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으로 하나 된 젊은 사원들, 사내 인기 '독차지'

삼성전자의 연구개발시설이 밀집한 수원사업장. 이곳 피트니스센터에선 매주 월·화요일 저녁 여덟 시면 힙합음악이 울려 퍼진다. 쿵! 쿵! 심장박동을 닮은 리듬이 쏟아질 때마다 운동하던 사람들도 어깨를 들썩인다.
음악이 흘러나오는 곳은 센터 한편의 요가실. ‘삼성전자 수원 힙합동호회’ 회원들의 댄스 강습이 한창이다. 전용연습실이 공사 중이라 당분간 장소를 빌려 쓰고 있다. 쇼윈도 밖으로 구경하는 사람들의 시선이 신경 쓰일 법도 하지만 회원들의 표정은 진지하기만 하다. 강사의 구령에 맞춰 팔을 뻗고 스텝을 바꾸는 동작에 박력이 넘친다. 구슬땀에 옷이 흠뻑 젖어도 지칠 줄을 모른다.
강사는 국내 정상급 댄스팀 ‘프리픽스’의 멤버 이일형씨(25)다. 프로가 봐도 회원들의 의욕만큼은 직업 안무가 못지않은가 보다. “취미생활이라 해도 가끔 즐기다 마는 수준이 아닙니다. 다들 너무 열심이라 가르치는 제가 신이 날 정도죠.”
수원사업장은 시내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삼성전자의 미래를 책임지는 곳이라 보안마저 철통이다. 삭막한 인상의 연구단지에 ‘젊음의 노래’ 힙합이 흐르기 시작한 것은 2006년. 이강훈씨(28) 등 힙합댄스 애호가들이 뭉치기 시작하면서다. “신입사원 시절 한동안 일만 배우느라 정신이 없었죠. 회사생활을 좀 더 재미있게 해보려고 고민하다 취미가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게 됐어요. 막상 사내 커뮤니티에서 회원을 모집하니까 춤을 즐기거나 배우려는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20대 젊은 사원들이 주축, 사내에서 인기 ‘짱’
수원사업장엔 다양한 동호회들이 활동 중이다. 사내 오케스트라, 연극반, 미술모임, 심지어 격투기의 일종인 브라질유술회도 있다. 힙합동호회의 회원은 260명. 사업장에서도 ‘톱’ 수준이다. 게다가 매주 3~4명의 신입회원들이 새로 들어온다. 트레이닝복과 실내화만 있으면 돈 들이지 않고 배울 수 있는 데다 강사도 국내 최고 수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강습을 포함한 모든 모임이 북적이는 것은 아니다. “근무 일정도 개인 사정도 제각각이라 어쩔 수 없죠. 그래도 회원들이 힙합, 걸스힙합, 팝핀, 하우스 등 장르별로 팀을 꾸려 연습하는 것을 보면 ‘춤사랑’ 만큼은 대단하죠.” 회장인 조아라씨(27)의 설명이다.
힙합동호회의 댄스팀들은 사내에선 인기스타 대접이다. 크고 작은 사내 행사에서 공연 요청이 쇄도한다. 일례로 매년 신입사원들의 하계수련회를 따라간다. 회사 기대주들의 사기도 높이고 차기회원도 확보할 겸이다. 부서별 정기 단합대회서도 흥을 돋운다. “수원사업장의 연례행사인 ‘한가족 축제’나 어린이날 공연을 앞두면 새벽까지 연습할 때가 많아요. 그래도 힘들다는 말은 안 나오죠. 모두들 좋아서 하는 일인 데다 주축이 20대라 아직 팔팔하거든요.” 걸스힙합팀 정영현씨(28)의 말이다.
동호회 자체 행사도 성대하다. 매년 두 차례씩 여는 발표회엔 평소 연락이 뜸했던 회원들뿐 아니라 가족과 지인들까지 찾아온다. 지난 5월엔 삼성전자의 반도체 생산기지인 기흥사업장의 댄스동호회와 연합발표회를 가졌다. 300여 명의 방문객이 몰려와 발표장이었던 수원청소년센터를 꽉 채웠다는 후문이다. 관객들을 만족시키려면 평소 부지런히 연습해둬야 한다. 정기 강습에서 기본기부터 착실하게 익혀도 1~2개월이면 웬만한 리듬엔 몸을 맞출 수 있다. 그러나 열혈회원들은 그 정도론 성이 차지 않는다. 부회장 ‘하우스 보이’ 정홍주씨(30)의 설명이다. “주말에도 바빠요. 전문 댄스팀들의 경연대회나 클럽을 찾아가 ‘춤꾼’들의 기술을 배워요. 마음이 맞는 직장 동료들과 어울리는 거라 지루하지도 않습니다. 친구 이상으로 가까워서 회사가 준 가장 큰 선물이나 다름없죠.”
춤추러 가는 날이면 능률도 ‘쑥쑥’
힙합동호회에 20대 사원들만 활동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30대 차장급부터 40대 부장급까지 골고루 포진해 있다. 다만 회사 중진들이라 좀처럼 동호회 활동에 참가할 시간을 내지 못할 뿐이다. 직장에선 상사지만 동호회에선 ‘형, 오빠’로 불릴 만큼 대하기도 편하다. 회원들이 소녀시대, 티아라 등 인기 걸그룹들의 안무를 배울 때면 야근 중에도 달려온단다. 조아라씨의 말이다. “전자 업체 연구소라면 딱딱한 사람들만 있을 것 같죠? 오히려 재기발랄한 사람들이 넘쳐요.”
밤 열 시가 넘어 강습이 끝났다. 물론 여기서 바로 헤어지는 것은 아니다. 맥주 서너 잔은 나누는 게 보통이란다. 최미경씨(27)는 “두 시간 내내 땀 흘리면서도 한잔 마시러 가느라 살은 항상 그대로”라면서도 “그래야 정도 깊어지니 어쩔 수 없다”며 웃는다. 이대로라면 귀가시간이 열두 시를 훌쩍 넘길 테지만 그래도 다음날 출근하면 몸은 가볍단다.
“남들은 월요일과 화요일을 가장 싫어한다지만 전 반대예요. 그 날이 가장 즐겁거든요. 작업을 빨리 마무리하고 춤추러 가야한다는 생각이 들면 속도도 능률도 급속도로 향상될 정도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