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가능성을 향한 끊임없는 도전

일본 도쿄 긴자의 닛산 본사에는 언젠가부터 묘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뭔가 벌어지고 있는 게 분명한데, 복도를 분주히 오가는 사람들의 입은 굳게 닫혀있을 뿐이었다. 그로부터 얼마 뒤, 닛산 내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의 윤곽이 어렴풋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닛산의 비밀 프로젝트인 ‘호라이즌 태스크포스(Horizon Task Force).’ 새로운 고성능 럭셔리 브랜드를 만들어내기 위한 작업은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었다. 1985년의 일이다.
이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부터 닛산 수뇌부의 시선은 일찌감치 세계 최대의 자동차 시장인 북미를 향하고 있었다. 그 당시 북미의 고급차 시장에서는 미국과 유럽 최고급차 브랜드들이 이미 확고한 영역을 구축하고 있었다. 후발주자에게는 엄청난 모험이었지만, 급성장 중이던 고급차 시장은 그 모든 위험성을 기꺼이 감수하고서라도 뛰어들고 싶을 만큼 매력적이었다. 태스크포스 팀의 조심스럽고 신중한 접근은 계속되었다.
닛산 태스크포스 팀의 연구 대상은 기존 고급차 브랜드들만이 아니었다. 그들의 리스트에는 세계 최대 항공 특송 서비스 업체인 페덱스를 비롯해 미국의 고급 호텔 체인 포시즌스 그리고 고급 백화점인 노드스트롬 등이 모두 포함돼있었다. 태스크포스 팀은 최고급 호텔과 백화점의 분위기를 자동차 전시장 인테리어 참고자료로 활용했고, 심지어 명함 디자인과 상품 포장 노하우까지도 낱낱이 분석했다. 고객 중심의 브랜드 철학, 즉 ‘인피니티 토털 오너십 익스피리언스(Infiniti Total Ownership Experience)’의 기반은 이때 완성되었다.
‘인피니티(Infiniti)’라는 브랜드 명은 태스크포스 팀 가동 2년 뒤인 1987년 6월에 확정되었다. 동시에 지평선(horizon)을 향해 쭉 뻗어있는 길의 형상을 딴 로고도 채택했다. 브랜드 명과 로고 모두 고급차 시장에서 새로운 지평선을 개척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이렇게 태어난 닛산의 럭셔리 브랜드 인피니티가 처음 출시한 차는 최고급 세단 Q45였다. 1989년 11월 북미 시장에 첫 선을 보인 이 차는 라디에이터 그릴을 없애는 등 파격적인 디자인과 고성능으로 시장의 눈길을 끌었다. 이후 해마다 새로운 차종을 추가하는 등 입지를 다진 끝에 인피니티는 북미 진출 10년 만에 연 평균 7만5천 대 판매에 도달했다.
럭셔리 브랜드를 향한 치밀한 준비와 도전

자동차 업계 최고의 경영자로 꼽히는 카를로스 곤(56) 회장과 지금의 인피니티 디자인을 완성한 거물 디자이너 나카무라 시로(60) 수석 부사장이 합류한 것도 바로 이 무렵. 이때부터 인피니티는 혁신적인 모델을 잇달아 내놓기 시작한다. 2002년에는 G35 세단과 쿠페가 등장했고, 2003년 1월에는 인피니티 브랜드의 아이콘으로 불린 고급 도심형 SUV FX가 데뷔했다. 강력한 신차종의 출시에 힘입어 인피니티는 미국에 진출한 고급차 브랜드 가운데 가장 빠른 성장세를 기록하며 지난 2003년 북미 시장 연간판매 10만 대를 돌파했다.
브랜드 런칭 이후 10년 넘도록 미국을 중심으로 중동(1996년)과 대만(1997년) 등 단 세 곳의 시장만 운영하던 인피니티가 ‘글로벌 시장 확대 계획’을 발표하고 처음 진출한 국가는 다름 아닌 한국이었다. 비록 시장 규모는 작지만 고급차에 대한 안목과 기준이 남다른 한국 소비자들의 평가를 자청하고 나선 것이다. 2005년 한국에 공식 진출한 데 이어 이듬해에는 러시아, 2007년에는 중국으로 시장을 확대했다. 이어 2008년에는 서유럽 시장에도 인피니티 간판을 내걸었다. 현재 인피니티는 세계 15개국에서 230개 이상의 딜러를 운영하고 있다.
“인피니티는 다른 모든 사람들이 하고 있는 걸 하려는 게 아닙니다. 고급스러움에 대한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개념을 답습할 생각도 없습니다. 무작정 만인의 연인이 되지는 않을 겁니다. 대신, 우리를 알아봐주고 사랑해주는 사람들에게만큼은 이 세상 전부가 되어줄 것입니다.”
인피니티의 지향점은 카를로스 곤 르노-닛산 얼라이언스 회장의 이 한마디에 모두 포함되어 있다 해도 좋을 것이다.
