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단 SK와이번스가 화제를 모으고 있다. 올 시즌 1위를 달리고 있어서? 그게 전부가 아니다. 프로스포츠구단, 스포츠마케팅 전문가 그리고 기업인들까지도 SK와이번스의 참신한 마케팅에 주목하고 있다. 현대증권의 최경수 사장은 지난 6월1일 회사 창립 48주년 기념식 자리에서 임직원들에게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며 SK와이번스의 스포테인먼트 마케팅 사례를 언급했다. 기업인들마저 찬사를 보낸 SK와이번스의 마케팅을 들여다봤다.

심겹살 굽고 커플석도 마련했더니 관중도 수익도 '홈런'

 

야구장에는 야구만 보러 간다? 이런 편견은 이제 버릴 때가 됐다. 프로야구단 SK와이번스의 홈구장인 인천 문학구장에 가면 야구 말고도 볼거리, 놀거리가 즐비하기 때문이다. 

야구를 보면서 지인들과 삼겹살을 구워먹어도 되고(바비큐존), 커플이라면 2인용 커플석에서 오붓하게 야구를 볼 수도 있다(커플존). 잔디밭 관람석에서 가족·친구들과 돗자리 깔고 편히 앉거나 누워서 야구를 봐도 된다(그린존). 주말 경기 끝난 야구장에서는 불꽃놀이도 한다. 야구 경기가 끝난 후에 신나는 콘서트를 열 때도 있다. 법인이라면 VIP 고객에게 야구 관람 접대를 할 수 있는 스카이박스(발코니형 관람석)를 이용할 수 있다.

SK와이번스는 이외에도 세 시간쯤 걸리는 야구를 지루해할 아이들은 위해 야구장에 자그마한 놀이동산을 만들었고, 여성 관중을 위한 파우더룸(화장도 고치고, 쉴 수 있는 여성 전용 쉼터)도 설치했다.

이렇게 톡톡 튀는 마케팅을 시작한 후 SK와이번스는 관중 수와 입장료 수입이 급증하는 성과를 얻었다. 변화가 시작되기 직전인 지난 2006년 연간 33만1143명에 불과했던 관중은 2009년에 84만1270명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올해 예상 관중 수는 지금과 같은 추세를 이어간다면 150만 명도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입장료 수입도 2006년에는 8억6000만원에 그쳤지만 작년에는 37억4000만원으로 네 배 이상 불어났다. 팀 성적이 호조여서 더욱 빛이 난다. 지난 2007년과 2008년 한국시리즈 우승, 2009년에는 준우승을 했다. 올 시즌에도 7월21일 현재 60승을 거두며 1위를 달리고 있다.

2007년부터 스포테인먼트 마케팅 도입

SK와이번스가 원래부터 마케팅을 잘했던 것은 아니다. 2000년 창단 후 다른 프로구단들처럼 야구경기장 내 광고 유치, 치어리더 운영, 선수 유니폼 등 상품 판매, 단발성 이벤트 정도를 했을 뿐이었다. 이런 모습은 국내 스포츠 분야 관행으로는 조금도 이상한 게 아니었다. 

야구를 비롯한 국내 대부분의 프로스포츠구단들은 마케팅에 별로 관심이 없다. 경기 성적에만 관심을 둔다. 모기업이 기업 홍보차원에서 운영하는 식이어서 그렇다.

스포츠구단들은 연간 150억~200억원에 달하는 운영비를 모기업의 지원으로 충당한다. 만날 적자여도 때 되면 모기업에서 월급을 준다. 그러다 보니 생존에 대한 절실함이 없다. 관중을 늘려야겠다는 생각도 별로 안한다. 자연히 마케팅에 등한시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미국 양키즈 야구단 등 해외 스포츠구단들이 독자적으로 수익을 내며 사업체처럼 운영되는 것과는 천양지차다.

그러나 SK와이번스는 2007년을 기점으로 다른 구단들과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해 부임한 현 신영철 사장이 SK와이번스에 “우승보다 관중이 두 배 많은 것이 좋은 것”이라며 성적우선주의 관행을 바꿀 것을 주문한 것이다. 그는 SK그룹 홍보담당 임원을 지냈다. 

수십 년 관행대로 야구단 일을 해온 구단 사람들은 당황했다. 하지만 CEO의 주문이었다. 어떻게 하면 팬들을 불러 모을 수 있을 것인가. 구단 사람들은 머리를 싸맸다.

