. 집을 담보로 위기를 넘긴 후 플로팅 ID 기술을 도어록에 접목해 디지털도어록을 만들어 냈다. 바로 ‘게이트맨 1’이다. 처음 만들어진 게이트맨 1은 사람들의 눈길은 끌었으나 정작 판매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대박을 칠 줄 알았죠. 그런데 한 달에 고작 800개 정도만 팔리는 거예요. 직원들 월급도 못 줄 정도였죠. 소비자를 고려하지 않고, 엔지니어의 눈으로 제품을 기획하고, 만든 것이 실패의 원인이었어요.”
이러한 게이트맨 1의 초라한 성적은 향후 아이레보 급성장의 발판이 됐다. 그는 디지털도어록이 우리나라의 출입문화를 바꿀 것이라는 생각에 연구를 계속했다. 낮에는 회사에서 연구에 매진하고, 밤에는 소프트웨어 개발 용역으로 회사 운영 자금을 벌었다.
회사 경영은 부사장에게 맡기고, 그는 제품 개발에만 몰두했다. 첫 번째 제품의 실패 요인을 곱씹으며, 철저히 소비자 마인드로 접근했다. 2001년 초 게이트맨 2를 출시하자, 드디어 시장에서 반응이 왔다. 자동 잠금, 원 터치 반도체 칩 키, 슬라이딩 커버, 작동할 때 켜지는 푸르스름한 LED 불빛 등 지금은 기본이 된 기능이 적용됐다. 여기에 유려한 디자인까지 더해져 게이트맨 2는 디지털도어록을 소비자에게 각인시키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디지털도어록의 교과서적인 제품이 됐다.
2002년에는 리모컨 기능이 추가된 게이트맨 3를 내놓으면서 국내 시장을 확실하게 석권했다. 게이트맨 2의 미비한 점을 보완하면서 디자인을 더욱 발전시킨 이 제품은 아직도 핸들 일체형 디지털도어록 중 최고의 베스트셀러다.
아이레보는 2003년 게이트맨 로즈 출시를 통해 도어록의 또 다른 패러다임을 이끌어 냈다. 슬라이딩 휴대전화를 연상시키는 산뜻한 디자인과 파격적인 장밋빛 컬러로 디지털도어록에 컬러 바람을 일으켰다. 게이트맨 로즈는 게이트맨 시리즈 중 단일품목으로 가장 많이 팔린 제품이다.
그 결과 2001년 69억원에 불과했던 매출은 2002년 200억원을 돌파했으며, 2003년 361억원, 2004년 407억원, 2005년 456억원 등으로 매년 고성장을 지속했다. 그 결과 2004년에는 국내 고속성장기업 24위, 아·태지역 고속성장기업(Deloitte Technology Fast 500 AP) 81위를 기록했고 2003년에는 코스닥에 상장했다.
전기 충격기 오작동으로 시련
승승장구하던 아이레보에도 시련은 있었다. 2006년의 전기충격기 파문이 바로 그것. 디지털도어록에 일순간 강한 전류를 흘리면 문이 열리거나 아예 작동하지 않는 오류가 발생한 것이다. 일부 업체의 제품에서 발생한 문제였지만 디지털도어록의 대명사인 게이트맨으로서는 업계에 쏟아지는 비난을 한 몸에 받을 수밖에 없었다.
하 사장은 이를 피하기보단 정면으로 대응했다. 희박한 확률이지만 전기 충격으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많은 비용을 감수하면서 그 동안 판매된 모든 제품에 대해 무상AS를 실시했다.
하 대표는 이후 재발 방지를 위해 KDMA(한국 디지털도어록 제조사 협회) 설립을 주도해 자율규제의 발판을 마련하는 한편, 정부에 디지털도어록에 관한 규격 제정을 요청해 기준도 만들었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디지털도어록의 안전기준은 이전에 비해 한층 강화됐다.

이후에도 시련은 끊이질 않았다. 디지털도어록 시장이 성장하면서 후발주자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기 시작했다. 특히 자본력과 브랜드를 앞세운 대기업 계열사가 저가공세를 펼치면서 아이레보도 비상이 걸렸다. 저가경쟁으로 인해 제품을 많이 팔아도 이익은 오히려 계속 줄어들었다. 2006년부터 내리 3년 동안 영업이익은 마이너스였다.
하 대표는 이 위기를 제품과 품질의 혁신으로 돌파하고자 했다. 디지털도어록의 번호 입력을 터치방식으로 바꾸고, 도어록의 각종 작동 상황을 터치패드의 불빛으로 보여주는 스마트패드 기능을 선보였다. 또 신뢰성 시험을 기존 대비 400% 높였으며, 보안수준에 따라 제품을 선택할 수 있도록 디지털도어록 등급제를 실시했다.
해외 시장에서 미래 성장 동력 찾아
이러한 혁신을 통해 영업이익은 지난해 흑자로 돌아섰다. 하 사장은 2012년까지 매출 1000억원과 현재 10% 정도인 해외 비중을 절반 이상으로 끌어 올린다는 계획이다.
그의 올해 경영 목표는 ‘끝장내고 선점하자’라는 다소 과격한 구호다. 국내 시장에서 끝장을 보고 해외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뜻이다. 디지털도어록 분야에서는 누구도 넘볼 수 없는 확실한 강자로 올라서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디지털도어록 시장에서 경쟁자들과 수많은 전투를 치렀어요. 전투에서 승리했지만 피투성이가 됐어요. 그래서 전투에서 승리하는 경쟁 우위보다는 아예 전쟁을 끝낼 수 있는 절대적인 우위를 확보하려고 합니다.”
