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발짝 두 발짝, 스텝을 밟는 모터가 있다. 전기자극에 따라 반 바퀴, 반의 반 바퀴만 도는 독특한 모터다. ‘스테핑모터’라는 것이다. 이름은 낯설지만 컴퓨터, 디지털카메라, 복사기 등 스테핑모터의 활약은 종횡무진이다. 스테핑모터의 세계적 강자가 국내에 있다. 스테핑모터처럼 낯선 이름이지만 25년 동안 줄곧 흑자를 기록하면서 무차입경영을 실천 중인 알짜회사다.

“전 세계 컴퓨터 둘 중 하나에 모아텍 모터가 돌아갑니다."

모아텍은 손톱만한 크기의 정밀모터로 세계를 호령하는 회사다. 특히 2005년 세계 일류 상품으로 지정된 ‘스테핑모터’를 만드는 곳이다. 이 모터는 컴퓨터, 복합사무기기, 디지털카메라 등 전자제품의 필수부품이다. 수요는 엄청나다. 임종관(60) 모아텍 사장이 지난 추석에도 가족들과 함께 보내지 못 했을 정도다.

“10년째 중국과 필리핀의 현지공장에서 명절을 지내고 있습니다. 스테핑모터에 대한 수요량을 맞추려면 공장이 일 년 내내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죠. 주재원들이 명절에도 가족들과 만나지 못하고 현지에 머물기 때문에 사장이라도 직원들 옆에 있어주는 것이 도리 아니겠어요?”

제품 90%를 수출, 기술력 세계적 수준 

모아텍은 25년째 모터로만 한 우물을 팠다. 이 회사가 만들어내는 것은 스테핑모터, BLDC모터, 액추에이터 등의 정밀모터들. 제품의 90%가 수출될 정도로 기술력은 세계적이다. 그 중에서도 주력제품은 스테핑모터다. 일반모터가 360도 회전하는 것과 달리 일정각도 내에서만 움직이는 것이 특징이다. 시스템이 요구하는 만큼 회전을 제어할 수 있기 때문에 미세한 조작이 가능하다. 디지털카메라에서 줌 기능이 작동하거나 프린터가 일정한 위치에 잉크를 뿌리는 것도 스테핑모터가 설치되어 있어서다.

모아텍의 스테핑모터가 특히 위력을 발휘하는 곳은 광디스크드라이브(ODD)다. CD롬, DVD롬 등 컴퓨터에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기억장치가 ODD다. 스테핑모터는 CD나 DVD 등 디스크의 데이터를 읽어내는 픽업장치가 디스크 표면 곳곳을 훑을 수 있도록 조종한다.   

모아텍이 해마다 생산하는 ODD용 스테핑모터는 1억6000만 개. 3억 개에 이르는 세계 연간 수요량의 54%가 이 회사를 통해서 공급된다. 전 세계 데스크톱, 노트북 컴퓨터의 둘 중 하나라는 소리다. 특히 데스크톱 컴퓨터의 시장 점유율은 70%로 압도적이다. 노트북 시장 점유율도 40%로 만만찮은 지배력을 과시한다.  

스테핑모터는 원래 일본 전기·전자업체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모아텍이 본격적으로 스테핑모터를 생산하기 시작한 것은 1992년. 일본의 히타치, 도시바, 니덱산쿄 등의 세계적 모터 제조사들에 비해 십여 년 이상 뒤쳐진 시기였다. 그러나 모아텍은 기죽지 않고 기술개발에 힘을 쏟으며 때를 기다렸다. 까마득한 후발주자였던 모아텍이 세계 1위로 올라선 배경은 무엇일까?

모아텍이 스테핑모터에서 일본 업체들의 아성을 넘볼 수 있었던 것은 우선 품질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불량률이 300ppm(100만 개 중 300개미만) 이하로 ‘품질은 인격’이라는 슬로건이 있을 만큼 엄격하게 관리한다. 기술개발에도 철저하다. 국내 본사 인력 93명 중 절반이 연구개발에 종사한다.

