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기업의 중흥이 시작됐다. 새로운 산업이 요구되는 시기마다 벤처기업은 그 해답이 됐다. 지난달 본지가 발표한 <한국의 100대 벤처>는 그 대표기업들이다. 본지는 이번 호부터 100대 벤처의 좌충우돌 성장기와 그들이 꿈꾸는 미래를 집중 조명하기로 했다. 그들의 도전정신과 기업가정신은 기존 기업에도 ‘죽비소리’가 되리라 기대한다. 그 첫 순서로 24위를 차지한 ‘골프존’을 찾아갔다.

네트워크 강한 스크린골프 제왕

‘올댓 골프 프로젝트’ 본격 가동

2005년의 어느 날이었다. 김영찬 골프존 사장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창업을 한 지 5년 2개월간의 제품 개발을 마치고 이제 먹고살 만해진 무렵이었다. 2002년 10억원으로 첫 매출을 기록한 후 매년 판매액이 크게 불어나고 있던 차였다. 하지만 김 사장은 ‘이 사업을 계속 해야 하나’라는 근본적인 물음을 자신에게 던지고 있었다.

골프존의 제품을 이용해 스크린골프장을 개업한 강릉의 한 점주와의 만남이 계기가 됐다. 이 점주는 김 사장에게 “사장님, 전 이 사업에 전 재산을 걸었습니다. 제품이든 서비스든 정말 잘 해주셔야 합니다”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김 사장은 혼란스러웠다. 골프가 좋아 ‘소일거리’로 시작한 사업이었다. 골프존의 직원과 그 가족만 잘 먹고 잘 살면 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컸다. 그런데 이제는 점주들과 그 가족까지도 책임져야 하는 것 아니냐는 데 생각이 미치자 어깨가 무거워졌다. 고민 끝에 김 사장은 결론을 내렸다. 제대로 해보겠다는 마음을 굳힌 것이다.

제대로 기업을 일궈보기로 한 김 사장과 골프존의 행보는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졌다. 김 사장은 기업의 철학과 비전, CI, 조직 등을 손보기 시작했다. ‘기업다운 기업’을 일으키겠다는 각오였다. 우연의 일치인지 몰라도 변화를 시작한 골프존은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2005년 50억원이던 매출액이 2008년 1009억원으로 3년 사이에 20배 이상 불어났다. 2002년 이후 연평균 매출성장률이 102%에 이른다.

온라인 서비스 시작하며 승승장구

골프존의 성장사는 2단계로 구분된다. 1단계는 창업 후 2006년까지다. 이때의 성장동력은 제품이라는 하드웨어 판매였다. 당시까지 골프존은 크게 주목받는 기업이 아니었다. 2006년 매출이 120억원이었으니 평범한 벤처기업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시장점유율 1위라고 하지만 지금처럼 압도적이지는 않았다. 현재 골프존의 스크린골프 시장점유율은 80%에 육박한다.

골프존의 경이적인 성장곡선은 2단계인 2007년부터 본격화된다. 2007년 매출액이 전년에 비해 3배, 2008년에도 전년 대비 3배 불어나며 ‘1000억원 클럽’에 가입했고 올해는 2000억원 돌파가 확실시된다. 고속성장의 원동력은 성장엔진의 교체에서 찾을 수 있다. 하드웨어 판매에서 ‘문화 서비스’로 전략을 전환하면서 매출과 점유율 모두 비약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올해 한국은 물론 세계 경영계의 화두 중 하나는 ‘컨버전스’였다. 과거 기업들은 하드웨어면 하드웨어, 소프트웨어면 소프트웨어만 팔았다. 하드웨어 기업이 소프트웨어를 동시에 파는 일은 흔치 않았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하드웨어 기업이라도 소프트웨어를 결합하지 않으면 물건을 팔기 어렵기 때문에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결합한 비즈니스 모델을 추구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컨버전스’라는 키워드로 제시됐다.

골프존의 2단계 성장은 바로 이 ‘컨버전스 전략’의 성공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골프 시뮬레이터라는 하드웨어에 인터넷 네트워킹에 기반한 서비스라는 소프트웨어가 결합한 것이 가파른 성장곡선을 그릴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됐다. 2006년 9월에 런칭한 서비스 브랜드인 ‘골프존 라이브’가 그 출발이었다.

현재 골프존의 제품을 이용한 스크린골프장은 4000개에 가깝다. 골프존은 이들을 온라인으로 연결해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새로운 콘텐츠나 프로그램을 온라인으로 다운받아 제품의 기능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게 했다. 또 각 점포를 연결해 부산의 고객과 서울의 고객이 게임을 할 수 있는 시스템도 마련했다. 이를 이용해 각종 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골프존닷컴’이라는 온라인 사이트를 개설해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관련 제품을 판매한다. 골프존이라는 이름 아래 거대한 ‘골프 문화공간’을 건설한 셈이다.  

