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재 우리나라 주택시장 사정은 어렵기만 하다. 집값 하락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아파트 매매가 실종되다시피 하고, 신분양 아파트의 가격하락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현상이 되어 버렸다. 이런 주택시장의 침체를 보다 못한 정부는 지난 8월 8·29 주택 거래 활성화 대책을 내놓았다.
2001년 정보경제학에 기여한 공로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조지 아커로프(George A. Akerlof, 1940~ )는 현재 주택시장의 현상과 이에 대한 정부의 대책을 논함에 있어 주목해야 할 경제학자다. 그는 정보를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 사이의 정보의 비대칭성이 시장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였다. 그의 이론은 기존 경제학 이론의 많은 문제점을 보완했을 뿐만 아니라, 시장 기능이 갖는 기본적인 결함을 명쾌히 해명했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중요성을 갖는다.
정보는 불확실하며, 비대칭적이다
일반적으로 경제학 모델은 완전정보 가정에 기반을 둔다. 예를 들어 제품의 구매자는 언제나 사고자 하는 제품의 질이나 적정 가격 등에 대한 완전한 정보를 가지고 제품 판매자와 거래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커로프는 실제 시장은 그렇지 않다는 것에 주목했다. 판매자는 구매자보다 제품에 대해 더 풍부하고 더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있으나, 구매자는 제품 정보 파악에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이처럼 거래 당사자 중 일방이 완벽한 정보를 갖고 있는 반면 나머지는 정보를 갖지 못할 경우를 ‘정보의 비대칭성’이 존재한다고 한다.
아커로프는 위와 같은 가정에서 출발해 중고차시장에는 왜 항상 좋은 물건은 나오지 않고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지를 명쾌히 설명해 냈다. 중고차시장엔 보통 좋은 차도 있고, 형편없는 품질의 차도 나올 수 있다. 전자를 복숭아, 후자를 레몬이라 하자. 중고차 판매자들은 판매하는 차들이 복숭아인지 레몬인지 정확한 정보를 갖고 있으나, 구매자들은 어떤 차가 복숭아인지 레몬인지 잘 알지 못해 시장은 효율적으로 작동하지 못하게 된다.
가령 판매자들은 복숭아와 레몬을 각각 500만원과 200만원에 팔 용의가 있고, 구매자들은 각각에 대해 600만원과 300만원을 지불할 용의가 있다고 하자. 구매자가 완벽한 정보를 갖고 있다면 복숭아는 500만~600만원 사이에서 가격이 설정되고, 레몬은 200만~300만원사이에서 가격이 정해질 것이다. 하지만 제품 정보가 부족한 구매자는 레몬에 복숭아 가격을 지불해 200만원 이상의 손해를 볼 수 있다.
따라서 만약 구매자가 선택한 제품이 복숭아이거나 레몬일 확률이 50대 50이라고 한다면 구매자는 제품에 대해 450만원(600만원+300만원/2)의 가격을 제시할 것이다. 하지만 판매자는 제품 정보를 갖고 있어 그 가격에 500만원짜리 복숭아를 팔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중고차시장에는 레몬밖에 남지 않고, 복숭아는 전혀 거래되지 않는 상황이 발생한다. 중고차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정보의 비대칭성은 수도권의 대량 아파트 미분양과 그로 인해 불거진 문제에도 적용할 수 있다. 아파트 분양업자는 자기가 시공한 아파트에 대해서 구입하려는 자보다 훨씬 더 많은 정보를 갖고 있다. 분양원가부터, 입지와 관련된 교통, 개발계획 등 일반 소비자가 모르는 정보를 갖고 있다. 이들은 아파트 청약자를 모집하면서 여러 가지 미끼로 소비자를 유혹한다. 곧 아파트 단지 앞에 역이 세워지느니, 경전철이 생기느니, 향후 주위의 상권이 어떻게 개발되느니 하는 말들이 그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거의 백퍼센트 분양이 끝나간다는 정보는 협박 아닌 협박의 한마디로 소비자를 행동에 옮기게 한다. 그러나 언론에서 보도되었던 바와 같이 분양업자들이 흘린 정보들은 적지 않은 경우 거짓임이 드러났다. 백퍼센트 분양은 말뿐이고, 미분양 물량이 속출했다.
역선택 가능성 높아지는 주택 대출 시장
아커로프에 의하면 시장에서의 정보의 비대칭성은 ‘역(逆)선택’이란 문제를 낳는다. ‘역선택’이란 정보의 비대칭성이 존재하여 정보를 갖지 못한 자가 불리한 의사결정을 하는 상황을 말한다.
중고차 시장의 예를 다시 들어보자. 정보를 갖지 못한 중고차 구매자는 언제나 자기가 원하는 높은 질의 중고차를 구입할 수 없는 상황이다. 질이 좋은 중고차를 팔려는 사람은 중고차시장에 차를 내놓지 않기 때문이다. 중고차시장에 내놓아 봤자 좋은 가격을 받을 수 없어서다. 그 결과 정보의 부재로 인해 구매자는 자신의 의도와는 달리 질이 좋지 않은 중고 자동차를 ‘역선택’하게 된다.
