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공매 부동산펀드 운용사 설립
경매시장 새 역사 써 나가겠다”
지지옥션 홈페이지(www.ggi.co.kr)에는 한 컷짜리 큼직한 만화가 자리 잡고 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새 작품으로 교체되는 이 만화는 부동산 경매 시장의 최근 트렌드를 보여주는 만평이다. 한눈에 업계 흐름을 보여준다는 건 좋은데, 재미있는 건 이 만평이 홈페이지 한 가운데를 떡하니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유료 비즈니스 정보를 제공하는 사이트치고는 다소 엉뚱한 구성이다.
이 만평을 그리는 이는 바로 지지옥션의 창업자인 강명주 회장이다. 사이트 오픈 후 10년째 한 주도 빠짐없이 손수 그린 것이 벌써 513회나 된다(8월 셋째 주 기준).
그는 고려대 재학시절 <고대신문>에 4컷짜리 ‘타이거’라는 만화를 그렸다. 잘 그린다고 소문이 나 학교 졸업 후에 그를 스카우트 하려는 신문사들의 제안도 많았다. 만일 그때 신문사에 들어갔다면 오늘날 부동산 경매정보 회사 지지옥션은 탄생하지 못했을 게다. 하지만 운명은 그를 다른 길로 이끌었다. 그는 만평 작가보다는 사업가가 되고 싶었다. 1977년, 그는 공부하며 모은 돈과 대출 등을 끌어 모아 연소기를 만드는 대원정공이라는 조그만 회사를 인수했다. 그런데 그게 잘 안됐다.
첫 사업은 실패했지만…
“연소기 사업을 한 2년 했어요. 잘 모르는 분야여서 그랬는지 잘 안됐어요. 그리고 몇 달간 백수생활을 했죠.”
30대 초반의 젊은 가장이던 그는 이제 뭘 해서 먹고살아야 하나 고민스러웠다. 그러다 만난 것이 부동산 경매정보지 사업이었다.
“연수기 사업을 할 때 정부기관 공사를 하려면 입찰정보가 필요했거든요. 입찰정보를 찾아다니다가 부동산 경매정보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게 알게 됐어요. 학교 다닐 때 신문도 만들어 봤겠다, 이걸 정보지로 만들어 팔자고 생각했죠.”
부동산 경매정보는 법원에 있다. 채무자가 돈을 갚지 못하면 채권자가 담보로 잡은 부동산을 법원 경매에 넘겨 채권을 회수하기 때문이다. 이 정보는 누구나 자유롭게 볼 수 있는 공개 정보다. 그러나 1980년대 초반만 해도 분위기가 그렇지 못했다. 법적으로는 누구나 볼 수 있게 되어 있었지만, 현실적으로는 어려웠다. 법원에 가면 법원 직원과 유착한 브로커들이 일반인들의 접근을 막고 자기들끼리만 경매정보를 봤기 때문이다. 불법적으로 정보를 독점한 것이었다.
1983년 4월, 강 회장은 용감하게 뛰어들었다. 백수처지라 돈벌이도 급했고, 잘못된 부동산 경매정보 시장의 관행도 개선하는 바른 일이다 싶었다.
“그때는 복사기도 없어서 법원 경매정보 목록을 일일이 손으로 베껴 적어야 했어요. 그런데 얼마 적지도 못했는데 법원 직원이 계속 쫓아내더군요. 이렇게는 안 되겠다 싶어 지인들을 7~8명 동원해서 최대한 경매정보를 적을 수 있는 데까지 적어 정보를 모았죠.”
강 회장 나름의 인해전술(?)이었던 셈이다. 강 회장은 그렇게 모은 부동산 경매정보로 100부 가량의 인쇄물을 만들었다. 타자기로 정리한 정보들을 등사기로 밀어서 찍어냈단다. 왕년에 학교신문을 만들던 솜씨를 발휘한 것이다. 이게 바로 지지옥션의 전신 <계약경제일보>의 시작이다.
견본 정보지 100장, 순식간에 동나
“그걸 들고 법원경매장엘 나가서 사람들한테 무료로 나눠 줬죠. ‘이게 뭐야?’ 하던 사람들이 좀 있으니까 줄을 서서 받아가더군요. 못 받은 사람들은 받은 사람들 것을 뺏기도 하고…. 난리가 났었죠.”
부동산 경매정보지의 시장성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그는 그 다음에 만든 정보지들은 1부당 1000원을 받고 팔았다. 그래도 여전히 사람들이 줄을 섰다.
“또 다시 100장을 찍어서 아내와 둘이 법원에 가져가 다 팔았는데, 첫날 매출이 10만원이었죠.” 자장면 한 그릇이 500원 하던 시절이었다.
이렇게 강 회장이 유료 정보지로 돈 버는 걸 본 브로커들은 곧장 태클을 걸기 시작했다. 법원 경비원에게 “잡상인이니 쫓아내라”며 강 회장의 정보 수집을 방해하고, 심지어 그에게 “법원에 또 나오면 죽이겠다”고 협박도 했단다.
가만히 있을 강 회장이 아니었다.
“서울대 법대를 나와서 법을 좀 아는 친구한테 법원에 가서 경매정보를 적어다 달라고 부탁했죠. 아니나 다를까 브로커들이 또 시비를 걸더랍니다. 친구는 ‘엄연히 공개된 공고물이고, 내가 남의 업무를 방해한 것도 아닌데 무슨 상관이냐’며 법률문제를 따진 후에, 판사실로 쳐들어가 이만저만한 일로 왔다고 민원을 제기했어요. 그 이후로 브로커들의 횡포가 딱 정리 됐지요.”