네트워크를 이용한 게임과 대회가 활성화되면서 골프존 점포의 라운딩 수, 다시 말해 이용률이 높아졌다. 스크린골프장을 창업하려는 사업자들 중에 이용률이 높아 수익성이 좋은 골프존을 찾는 사업자들이 증가하면서 하드웨어 판매도 자연스레 늘어났다. 고객들의 충성도가 높아져 이탈율은 제로에 가깝게 됐다. 경기기록, 스윙모습 등 자신의 각종 기록이 저장돼 있기 때문에 다른 골프장을 이용하기 꺼려진다. ‘한 번 고객은 영원한 고객’이 되는 선순환이 자리잡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장성원 골프존 경영관리본부장은 이렇게 회고한다. “하드웨어 제품 시장은 어차피 포화에 이르게 돼 있지 않습니까. 또 향후 대기업이나 중국의 기업들과도 경쟁할 수 있는데 그때가 되면 원가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라는 위기감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선택한 전략이 ‘브랜드 파워를 앞세운 문화기업’으로 간다는 것이었습니다. 향후 서비스 부문 매출은 더욱 확대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매니지먼트 측면에서도 골프존은 차별적이다. 골프존의 핵심 역량이 아닌 부문은 과감히 아웃소싱한다. 생산, 영업, 마케팅 등 경영의 상당 부문이 그렇다. 핵심적인 것만 본사에서 하고 나머지는 외부의 사업자와 파트너 관계를 통해 해결하고 있다. 조직의 규모를 슬림화해 민첩함을 잃지 않으면서 성과도 낼 수 있는 구조다. 골프존의 이런 운영 방식은 해외 MBA의 케이스스터디로도 소개되는 등 독특한 경영시스템으로 주목받고 있다.

적극적 아웃소싱·집단지성 경영

영업은 전국의 4개 판매법인이 담당한다. 본사와 아무런 지분관계도 없는 독립 사업체들이다. 지역을 잘 아는 이들이 해당 지역의 영업 전략을 독자적으로 세워 관리한다. 창업설명회, 판촉 마케팅 등도 이들의 몫이다. 본사도 마케팅을 하지만 전국 단위의 포괄적인 부분만 담당한다. 생산은 센서 등 핵심 분야를 제외하고 전량 외주다.

장 본부장은 “골프존 제품의 상당 부분이 프로젝터, 카메라 등 기성품인 데다 스윙플레이트 등의 기기는 아웃소싱하면 시설 투자 부담을 줄이면서 제품 단가도 낮출 수 있다”며 “골프존의 경우 직접 생산에 따른 효용이 적기 때문에 앞으로도 직접 생산을 할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생산은 몰라도 기술에 대한 욕심은 끝이 없다. 2010년 8월 현재 38건의 특허를 등록한 상태며 76건에 대한 심사가 진행 중이다. 스크린골프라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낸 만큼 골프존이 개발한 기술과 제품은 대부분 특허의 대상이 된다. 골프존은 기술과 제품이 개발되는 대로 무조건 특허를 받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특허에 대한 전담부서를 두고 있을 정도로 체계적인 특허관리를 하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양질의 특허 확보와 특허 분쟁 리스크 예방을, 장기적으로는 골프존의 세계화에 필요한 특허망 확보와 로열티 수익 창출을 목표로 삼고 있다.

직원들의 ‘집단지성’을 활용한 경쟁력 제고도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부터 매년 사내 아이디어 공모전을 개최하고 있으며 직무 발명 활성화를 위해 직무발명보상제도를 마련했다. 올해엔 이를 보다 획기적으로 발전시킬 계획이다. 회사가 과제를 제시하면 이에 관심 있는 직원이 자원을 한다. 회사는 그 직원의 계획을 검토한 후 필요에 따라 자금과 인력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한 마디로 해당 과제에 대한 ‘소사장’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장 본부장은 이렇게 강조한다. “골프존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모토로 삼고 있습니다. 실패도 자산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설혹 프로젝트에 실패해도 불이익은 절대 없습니다. 골프존은 벤처기업이고, 도전정신에 무게를 두는 기업입니다.”

스크린골프 인구는 매년 크게 증가하고 있다. 2008년 63만 명에서 지난해 127만 명으로 늘었으며 처음으로 필드 골프인구를 앞질렀다. 올해는 35%가 더 불어난 172만 명이 예상된다. 하지만 스크린골프 인구가 무한정 늘 수는 없는 일이다. 골프존은 이에 대한 준비를 하고 있다. 해외진출과 문화 서비스 사업의 확대·강화가 그것이다.

내년, 상장으로 또 다른 도약

해외진출은 이미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일본과 홍콩에 현지법인을 두고 있고 중국, 유럽, 러시아 등에는 디스트리뷰터를 통한 판매를 하고 있다. 지난해 5%에 그친 해외매출 비중을 올해는 20%까지 늘리고 장기적으로는 50%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미국처럼 골프장에 대한 접근성이 좋고 비용이 저렴한 지역은 몰라도 중국, 동남아, 일본, 중동 등에는 스크린골프에 대한 잠재수요가 상당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장 본부장은 “나라마다 골프 시뮬레이터에 대한 요구 사항이 다르므로 철저히 현지화 전략을 실행할 것”이라며 “중국의 경우 골프 인구가 빠르게 늘고 있는 반면 레슨 코치가 부족해 레슨에 대한 수요가 많이 있으므로 레슨 기능을 접목한 형태의 사업 형태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화 서비스 사업도 강화한다. 여러 가지 모델이 검토되거나 추진되고 있다. 골프존닷컴을 통한 골프 쇼핑몰을 확대하고 골프 온라인게임도 개발하고 있다. 회원들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도 사업화한다. 골프를 처음 시작할 때부터 스윙, 타구, 자세 등을 저장 분석해 레슨이나 용품 권유를 할 수도 있고, 골프에 대한 컨슈머 리포트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어린이를 위한 골프 아카데미도 검토 대상이다. IT기술을 활용한 새로운 형태의 필드 골프 사업도 생각 중이다. 한 마디로 골프에 대한 모든 것을 하겠다는 얘기다. 장 본부장의 말이다.

"남녀노소 누구나 쉽고 편리하게 골프를 즐길 수 있도록 하는게 골프존의 목표입니다.이를 위해 내년에는 성장도 할 것입니다. 우리가 꿈꾸는 사업을 더 잘하고 싶어서입니다. 상장을 통해 생긴 새로운 니즈는 골프존을 더 건강하게 만들고, 확보된 자금도 골프의 대중화에 기여하리라 기대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