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4월 한국 시장에 상륙한 스바루는 세계 최초로 사륜구동 승용차를 만들어낸 기술제일주의 브랜드다. 평범한 패밀리 세단과 왜건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대중 브랜드인가 하면, 세계랠리선수권(WRC)에서 최강자로 군림하고 있는 모터스포츠 강자이기도 하다. 모든 일본 자동차 회사들이 고전을 면치 못할 때도 북미 시장에서 최고 실적을 올렸던 스바루의 저력은 바로 이 같은 기술력에서 나온다. 간판스타는 단연 중형 세단 레거시다.

기술제일주의 브랜드의 글로벌 스타 

 

일본 자동차 산업이 세계 최강의 반열에 올라설 수 있었던 것은 단지 토요타와 닛산 같은 대형 자동차 브랜드가 있어서가 아니다. 세계 최대 규모의 자동차 회사에서부터 그들보다 외형 규모는 작지만 독창적인 기술을 가진 업체들에 이르기까지 저마다 개성과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브랜드들이 두터운 스펙트럼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규모는 작지만 탁월한 기술력과 재능을 자랑하는 이들 업체들이야말로, 오히려 오늘날 일본 자동차 산업을 있게 해준 숨은 주역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후지중공업의 자동차 브랜드인 스바루는 바로 일본 자동차 산업의 저변을 받쳐주는 대표적인 개성파 회사 중 하나다. 스바루의 모태인 후지중공업은 1917년 항공기 연구소에서 출발한 엔지니어링 전문회사. 이후 1931년 설립자 나카지마 치쿠헤이의 이름을 따 일본 최초의 항공기 제작회사인 ‘나카지마 항공회사’로 성장했으며, 1945년 후지산업으로 재편된 이후에는 항공기뿐 아니라 스쿠터 등으로 사업영역을 확대했다. 1953년 자동차 섀시와 엔진, 버스 생산업체 등과 제휴 합병을 거쳐 지금의 후지중공업이 완성되었다.

차를 만들려면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

후지중공업 초대회장 켄지 키타는 자동차에 대해 확고한 신념을 가진 인물이었다. 그는 입만 열었다 하면 “자동차를 만들려면 제대로 만들라”고 주문했고, 그 때의 기술제일주의 원칙은 지금까지도 스바루를 지배하는 근간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는 1954년 후지중공업 최초의 자동차 프로토타입(prototype; 대량생산에 들어가기 전 시험적으로 만든 자동차) P-1이 탄생하자, 황소자리에 있는 여섯 개 별로 이뤄진 플레이아데스성단(星團)의 이름을 따 ‘스바루’라는 브랜드 명을 지었다. 스바루는 일본 고대문학에 자주 등장하는 별자리 중 하나로, 일본인들에게는 친숙한 이름이기도 하다.

일본 최초의 항공기 제작사를 모태로 한 기업인만큼 후지중공업은 그들의 첫 양산 자동차인 스바루 360(1958년)을 내놓을 때부터 항공기 설계 개념을 적극적으로 도입해 독특한 자동차를 만들어냈다. 지금은 일반화되었지만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일체형 차체 구조(모노코크)와 경량 플라스틱 부품 활용 등 항공기 제작 과정에서 갈고 닦은 기술을 마음껏 발휘한 것이다. 1966년에는 지금까지도 스바루의 핵심기술로 자리 잡고 있는 수평대향 엔진을 처음 공개했다. 수평대향 엔진은 피스톤이 수직으로 서있는 다른 차들과 달리 서로 마주보는 형태로 배치한 것으로, 마주 보고 늘어선 피스톤의 작동이 마치 복싱선수가 펀치를 교환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복서(Boxer) 엔진’이라고도 한다. 기술적 난이도가 높으나, 균형감이 좋고 엔진 회전 수를 부드럽게 높일 수 있는 게 장점이다. 특히 엔진을 작고 가볍게 만들 수 있어 차체 앞뒤 무게중심을 낮추는 효과도 얻을 수 있다. 현재 전 세계 자동차 회사들 중 이 엔진을 만들고 있는 회사는 스바루와 정통 스포츠카 브랜드 포르쉐, 단 두 곳뿐. 그 만큼 고도의 기술력을 요한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수평대향 엔진과 더불어 스바루를 상징하는 또 다른 기술은 엔진 힘을 네 바퀴 모두에 전달하는 사륜구동 시스템이다. 스바루는 주로 SUV에 쓰이던 사륜구동 시스템을 일반 승용차에 적용한 최초의 자동차 회사로, 1972년 이후 계속해서 사륜구동 승용차를 내놓으며 악천후나 거친 도로 조건을 극복하는 안정적 주행성능을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지금까지도 스바루를 대표하는 이미지는 수평대향 엔진과 사륜구동, 그리고 왜건이다. 수평대향 엔진과 사륜구동 시스템은 스바루의 높은 기술력을 상징하고, 왜건은 주력 시장인 미국을 겨냥한 실용성을 대표한다. 고도의 기술력과 실용적 대중성을 겸비한 브랜드, 바로 그 같은 성격을 바탕으로 스바루는 ‘주행의 즐거움(driving pleasure)’을 강조하고 있다.

