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락앤락’은 밀폐용기의 대명사다. 실제 ‘락앤락’은 대명사라는 수식어를 듣기에 조금도 모자람이 없는 브랜드다. 주부들은 자신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주방생활용품인 밀폐용기를 지칭할 때 밀폐용기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저 ‘락앤락’이라고 말할 따름이다. 비단 주부들뿐일까? 남자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락앤락’ 외에는 달리 떠오르는 호칭이 없기 때문이다. 어떤 주부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상처에 붙이는 밴드를 거의 100% ‘대일밴드’라고 부르잖아요? ‘락앤락’도 마찬가지죠. 밀폐용기라는 말 대신 ‘락앤락’이라고 부르는 게 너무 자연스럽거든요.” 어떤 분야에서든 1등의 이름은 사람들의 뇌리에 깊이깊이 각인된다. 반면 2등 이하는 아무리 뛰어나도 금세 잊혀진다. 1등이나 선구자는 그래서 독보적으로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역사에도 남게 된다. 김준일(58) 락앤락 회장은 세상 모든 밀폐용기와 확실히 다른, 정말 새로운 밀폐용기를 만들겠다는 일념 하나로 거대한 성공의 씨앗을 틔웠다.

‘최초·프리미엄 제품’ 개발 뚝심

 밀폐용기 시장 글로벌 강자로 뜨다

지난 1월28일 락앤락은 코스피 시장에 신규 상장했다. 이후 락앤락 주가는 상승곡선을 그렸다. 그리고 4개월여 뒤, 김준일 회장의 지분가치는 1조원을 돌파했다. 주식 자산이 1조원을 넘는 이른바 ‘1조 클럽’의 새로운 회원이 탄생한 순간이다.

‘1조 클럽’은 사실 재벌가의 전유물이나 다름없다. 멤버 대다수가 재벌그룹 총수 혹은 그의 가족들인 탓이다. 그나마 ‘게임업계의 황제’로 불리는 엔씨소프트 김택진 대표 정도가 꾸준히 ‘1조 클럽’에 이름을 올리는 자수성가 케이스다. 이런 ‘1조 클럽’에 김준일 회장이 당당히 가입했다는 것은 ‘올해의 사건’이라고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어느 날 불쑥 재벌가 사람들과 당당히 어깨를 견줄 만한 거부 반열에 오른 김준일 회장. 하지만 그가 걸어온 길은 이제는 사뭇 퇴색한 ‘부(富)는 땀과 노력의 산물’이라는 경구를 다시금 떠올리게 하는 힘이 있다. 잠시 시계를 되돌려 밀폐용기 ‘락앤락’이 탄생하기 전으로 돌아가보자. ‘락앤락’ 개발은 김준일 회장의 오늘을 있게 한 결정적 도약대였다.

1990년대 말이었다. 김준일 회장은 매일 한 가지 숙제와 씨름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해결책을 찾기 위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것이 거의 1년이 다 되었다. 그를 온통 몰입시킨 것은 세상에 없던 완전히 새로운 밀폐용기를 개발하는 일이었다. 훗날 ‘락앤락’이라는 브랜드로 명명되는 바로 그 제품을 만들기 위해 김 회장은 밤낮없이 시제품을 이리 만지고 저리 살피고 있었던 것이다.

그 무렵 세계 밀폐용기 시장에서 가장 유명한 기업은 글로벌 주방용품업체 ‘타파웨어’였다. 하지만 김준일 회장은 타파웨어 제품이 근본적인 허점을 지니고 있음을 간파했다. 그의 머릿속은 순간 섬광이 튀었다. ‘타파웨어를 뛰어넘는 제품을 만들면 성공할 수 있겠구나!’

김준일 회장의 회고다. “당시 타파웨어 밀폐용기 제품은 뚜껑과 몸체를 최대한 밀착시켜 ‘밀폐력’을 보장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런데 뚜껑을 열기 쉽게 하면 밀폐력이 떨어지고, 밀폐력을 높게 하면 여닫기가 불편하다는 구조적 모순이 있었지요. 주로 ‘2면 결착’ 방식으로 만들어진 국내 제품들도 밀폐력이 큰 문제이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소비자들은 밀폐용기가 100% 밀폐가 안 된다는 사실에 불만이 많았어요. 그래서 저는 100% 밀폐가 되는 용기를 만든다면 세계 시장에서도 경쟁력이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됐습니다.”

4면 결착 방식으로 100% 밀폐 달성

김 회장은 새로운 밀폐용기의 기본 개념을 뚜껑에 날개를 달아 네 방향에서 몸체와 밀착시켜 닫는 ‘4면 결착’ 방식으로 잡았다. 그런데 힌지(용기와 날개를 연결하는 부분)의 두께를 어느 정도로 할 것인가가 선결과제로 대두됐다. 힌지의 신축성과 내구성은 밀폐용기의 완성도에 매우 중요한 대목이었다.

