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문제는 경제적 선택의 결과…
“국가가 나서야 해결된다”
한국 사회의 가족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 출산율 저하와 이혼율 증가가 심화되고 결혼 연령도 높아져 만혼화가 진행되고 있다. 늘어나는 사교육비는 신문지상을 오르내리는 단골 메뉴 중의 하나며, 지난 6월 지자체 선거의 쟁점 사항 중 하나였다.
1992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게리 베커(왼쪽 사진)는 오늘날 한국 사회가 당면한 가족 문제에 대한 경제학적 설명과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베커는 ‘경제학계의 이단아’라 불릴 정도로 독특한 학문 세계를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 연구영역이 남다르다. 민주주의, 인종, 성, 차별, 가족, 결혼과 이혼, 교육 투자 등 당시로선 경제학의 대상으로 취급되지 않던 분야가 그의 관심사였다. 이 때문에 ‘경제학 제국주의(Economics Imperialism)’의 표본이라는 조소를 들어야 했다. 노벨상위원회조차 그의 연구결과에 대해 여전히 많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표현한 문제적인 경제학자, 게리 베커는 그런 연구자다.
그러나 사회현상에 대한 그의 경제학적 설명력은 시간이 갈수록 더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특히 많은 조소와 비난을 받으면서도 독창적 연구업적으로 인정받는 분야인 가족에 대한 이론이 그렇다. 베커의 ‘신 가족경제학’은 한국이 당면한 가족 문제에 많은 현실적 설명력과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저출산은 소득 수준 향상의 귀결
1970~1975년 한국의 출산율은 4.01명으로 2.17명이던 선진국의 두 배에 가까웠다. 그러나 2005~2010년엔 1.13명으로 선진국의 1.64명에 비해 오히려 0.5명 정도 낮다. 한편, 가계의 교육비 지출은 매년 크게 늘어 지난해에는 사상 처음으로 40조원을 돌파했다. 이는 2000년에 비해 두 배 이상 늘어난 것이며, 가계당 연간 250만원을 지출한 셈이 된다. 주목할 것은 이 수치는 평균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지역별로 서울과 같은 대도시의 사교육비 지출로 인한 가계의 부담은 이보다 훨씬 클 것이다.
그렇다면 베커는 한국의 저출산율과 늘어나는 교육비의 지출 문제를 어떻게 바라볼까. 베커는 모든 인간은 비용과 편익의 관점에서 행동하며, 가족 내에서 벌어지는 행위들 역시 경제적 계산의 결과라고 본다. 그에게 가족은 재화와 시간을 사용해서 음식, 주택, 자녀, 건강 등 생존에 필요한 기본재를 생산하는 공장과도 같다. 자녀는 가족이라는 공장에서 생산되는 기본재의 하나이기 때문에 자녀를 얼마나 가질 것인가, 자녀에게 얼마를 투자할 것인가의 문제는 철저히 비용과 편익의 차원에서 분석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마치 소비자가 자신의 예산 범위 안에서 편익과 비용을 생각하며 제품을 구매하듯, 부모도 비슷한 과정을 통해 자녀의 수와 교육 투자액 등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베커에 따르면 소득에 따라 자녀에 대한 부모들의 행태는 달라진다. 특히 자녀의 질은 자녀의 수보다 소득 수준 향상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소득 탄력성이 높기 때문에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 부모들은 자녀를 더 낳기보다 교육비 등 자녀에 대한 투자를 늘린다는 설명이다. 결론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 출산율은 줄고 자녀 교육에 대한 투자는 증가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게 베커의 주장이다.
한국의 경우 소득과 의료의 수준이 낮은 과거엔 영아 및 유아 사망률이 높았다. 당시 다출산은 일종의 보험과도 같은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의료 수준이 향상되면서 다출산에 따른 비용이 많아졌고 소득 수준이 향상되면서 자녀에 대한 교육 투자가 늘어났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고학력자의 경쟁력이 높고, 학력에 대한 경쟁이 심한 사회에선 교육에 대한 투자 비중의 상승은 급격할 수밖에 없다. 고학력자가 취업하는 직종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취업하는 직종 간의 경제적 보수 차이, 다시 말해 교육 투자에 대한 수익률의 차가 크기 때문이다. 출산율이 급격히 하락한다는 것, 그것은 자녀의 교육 투자액이 급격히 높아진다는 것과 궤를 같이 하는 현상이다.