사람들은 재미있고 즐거운 것에 반응하게 마련이다. 방향은 분명했다. SK와이번스의 새로운 길은 ‘스포테인먼트’, 즉 스포츠와 엔터테인먼트의 결합이었다. 재미있고 볼거리 많은 스포츠구단을 운영하자는 것이다. 그렇다고 경기를 코믹하게 할 수는 없는 일. 방향은 색다른 마케팅으로 모아졌다.

2007년 4월부터 토요일 홈경기가 있을 때마다 승부와 무관하게 경기 끝난 후 불꽃놀이를 시작했다. 장순일 SK와이번스 마케팅그룹장의 얘기다.

“처음 불꽃놀이를 한 날은 우리가 두 번 연속으로 졌을 때였죠. 패전 후의 불꽃놀이라, 기분이 묘했어요. 이길 때만 불꽃놀이를 하라는 팬들도 있었는데, 이미 성적지상주의를 버린 뒤라 계속하기로 했죠. 지금은 불꽃놀이 보러 문학구장에 온다는 사람들도 많아요.”

경기 후 수훈선수 인터뷰도 도입했다. 일본 구단들이 하는 것을 벤치마킹했다. 하지만 방식을 업그레이드했다. 선수를 관중석 코앞의 응원단상에 올려 보냈던 것이다.

“처음에는 선수들이 어색해했죠. 하지만 익숙해지니까 다들 즐기더라고요. 단상에 올라가면 팬들이 선수 이름을 연호하니까 선수들도 신나잖아요. 겁먹었던 인터뷰도 해보니 별거 아니고. 단상에 올라간 선수 중엔 노래하고 춤까지 추는 이도 있었죠. 팬들 반응도 상당히 좋았어요.”

놀이공원보다 신나는 야구장이란?

초창기 이런 시도를 통해 SK와이번스는 관중들이 어떤 것에 반응하는지 조금씩 깨우쳐 갔다.

이듬해인 2008년, 신영철 사장이 또 다른 화두를 던졌다. “우리의 경쟁상대가 누구라고 생각하느냐”고. 신 사장은 “다른 야구단이 아니라 CGV, 에버랜드가 우리의 경쟁상대”라고 했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장순일 그룹장의 설명을 들어보자.

“사람들이 야구장에 온다는 건 CGV(극장), 에버랜드(놀이공원), 가깝게는 동네 찜질방에 가는 것을 포기하고 오는 겁니다. 다른 야구장 대신 문학구장에 오는 게 아니라, 다른 여가활동 대신 문학구장에 온다, 그러니 문학구장이 다른 여가장소보다 더 재미있어야 한다, 이렇게 해석을 하신 거죠.”

경쟁상대를 명확히 잡고 나니 마케팅 방향과 방법이 조금 더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야구는 축구, 농구 등에 비해 경기 규칙이 어렵고 한 경기가 3시간쯤 걸릴 정도로 경기시간도 길다. 그러다 보니 다수의 대중적인 팬보다는 소수의 마니아 팬들이 많다. SK와이번스는 그래서 관중을 확 늘리려면 일반 대중, 가족 단위 팬층을 확보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야구경기가 가장 큰 상품이지만 가족 단위 팬들을 늘리려면 야구 문외한들은 물론 여성, 어린이들도 야구장을 찾게 만들어야 했다. 그러려면 앞서 해결할 사안이 있었다. 야구장에는 술에 취해 행패부리는 일부 관중들이 심심치 않게 나타나곤 했다. 가족 단위 팬들을 목표로 삼은 이상 여성, 어린이들에게 나쁜 광경은 곤란했다. 그래서 불쾌한 행동을 하는 관중들을 강하게 제지했다. 덕분에 문학구장에서는 이제 그런 무례한 관중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때까지 야구에는 고객 혹은 고객만족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팬들도 친절한 서비스, 구장 시설 등이 아니라 어느 팀끼리 맞붙는지를 보고 야구장에 왔다. 하지만 관중을 고객으로 설정하고 들여다봤더니 여기저기 빈 곳이 보이기 시작했다. 

먼저 어린이. 8살 어린이가 룰도 어려운 3시간짜리 야구를 보는 것은 힘든 일이다. 아이가 힘들면 부모도 안 올 것이었다. SK와이번스는 그래서 아이들이 지루하면 놀다 올 수 있도록 놀이공간을 만들었다. 꼬마기차도 돌아다니는 일명 ‘와이번스랜드’다.