그는 연구진과 함께 최적의 힌지 두께를 찾기 위한 실험을 거듭했다. 밤을 새울 때도 많았다. 무수한 실패가 반복되던 어느 날, 마침내 0.4mm라는 최적의 힌지 두께를 찾아냈다. 그는 여기에서 한 가지 비책을 더 찾았다. 힌지에 얇은 홈을 내니 날개와 몸체가 완벽하게 밀착된 것이다. ‘락앤락’의 원형이 드디어 완성된 순간이었다.

지금은 거의 ‘일반명사’처럼 쓰이는 ‘락앤락(Lock & Lock)’ 브랜드. ‘잠그고 또 잠근다’라는 뜻이 단순하면서도 호소력이 있다. 이 브랜드는 김 회장이 직접 작명했다. 그는 자신의 사업가 인생을 확 바꾸는 계기를 준 ‘효자’의 이름을 어떻게 지었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락앤락’이라는 브랜드를 작명했는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아무리 고민해도 그럴 듯한 이름이 안 떠올랐는데, 어느 순간 갑자기 생각이 스쳤어요. 4면 결착 뚜껑을 열었다 닫았다, 하는 일을 반복하는 와중에 번쩍 생각이 났던 것 같습니다.”

‘락앤락’은 1998년 10월 마침내 세상에 첫 선을 보였다. 김준일 회장은 잔뜩 기대에 부풀어 ‘락앤락’을 출시했다. 일생일대의 역작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런데 웬걸, 시장의 반응이 시큰둥했다. ‘락앤락’은 아무리 뛰어난 제품이어도 처음 시장에 출시된 무명 브랜드였을 뿐이다. 무엇보다 유통망을 뚫기가 여의치 않았다. 소비자들에게 노출이 돼야 팔릴 텐데, 유통업체들이 선뜻 받아주지 않은 것이다.

주방생활용품은 기본적으로 고도 기술을 요하는 제품이 아니다. 당연히 진입 장벽이 높지 않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지 만들어 팔 수 있는 제품이다. 실제로도 그러했다. 수많은 업체들이 난립해 있었고, 어슷비슷한 제품들이 팔려나가고 있었다. 더욱이 소비자들은 어느 제품이 좋고 나쁜지를 알려고도, 따지지도 않았다. “뭐, 밀폐용기라는 게 다 똑같지!”라는 태도였다.

김준일 회장은 ‘락앤락’만큼은 다르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다. 소비자들이 ‘락앤락’의 장점을 알게 되면 분명히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통매장 진열대에 올려도 ‘락앤락’은 다른 제품들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았다. ‘락앤락’의 최대 강점인 밀폐력은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국내 홈쇼핑 외면에 먼저 해외로 눈길

김 회장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어떻게 하나…. 소비자들에게 ‘락앤락’만의 장점을 단숨에, 그것도 널리 알리는 방법은 없을까?’ 그는 궁리 끝에 해답을 찾아냈다. 그건 바로 홈쇼핑 방송이었다. 홈쇼핑을 통해 ‘락앤락’의 차별성을 알리기만 하면 분명히 반응이 올 거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또 다시 장벽에 부닥쳤다. 홈쇼핑업체들이 문을 열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실망감이 컸지만 좌절하지 않았다. 고개를 들어 멀리 내다보니 한국 시장과는 비교도 안 되는 광대한 해외 시장이 눈에 들어왔다. 발걸음을 해외로 옮겼다. 1999년 ‘락앤락’은 싱가포르로 처음 수출됐다. 해외 수출도 수월치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제품이 뛰어나도 판로를 개척하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점은 국내 시장과 똑같았다.

그런 와중에도 ‘기회’가 그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2000년 4월 홍콩에서 국제 주방용품 전시회가 열렸다. 한 외국인이 김준일 회장을 찾아왔다. 그는 캐나다에서 온 수입유통업체 대표였는데, ‘락앤락’의 탁월한 밀폐력에 큰 관심을 나타냈다. “저와 한 번 거래를 해보겠습니까?”

그로부터 6개월 후, 김준일 회장은 그 수입유통업체와 미국을 비롯한 북미 시장에 대한 독점 판매권 계약을 맺었다. 본격적인 해외 수출 활로가 뚫린 순간이다. 그뿐 아니라 이 계약은 ‘락앤락’의 북미 시장 정복을 알리는 신호탄이기도 했다.

