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주요 병원의 의사들이 환자를 진료하거나 논문을 쓸 때, 전문가들이 연구를 위해 사용하는 체성분분석기가 바로 바이오스페이스의 ‘인바디’다. ‘체성분 분석을 했다’는 것을 ‘인바디했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신체 부위별 정확한 체성분 분석…

전문가용 초정밀 시장 ‘독차지’

바이오스페이스는 전문가용 체성분분석기 시장을 선도하는 업체다. 1996년 창업 이래 체성분분석기라는 한 우물을 파왔다. 체성분분석기란 인체에 미세한 전류를 흘려보내 체지방, 수분, 근육량 등 각종 생체정보를 측정하는 장치다.

국내의 웬만한 병원과 한의원, 헬스장에서 쓰이는 대부분의 체성분분석기가 바이오스페이스의 인바디일 정도로 국내 시장에서 독보적이다. 국내 시장 점유율은 70%를 넘는다. 지난해 전국 초등학교의 양호실이 모두 바이오스페이스의 체성분분석기를 도입했고, 올해와 내년에는 중·고교 양호실에도 납품된다.

해외 시장에서도 인기다. 바이오스페이스의 인바디는 현재 일본, 미국, 유럽 등 40개국에 수출되고 있다. 매출액의 절반 정도를 해외에서 벌어들인다.

현재 전 세계 체성분분석기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것은 일본의 타니타와 옴론이다. 이 두 기업의 시장 점유율은 90%에 달한다. 하지만 고가의 전문가용 체성분분석기 시장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전문가용 시장은 타니타가 35% 정도이며, 그 뒤를 점유율 20%의 바이오스페이스가 뒤쫓고 있다. 특히 임상실험 등에 쓰이는 초정밀 체성분분석기 시장은 바이오스페이스가 독차지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체성분 분석 관련 논문을 발표하는 의사들이 자신의 논문에 체성분분석기라고 표현하지 않고, 바이오스페이스의 브랜드명인 인바디를 사용하고 있을 정도다.

이러한 기술적 우위를 통해 실적도 빠르게 늘고 있다. 2007년 125억원 수준이던 매출액은 2008년 175억원으로, 지난해엔 279억원으로 급증했다. 영업이익률도 20% 이상을 유지할 정도로 높다. 창립 이래 14년간 적자를 기록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바이오스페이스가 글로벌 금융 위기에도 국내외에서 매출과 이익이 꾸준히 늘었던 것은 탄탄한 기술력 덕분이다. 센서를 통해 들어온 인체정보를 체계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알고리즘이 핵심기술이다. 이 회사의 인바디는 미국 FDA, 일본의 의료기기 허가, 유럽 CE 등 각종 승인과 세계 특허를 획득하며 글로벌 시장에서 그 품질을 인정받고 있다. 보유하고 있는 특허만 40여 개에 달한다. 특히 전 세계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기업이 버티고 있는 일본 시장을 공략할 수 있었던 것 역시 깐깐한 기술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바이오스페이스의 인바디가 체성분분석기의 대표주자로 인식되고 해외에서도 인정받고 있는 것은 꾸준한 연구개발의 결과다. 이 회사는 연구개발 중심 기업으로 매년 수익의 20%가량을 연구개발비로 투자하고 있다. 전체 직원 99명 중 연구 인력이 30명에 이른다.

차기철 사장은 “단기 성과보다는 새로운 기술개발을 통해 성장 동력을 마련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며 “앞으로도 지속적인 R&D 투자를 통해 안정적인 수익성을 유지할 수 있는 탄탄한 기업을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체성분분석기의 표준 형태 고안

체중계 위에 전류가 통하는 손잡이가 달려 있고, 이를 통해 신체 각 부위의 체성분을 따로 계산해주는 체성분분석기의 표준 형태를 고안해 낸 것은 차 사장이다.

차 사장이 체성분분석기를 접하게 된 것은 1991년 미국 유타 대학 생체공학 박사과정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연세대학과 카이스트 등을 거쳐 미국에서 유학중이던 그는 우연히 체성분분석기를 보게 됐다.

“당시 전류를 이용한 체성분 분석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었어요. 그래서 저도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관련 논문과 장비를 보게 됐는데, 보자마자 더 좋게 만들 수 있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어요. 그래서 지도교수에게 아이디어를 내고 단독연구를 시작하게 됐죠.”

