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틱틱붐>에서 우리는 불안한 미래를 초조하게 맞고 있는 한 가난한 작곡가를 만난다. 그러나 그의 표정은 생각만큼 어둡지 않다. 해어진 운동화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을 시원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진 조나단 라슨이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뮤지컬 음반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보지 않은 공연의 음반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듣기란 쉽지 않다. 일단 재미가 없다. 뮤지컬 노래는 드라마 속에 놓여있기 때문에 전후 맥락 없이 노래만 들어서는 제대로 감상하기가 힘들다.

또 다른 이유는 뮤지컬에 사용하는 음악들이 대부분 현재 유행하는 음악과는 좀 거리를 둔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1920년대 재즈의 열풍이 지배하던 시대 뮤지컬 음악은 당연히 재즈였다. 뮤지컬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1960년대까지만 해도 가장 유행하는 뮤지컬 넘버가 그 시대 최고의 히트곡이었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 뮤지컬 음악은 대중음악과 구분되기 시작했다. 1960년대 록의 시대가 열렸지만 뮤지컬은 록을 수용하지 못했다. 

동시대 젊은이들을 열광시킨 <렌트>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은 동시대의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장르가 아니라 중년층 이상이 즐기는 장르로 받아들인다. 젊은이들은 뮤지컬을 좋아하지 않고 안정적인 중년층은 록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러한 오래된 관행과 편견을 깨려는 시도를 한 사람이 조나단 라슨(Jonathan Larson)이었다.

우리에게는 <렌트>의 작곡가로 알려진 그는 불운한 작곡가였다. 10여 년이 넘게 뮤지컬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의 생전에 제대로 올라간 작품은 단 한 편도 없었다. 1983년부터 7년여에 걸쳐 만든 <수퍼비아>는 리차드 로저스 상을 받으며 플레이라이트 호라이즌 극장에서 워크숍까지 진행했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을 미래의 배경으로 옮긴 이 작품은 작품의 제작비용이 적지 않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조지 오웰의 유족들이 뮤지컬 제작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의 대표작인 <렌트>는 그가 7년간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던 작품이다. 오페라 <라보엠>을 현대 뉴욕 예술가들로 바꿔 만들겠다고 생각한 것은 극작가인 빌리 애런슨이었지만 이 작품을 누구보다도 절실하게 공감한 것은 바로 조나단 라슨이었다.

라슨은 대학을 졸업하고 뉴욕의 변두리 지역의 난방도 되지 않는 옥상 집에서 최소한의 생계비로만 살아갔다. 전기를 쓰기 위해서는 연장선이 필요했고, 친구가 찾아오면 옥상에서 아래로 열쇠를 던져주어 올라오게 해야 했으며, 친구가 욕실에서 목욕을 하면 주방에 비눗물이 튀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열악한 환경에서 살았다. 그는 끼니를 거르는 것은 다반사였고 10년이 넘게 카페 ‘문댄스 다이너’에서 웨이터로 일했다.

하지만 라슨은 절망하지 않았다. 그는 해어진 신발을 신고 다녔지만 동시대 사람들이 좋아하는 록으로 뮤지컬을 만들겠다는 꿈이 있었다. 그는 스스로를 뮤지컬의 미래라고 자부했다.

이러한 생활은 한겨울 시를 쓴 원고를 태우며 희희낙락 하는 <라보엠>의 루돌프와 그의 친구들을 떠올리게 한다. 조나단 라슨의 삶은 더도 덜도 아닌 현대판 <라보엠>이었던 셈이다. 그에게 <렌트>의 작곡이 맡겨진 것은 운명적인 일이었다. 1989년 작품을 의뢰받고 2년 정도 진전이 없자 작품을 기획했던 빌리 애런슨은 지쳤지만 라슨은 포기할 수 없었다. 라슨은 빌리 애런슨으로부터 작품의 권리를 인수받고 혼자서 개발을 지속했다. 그렇게 다시 5년이 지나 새로운 멤버들이 가세하여 마침내 작품이 공개됐다. 일반 대중들에게 공개하기 전 언론과 전문가들에게 공개된 드레스 리허설을 마치고 나자 평론가는 열광했다. 브로드웨이의 가장 영향력이 있는 <뉴욕 타임즈>에서 호평의 기사를 준비했다. 조나단 라슨은 언론과의 인터뷰를 마치고 호텔로 돌아왔다. 공연장에서의 감흥이 식기도 전에 갑작스런 가슴의 통증을 느끼며 쓰러졌다. 그는 그렇게 아무도 없는 호텔방에서 대동맥류로 생을 마감한다. 그의 나이 서른여섯이었다.

<렌트>가 공연되자 뉴욕의 젊은이들은 열광했다. 새벽부터 표를 사기 위해 줄을 이었고 심지어 표를 사기 위해 극장 앞에 텐트를 치는 젊은이들도 생겼다. 조나단 라슨은 그의 꿈대로 음악만으로 동시대의 젊은이들을 열광시키고 극장으로 몰려오게 했다.

불안 속에서도 발랄한 청춘 <틱틱붐>

지금 서울 충무아트홀 블랙 시어터에서 공연하고 있는 <틱틱붐>은 라슨이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아 서른 즈음에 발표했던 미완성 작품이다. 라슨을 아끼던 친구들은 그의 유작을 퓰리처상 수상자인 <프루프>의 작가 데이빗 오번에게 맡겼고, 데이빗은 라슨이 만든 모노 뮤지컬을 세 사람이 등장하는 뮤지컬로 만들었다. 작품 속의 주인공 존은 서른 생일을 앞두고 아무 것도 이루어내지 못한 현실을 불안해한다. ‘틱틱... 붐’은 쉬지 않고 그의 현실을 조여 오는 초침소리가 결국은 폭발하는 소리를 의미한다. 존은 초침소리의 환청을 들으며 미래에 대한 불안과 초조를 느낀다.

<틱틱붐>에서 우리는 불안한 미래를 초조하게 맞고 있는 한 가난한 작곡가를 만난다. 그러나 그의 표정은 생각만큼 어둡지 않다. 해어진 운동화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을 시원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진 조나단 라슨이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틱틱붐>은 그의 수작인 <렌트>에 비하면 소품에 해당한다. 일인다역을 하는 두 배우의 연기 변신이 흥미롭지만 드라마는 단조롭고 평범하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도 역시 조나단 라슨의 뛰어난 음악성이 발휘된다. 동시대인들이 좋아할 록 음악으로 뮤지컬의 미래를 책임지겠다고 했던 그의 다짐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그의 음악은 탄탄하다. 불안한 미래를 꿋꿋하게 걸어온 그가 남다른 삶을 산 것은 확실하지만 젊은 날 불안하지 않던 청춘이 있었던가. 한때 청춘을 앓았던 또는 청춘을 앓고 있는 이들에게 <틱틱붐>은 깊은 공감의 울림을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