언제나 즐겁게 운전할 수 있는 자동차

스바루는 규모의 경제를 지향하는 대형 브랜드가 아니다. 지난 2009년 기준 모기업 후지중공업의 납입자본금은 1537억9500만엔(약 2조1479억원)이며, 직원 수는 1만2843명이다. 후지중공업의 사업 분야는 자동차와 산업용품, 항공우주, 환경기술 사업 등 총 네 가지. 이 중 자동차 사업 부문에 해당하는 스바루는 일본과 미국, 캐나다, 영국, 중국 등 세계 60여 개국에서 판매되고 있다. 올 상반기에는 전 세계 시장에서 총 25만4243대를 팔았으며, 이 중 64%인 16만2537대를 해외시장에서 판매했다. 전체 판매와 해외 판매 모두 최고치. 특히 각종 악재로 일본 자동차 회사들이 모두 고전을 면치 못하는 가운데 스바루만 북미 시장에서 가파른 상승세를 이어가 ‘작은 고추의 위력’을 새삼 절감케 하고 있다.

규모의 경제가 지배하는 세계 자동차 업계에서 소규모로 분류되는 스바루가 이토록 선전을 이어가고 있는 원인은 바로 우월한 기술력과 겉멋을 부리지 않는 실용성, 그리고 그를 바탕으로 오랜 세월 세계시장에서 쌓아온 신뢰도에서 찾을 수 있다.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스바루의 올 상반기 판매 대수는 세계 5위권인 현대(85만5140대)에 비하면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치지만, 내실은 그 어떤 브랜드 못지않게 탄탄하다.

스바루는 현재 경차에서 중형세단에 이르기까지 모두 16개 차종을 생산하고 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미국 시장을 책임진 핵심모델은 간판스타 레거시를 비롯해 CUV(Crossover Utility Vehicle) 아웃백과 SUV(Sport Utility Vehicle)인 포레스터, 도심형 크로스오버인 트라이베카, 그리고 준중형 임프레자 등이다. 이 가운데 레거시는 올해 7월까지 미국 시장에서만 2만2201대가 팔려 지난해보다 판매가 48%나 늘었다. 또한 까다롭기로 유명한 미국고속도로안전보험협회(IINS) 선정 ‘중형 세단 부문 2010년 가장 안전한 차’에 뽑혔으며, 지난해 미국도로교통안전국(NHTSA)으로부터 최고 안전등급인 별 다섯 개를 받기도 했다. 자동차 전문 사이트인 에드먼즈닷컴(www.edmunds.com) ‘2010년 최고의 패밀리카’에도 선정되면서 미국 시장에서 입지를 탄탄히 하고 있다.

아웃백 역시 미국 자동차전문지 <모터트렌드>가 선정한 ‘올해의 SUV상’을 지난해와 올해 2년 연속 수상하며 인기를 끄는 중. 올 상반기 미국 시장에서 지난해 대비 100%가 넘는 판매 증가를 기록해 일본 자동차 업계는 물론, 미국 시장에 진출한 모든 자동차 회사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스바루는 미국에서 가장 대표적인 패밀리카 브랜드로 탄탄한 입지를 구축하는 동시에 가장 터프한 모터스포츠로 유명한 세계랠리선수권(WRC)에서도 오랫동안 최강자로 군림하고 있다. 언뜻 평범한 듯 보이지만, 그 안에서는 주행성능을 향상시키기 위한 노력이 언제나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스바루가 ‘운전자의 자동차’임을 당당하게 자처할 수 있는 데는 다 이 같은 이유가 있었다.

스바루코리아가 국내 시장에 출시한 차종은 중형 세단 레거시와 왜건인 아웃백, 그리고 SUV 포레스터 등 세 가지. 이 중 핵심모델인 레거시는 2.5 모델과 3.6 모델 등 두 가지가 들어온다. 가격은 각각 3690만원과 4190만원이다.

Tip | Technology

“눈길이든 온·오프 로드든 가리지 않고 힘찬 주행”

▷▶▷ 스바루의 한국 내 공식수입업체인 스바루코리아는 공식 런칭에 앞서 지난 2월18일 경기도 이천 지산포레스트리조트에서 ‘스바루 스노 익스피리언스’ 시승행사를 열었다. 이름 그대로 눈밭 위에서 펼쳐진 이 시승행사는 평범한 외모 속에 숨어있는 스바루의 강력한 주행성능과 승차감 등을 직접 체험해볼 수 있는 자리였다.

▷▶▷ 행사에 나온 차종은 레거시와 아웃백, 포레스터 등 국내 출시 3개 모델. 세계랠리선수권 우승자인 코니시 시게유키가 강사로 참여해 강력한 눈길 주행을 선보였다. 이날 스바루 차종들은 모두 눈길이든 온오프로드든 가리지 않고 안정적이면서도 힘찬 주행성능을 자랑했다.

