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위기는 거대한 변화를 야기한다. 경제와 산업도 예외는 아니다. 기존의 산업구조로 야기된 위기를 종전의 산업으로 극복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새로운 산업과 기업의 등장을 요구하기 마련이다. 대공황 이후에 화학 산업이, 오일쇼크 이후엔 PC와 소형가전이 새롭게 등장하며 경제를 주도했다. 이번 금융 위기 역시 새로운 산업, 새로운 아이디어의 주역을 요구하고 있다. 다시금 벤처기업과 벤처정신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변화와 혁신적 사고는 벤처의 영혼이기 때문이다. ‘2010 한국의 100대 벤처기업’은 벤처정신의 에너지와 잠재력이 발휘된 기록이다.

2010 최고 벤처는 네오위즈게임즈

10분기 연속 사상 최대 실적 ‘괴력’

 ‘2010 한국의 100대 벤처기업’ 순위는 변화가 꽤 심했다. 100대 벤처기업에 새로 진입한 기업이 57개에 달했다. 1000위 밖에서 100위 안으로 뛰어든 기업도 18곳이나 된다. 변화무쌍하고 다이내믹한 벤처기업계의 특징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순위 변화에는 NHN, 다음커뮤니케이션, 휴맥스 등 기존의 거대 벤처기업들이 벤처인의 벤처기업 리스트에서 빠진 것도 적잖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게임 업체 3곳, 10위권 입성

2010 최고의 벤처기업은 네오위즈게임즈였다. 매출액(5위), 총자산(7위), 순이익(6위) 모두 최상위권에 오르며 지난해 12위에서 1위로 점프했다. 이보다 더욱 눈길을 끄는 것은 이 기업의 성장성이다. 매출액이 65.39%, 총자산이 65.28%, 순이익이 110.28%나 늘었다. 네오위즈게임즈는 2008년 1분기부터 지난 2분기까지 10분기 연속 사상 최대 실적을 이어가는 기염을 토하고 있다.

네오위즈게임즈의 기록적인 성장세는 성장엔진의 동시다발적인 점화에서 찾을 수 있다. 기존 게임의 호조세가 유지되면서 새로운 게임이 빠르게 자리를 잡았고 해외 매출도 폭발하고 있다. 전통적인 캐시카우인 <피파온라인>이 월드컵 특수와 맞물려 힘차게 달렸고 새로운 슈팅 게임인 <아바>가 삽시간에 유저들을 끌어들였다. 중국에서는 슈팅 게임인 <크로스파이어>가 큰 호응을 얻는 데 성공했다. 최근에는 <피파온라인 2>가 가파른 성장을 하고 있는 데다 신작 게임의 런칭이 기다리고 있어 연속 분기 최대실적 기록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또 다른 게임 업체인 위메이드엔터테인먼트도 중국 시장의 호조에 힘입어 사상 최대 매출을 기록하며 전년 54위에서 9위로 올라서는 데 성공했다.

3위를 차지한 미래나노텍도 주목할 만한 기업이다. 디스플레이의 핵심부품 중 하나인 광학필름을 주력제품으로 삼는 이 기업 역시 강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 회사의 강점은 무엇보다 기술력에 있다. 기존의 패러다임을 뒤집은 제품으로 설립된 지 10년도 되지 않아 세계시장 점유율 1위에 올랐다. 혁신적인 기술을 무기로 삼는 기술 벤처기업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는 대목이다.

지난해 55위에서 51계단 순위가 상승해 4위에 오른 우전앤한단도 흥미로운 사례다. 셋톱박스 전문기업인 한단정보통신과 휴대전화 부품업체인 우전이 합병하며 시너지를 내고 있는 기업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합병이 두 기업의 대등한 전략적 성격이라는 점이다. 누가 누구를 일방적으로 흡수한 것이라기보다 양사의 추가 성장을 위한 전략적 동맹에 가깝다.