제품의 공급이 빠른 것도 유리하게 작용했다. 고객사와 가까운 곳에 생산기지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과 필리핀의 해외공장이 주요 고객사인 삼성전자, LG전자, 라이트온의 조립라인과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다. 그만큼 물품 공급과 제품서비스가 경쟁사보다 신속하게 이뤄진다.

그러나 결정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 시장 진입 초기 ‘업그레이드 경쟁’에서 일본 업체들을  앞섰기 때문이다. 모아텍이 스테핑모터 시장에 진출했을 무렵 CD롬이 컴퓨터에 속속 보급되고 있었다. 컴퓨터 주변기기가 대용량화되고 속도도 빨라지면서 기억장치가 플로피디스크드라이브(FDD)에서 서서히 CD롬으로 대체되는 상황이었다. 삼성전자, LG전자 등 컴퓨터 생산업체들은 CD롬 시장 초기부터 치열한 ‘배속 늘리기’에 돌입했다. 두 회사에 스테핑모터를 납품했던 모아텍도 마찬가지였다. 

“자고 일어나면 4배속, 8배속, 16배속, 32배속으로 바뀔 만큼 CD롬의 시스템 속도가 급속히 업그레이드되고 있었죠. 컴퓨터 시장에서 모아텍의 가장 중요한 협력사였던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속도경쟁에 보폭을 맞춘 결과, ODD용 스테핑모터 시장을 선점할 수 있었습니다.”

모아텍은 협력사들의 속도경쟁을 빈틈없이 따라갔다. CD롬의 속도가 업그레이드 될 때마다 재빨리 스테핑모터의 구동 속도를 끌어올렸다. 쉬운 작업이 아니었다. 기억장치의 시스템을 구동하는 소프트웨어가 바뀔 때마다 기존 제품을 송두리째 폐기해야 했다. 직원들의 고생이 엄청났다. 연구진 전원이 밤새 신제품 개발에 매달린 후 이른 아침 샘플을 협력사로 보내 테스트 받는 일이 숱하게 이어졌다.

“90년대 후반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세계 시장의 60%까지 CD롬 점유율을 높이면서 모아텍도 급속히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일본 업체들은 품질에서는 최고 수준이지만 좀처럼 변화를 못 따라 오는 게 약점이었죠. ‘악으로 깡으로’ 버티는 한국 사람들을 못 당합니다. 사세를 크게 올린 주역은 직원들이죠. 2004년 신사옥으로 본사를 옮길 때는 직원들의 노고가 떠올라서 눈물이 핑 돌았다니까요.”

 

일본 업체 OEM 공급하며 모터 기술 연마

모아텍에서 기술개발의 리더는 임 사장이다. 그는 35년 동안 모터 한 분야에만 전념한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이 분야 전문가다. 모터와의 인연이 시작된 것은 1976년. 연세대학교 전기공학과를 졸업하고 대한전선 가전 사업부에 입사하면서다. 세탁기, 냉장고에 들어가는 일반 가전용 모터를 접한 후 10여 년간 현대중전기·성신 등의 회사에서 모터의 품질관리, 생산, 개발을 담당했다. 전천후 모터 기술자로 거듭났던 셈이다.

임 사장이 본격적으로 모터산업에 출사표를 던진 것은 1985년. 모아텍의 전신인 ‘한국권선기술’이란 회사를 창업하면서다. 회사 이름처럼 모터에 코일(권선)을 감는 협력회사였다. 15평짜리 공장에서 직원 다섯 명을 데리고 함께 숙식하며 밤낮 없이 일했다. 마침내 기회가 왔다.

동경전기주식회사(TEC)라는 일본 정밀모터업체의 협력회사가 된 것. 당시 한국권선기술측이 코일을 감던 TEC의 모터가 바로 스테핑모터였다. 그것도 현재 주력제품인 컴퓨터용이었다. 3년 만에 주문자생산방식(OEM)으로 스테핑모터 제조를 의뢰받을 수 있었다.

“머슴살이 하면서 기술을 배운 거나 마찬가지죠. 납품기일을 맞추기 위해 몇 날 며칠을 샜습니다. 설계를 알아야 작업이 가능하다며 설계도를 보여 달라고 떼쓰기도 하고, 직원들을 동경전기주식회사로 연수보내기도 했죠. 부품들을 잔뜩 사와 이리저리 맞춰보며 연구하기도 했습니다. 그로부터 다시 3년이 지나서야 자체 생산에 성공했죠.”