출산율의 하락은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증가하는 것과도 관련이 깊다. 사회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여성의 경제력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졌다. 반면 출산은 여성의 사회활동과 경제력의 포기를 강요하는 측면이 적잖다. 즉 과거에 비해 출산에 따라 여성이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 커진 것이다. 일하는 여성들에겐 출산은 값비싼 사치가 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여성의 사회 진출과 변화하는 ‘결혼 시장’
베커는 저출산 문제뿐만 아니라 결혼과 이혼 문제도 비용과 편익이라는 경제학적 시각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본다. 1980년 5.9%, 1990년 11.4% 수준으로 선진국의 약 5분의 1 수준에 불과했던 한국의 결혼 대비 이혼율은 현재 OECD회원국 중에서 상위를 달리고 있다. 짧은 시간 동안에 상황이 180도 바뀐 것이다.
베커는 결혼을 하나의 ‘시장’이라 가정한다. 사람들은 결혼 시장을 통해 결혼이 주는 편익과 비용을 계산하여 결혼 여부를 선택한다. 이성에 대한 선택도 다를 바 없다. 이혼도 같은 문제다. 이혼이 가져다 줄 편익과 그에 따른 비용이 사람들의 이혼 행위를 결정한다. 이혼율의 증가는 이혼이 주는 편익 증가나 비용 감소의 결과라는 게 베커의 결론이다.
과거 한국의 여성은 엄격한 가부장적 전통사회에서 남성의 경제력에 종속되어 있었다. 그러면서 남편에 대한 내조, 양육, 시부모 부양 등의 의무를 지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이 이혼을 하면 의무에서 해방되는 편익이 있을 수 있겠으나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경제력을 상실한다. 이혼은 그 만큼 비싼 행위였다. 이 때문에 과거 여성들은 갖은 고초를 참으면서 결혼생활을 유지하려는 동기가 강했다.
그러나 소득 수준의 향상과 여성의 사회 진출 증가로 인한 여성의 경제적 지위 향상은 다른 상황을 만들고 있다. 사실 소득 수준의 향상과 여성의 사회 진출 증가는 정의 상관관계를 갖는다. 소득의 증가는 출산율의 저하와 교육 투자의 증가를 가져오며, 이는 여성 학력 수준의 상승과 그에 따른 사회 진출의 증가로 이어진다. 이는 여성이 과거처럼 불행한 결혼생활을 참으면서 가족생활을 영위하려는 동기가 줄어든다는 걸 의미한다. 가족생활의 포기로 지불해야 하는 제반 비용이 본인들의 경제력 향상으로 현격히 감소했기 때문이다. 이는 기존의 비용-편익구조에서 비용이 하락했음을 의미한다. 이혼에 따른 비용의 감소는 결국 이혼율의 증가를 수반한다.
가변비용 지원으로 출산 독려 바람직
한국처럼 저출산이 사회 문제화한 일본은 이미 오래전부터 출산장려금을 일시금으로 지급해오고 있다. 한국의 일부 지자체에서도 출산장려금을 지급한다. 그러나 정책효과는 매우 미미하다. 이유가 뭘까.
경제학에선 ‘수요를 억제하기 위해서는 고정비용을 가변비용화하라’는 말이 있다. 이를 역으로 풀어보면, 수요를 장려하기 위해서는 고정비용보다 가변비용에 대한 보조를 해주어야 한다는 의미가 된다. 이것이 일시적 출산장려금이 효과가 적은 이유다. 가정에선 일시적인 금전적 편익보단 향후 지불해야 할 비용을 생각해 출산 여부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자녀를 키우는 데에 따른 가변비용, 즉 양육과 교육에 따른 비용에 대한 보조에서 찾을 필요가 있다. 여성이 양육과 교육 때문에 자신의 경제력을 포기할 의사가 없다면, 다시 말해 결혼과 출산을 기피한다면 국가는 이에 대한 보완책을 마련해줘야 한다. 이것이 보육환경 개선, 공교육의 건실화를 위한 교육복지예산을 확충해야 하는 이유다. 어쩌면 한국의 출산율이 급락하는 것은 열악한 보육환경, 공교육의 부실이 초래한 결과일지 모른다.
물론 한국 사회의 고학력 경쟁과 가정의 열성적인 교육열이 베커가 말하는 훌륭한 ‘인적자본(human capital)’의 축적을 가져온 하나의 요인이 되었음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인적자본이라는 용어를 그가 주장했을 때, ‘인간 소떼(human cattle)’라 불러야 한다며 조롱을 당하기도 했지만, 이는 엄연한 경제학의 표준용어로 자리 잡았으며, 부인할 수 없는 경제 성장과 국가 경쟁력의 초석으로 인정되고 있다. 그러나 가계의 지나친 사교육비 지출을 통한 인적자본의 양성은 더 급격한 출생률의 감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는 장차 우리나라의 경제 활력의 감소를 가져올 경제 성장의 장애 요소이자, 연금제도를 통한 세대 간 갈등으로 이어질 위험 요소임을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