청소년들의 경우, 학교와 학원 때문에 야구장에 올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하지만  초·중·고생들이 야구장에 오지 않으면 나중에 그들이 어른이 됐을 때는 야구가 사라질지도 모른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야구경기에 학생들을 공짜로 초청하는 ‘스쿨데이’다. 인천교육청의 협조를 얻어 평일 오후 6시 경기에 야간자율학습 없이 학생들을 야구장에 오게 하는 것이다. 입장료는 인천지역 기업이나 병원 등의 협찬으로 해결한다. (이와 비슷한 것으로 ‘구민의 날’ 구민 무료입장 행사도 한다.)

여성 고객을 위해서는 2009년 12월에 파우더룸을 만들었다. 여성팬들이 제안한 “잠깐 쉴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아이디어를 받아들였다.

기업체 단체관중도 유치한다. 1년 스케줄이 미리 나오는 야구의 특성을 살려 유치한 기업 임직원들이 단체로 오는 날에는 할인을 해줬다.

관중석에서 삼겹살을 굽는다면?

2008년, 스포테인먼트를 시작한 지 2년째 접어들면서 가족 단위 팬들이 많이 늘어났다. 주말 관중이 평균 2만 명으로 불어났다(문학구장 좌석 수는 총 2만8000석). 하지만 평일 오후 6시 경기의 관중 수는 8000명 선에 그쳤다. 평일 관중을 어떻게 늘릴 것인가? 마케터들은 다시 머리를 맞댔다.

‘학생들은 학교·학원에 있을 테고, 주부는 저녁식사 준비를 할 테고, 그럼 직장인들뿐인데. 이들이 퇴근 후 야구장에서 회식을 하게 만들면 어떨까? 그런데 야구장 좌석들은 경기장을 쳐다보게 배치되어 있잖아. 구조상 여럿이 대화를 하기 어려울 텐데?’

이쯤 되면 웬만한 사람들은 포기를 택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SK와이번스는 거꾸로 야구장 좌석들을 손봤다. 그렇게 2008년에 등장한 것이 야구를 보며 삼겹살을 구워먹는 바비큐존이었다. 관중들의 호평이 쏟아졌다. 이에 고무된 SK와이번스는 패밀리존, 커플존, 그린존(잔디밭 관람석), 스카이박스(발코니형 독립 관람석) 등을 추가하며 골라 앉는 재미를 더했다.

SK와이번스는 마케터들을 해외로 보내 야구 강국 미국과 일본의 프로스포츠 문화와 구단 운영 사례를 배우게 했다. 실행한 마케팅 사례 중에는 의외로 미국 마이너리그에서 영감을 얻은 아이디어가 적지 않단다. 바비큐존도 마이너리그 구장에서 고기 구워먹는 것을 보고 적용했다. 미국 메이저리그는 스타 선수들이 많아서 경기 중심으로 운영되지만, 경기력이 떨어지는 마이너리그 구단들은 관중들의 눈길을 끌기 위해 경기 외 재미 요소를 많이 넣는다고 한다.

작년까지 스포테인먼트로 좋은 성과를 낸 SK와이번스는 올해 업그레이드 버전인 ‘그린 스포테인먼트’를 실시하고 있다. ‘저탄소 녹색성장’이라는 사회적 트렌드를 반영한 것이다.

관중석 위에 태양열 집열판을 두고 전기를 생산하고, 야구장 내 조명도 친환경 LED로 바꿨다. 이동수단도 전기자동차와 자전거를 사용한다. 선수 유니폼도 재활용 소재로 만들었다. 화학소재인 페트병 6개면 유니폼 상의 하나가 나온다. 착용감도 좋단다. 재활용 페트병은 모두 야구장에서 수거한다. 1년 동안 수거한 폐페트병을 팔면 연간 500만~600만원의 수입이 된다.

그린 스포테인먼트 프로그램에 들어가는 비용도 자체적으로 해결했다. 에너지관리공단과 협약을 맺고 에너지관리공단에서 저탄소 녹색 활동을 위한 예산을 3년간 55억원 지원받기로 한 상태다. 내년에는 태양열 집열기를 들여와 바비큐존 관중들은 태양열로 고기를 구워먹을 수 있을 전망이다.

SK와이번스가 내년에 보여줄 스포테인먼트는 어떤 모습이 될까? 장순일 그룹장의 힌트다.

“스마트폰 문화가 확산되고 있어서 내년에는 야구와 IT의 접목을 해보려 합니다. 스마트폰으로 경기 도중 경기와 선수 기록 등을 바로 볼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도 만들었죠. 구장에 와이파이망도 다 깔았어요. IT 활용으로 새로운 수익모델이 나올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