FDD용 스테핑모터를 자체 브랜드로 납품하기까지 정부의 도움도 컸다. 1992년 정부가 대일 무역 역조가 심한 품목 21개를 선정해 각 분야 기업들에게 개발자금을 몰아준 것. 모아텍의 스테핑모터도 지원 대상으로 선정되며 당시 거금이었던 3억원의 개발자금이 들어왔다. 다른 업체들처럼 개발자금으로 땅을 사거나 건물을 새로 짓지도 않았다. 오로지 살뜰하게 개발비로만 쓴 것이 큰 도움이 됐다는 설명이다.    

“돈에 대해서는 철저합니다. 확장을 하든 신규투자를 하든 ‘오직 우리가 번 돈으로만 쓴다’는 게 경영원칙이죠. 15년째 무차입경영을 고집하는 이유입니다. 해외에 현지공장을 지은 것도, 신사옥을 짓고 계열사를 인수한 것도, 사업에서 얻은 돈으로 추진했죠. 기업의 재무가 위태로워지면 종업원, 거래처, 납품업체, 고객사 모두에게 피해가 가기 때문입니다.”

자동차·휴대전화용 정밀모터시장 진출 모색

모아텍은 창사 후 25년 동안 계속 흑자를 기록했다. 지금까지 해마다 10% 이상의 꾸준한 성장을 이어왔다. 올해도 마찬가지로 지난해보다 17% 상승한 1415억원의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 지난해 상반기는 금융위기로 전자제품의 수요가 대폭 줄었지만 하반기부터 경기가 풀리면서 늘었다는 설명이다.

회사 입장에서 반가운 것은 스테핑모터를 비롯한 정밀모터 시장이 지속적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전자제품들이 갈수록 복잡한 기능들을 갖추며 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스테핑모터는 위치제어가 정확하고 설계와 수리가 간단해 일반모터를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그러나 우려도 따른다. ODD용 스테핑모터가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기준 82%. 다른 부문에 비해 ODD용 스테핑모터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다는 지적이다. ODD용을 제외한 나머지 시장은 일본 전기·전자업계의 대기업들의 지배력이 높다. 차세대 시장으로 기대했던 블루레이도 지나치게 높은 가격 때문에 좀처럼 성장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후발주자들의 추격에서 벗어나려면 부지런히 새 먹을거리를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모아텍의 신성장 동력으로 꼽는 것은 차량용 모터 시장이다. 고급차종 한 대에 들어가는 소형모터는 대략 100여 종이다. 더구나 자동차가 IT와 결합하며 점차 전자제품화, 지능화되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 이미 현대차의 제네시스와 에쿠스에 핸들의 움직임에 따라 헤드라이트의 각도를 바꿔주는 스테핑모터를 납품하고 있다. 제네럴모터스(GM)·닛산·기아 등의 차량용 온습도조절기에 들어갈 BLDC모터도 공급하고 있다. 자동차 회사들에 영업력을 집중하고 차량용 모듈 개발에도 박차를 가한다는 계획이다.

휴대전화도 양보할 수 없는 신시장이다. 휴대전화의 카메라가 고사양화되면서 정밀모터가 필요한 부분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모아텍이 2006년 하이소닉을 자회사로 인수한 것도 휴대전화 정밀모터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서다. 하이소닉은 자동초점 기능을 구현하는 액추에이터를 만드는 국내 기업이다. 카메라 액추에이터에서 세계점유율 17%로 1위인 일본의 시코기연에 이어 니덱산쿄와 2~3위를 다투고 있다. 

모아텍은 국내 소형모터 분야에서는 독보적인 기업으로 성장했지만 고삐를 늦출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5년 내에 다른 분야도 ODD만큼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자동차와 카메라, 사무용 복합기기, 가전제품 등 비ODD용 스테핑모터 매출이 지난해 234억원에서 올해 323억원으로 크게 늘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전망은 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