2001년 락앤락은 미국 최대 홈쇼핑 채널인 QVC에서 데뷔전을 치렀다. 결과는 그야말로 대성공. 첫 회 방송에서 ‘락앤락’ 제품은 5000세트가 순식간에 매진됐다. QVC도 선풍적인 반응에 놀랐다. QVC는 2002년 말 TSV(Today’s Special Value)라는 인기 프로그램의 가장 시청률이 높은 시간에 ‘락앤락’을 초대했다. 이 때 ‘락앤락’은 불과 한 시간 만에 6만 세트 판매라는 대기록을 세운다. 세계적인 밀폐용기 브랜드로 우뚝 서게 된 출발점이었다.

해외 시장을 내다본 김준일 회장의 승부수는 적중했다. 외국에서 대히트를 치자, 국내 시장에서도 다급하게 ‘락앤락’을 찾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락앤락’의 진가를 알게 된 것이다. 그는 개선장군처럼 당당하게 돌아왔다. 한국에서도 ‘락앤락’은 날개 돋친 듯이 팔려나갔다. 예전의 설움은 깨끗이 사라졌다.

2003년 ‘락앤락’은 국내 시장에서 매출액 1000억원을 넘어섰다. 대성공이라 할 만한 실적이었다. 하지만 김 회장은 만족감에 취해 있지 않았다. 내수 시장의 한계를 면밀히 따져봤기 때문이다. 그는 다시 해외로 눈을 돌렸다. 타깃은 거대 시장 중국이었다.

김준일 회장은 2004년 상하이 법인을 설립하면서 중국 시장 공략의 교두보를 마련했다. 이어 베이징, 선전에 법인을 세우는 한편 14개 도시에 분공사(지사)를 잇달아 열었다. 또한 산둥성 위하이, 장쑤성 쑤저우에는 공장을 건립해 생산 기지도 확보했다.

중국 시장서 연 평균 147% 성장률

‘락앤락’은 중국 시장에서도 돌풍을 일으켰다. 2004년 진출 첫 해부터 2009년까지 5년간 연 평균 성장률은 무려 147%에 이른다. 특히 2008년에는 중국 시장 매출액이 1100억원에 달해, 락앤락 전체 매출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핵심 시장으로 부상했다.

덩달아 중국 내 ‘락앤락’ 브랜드 인지도 역시 크게 높아졌다.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등 대도시에서는 ‘락앤락’이 밀폐용기 부문 브랜드 인지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처음 법인을 설립했던 상하이의 경우 무려 99%라는 브랜드 인지도를 달성했다. 도대체 이런 성공의 비결은 무엇일까? 김준일 회장이 귀띔한다. “중국에서 ‘락앤락’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프리미엄 시장 공략과 유통채널 확보, 브랜드 이미지 구축에 힘을 쏟은 결과입니다.”

김 회장은 중국 시장 진출 초기부터 ‘프리미엄 브랜드 전략’을 내세웠다. 저가 제품 천국인 중국에서는 오히려 고급 이미지로 파고들어야 승산이 높다고 봤기 때문이다. 대도시 A급 상권에 플래그십 스토어를 개장한 것도 중산층 소비자를 겨냥한 것이다.

때마침 중국을 강타한 한류 열풍을 적절히 활용하는 전략도 구사했다. 2005년 중국에서는 한국 드라마 ‘대장금’이 큰 인기를 끌었다. 그 덕에 한국 음식과 주방용품에 대한 관심이 고조됐다. 김 회장은 제때 타이밍을 살렸다. ‘한상궁’ 역할을 한 탤런트 양미경씨를 광고모델로 내세워 한류 마케팅을 전개한 것. 이 전략도 적중했다. ‘락앤락’ 매출은 큰 폭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모든 게 탄탄대로는 아니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던 것이지만 ‘복병’이 나타났다. 바로 ‘짝퉁’ 제품들이다. ‘락앤락’의 인기가 치솟자, 이에 편승하려는 얄팍한 업자들이 우후죽순 짝퉁을 찍어냈다. 중국은 짝퉁 천국이다. 자동차도 짝퉁을 만들어내는 마당에 주방용품은 그야말로 식은 죽 먹기인 셈이다.

김준일 회장은 어떻게 짝퉁 세력의 집중포화를 헤쳐나갔을까? 그의 대응책은 ‘최선의 방어는 최선의 공격’이라는 격언과 닮았다. 일종의 정공법이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중국에 진출하면서 카피 제품에 대한 대응 전략을 고민했습니다. 중국에서는 카피 제품과의 전쟁이 필연적이기 때문이죠. 저는 ‘락앤락’ 정품은 카피 제품이 흉내 낼 수 없는 독보적인 제품력이 있다는 사실을 소비자들에게 더욱 확실하게 알리는 게 최선이라고 봤어요. 즉, 브랜드 파워를 높이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거죠.”

