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량 기업 파산 부채질 우려, 국제적 규제 보완 절실

세상이 바뀌었다. 글로벌 금융 위기를 겪으면서 시장의 게임, 경제학 지식, 심지어 자본주의 체제마저도 도전을 받고 있다. 특히 금융 위기를 통해 일반에게 알려진 CDS(Credit Default Swap)는 금융시장의 게임 구조를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바꿔버리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CDS는 채권에 대한 사실상의 보험이다. 채권을 발행한 회사가 이자나 원금을 갚지 못하는 것과 같은 신용 사건(credit event)이 발생할 경우 CDS를 매도한 기관(보장매도자)이 CDS를 매입한 기관(보장매입자)에게 그 신용 사건으로 인한 손실액을 보전해 주기로 약정한다. 그 대신 보장매입자는 보장매도자에게 주기적으로 프리미엄, 즉 사실상의 보험료를 지불한다. 어떤 금융기관이 다른 회사가 발행한 채권을 매입하면서 그 채권에 대한 CDS를 매입해 둔다면, 그 회사가 원리금을 지불하지 못할 것을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CDS의 보장매도자가 손실액을 보전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CDS 매입은 채권 발행 회사의 부도 위험(default risk)에 대한 헤지거래로 볼 수 있다.

보험계약의 기본 원리의 하나로 피보험 이익(insurable interest)이란 개념이 있다. 피보험 이익이란 보험 목적물이 피해를 입었을 때 보험 가입자에게 직접적인 손실이 발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특정 건물에 대한 화재보험에 가입하려면 그 건물을 소유하고 있어야 한다. 피보험 이익이 없는 사람이 아무 건물이나 화재보험에 가입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면 방화의 인센티브가 생기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본인이나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에 대한 생명보험에 자유롭게 가입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면 살인사건이 늘어날 것이다.

그러나 일반 보험계약과 달리 특정 채권에 대한 CDS의 보장매입자는 해당 채권을 보유하고 있지 않아도 된다. 피보험 이익이 없어도 두 당사자가 자기들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아무 채권이나 정해서 CDS 계약을 맺을 수 있다. 이 경우 해당 채권의 디폴트 등 신용 사건이 발생하더라도 CDS의 보장매입자는 그 채권을 보유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아무런 손실을 입지 않는다. 그러나 CDS 보험의 가입자로서 보장매도자로부터 CDS 보험금을 챙길 수 있다. 이처럼 채권을 실제로 보유하지 않으면서 그 채권에 대한 CDS를 매입하는 것은 부도 위험에 대한 헤지가 아니라 채권 발행 회사의 부도 가능성에 대해 베팅하는 투기적 거래다. 결국 CDS 거래는 헤지 거래와 투기적 거래가 모두 가능한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CDS, 새로운 유형의 채권자

2009년 4월16일, 부동산 회사로서는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파산보호신청 사건이 발생했다. 45개 주에 걸쳐 200개 이상의 쇼핑몰을 보유 및 관리해 온 GGP(General Growth Properties, Inc.)가 270억달러에 달하는 채무를 진 채 파산보호신청을 한 것이다.

글로벌 금융 위기가 진행되면서 수많은 회사들이 무너졌기 때문에 GGP의 파산보호신청 자체는 그다지 특별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파산보호신청 전 채권자들의 행태가 상식과 많이 달랐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 회사는 만기가 도래하는 채권을 2008년 11월부터 상환하지 못하고 있었다. 위기를 맞은 GGP는 채권자들과의 협상을 통해 가능한 한 파산보호신청을 피하려고 노력했다.

파산보호신청에 들어가면 청산으로 결론이 날 수도 있다. 만일 GGP가 청산한다면 부동산 가격이 바닥인 금융 위기 상황에다가 평소에도 제 값 받기 어려울 급매물이어서 주주와 채권자 모두 큰 손실을 볼 가능성이 높다. 청산까지 가지 않더라도 변호사 비용 등 파산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제반 비용이 매우 커서 기업 가치를 훼손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채권자들이 함께 부채의 만기를 연장하거나 부채 일부를 감면해주는 방식으로 파산보호신청을 피하면서 구조조정을 통해 회사를 살리려는 인센티브가 있다.

