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및 준대형 자동차 시장은 국내에서 전통적으로 인기 높은 시장이다. 그간 현대와 기아가 독주하다시피 해온 이 시장에 GM대우의 야심작 알페온이 등장했다. 알페온은 미국과 중국 등지에서 이미 높은 인기를 누리며 상품성을 인정받은 고급 세단. 지난 9월7일 한국시장 공식 시판에 들어간 알페온이 해외에서의 인기를 국내 시장에서도 실현할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된다.

지난 9월1일 이른 아침. 제주도는 이미 태풍의 한가운데로 들어서고 있었다. 공항을 빠져나오자마자 몸을 가누기 어려울 정도로 강한 비바람이 사방에서 불어댔다. 우산도 필요 없는 지독한 날씨였다. 거친 비바람을 뚫고 제주공항 주차장으로 걸어가자 30여 대의 신차가 취재진을 기다리고 있었다. GM대우의 야심작인 준대형 세단 알페온(Alpheon). 각자 지급받은 번호표에 따라 2인1조로 짝을 이뤄 시승차에 나눠 탔다. 공항에서 섭지코지에 위치한 휘닉스 아일랜드 리조트까지 총 50.3㎞ 구간에 걸친 시승이 시작되는 것이다. 제주공항을 출발해 제주 돌문화공원에서 운전자 교대를 겸한 휴식시간을 가진 다음 그 곳에서 다시 휘닉스 아일랜드 리조트로 이어지는 구간. 한 시간 안팎의 짧은 시승이었지만, 알페온의 첫 인상을 가늠해보기에는 충분해 보였다.

알페온은 GM대우가 ‘재탄생’을 선언하며 내놓은 준대형 고급 세단인지라 시장의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 크다. GM대우는 2.4와 3.0 등 두 가지 버전을 국내에 선보일 예정이며, 2.4 버전은 금년 10월 출시한다. 시승차는 V6 3.0 엔진을 장착한 주력 모델. 스마트키 시스템이라 키를 꽂을 필요 없이 버튼을 눌러 시동을 거는 타입이다. 버튼을 누르자 묵직하고 은은하며 듣기 좋은 시동 음이 들려온다. 출발한 이후에는 바깥의 비바람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만큼 알페온의 실내는 조용했다. 시속 100㎞로 달려도 타이어 마찰음이나 맞바람으로 인한 풍절음은 전혀 들리지 않았다. 급가속을 할 때 배기음이 들려오긴 했지만, 그 역시 듣기 좋은 바리톤 사운드였다. GM대우의 자존심을 걸었다는 말은 괜한 소리가 아니었다.

미국과 중국에서 입증 받은 품질과 성능

시승행사에 이어 지난 9월7일 한국 시장 공식 시판에 들어간 GM대우 알페온은 한국 출시에 앞서 이미 미국과 유럽, 중국 시장에서 호평을 받은 바 있는 GM의 차세대 모델이다. 미국과 중국에서는 뷰익 라크로스로, 유럽에서는 오펠 인시그니아로 각각 선보여 좋은 품질과 강력한 성능을 인정받았다. 한국 내수용으로 붙여진 이름 알페온은 알파(Alpha)와 이온(eon)의 합성어. ‘처음부터 끝까지 고풍스러움을 유지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제주 휘닉스 아일랜드 리조트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GM대우 마케팅 담당 김성기 전무는 “알파는 시작의 의미”라며 이 차가 향후 GM대우가 계속해서 내놓을 신제품 군(群)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GM대우는 내년 8월 말까지 알페온 포함 총 8종의 신차(국내 제작 6종, 수입 2종)를 연이어 내놓을 예정이다.

독일에서 개발한 입실론 2 아키텍처(차의 뼈대를 의미)를 기반으로 한 알페온은 2년 연속 세계 10대 엔진에 선정되어 그 성능을 국제적으로 검증 받은 최첨단 SIDI V6 3.0 엔진을 장착하고 있다. 최고출력 263마력으로 동급 최고 수준의 성능을 이끌어내는 이 엔진은 프리미엄 브랜드 캐딜락에도 장착되는 GM의 주력 엔진이다. 연료직접분사 방식과 가변밸브 타이밍 시스템 등 첨단기술에 힘입어 연료 손실 없이 최고의 파워를 뽑아내는 동시에 1리터당 9.3㎞의 높은 연비도 함께 구현한다. 최상의 성능과 경제성을 모두 겨냥하고 있는 셈이다.

알페온의 디자인은 남성적이면서도 무척 탄탄한 인상이다. 김태완 GM대우 디자인 담당 부사장은 “외관에는 GM의 정통성을 고스란히 살렸다. 이를 위해 1950년대 뷰익 브랜드가 처음 선보였던 ‘다이내믹 리본(Dynamic Ribbon)’ 측면 캐릭터 라인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현대 에쿠스도 최근 이 캐릭터 라인을 활용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GM의 것이 오리지널이다. 차체 앞쪽 헤드램프에서 뒤쪽까지 역동적인 보디라인으로 연결해 힘 있는 외관을 만들어내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김 부사장이 밝힌 알페온 외관 디자인의 핵심은 역동성과 즐거움, 그리고 고급성의 강조다. 특히 4도어 고급 세단임에도 마치 쿠페(2개의 도어를 갖춘 스포츠 타입의 자동차)와 같은 날렵한 지붕 형태를 갖춘 점이 눈에 띈다. 렉서스 GS나 재규어 XF와 같은 프리미엄급 스포츠 세단에서 종종 볼 수 있는 라인으로, 시각적 속도감과 역동성을 주는 게 이 같은 디자인의 강점이다. 알페온의 차체 길이는 4.99m로 현대 그랜저나 제네시스, 기아 K7보다 더 길다. 차체 너비는 그랜저와 같은 1.86m.