역선택의 문제는 은행의 대출시장에서도 흔히 발생한다. 은행 대출의 시장이자율은 일반적인 수요공급이론에 의할 경우 자금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된다. 하지만 시장이자율만을 기준으로 자금을 빌려주면 금융기관으로서는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이자가 그렇게 결정되면 자금사정이 좋은 기업은 굳이 자금을 차입하지 않을 것이며, 반대로 자금사정이 좋지 않은 기업은 자금 차입에 안간힘을 쓰기 때문이다. 즉, 은행의 입장에서 볼 때, 차입자에 대한 정보를 완벽히 갖고 있지 않은 관계로 결코 바람직스럽지 못한 거래 상대를 ‘역선택’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정부가 내놓은 8·29 주택 거래 활성화 대책의 핵심은 내년 3월까지 총부채상환비율(DTI) 한도를 한시적으로 은행자율에 맡긴다는 것이다. 따라서 은행의 재량에 따라 은행의 가계대출한도를 정할 수 있다. 기존의 총부채상환비율에 묶여 주택을 구입할 수 없던 수요자에 대한 대출규제가 완화된다면 주택거래가 활성화될 거란 게 정부의 계산일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도 아커로프가 말하는‘역선택’의 가능성은 꼭 유념해야 한다. 실제로 은행들이 DTI규제를 완화했을 때‘역선택’의 가능성은 낮지 않다. 최근 자료에 의하면 국내 금융기관에 대한 가계부채는 2010년 6월말 현재 약 755조원에 달한다. 주택담보대출 연체율은 꾸준히 상승하여 2010년 7월말 현재 0.53%를 기록하고 있다. 은행 가계대출 대비 주택 담보대출 비중도 꾸준히 상승하여 2분기 65.2%에 이르는 등 적신호가 켜진 상태다.
물론, 단순한 총계적인 수치가 모든 현상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DTI 규제완화로 추가대출이라는 혜택을 받는 사람이 과연 어떤 사람인가는 체크해볼 필요가 있다. 이들은 무리하게 대출을 받아 집을 장만하거나 장만할 가능성이 높고 경제여건의 변화에 취약한 사람들일 공산이 크다. 따라서 이들은 금리가 인상되거나, 경기가 몹시 위축된다면 높은 이자지불을 감수하거나, 자칫하면 파산에 처할 수도 있다. 이는 은행입장에서는 부실채권이 돼 버리며 금융기관의 건전성, 더 나아가 국가경제의 건전성을 심각하게 손상시킬 수 있다. 아카로프의 특정 시장의 분석에서 나타난‘역선택’의 문제가 종국에는 국가 경제 문제로 파급되는 것이다.
주택가격 적정성, 다시 돌아봐야
주택 등의 자산 가치 하락, 그로 인한 금융기관의 부실화 위험은 옆 나라 일본의 경험에서 알 수 있다. 일본은 소위 거품경제가 꺼지기 시작한 1991년 4월부터 10여 년에 걸친 장기불황의 늪에서 허덕이게 된다. 주식, 주택 등 자산가치의 폭락이 불황의 단초가 됐다. 일본 GDP의 2배에 달하는 돈이 자산가치의 하락으로 순식간에 사라졌다. 더불어 소비자들에게 주택을 담보로 대출을 해준 금융회사들은 심각한 부실채권문제를 안게 되었다. 안정적인 주택 가격 상승이라는 기대감에 방만하게 대출을 해준 것이 원인이다. 정부는 부실 금융기관을 구제하기 위해 막대한 공적 자금을 투입해야 했고, 국가의 재정 건전성은 심각하게 훼손되었다.
물론, 우리나라의 경우 과거 일본과 같은 심각한 부실채권의 위험에 처할 가능성은 매우 적어 보인다. DTI규제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DTI규제완화가 자칫 부실채권의 양산이라는 효과를 유발할 수 있다는 위험성에 대한 경계의 끈을 늦춰서는 안된다.
우리 모두가 더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는 문제는 우리나라 주택가격의 적정성이다. 우리나라의 주택은 선진국과는 달리 주요 투자 혹은 투기의 대상이었고, 이를 굳건히 떠받치고 있던 것은 집값은 항상 오르기만 한다는 소비자의 기대심리였다. 그 과정에서 주택 가격은 거품을 품고 형성되었다. 거품 또한 커지고 있었다. 거래가 없다는 것은 어쩌면 그 전에 비정상적인 가격에 비정상적인 거래가 횡행했다는 것의 반증인지도 모른다. 또한, 소비자들이 시장 상황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갖추게 되면서 기대심리도 꺼지고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