‘짝퉁’ 물리치는 해결책은 ‘정공법’

그는 짝퉁의 도발에 일일이 대응하지 않았다. 체력을 낭비하는 소모전이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대신 짝퉁들이 아예 따라오지 못하도록 멀찌감치 앞서가는 데 역량을 집중했다. 바로 연구개발(R&D)을 한층 강화한 것이다. ‘락앤락’은 R&D에 전체 매출의 약 5%를 투자한다. 5%라는 비율은 가볍게 볼 게 아니다. 첨단산업 분야에서도 매출의 5%를 R&D에 투자하기란 쉽지 않다. 그는 R&D의 중요성을 이렇게 말한다.

“소비자들의 니즈는 다양한 데다 빠르게 변화합니다. 특히 주방생활용품 시장은 더욱 그렇습니다. 소비자들의 니즈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빨리 충족시키느냐 하는 게 경쟁력의 관건이죠. 저는 R&D를 담당하는 직원들에게 항상 ‘소비자 눈높이에서 필요한 요소가 무엇인지 생각해봐라’고 강조하곤 합니다.”

‘락앤락’은 현재 세계 100여개 나라에 수출되는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했다. 2009년 기준 세계 밀폐용기 시장에서 점유율 7.2%로 당당히 3위 기업의 위상이다. 김준일 회장은 여기에서 만족하지 않는다. 그는 2013년까지 밀폐용기 시장에서 ‘글로벌 넘버원 브랜드’로 도약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중국에 이어 동남아, 남미 등 이머징 마켓을 집중 공략하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계산이 서 있다. 그 이후의 미래 비전도 착착 추진 중이다. ‘락앤락’은 현재 조리용품, 주방용품, 유아용품 등으로 사업군을 넓혀 나가고 있다. 김준일 회장이 가슴에 품은 야망을 밝힌다. “밀폐용기 세계 1위를 넘어 글로벌 종합 주방생활용품 전문기업으로 우뚝 서는 것이 저의 큰 꿈입니다.”

TIP// 김준일 회장의 ‘성공의 원칙’ 김준일 회장은 최근 ‘성공의 원칙’이라는 10계명을 만들어 임직원들과 공유하고 있다. 중국 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한 지침을 담은 10계명에는 그의 경영철학이 잘 드러나 있다.

1.내가, 바로 즉시, 현장에서 시범을 보여야만 직원들이 정확히 배울 수 있다.

2.가장 쉬운 것부터 공략하되, 변화는 빠를수록 좋다(Simple & Speed).

(그는 보름에 한 번씩 중국을 직접 방문, 빠른 의사결정을 유도한다. 또 방문할 때마다 한 가지씩 일을 진척시켜 나간다)

3.의존해서 안될 바에는 처음부터 직접 하라.

(남의 머리를 통해서 최고의 성과를 이루기는 어렵다)

4.수출과 내수 기지를 분리하라.

(수출은 수출하기 가장 좋은 지역, 내수는 내수하기 좋은 지역에서 하는 것이 좋다)

5.현지 특성에 맞는 전략을 수립하라.

(중국 소비자의 2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중국 제품에 대한 의심이 엄청 많다. 두 번째, 브랜드에 엄청 약하다)

6.한국보다 좋은 최신 설비와 기술로 무장시켜라.

(대부분 한국 기업은 한국에서 사용하던 기계를 들여와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보다 더 좋은 최신 기계, 최신 금형, 그리고 가장 똑똑한 사람을 보내자는 원칙을 세웠다)

7.주재원 비율을 무시하라.

(한국 기업 대부분은 주재원과 현지인의 비율이 1:100이다. 비용 부담 때문에 그런 경우가 많다. 하지만 비용 아낀다고 돈이 남지는 않는다고 생각해 공장 파트별 담당자를 다 보냈더니 14명이 되었다. 그러니까 한국과 동일하게 생산이 이루어졌다. 현재 현지인 20~30명당 주재원 1명의 비율이다)

8.능숙한 현지 언어를 구사하라.

(예를 들어 영업사원의 경우 문제가 생겼을 때 바이어와 30분 이상 싸울 수 있을 만큼 중국어를 잘 하느냐를 따져본다)

9.보이지 않는 것에 투자하라.

(보이지 않는 것, 가령 CI나 BI 등 회사 이미지에 대한 투자는 대부분 익숙하지 않다. 보이지 않는 것은 보이는 것으로 나타나기 위한 전 단계다)

10.원칙 준수, 편법 배제.

(중국에 들어온 한국 기업 중에는 편법 회계처리를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시간 들이느니 원칙대로 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