폭포수를 연상케 하는 대형 라디에이터 그릴과 볼륨감 있는 보닛으로 마무리한 앞모습에서도 자신감과 힘이 느껴진다. 트렁크를 운전석 레버가 아니라 밖에서 열 수 있도록 처리한 데서 미국적 실용주의를 엿볼 수 있다. 트렁크 공간의 깊이는 충분하나 좌우 폭은 생각보다 넓지 않다. GM대우 관계자는 골프백 4개를 실을 수 있다고 했다. 휠 하우스가 트렁크 룸 바닥 안쪽으로 파고들어 있어 짐을 싣는 공간 면에서는 아무래도 약간의 손해를 감수해야 할 것 같다.

자동차의 본질적인 매력 알리고 싶어

인테리어는 상당히 고급스럽고, 마무리도 좋다. 가죽으로 꼼꼼히 감싼 대시보드는 고급 수입차와 견줘도 흠잡을 데 없고, 마치 항공기 조종석처럼 운전자를 감싸도록 배치한 구성은 아늑한 감을 준다.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의 센터터널(기어레버와 콘솔박스, 컵 홀더 등이 있는 부분)이 높고 넓게 자리하고 있어 운전석에 앉으면 마치 맞춤형 양복을 입은 것처럼 딱 들어맞는 기분이 든다. 취향에 따라서는 다소 좁게 느낄 수도 있겠지만, 어깨에서부터 다리에 이르기까지 몸 전체를 단단히 붙잡아줘 안정감 있는 운전 자세에 도움을 주는 건 분명해 보인다. GM의 전통적인 디자인 철학에 따라 계기판은 차체 크기에 비해 다소 작게 만들어졌지만 시인성이나 정보 전달력은 좋은 편이다. 시트는 넉넉하면서도 몸을 잘 붙잡아주고, 뒷좌석 공간도 여유롭다. 앞좌석에는 냉방과 열선 기능을 모두 마련해두었으며, 뒷좌석에서도 에어컨 풍량이나 오디오를 조작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실내에서는 특히 지붕 전체를 유리로 처리한 ‘글라스 루프’가 후련한 개방감을 선사한다. 이 밖에도 전자식 주차 브레이크와 한국형 내비게이션 및 인피니티 프리미엄 오디오 시스템, 공기청정기 등 편의장비를 두루 갖추고 있다.

마이크 아카몬 GM대우 사장이 이날 밝힌 알페온의 핵심 가치는 스타일링과 성능, 안전 등 세 가지. 한국 부임 이후 처음 선보이는 신차인 만큼 아카몬 사장은 알페온에 대한 상당한 관심과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아카몬 사장의 말대로 알페온은 눈에 띄는 디자인과 부드러운 성능, 그리고 에어백 8개 등으로 달성한 높은 안전도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특히 충돌 시 충격 정도에 따라 순차적으로 작동하는 듀얼 스테이지 에어백을 채택해 운전자의 2차 충격에도 대비했다. 스티어링 휠 조작 방향에 따라 좌우로 움직이며 앞을 비추는 어댑티브 헤드램프 역시 적극적 안전을 위한 장비라고 봐야 할 것이다.

알페온을 시승할 때 가장 두드러진 부분은 서두에서도 밝혔듯 극도의 정숙성이었다. 손동연 GM대우 연구소 부사장은 개발 과정에서 정숙성과 승차감 등 한국 소비자들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부분에 특히 공을 들였다고 강조했다. 아닌 게 아니라 알페온의 정숙성은 탁월하다. 짧은 시승이었지만, 강풍이 몰아치는 속에서도 외부 소음을 거의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소음 차단이 잘돼 있었다. GM대우는 알페온의 소음 차단 수준을 렉서스보다 더 조용하게 세팅했다고 밝혔다. GM대우가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도서관의 소음도가 40데시벨(dB)인데, 알페온의 실내 소음도는 그와 맞먹는 41dB로 억제했다는 것. 그에 비해 렉서스의 실내 소음도는 42.5dB로 역시 훌륭하기는 하지만 알페온의 수준에 미치지는 못한다는 설명이다. 정숙성뿐 아니라 묵직하면서도 부드러운 주행성능 또한 국내 소비자들의 선호도를 잘 반영하고 있는 부분이다.

GM대우는 알페온의 경쟁자로 현대 그랜저와 제네시스, 기아 K7을 지목했다. 뒷바퀴 굴림 고급 세단으로 국내 시장에서 이미 나름의 자리를 잡고 있는 제네시스와의 직접적인 경쟁에 대해서는 다소 이견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올 늦가을 데뷔를 계획하고 있는 현대 신형 그랜저나 요즘 한창 인기를 누리고 있는 기아 K7과의 경쟁은 흥미진진하게 펼쳐질 것으로 예상된다. GM대우는 알페온의 국내 시판 가격을 3040만~4087만원으로 책정했다.

미국과 유럽, 중국 등지에서 이미 입증된 흥행성에다 한국 소비자들의 요구까지 면밀히 반영해 성능과 편의성을 보강한 만큼 알페온에 대한 GM대우의 기대는 상당히 높아 보였다. 김성기 GM대우 국내 마케팅 담당 전무는 “알페온을 통해 (겉치레나 옵션이 아닌) 자동차의 본질적인 부분을 소비자들에게 알리고 싶다"고 거듭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