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묵에도 급이 있다. 술로 비교해보자. 포장마차의 안주나 회사 구내식당 반찬으로 등장하는 ‘오뎅’이 대중적인 소주라면, 그보다 10배 비싼 ‘가마보꼬’는 프리미엄 위스키다. 차이는 재료와 제조방식에서 온다. 오뎅은 통째로 간 생선반죽에 밀가루를 섞은 것. 반대로 가마보꼬는 돔·조기·장어 등 고급어종의 순살로만 제조한다.
윤신덕(55) 참살 사장이 좀 더 알기 쉽게 설명한다. “가마보꼬 하나에 돔 세 마리가 들어가요. 오뎅과 비교하기 어려운 고단백 저칼로리 식품이죠. 상류층을 겨냥한 고급식품으로 국내에선 참살만 만들 수 있습니다.”
고급식품답게 참살의 가마보꼬가 등장하는 곳은 주로 백화점과 호텔 레스토랑이다. 신세계백화점과 신라호텔에도 매장이 있다. 10년 넘게 인기다. 2000년 신세계백화점 70주년 기념일엔 충무로본점에 입점한 점포들 중 매출 1위가 참살 매장이었다. 입소문을 타고 올해 매출도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올해 매출은 지난해보다 두 배 이상 성장한 50억원으로 예상된다.
그렇다면 궁금하다. 국내 어묵 시장을 장악한 곳은 사조대림, CJ씨푸드(구 삼호F&G) 등 대기업들이다. 이들이 가마보꼬를 만들지 않는 이유는 뭘까. 우선 제조법이 몹시 까다롭기 때문이다. 가마보꼬를 만들려면 생선의 머리·내장·비늘·뼈뿐 아니라 살 속에 숨어 있는 힘줄까지 모두 제거해야 한다. 그뿐 아니다. 방부제나 보존료 등 첨가제를 넣어서도 안 된다. 특유의 담백한 맛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대기업 어묵 공장에선 반영하기 어려운 조건이다.
“가마보꼬는 대기업들이 들어올 수 없는 틈새시장이에요. 의류, 자동차, 전자제품에서 명품들이 많이 팔리는 것처럼 어묵 시장에서도 고품격 브랜드로 승부하는 것이죠.”
가마보꼬는 일본에서만 제작됐다. 제조기술을 한국에 들여온 사람은 윤 사장의 동생인 윤명근씨(참살 공동 대표)다. 일본의 가마보꼬 회사인 아까마사에 입사, 15년 동안 근무하며 기술을 배웠다. 엄청난 고생이 따랐다는 후문이다. 기술유출을 꺼린 아까마사의 임직원들이 윤씨를 한직으로만 돌렸기 때문이다.
윤 사장의 설명이다. “동생은 새벽시장에서 생선을 날라 오거나 공장을 청소하고 기계를 수리하는 등 단순 작업들만 했어요. 그런데 오히려 그게 기회가 됐죠. 생선 고르기부터 설비관리까지 생산과정을 모두 꿰뚫는 계기가 된 것이죠.”
한 동안 위기도 있었다. 사업 초기 짧은 유통기간(7일) 때문에 백화점측의 반품이 속출한 것. 가뜩이나 고가 식자재라 재고가 쌓이면 치명적이었다. 2004년엔 도산위기까지 몰렸다. 윤 사장이 기지를 발휘했다. 생선 순살을 매장으로 공수, 판매 현장에서 직접 제조하면서 당일 판매량을 크게 늘렸다.
“웰빙에 대한 관심이 쏟아지면서 육류보다 생선을 이용한 요리가 각광받고 있어요. 아직은 가마보꼬가 소비자들에게 낯설지만 곧 높은 인지도를 누리게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