하지만 기계만 알아서는 제대로 된 체성분분석기를 만들기 힘들었다. 그는 하버드 대학 의과대학에서 박사 후 과정(포스트닥)을 밟으면서 본격적인 연구를 이어갔다. 하버드 의대는 체성분 분석 연구에는 더없이 좋은 환경이었다. 수술환자, 장기입원환자 등이 많았기 때문이다.

“환자들의 영양 상태를 파악하는 데 체성분 분석이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체중관리만으로 환자들의 영양 상태를 제대로 알 수 없기 때문이죠. 체성분분석기는 지방과 수분, 그 중에서도 부종이라고 볼 수 있는 세포 외 수분과 근육이라 볼 수 있는 세포 내 수분을 구별해 주기 때문에 세심한 영양관리가 가능하죠.”

이러한 환경 덕분에 그는 의사나 영양학자들과 함께 더욱 정확한 체성분 측정방법을 연구할 수 있었다. 부위별로 체성분을 측정하는 방법 등 현재 인바디에 적용된 기본적인 기술도 그 당시에 어느 정도 연구된 것이다.

4년간의 박사 후 과정을 마친 후 미국에서 꿈을 펼칠 수 있는 기회도 있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제품을 만들어 보겠다는 공학도로서의 꿈을 접을 수가 없었다. 그는 그 꿈을 펼치기 위해 한국으로 돌아왔다.

“사실 유학을 가면서 창업을 생각하진 않았어요. 하지만 돌아올 땐 좋은 기계를 만들어 팔아서 먹고 살 정도만 되면 대학 교수를 하는 것보다 열 배는 재미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아주 단순했죠. 돈을 많이 벌겠다는 생각도 없었어요. 하지만 의료기기 시장에서 국내 제품이 전무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국산 기술의 우수성을 입증해 보겠다는 생각은 있었어요.”

해외 시장에서 더 비싼 값에 팔려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의료기기 회사 등에 체성분분석기를 개발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다들 체성분분석기가 뭐냐는 반응뿐이었다. 창업을 할 수밖에 없었다.

1995년 1월 서울 삼성동 쪽방에서 직원 두 명을 보조사원으로 두고 연구를 시작했다. 체성분분석기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는 머릿속에 다 있었지만 실제로 구현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사무실에서 새벽까지 일하고, 아침이면 인근 목욕탕에서 씻고, 잠깐 눈을 붙였다. 그리고 다시 출근하는 생활이 근 1년 동안 이어졌다.

“그때는 먹지도 않고, 자지도 않고 제품 개발에만 매달렸어요. 처음 시작하는 회사는 다들 그렇지 않나요? 그래서 특별히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당시 일본 제품은 양발의 각각 두 지점을 측정하는 4점 접촉부위 방식을 사용했지만 그는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양손과 양발의 8지점을 측정하는 8점 접촉부위 방식을 개발했다. 1년간 연구개발에 매진한 끝에 첫 작품인 ‘인바디 2.0’이 나왔다.

1996년 3월 국제의료기기 전시회인 키메스(KIMES)에 인바디 2.0을 처음으로 선보였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냉담했다. 체성분 분석에 대한 개념조차 제대로 잡혀 있지 않았던 상황이었다. 그해 5월 바이오스페이스를 설립하고 본격적인 영업에 나섰다. 병원이나 한의원을 무작정 찾았다. 하지만 누구도 그를 만나주지 조차 않았다.

“한 달에 한 대만 팔자고 목표를 잡았는데, 그것도 힘들더군요. 그래서 제품 카탈로그를 동봉한 편지를 비만치료 전문병원이나 한의원에 보냈어요. 그 중에서 관심을 보이는 곳을 찾아가는 방식으로 영업을 시작했어요. 한 달에 300통 정도를 보내면 두 군데 정도에서 관심을 보이더군요.”

처음으로 인바디를 판 것은 그해 9월경이었다. 그는 그 당시를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한의원이었는데, 한 스무 번은 찾아 갔을 겁니다. 약을 처방하면 환자들의 체성분이 변하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고 했는데 반신반의하더군요. 그래서 인바디를 갖다놓고 환자들의 체성분 변화를 직접 눈으로 확인시켜줬죠.”

한 대가 팔린 이후부턴 영업이 술술 풀리기 시작했다. 6개월 새 100여 대가 팔렸다. 생산설비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상태여서 주문량을 맞추기도 힘들 정도였다.