하 사장은 아이레보의 미래 성장 동력을 해외 시장에서 찾고 있다. 아이레보는 디지털도어록이라는 독창적인 아이템을 무기로 사업 초기인 2001년부터 중국 진출을 시작으로 해외 시장을 공략해 왔다. 게이트맨의 중국 진출은 2001년 베이징, 2002년 상하이 현지법인 설립으로 본격화됐다. 2004년에는 중국 메이저 건설사가 신축하는 하얼빈과 난징의 아파트 3만2000세대에 공급계약을 맺어 납품했다. 메이저 건설사로부터 품질과 A/S를 인정받아 중국 시장에 안착하게 된 것. 새롭고 화려한 것을 좋아하는 중국인들의 특성에 맞춰 디지털도어록에 금색코팅을 해 화려함을 강조하는 등 현지화에 주력했다.
일본에서는 주요 건축자재 회사를 통해 2005년부터 일본 전역에 판매하고 있다. 또 2005년에는 한국의 벤처를 배우고자 방한한 일본 산업시찰단이 아이레보를 방문해 디지털도어록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2007년을 기점으로 유럽, 미국 등의 진출을 위한 교두보를 확보해나가고 있다. 수출 실적도 매년 늘어나 2003년 51만달러에서 2007년 270만달러, 2009년 600만달러로 10배 이상 늘어났다.
최근에는 부동산 건설 붐이 불고 있는 동남아 시장에도 활발하게 진출하고 있다. 2007년 싱가포르의 70층 높이의 럭셔리 레지던스 빌딩 ‘더 사일(the Sail)’ 1111세대에 디지털도어록을 공급한 것을 비롯, 2008년에는 두바이, 홍콩, 말레이시아 등지에 디지털도어록을 선보이면서 각종 보안전시회 및 홈오토메이션 전시회에서 호평을 받았다. 특히 2008년 참가한 두바이 보안전시회에서는 ‘보안제품의 미래(The Future of Security)’로 소개돼 각광받았다. 2009년에는 중국 시장을 겨냥한 맞춤형 제품을 현지에서 생산해 공급할 계획이며 호주, 북미, EU 등 구매수요가 높은 선진국 시장에 진출할 예정이다.
“국내는 포화상태지만 해외는 디지털도어록이 아직 보편화되지 않았어요. 시장 잠재력은 엄청납니다. 각 해외 시장별로 현지화한 제품의 개발을 완료했거나, 개발이 진행 중입니다. 디지털도어록하면 아이레보가 떠오를 수 있도록 할 겁니다.”
아이레보가 디지털도어록 시장을 석권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기술력이 기반이 됐기 때문이다. 아이레보는 자체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해마다 매출액 대비 5% 이상의 연구 개발비를 투자해 디지털도어록 관련 다양한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세계 최초로 스캔 방식의 지문인식기술을 채택해 잔류지문, 에러율을 획기적으로 개선했다. 또 매뉴얼 없이도 도어록의 다양한 동작 상태와 기능 설정 방법을 음성으로 안내해 주는 음성안내기능, 도어록의 모든 작동 상황을 눈으로 볼 수 있는 스마트패드 기능과 터치패드에 지문이 남아 비밀번호가 노출되는 것을 방지하는 손바닥터치기능, 주변에 사람이 있을 때 비밀번호를 숨기기 위한 엿보기방지기능 등은 아이레보만의 차별화된 기술이다.
연구 개발에 주력 신기술 개발 앞장
최근에는 2㎜ 정도의 작은 구멍을 뚫고 철사를 이용해 손쉽게 버튼을 눌러 문을 열거나, 노루발못뽑이(일명 빠루)를 이용해 문을 통째로 부수는 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기술도 개발했다.
이러한 독보적인 디지털도어록 기술은 국내는 물론 해외 50여 개국에 수출돼 그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다. 플로팅 ID 외에 미국, 일본, 대만, 중국, 한국 등에 등록한 특허만 150여 건에 달한다. 110여 명의 임직원 중에 35명이 연구 인력일 정도로 연구 개발에 주력한 결과다.
독자적인 브랜드 구축도 성공요인으로 꼽힌다. 기존 디지털도어록 업체들은 소비자 판매보다는 건설사를 대상으로 대량 납품하는 OEM생산방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이레보는 ‘게이트맨’의 브랜드 파워를 키우는 데 집중했다. 브랜드를 포기하지 않기 위해 대형 건설사의 OEM 수주마저도 마다했다.
또 기존 유통구조를 과감히 탈피해 홈쇼핑, 인터넷을 통한 판매를 확대했다. 이를 통해 디지털도어록을 잘 모르던 소비자들에게 디지털도어록이 왜 필요한지 알렸다. 또 광고, PR, 프로모션 등 매스미디어를 통해 전문 브랜드로 자리매김하는 데 주력했다. 업계 최초로 24시간 365일 1시간 이내 출장 서비스를 제공했다. 문을 열고 닫는 것은 꼭 해야 할 일이지 경우에 따라서 해도 되고 하지 않아도 되는 선택사항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디지털도어록을 떠올릴 때 소비자 2명 중 1명은 게이트맨 브랜드를 떠올리는 것으로 조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