양 사의 강점을 살리고 부족한 점을 채우는 전략으로 성장 동력의 출력을 높인다는 이 회사의 구상이 성공한다면 한국 M&A사에서 보기 드문 성공사례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스마트폰 관련 기업 순위 급상승

10위권 기업 중에는 금융 위기 이후 새롭게 등장한 산업 중 하나인 스마트폰, 아이패드 등과 관련된 기업이 대거 포진돼 있다. 아직은 규모가 10위권에 이르지 못하지만 현재의 성장세를 감안하면 내년엔 순위가 크게 오를 기업이 적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들 기업의 특징은 역시 차별화된 기술력이라고 할 수 있다.

10위권에서 눈여겨봐야 할 기업 중 하나가 실리콘웍스다. 지난 6월 코스닥에 상장한 이 기업은 최근 들어 투자자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강력한 성장 잠재력에 기관과 개인 모두 러브콜을 외쳤다. 지난해 45위에서 12위로 순위가 껑충 뛰었다.

실리콘웍스는 국내 최대의 팹리스 업체다. 팹리스 업체란 생산시설 없이 설계만 하는 반도체 기업을 말한다. 지난 상반기 국내 팹리스 기업 최초로 상반기 1000억원 매출을 기록하며 성장성을 확인시켰다. 이 회사의 주력기술은 LCD 구동칩(LDI)이다. LCD 패널의 사용량 증가의 수혜를 톡톡히 보고 있는 상황이다. 아이패드, 스마트폰 등 관련 제품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어 성장성은 한동안 이어질 전망이다. 최근엔 수익 다변화를 추진하면서 안정성을 더하고 있는 상황이다.

19위 멜파스도 독보적인 기술력으로 경이적인 성장을 이뤄낸 케이스다. 지난해 전년 대비 매출액 333%, 총자산 272%, 순이익 477% 성장했다. 멜파스는 터치스크린 전문기업이다. 경쟁사들이 값이 비싼 투명전극 필름(ITO) 2장을 사용하던 것을 1장만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지고 있어 원가 경쟁력이 뛰어나다. 미국의 애플이 이 회사의 기술 방식을 채택하면서 실적이 가파르게 상승했다.

멜파스는 최근 또 다시 혁신적인 기술을 내놓아 시장의 관심을 끌고 있다. 투명전극 필름이 아예 필요 없는 기술인 DPW(Direct Patterned Window)를 개발한 것이다. DPW는 이미 삼성전자의 제품에 적용되기 시작했다. 멜파스는 DPW를 새로운 성장 동력을 키우기 위해 대규모 생산설비 투자도 진행하고 있다.

18위의 유비쿼스는 스마트폰 시대의 주역이 될 기업 중 하나로 꼽힌다. 스마트폰은 필연적으로 데이터 트래픽을 대량으로 확대하는 결과를 낳는다. 스마트폰 보급이 본격화되면 데이터가 현재보다 수십 배 이상 늘어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스마트폰 망의 장비도 개선돼야 하기 때문에 네트워크 장비업체가 성장할 수밖에 없다. 국내 네트워크 장비업계의 선두기업 중 하나로 꼽히는 유비쿼스의 성장성 잠재력이 여기에 있다. 

14위의 파트론 역시 스마트폰 관련 기업이다. 파트론의 주력제품은 안테나, 수정발전기, 카메라모듈 등으로 모두 스마트폰이 필수적으로 탑재하고 있는 부품들이다. 파트론의 강점은 강력한 원가 경쟁력에 있다. 스마트폰의 제품 라인업이 보급품까지 확대된다면 파트론의 원가 경쟁력은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최근 들어 스마트폰 시장에서 점유율을 넓혀 가고 있는 삼성전자에 부품을 제공하고 있다는 점도 성장 기대감을 높이는 요인으로 꼽힌다.

휴대전화의 카메라모듈을 생산하는 캠시스도 스마트폰 덕에 고공성장을 한 케이스다. 지난해 300만 화소의 카메라모듈을 적기에 공급하며 좋은 결과를 이끌어냈다. 스마트폰용 카메라모듈이 500만 화소 중심으로 이동하는 데 따라 향후엔 500만 화소용 제품 생산을 확대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업황 부진으로 순위 추락 상당수

100대 벤처기업에서 추락한 기업도 상당수다. 온라인 오픈마켓인 G마켓을 운영하는 이베이지마켓은 3위에서 765위로, 조선 기자재 기업인 엔케이는 11위에서 782위로, 소프트웨어 업체인 티맥스는 47위에서 858위로, 방송장비 업체인 홈캐스트는 48위에서 801위로 밀려나며 권토중래를 벼르고 있다.