인피니티는 지난 2005년 7월 한국에 진출한 뒤 매년 눈부신 성장을 거듭해왔다. 한국 진출 1년 만에 75.7%의 높은 성장세를 기록했고, 한국닛산(대표 나이토 겐지∙48)은 그에 보답이라도 하듯 신형 G35 세단을 세계 최초로 한국 시장에서 공개하는 등 더욱 공을 들였다. 현재 한국에서 시판 중인 인피니티 차종은 G37을 비롯해 대형 고급 세단 M, 도심형 크로스오버 EX 그리고 고성능 고급 SUV FX 등 모두 네 가지다. 여기에서 다시 엔진 라인업과 차체 형태(쿠페, 세단, 컨버터블)에 따라 총 8개의 세부 모델로 나눠진다.
올 뉴 인피니티 M으로 고급 세단 시장 정상 겨냥
인피니티 라인업의 간판은 역시 M시리즈다. 지난해 연말 글로벌 데뷔에 이어 올해 5월 한국 시장에 선보인 ‘2011년형 올 뉴(All-new) 인피니티 M’은 지난 2006년 이후 4년 만에 풀 모델 체인지를 거친 3세대. 디자인과 주행성능, 안전장치 및 편의장비 등 모든 면에서 인피니티가 지금껏 쌓아온 기술력을 모조리 쏟아 부은 차종으로 평가받고 있다.
올 뉴 인피니티 M은 M37 스탠더드와 M37 프리미엄 그리고 고성능 버전인 M56 스포츠 등 모두 세 가지 버전으로 나온다. 이들의 공통적인 강점은 멋진 스타일링과 강력한 엔진. 특히 M37에 올라가는 V6 3.7리터 333마력 VQ엔진은 세계 최고 권위의 미국 자동차 전문지 <워즈 오토(Ward’s Auto)> 세계 10대 엔진에 14년 연속 선정된 걸작 중의 걸작이다. 최상위 버전 M56 스포츠에 탑재된 V8 5.6리터 엔진은 최고출력 415마력의 폭발적인 힘을 자랑한다. 인피니티 브랜드 최초로 연료 직분사 시스템을 적용한 엔진이다.
올 뉴 인피니티 M의 디자인 역시 데뷔와 동시에 세계 자동차 업계 최대의 이슈로 떠올랐다. 나카무라 시로 수석 부사장이 줄기차게 주창해온 ‘우아한 역동성과 고상함의 조화’가 한껏 무르익은 느낌이다. 외관뿐 아니라 인테리어도 탁월한 미적 감각과 흠잡을 데 없는 기능성을 두루 충족시킨다. 올 뉴 인피니티 M의 인테리어는 <워즈 오토>가 발표한 ‘2010년 올해의 인테리어’ 프리미엄급 세단 부문 최고로 뽑혔다.
올 뉴 인피니티 M은 올 들어 국내 수입차 시장의 주력으로 자리 잡은 5000만~6000만원대 후륜구동 고급 세단 시장에서 메르세데스-벤츠 E클래스, BMW 5시리즈, 아우디 A6 등과의 치열한 경쟁을 예고하고 있다. 국내 시판 가격은 M37 스탠더드 5950만원, M37 프리미엄 6290만원, M56 스포츠 8460만원이다. M37 스탠더드의 가격은 구형보다 840만원 내려갔을 뿐 아니라, 현대 제네시스 3.8 풀옵션 버전보다도 1000만원 낮게 책정됐다. 수입 프리미엄급 세단 시장은 물론, 국산 최고급 세단과의 경쟁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인피니티의 강한 의지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Tip | 디자인 스토리
“단순한 미래 디자인이 아니라
생명력을 지닌 미래 디자인”
▷▶▷ 지난해 3월 제네바 모터쇼. 브랜드 설립 20주년을 맞은 인피니티가 세계 각국에서 몰려든 취재진들 앞에 ‘에센스(Essence)’ 콘셉트 카를 공개했다. 상상을 뛰어넘는 혁신적인 디자인은 모터쇼장인 제네바 팔렉스포를 찾은 모든 취재진의 감탄을 자아냈다.
▷▶▷ 일본 무사시노 예술학교와 세계 최고의 디자인 스쿨인 미국 ACCD에서 공부하고, 이스즈와 GM을 거쳐 지난 1999년 닛산에 합류한 나카무라 시로 수석 부사장은 에센스 콘셉트 카를 가리켜 “단순한 미래 디자인이 아니라 생명력을 지닌 미래 디자인”이라고 규정했다. 미래 인피니티 양산차에 실제로 적용될 디자인이라는, 일종의 선언이었다. 부임 직후부터 다소 보수적이었던 닛산 디자인을 과감히 바꿔온 그의 장담은 오래지 않아 현실로 나타났다. 올 뉴 인피니티 M은 바로 그 출발점이다. 양산차인 만큼 일부 디테일은 완화되었지만, 전체적인 보디라인은 에센스 콘셉트 카에서 보여줬던 내용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 올 뉴 인피니티 M의 스타일링 큐는 사람의 신체와 파도 형상. 늘 자연으로부터 힌트를 얻어온 시로 수석 부사장의 디자인 성향을 정확히 따른다. 올 뉴 인피니티 M의 디자인에서 시로 수석 부사장이 강조하는 또 하나의 요소는 ‘아데야카(Adeyaka).’ 1천 년 전 일본 복식(服飾)의 화려함을 뜻하는 일본어인 ‘아데야카’는 화려한 컬러와 자연미, 인간미, 파도와 같은 곡선미 등을 통칭하는 의미로 올 뉴 인피니티 M의 디자인 주제가 되었다.