1998년부터는 해외 시장 공략에도 나섰다. 외환 위기 당시 국내 한 의료기기 업체가 일본에 수출해 보겠다고 먼저 제안해 왔다. 2000년에는 일본에 현지법인을 설립하고 본격적인 영업에 나섰다. 시장 진입이 쉽지 않았다. 일본은 저가의 가정용 체지방계가 주를 이루고 있어 전문가용 체성분분석기를 판매하기 위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것도 큰 어려움이었다.

바이오스페이스는 이러한 난관을 기술력으로 극복했다. 국내에서 1600여만원에 판매되는 인바디의 가격을 일본에서는 4000만원에 가깝게 매겼다. 연구활동이 활발한 병원을 타깃으로 했다. 의료용을 넘어 연구용으로 사용할 수 있을 만큼 기술력에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 학회에 인바디를 사용한 논문이 많이 발표되도록 유도해 브랜드 인지도와 장비의 신뢰도를 높여 나갔다. 예상은 적중했다. 인바디를 활용한 논문이 투석학회, 영양학회 등에서 꾸준히 발표되면서 동경대학 의대를 비롯한 대학병원에서부터 지역 중소병원까지 인바디가 널리 보급되기 시작했다.

피트니스 시장에서도 기술력을 백 배 이용한 전략이 효과적이었다. 주말이면 일본 유명 피트니스 체인점을 찾아가 회원들에게 무료로 체성분 측정을 해주며 다양한 검사결과 항목과 정확한 측정값으로 회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기존의 저가 체지방계와 확연히 다른 측정결과로 회원들의 좋은 반응을 얻자 고급 피트니스센터 위주로 제품이 판매되기 시작했다. 현재 일본에는 도쿄, 오사카, 후쿠오카, 센다이 등 네 곳에 지사를 설치했고, 200만엔 이상의 고가제품을 약 3000여 대 이상 판매하는 실적을 올렸다.

일본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까다로운 일본 소비자들의 질문에 일일이 성실하게 응대하며 신뢰를 쌓은 것도 한 요인이다. 차 사장은 “100번 넘게 질의를 한 고객도 있었는데, 그 고객에게 충실히 답변을 했다”며 “특별한 마케팅을 펼치기 보단 서두르지 않고 신뢰를 높이는 데 주력한 것이 성공요인”이라고 말했다. 바이오스페이스는 일본뿐만 아니라 미국과 중국에도 현지법인을 설립하고, 세계 40여 개국에 대리점을 설치해 적극적으로 해외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특히 중국 법인은 2008년에 설립됐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상반기 매출액이 전년 동기 대비 두 배나 성장하는 등 빠른 성장세를 보여 앞으로 가장 큰 수출창구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위기도 있었다. 탄탄대로를 달리던 바이오스페이스가 성장 정체에 빠진 것은 2003년 무렵. 인바디를 흉내 낸 제품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가격 경쟁이 치열해졌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중국에서도 대여섯 개 회사가 체성분분석기를 만들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긴장하고 있어요. 앞으로 2~3년만 지나면 인바디를 복제한 제품들이 나타나기 시작할 거라고 예상하고 있어요. 이들보다 기술적 우위에 서기 위해 연구개발에 매진하고 있어요.”

가정용 시장 개척 주력

바이오스페이스는 체성분분석기 연구개발에 꾸준히 투자하는 것은 물론 체성분 분석결과를 바탕으로 영양·운동 가이드 제공 프로그램과 건강증진 시스템, 국내 최초의 상향가압식 혈압계 등 다양한 건강관리 서비스를 제공해 토털헬스케어 그룹으로 성장한다는 계획이다.

이는 U-헬스케어가 주목받으면서 병원 중심이던 의료기 시장이 가정으로 옮겨 가면서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이다. 바이오스페이스도 이러한 트렌드에 맞춰 사업영역을 확장해 왔다. 지난 2008년에 인천 송도의 아파트 1600가구에 U-헬스용 장비를 넣었고, 지난해에는 1000대가량을 납품했다. 올해에는 정부에서 주관하는 스마트케어 시범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이미 일부 가정용 제품 개발을 마친 상태다.

“U-헬스 시장이 활성화하면 가정용 체성분분석기 시장 역시 폭발적으로 성장할 겁니다. 가정용 체성분분석기는 U-헬스 사업의 가장 기본이 되는 제품입니다. 머지않아 체성분분석기가 TV나 냉장고와 같은 가정용 가전제품으로 자리 잡게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