파산보호신청을 통해 상환 받을 수 있는 기대금액보다 구조조정을 통해 상환 받을 수 있는 기대금액이 크다면 회사를 일부러 파산보호신청으로 몰아넣지 않는 것이 합리적이고도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져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채권자들이 부채의 만기 연장이나 감면을 거부하고 GGP를 파산보호신청으로 몰아넣는 일이 발생했다. 어떻게 채권자들이 자신에게 손해가 되는 행동을 할 수 있었을까?

만일 그 채권자들이 GGP 채권에 대한 CDS를 매입해 두었다고 가정해 보면 채권자들의 행태가 쉽게 이해된다. 회사가 파산보호신청을 하면 CDS를 매입해두었던 채권자들은 채권 손실 전액을 CDS의 보장매도자로부터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부채의 상환연기나 감면을 택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회사를 신속히 파산시키고 CDS의 보장매도자로부터 손실액을 보전 받는 것이 빠르고 금전적 손해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CDS가 게임의 방식을 바꾼 것이다. 기존 채권자와는 전혀 다른 인센티브를 갖는 새로운 유형의 채권자가 탄생한 것이다.

캐나다의 제지 회사인 아비티비보워터(AbitibiBowater Inc.)도 GGP와 비슷한 사례다. GGP와 같은 날 미국 법원에 파산보호신청을 한 이 회사도 파산보호신청 전에 곧 만기가 되는 채권을 만기가 더 길고 이자율이 더 높은 채권과 교환하려 했다. 그러나 일부 채권자들의 반대로 협상이 실패한 후 파산보호신청을 하게 된 것이다. 관련 변호사들은 파산보호신청을 하게 된 중요한 요인으로 CDS를 꼽고 있다. 이처럼 CDS를 매입해둔 채권자가 벼랑 끝에 몰린 회사를 절벽 아래로 떠민 것으로 의심되는 파산 사건이 금융 위기 과정에서 자주 발생하고 있다.

모건스탠리의 수상한 행보

2009년 초 글로벌 금융 위기의 영향으로 카자흐스탄의 통화가치가 급격히 하락하면서 이 나라의 최대 은행인 BTA가 자금난에 빠지게 되어 2009년 2월 국유화되었다. 국유화된 은행이 파산 지경에 몰린 시중은행보다 훨씬 더 안전하기 때문에 외국 채권자들 입장에서는 BTA의 국유화가 그리 나쁜 일이 아니다. 따라서 외국 금융기관들은 자금을 계속 지원하고 있었으며 BTA는 그런대로 정상적인 영업활동을 하고 있었다. 모건스탠리(Morgan Stanley)를 포함한 외국 금융기관들도 충분히 만족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2009년 4월30일 <파이낸셜타임즈>의 길리언테트(Gillian Tett)는 두 미국 은행이 비상식적인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에 따르면 4월 말 모건스탠리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은행 하나가 갑자기 BTA에게 거액의 채무 상환을 요구했다. 이에 BTA는 지급불능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BTA의 디폴트로 큰 손해를 입을 다른 채권자들과 카자흐스탄 정부는 분노와 충격에 휩싸였으며, 모건스탠리가 스스로 손실을 감수하면서 BTA를 파산으로 몰아가는 행동을 취한 이유를 납득할 수 없었다.

길리언 테트는 이 미국계 은행들의 행태는 CDS 때문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BTA가 지급불능 상태가 되자마자 모건스탠리는 ISDA(International Swaps and Derivatives Association)에게 BTA가 디폴트인지, 즉 신용 사건에 해당하는지 판정을 요구했으며, 만일 디폴트라고 판정이 되면 BTA에 대한 CDS의 배상금액 확정을 위한 공식적 경매 절차를 시작해 줄 것을 요구했다.