이베이지마켓은 매출액 1위, 총자산 3위로 최상급의 성적을 올렸지만 128억원의 적자를 내면서 전체 순위가 하락했다. 엔케이도 매출액 26위, 총자산 16위에 올랐지만 적자 탓에 순위가 크게 떨어졌다. 전반적인 경기 위축과 업황 부진 등이 적자전환의 이유로 꼽힌다.

거대 벤처기업들이 순위에서 제외되면서 100대 벤처기업의 몸집은 전년에 비해 전반적으로 줄어들었다. 지난해 16조3230원이던 100대 벤처기업의 매출액이 12조7783억원으로, 17조274억원이던 총자산은 13조2895억원으로, 1조7360억원이던 순이익은 1조4520억원으로 각각 21.7%, 21.9%, 16.3% 감소했다.

매출 1000억원 클럽도 지난해에 비해 줄었다. 143개이던 것이 94개로 49곳이나 감소했다. 매출 1000억원 클럽 기업 중 100대 기업에 진입한 기업은 60곳이었다. 총자산 1000억원 이상인 곳은 107개, 순이익 100억원 이상인 곳은 69곳으로 조사됐고 이 중 100대 벤처기업은 각각 62개, 42개로 나타났다.

통계로 본 벤처기업계

▷▶▷ 벤처기업의 수는 해를 거듭할수록 불어나고 있는 추세다. 2001년 벤처 붐을 타고 1만1392개까지 증가했던 벤처기업은 벤처 버블이 빠지면서 2002년 8778개로 내리막길을 타기 시작해 이듬해인 2003년엔 7702개까지 줄었다. 하지만 다음해부터는 다시 증가세로 돌아서 2006년엔 1만2218개로 다시 1만 벤처기업 시대로 진입했다. 그 후 벤처기업은 매년 2000~3000개씩 늘어 2010년 7월 현재 2만1731개까지 불어난 상태다.

지역별로는 서울과 경기권에 집중돼 있는 양상이다. 8월17일 현재 서울에 22.95%인 5049개, 경기도에 29.45%인 6479개로 서울 경기권에 전체 52.3%인 1만473개가 몰려 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75.16%인 1만6535개로 가장 많았고 정보처리 소프트웨어 기업(2951개), 건설·운수 기업(367개), 도소매업(354개) 등이 그 뒤를 잇고 있었다.

기업의 외형은 크지 않았다. 매출액 100억원 이상 기업이 10.43%인 2294개에 그쳤다. 반면 5000만원 이하인 곳은 17.06%인 3754개에 달했다. 업력은 5년을 기준으로 절반씩 나뉜 모습이다. 5년 이상이 1만2594개, 5년 미만이 9407개로 나타났다. 

이|렇|게|선|정|했|다

한국의 100대 벤처기업은 2010년 3월 현재 기술보증기금인 운영하는 벤처 포털 사이트인 벤처인(www.venturein.or.kr)에서 확인되는 벤처기업 중 유가증권 시장 상장기업, 코스닥 기업, 외부감사 대상 기업을 대상으로 선정했다.

선정 기준은 2009년 매출액, 총자산, 순이익 등 세 가지 지표를 활용했다. 이 세 지표의 순위를 정한 후 세 순위의 합이 적은 순으로 종합순위를 정했다.

이번 조사는 기업 신용평가 기업인 나이스디앤비가 진행했다. 나이스디앤비는 글로벌 기업 신용평가 기업인 D&B(The Dun & Bradstreet Corporation)가 보유하고 있는 전 세계 214개국, 1억6000만 개 기업에 대한 신용 정보와 시스템 운영 노하우 및 한국신용정보의 기업정보, 신용평가 경험을 바탕으로 국내 및 해외 기업에 대한 기업 신용 정보와 신용 위험 관리 솔루션을 제공하고, e비즈니스 솔루션 개발 등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