이후부터는 그야말로 탄탄대로였다. 강 회장과 아내 둘이서 하던 작업이 한두 달 만에 직원을 채용할 수 있을 만큼 바로 자리가 잡혔다. 서울 을지로에 자그마한 사무실도 낼 수 있었다.
부동산 경매정보 시장의 진입장벽이던 브로커 문제가 해결되고, 강 회장이 괜찮은 비즈니스 모델까지 만들어 놓자 바로 경쟁사들이 생겨났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 이 업계를 평정한 것은 강 회장의 회사 지지옥션이다.
“경쟁사들은 정보를 그냥 죽 나열했지만, 우리는 정보지에 해당 물건의 사진을 찍어 올리고, 등기도 떼어서 첨부했어요. 발품을 엄청 팔았죠.”
투자자들에게 도움 될 부가정보들을 정보지에 더 담았던 것이다. 심지어 법원 경매계 직원이 누락시킨 정보까지 찾아내서 올렸다고 한다.
시간이 흘러 인터넷 시대가 되면서 지지옥션은 수익의 90%를 인터넷 유료 정보에서 내고 있다. 인터넷 정보 역시 발로 뛰어 새로운 정보를 더한다는 그의 원칙을 지키고 있다.
“‘현장보고서’라고, 우리 직원들이 경매에 나온 집을 직접 찾아가서 대문을 두드려 사람을 만나서 현장에서 보고 들은 정보를 올리죠. 이를 테면 ‘이 집은 부부가 싸움을 자주 해서 시끄럽다’는 것까지 쓸 정돕니다.”
온라인 시장은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지만 오프라인 정보지는 수요가 줄어 적자란다. 하지만 강 회장은 오프라인 정보지도 계속 만들 생각이다.

“오프라인 정보지는 자존심 같은 거죠. ‘지지옥션에서는 온·오프라인으로 전국의 부동산 경매정보를 다 볼 수 있다’, 그런 의미로 이어가려고요.”
지지옥션은 2008년 3월부터 국내 처음으로 민간 부동산 경매를 시작하고, 보급에 열심이다. 그 이전까지 국내 부동산 경매는 강제 집행되는 법원 경매뿐이었다.
“사실 미술품 경매 등에서 볼 수 있듯이 경매 자체는 거래의 수단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희한하게도 부동산 경매에서는 채권 회수를 위해 강제로 집행하는 법원 경매만 존재했어요. 그러다 보니 부동산 경매에 대한 세간의 인식도 좀 부정적인 편이었고요.”
강 회장은 “부동산은 가장 규모가 큰 재화인데도 중개업소 외에는 큰 시장이 없어 환금성이 낮다”며 “오래 전부터 민간 경매가 큰 시장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기회를 엿보다가 시작했다”고 했다.
“보통은 부동산을 인근의 중개업소에만 내놓잖아요? 하지만 자율적인 민간 부동산 경매 시장에 내놓게 되면 전국을 상대로 하니까 그 만큼 거래 시장도 넓어집니다. 공개경쟁이고, 수요공급 원칙에 따라 값이 매겨지니 공정한 시장이기도 하죠. 전문 감정사가 부동산의 가치를 분석해서 적정 가치도 매길 수 있고요. 아직은 자율적인 민간 부동산 경매가 덜 알려져 있지만 앞으로 성장의 여지가 많은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자산운용사 설립, 부동산 경매 전문성 살릴 것
강 회장은 최근 국내 첫 경·공매 부동산 펀드 전문 운용사인 지지자산운용을 설립, 또다시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지지운용은 금융 당국에서 지난 7월14일에 인가를 받았다.
경·공매 펀드는 지난 2005년 국내 시장에 선보였다가 사라진 적이 있다. 와이즈에셋자산운용이 운용을 맡고 현대증권이 판매한 뮤추얼펀드 ‘현대부동산경매1호펀드’가 주인공이었다. 이 펀드는 판매 시작 10분 만에 1000억원이 모집될 만큼 인기였다. 그러나 매각 시점이던 2008년 금융 위기를 만나 보유 부동산 가치도 떨어지고 매각에도 애를 먹었다. 결국 원금 손실을 기록하며, 실패작이 됐다.
이 같은 과거 업계의 실패 사례가 부담스럽지는 않을까? 강 회장은 “지지운용은 부동산 경매를 잘 아는 회사가 만든 운용사인 만큼 전문성을 살려 운용하겠다”는 각오다.
“부동산 경매 시장에서는 보통 10억원대 물건의 경쟁이 가장 치열하죠. 50억원대 물건 쪽은 한산한 편이고, 수백억원짜리는 시장에 나오는 일 자체가 드뭅니다. 펀드를 조성할 경우 자본이 대형화되어 경쟁이 덜한 큰 물건 투자가 가능해집니다. 또 세금 문제에서도 유리하죠. 부동산 투자는 거래 시 세금 부담이 상당하지만 경매 펀드로 부동산을 매매할 때는 세금이 현저히 적어요. 양도소득세도 없고, 취·등록세도 30% 감면을 받거든요. 건강한 투자처를 만들자는 국가 시책 때문입니다.”
강 회장은 “앞으로 조성할 펀드들은 200억원 내외의 수익형 빌딩들을 투자 대상으로 삼을 생각”이라며, “일단 국내 물건 위주로 투자하고, 해외 시장은 천천히 접근할 것”이라고 밝혔다.
“매년 40만 건의 부동산이 경·공매 시장에 나옵니다. 지지옥션을 통해 이에 대한 충분한 자료 제공을 꾸준히 할 것이고요, 민간 경매를 활성화시켜서 공정한 부동산 거래 시장도 더 키우고 싶습니다. 지지운용의 경·공매 펀드 운용으로 부동산 경매의 간접 투자시장도 잘 육성해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