▷▶▷ 닛산은 현재 일본과 미국 캘리포니아, 영국 런던 등 세 곳에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으며, 이곳에서는 20명에 가까운 한국인 디자이너들이 활동하고 있다.
미니 시승기
올 뉴 인피니티 M

“우아하면서도 강력하고
아찔하지만 부드럽다”
올 뉴 인피니티 M의 경쟁자는 메르세데스-벤츠 E클래스와 BMW 5시리즈, 아우디 A6, 렉서스 GS 등. 프리미엄급 세단 시장을 통틀어 가장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는 동시에 가장 인기 높은 시장이기도 하다. 당연히 각 브랜드들의 마케팅 경쟁이 끊이지 않는 ‘전략적 요충지’다.
이 치열한 시장에서 인피니티 M은 과거 상대적으로 약세를 면치 못했던 게 사실이다. 가장 큰 이유는 강렬하지 못한 디자인에 있었다. 하지만, 올 뉴 인피니티 M의 등장으로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올 뉴 인피니티 M은 강렬한 실내외 디자인과 빼어난 성능, 고급 장비는 물론, 브랜드 가치에 걸맞은 프리미엄급 성향까지 모든 면에서 한 단계 뛰어올랐다.
올 뉴 인피니티 M의 진면모를 확인하기 위해 선택한 시승차는 M37. 올 뉴 인피니티 M의 세 가지 버전 가운데 시장 흥행성을 책임진 차종이라 할 수 있어서다. 길이 5m에 육박하는 큰 덩치임에도 역동적인 외관 디자인 덕분에 빈틈없이 충실한 느낌을 준다. 길게 뻗은 보닛은 스포티한 감각과 함께 안정감 있는 균형미를 연출한다. 항상 스포츠성을 강조해온 인피니티답게 차체 무게 밸런스를 최적화하기 위한 디자인이라 하겠다.
날렵하게 빠진 올 뉴 인피니티 M37의 공기저항계수(Cd)는 0.27. 정통 스포츠카의 대명사인 포르쉐 911 카레라 S의 공기저항계수가 0.29인 점을 감안하면 올 뉴 인피니티 M의 보디라인이 얼마나 날렵한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스마트키 시스템이라 키를 몸에 지니고 운전석에 앉아서 스타트 버튼만 누르면 절로 시동이 걸리는 방식이다. 시동음에는 박력이 넘친다. 방음대책이 잘 돼 있어 실내는 평온하기 그지없지만, 가속할 때 간간이 들려오는 엔진 사운드는 주체할 수 없는 남성적 매력을 묵직하게 발산한다. 고급성과 스포츠성을 꾸준히 지향해온 브랜드 컬러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V6 3.7리터 333마력 VQ엔진과 조합을 이룬 변속기는 7단 자동기어. 이미 스포츠 세단 G37에도 쓰여 성능을 입증 받은 이 변속기는 V6엔진과 손발을 맞춰 출발하고 불과 6.3초 만에 속도를 시속 100㎞까지 끌어올린다. 직선주로에서는 쭉쭉 밀고 나가는 파괴력이 일품이고, 커브 공략도 유연하면서 정확하다.
기어레버 뒤쪽에는 ‘인피니티 드라이브 모드 셀렉터’가 달려있다. 차의 주행환경에 따라 스탠더드와 에코, 스노, 스포츠 등 네 가지 모드로 조작할 수 있으며 그에 따라 엔진 반응과 변속 타이밍, 스티어링 휠 반응 등이 모두 적절히 맞춰진다. 에코 모드는 도심 및 고속도로 주행 시 연비 향상에 중점을 두고, 스노 모드는 눈길이나 미끄러운 노면에서 안정적인 주행을 돕는다. 올 뉴 인피니티 M의 또 다른 하이라이트는 10개의 스피커를 갖춘 보쉬 프리미엄 사운드 시스템. 말 그대로 ‘프리미엄급 사운드’를 뿜어낸다. 최고급형인 M56 스포츠는 이보다 더 많은 16개의 스피커를 갖추고 있지만 굳이 그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올 뉴 인피니티 M37의 오디오는 이미 충분히 훌륭하다. 동급 경쟁 모델 중 가장 넓은 실내 공간과 고급스러운 마감재도 국내 수입차 시장에서 강력한 구매 포인트로 작용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