▷▶▷ 이날 레거시와 함께 선보인 아웃백은 1995년 출시한 스바루의 대표적인 CUV로 스포티한 성격 외에도 넓은 실내와 실용적인 레이아웃을 갖춰 도심과 아웃도어를 두루 아우르는 자동차다. 현재 시판 중인 모델은 지난해 데뷔한 4세대. 1997년 출시되어 현재 3세대 모델을 시판 중인 포레스터는 낮은 무게중심 위에 대칭형 사륜구동 시스템을 탑재해 탁월한 오프로드 주파능력과 세단 같은 승차감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도록 해준다. SUV와 세단의 장점을 결합한 차로 꼽히며 북미에서는 주부를 비롯한 여성 운전자들로부터 인기를 끌고 있다.

▷▶▷ 스바루코리아주식회사는 스테인리스 와이어 제조 세계 1위인 고려상사그룹이 일본 후지중공업과 제휴를 맺고 2009년 6월 설립한 법인이다.

미니 시승기

스바루 레거시 3.6R

“평범함 속에서 더욱 빛나는 비범함”

양산 브랜드에 비하면 생산 대수가 턱 없이 적지만, 나름의 특성을 인정받으며 견실한 시장을 확보하고 있는 브랜드를 니치 브랜드라고 한다. 니치 브랜드의 제품들은 언제나 대량생산 제품에 비해 강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 마련이다. 소위 ‘결정적 한 방’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스바루 레거시의 시승을 앞두고도 호기심이 일기는 마찬가지였다. 스바루는 일본 자동차 업계의 대표적인 니치 브랜드. 프리미엄 브랜드도 연산 100만 대를 넘기는 요즘, 대중 브랜드인 스바루의 생산규모는 50만 대 전후에 불과하다. 여기에다 세계 최초로 사륜구동 승용차를 만들었고 세상에 오직 둘뿐인 수평대향 엔진 제조업체 중 하나라는 사실까지 더해지면, 스바루는 니치 브랜드의 본색을 유감없이 드러낸다.

중형 세단 레거시는 스바루의 간판 모델. 지난해 미국에서 4만 대가량 팔렸으며, 올해에는 지난해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판매 대수를 기록하고 있다. 레거시의 엔진 배기량은 2.5와 3.6리터 두 가지. 시승차는 고급형인 3.6이었다.

레거시 3.6의 외관은 평범한 편이다. 차체길이는 4735㎜. 현대 쏘나타보다 10㎝ 정도 짧다. 하지만 차체너비는 쏘나타와 비슷하고, 높이는 3.5㎝ 정도 더 높다. 크롬을 많이 쓴 라디에이터그릴과 치켜뜬 헤드램프가 미국 시장 지향형 차종임을 드러내며 강한 이미지를 완성한다. 차체에 특별한 장식적 요소를 덧붙이지 않은 것도 빠질 수 없는 특징.

너무 평범한 게 아닌가 싶은데, 그 안에 숨어있는 비범한 성능과 쓰임새가 여간 아니다. 크지 않은 차체임에도 트렁크는 골프백 네 개는 거뜬히 들어갈 정도로 엄청나게 넓고 깊다. 차체가 높고 넓은 덕분에 앞뒤 좌석 모두 패밀리카로 쓰기에 모자람 없을 만큼 넉넉하다. 군더더기 하나 없는 직관적 인테리어는 오히려 낯가림을 덜어준다. 계기반 구성도 외모만큼이나 정직한 편. 왼쪽에 타코미터, 오른쪽에 속도계를 배치한 평범한 구성이다. 다만 수온계 대신 순간 연비를 볼 수 있는 에코 게이지를 마련한 점이 독특하다.

수평대향 6기통 3.6리터 엔진은 260마력의 최고출력을 낸다. 현대 그랜저 최고급형인 L330과 비슷한 파워. 특히 이 엔진을 차체에 바로 고정하지 않고 분리형 지지대(cradle)에 고정하는 방식을 택해 엔진 소음이나 진동이 차체에 직접 전달되지 않도록 배려했다. 레거시 3.6의 가속반응은 정확하면서도 경쾌하고, 추진력은 기대 이상으로 좋다. 운전은 무척 편안하다. 화장대로 써도 좋을 만큼 커다란 사이드미러 덕에 후방시야도 걱정 없다. 사륜구동 방식이라 코너를 돌아나갈 때면 노면에 착 들러붙은 차체가 묘한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레거시는 전형적인 일본 차와 분명 다른 느낌이다. 정숙성과 안락함을 추구하는 대다수 일본 세단들이 여성스러운 면을 보인다면, 운전 재미와 실용성을 우선으로 하는 레거시는 ‘미국적 실용성을 가미한 일본 차’라 할 수 있다. 평범한 외모 깊숙이 감춰놓은 비범한 유산(Legacy)을 찾아내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