결국 같은 해 6월10일 경매에서 CDS의 보장매도자는 BTA의 부채 1달러당 89.75센트를 보상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CDS의 경매 결과는 BTA에 대한 CDS 모두에게 적용된다. 경매 당시 BTA에 대한 CDS 총액은 약 8억달러로 추정되기 때문에 CDS의 보장매도자들은 7억달러 이상의 금액을 보장매입자들에게 지불해야 한다.

모건스탠리가 BTA에게 빌려준 돈보다 더 큰 금액의 CDS를 매입해 두었을 것이라고 길리언 테트는 추론하고 있다. 만일 채권금액보다 적은 금액의 CDS를 매입해 두었다면 BTA를 지급불능 상태로 만들 인센티브가 없기 때문이다. 채권금액보다 큰 금액의 CDS를 매입해 두었다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된다.

예를 들어 M은행이 BTA에 1억달러를 빌려주면서 동시에 BTA 부채 2억달러에 대한 CDS를 사두었다고 하자. 현금결제의 경우 BTA가 지급불능 상태가 되면 CDS의 보장매도자로부터 받을 금액이 1.795억달러나 되니, 이런 결과를 예상한 M은행이 BTA를 넘어뜨릴 인센티브를 갖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아직까지 모건스탠리가 길리언 테트나

<파이낸셜타임즈>에 대해 불평하거나 소송을 걸지 않은 것을 보면 이러한 길리언 테트의 추론에 무게가 실린다.

CDS의 순기능만 취할 수 있는 방법

글로벌 금융 위기 과정에서 CDS가 유명해진 이유는 대형 금융기관의 파산이 CDS로 얽히고설킨 여러 금융기관에 연쇄반응을 일으켜 금융시장 전체를 마비시킬 수 있는 시스템 위험(systemic risk)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필자가 이 글에서 말하고 있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CDS가 채권자들의 인센티브를 왜곡하여 기업의 도산을 촉진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멀쩡하게 돌아가던 회사도 CDS 때문에 무너질 수 있다. 지배구조가 바뀌는 등 기업에 중요한 변화가 생겼을 때 조기상환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채권자에게 부여한 차입의 경우에는 특히 조심해야 한다. 외국계 금융기관이 기업에 대한 정보를 입수한 후 채권금액의 몇 배 되는 CDS를 몰래 매입하고 채권의 조기상환을 요구하면 해당 기업이 속수무책으로 무너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CDS를 금지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비가 샌다고 집을 허물자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이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CDS는 부도 위험에 대한 헤지를 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하기 때문에 자금 조달을 원활하게 하는 순기능이 있다. 또한 금융공학이 발달한 현재, CDS 거래를 금지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CDS를 금지하더라도 다른 금융 상품들을 적절히 결합하여 유사한 성격을 갖는 새로운 금융 상품을 만들어 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금융시장에서는 로마로 가는 길이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다.

CDS의 장점을 유지하면서 단점을 보완하는 방안으로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다. 첫째, 일반 보험처럼 피보험 이익 원리를 도입하여 CDS의 대상이 되는 채권을 보유하고 있지 않은 경우에는 CDS를 매입할 수 없도록 규제하는 것이다. 물론 이 경우에도 금융 전문가들이 같은 목적을 달성하면서 규제를 피해 돌아가는 길을 찾을 수도 있으나 CDS가 멀쩡한 기업을 파산시킬 동기를 최대한 제거할 수는 있을 것이다.

둘째, CDS를 포함한 모든 장외파생상품의 거래를 투명하게 공시하도록 규제하는 것이다. CDS가 갖고 있는 문제의 핵심은 거래가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거래를 규제 당국에 보고할 의무도 없어 정부 당국조차도 제대로 된 통계를 갖고 있지 않다. 기업이나 채권자들은 다른 채권자가 CDS를 얼마나 갖고 있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사전 대처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이해 관계자 서로가 상대방의 인센티브를 파악하고 이에 대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금융 규제 당국이 해야 할 일이다.

두 방안 모두 국제 공조가 필요하다. CDS 계약을 포함한 많은 금융거래들이 국경을 넘어 발생하기 때문에 한 나라 내의 규제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국제적인 규제가 필수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