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아웃도어 시장 규모는 2조5000억원. 2001년 5000억원대였던 시장이 10년도 되지 않아 5배가량 성장한 것이다. 불황을 모르고 승승장구한 셈이다. 시장의 규모가 커지는 만큼 기업 간의 경쟁 또한 치열해지고 있다. 국내 대기업까지 해외 아웃도어 브랜드의 라이선스를 가지고 시장에 뛰어들어 자리다툼을 하고 있다. 이렇게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세계적인 브랜드들과 당당히 맞서고 있는 한국 아웃도어 브랜드가 있다. 바로 트렉스타다.
앞선 디자인·기술로 '명품' 대접

아웃도어 시장 '톱10' 진입 의욕

최근 등산 붐이 일고 있는 가운데 토종 등산화 브랜드인 트렉스타의 인기가 치솟고 있다. 권동칠 트렉스타 사장은 “물건이 없어서 못 팔 정도다. 지난해보다 등산화 판매가 60%가량 증가했다”며 “지금도 야근과 특근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트렉스타는 이미 글로벌 시장에서 앞선 디자인 트렌드와 혁신적인 기술의 아웃도어 브랜드로 알려졌다. 올 초 출시한 트렉스타의 야심작인 네스핏(Nestfit)은 패션 본거지인 스페인, 프랑스, 독일을 포함한 유럽과 미국 아웃도어 시장에서 ‘명품’ 대접을 받고 있다. 스페인에서는 출시하자마자 첫 주문 물량이 모두 팔려나가 현지 유통업체들이 항공 운송비의 절반을 부담하겠다며 긴급 추가 주문을 요청할 정도였다. 권 사장의 자랑이 이어졌다.

“글로벌 브랜드의 각축장인 일본 등산화 시장에서 트렉스타가 차지하는 비중은 30%에 달합니다. 대만에서도 1, 2위를 다투고 있고요. 아시아 시장에서는 최강자라고 봅니다.”

지난 7월 유럽의 스포츠 미디어그룹인 <컴패스(Compass)>는 트렉스타를 등산화 부문 세계 랭킹 16위에 올려놓았다. 국내는 물론 아시아 브랜드 중 25위 이내에 포함된 브랜드는 트렉스타가 유일하다. <컴패스>는 트렉스타를 새롭게 급부상한 한국의 아웃도어 신발 브랜드로 소개하며, 지난해 전 세계 아웃도어 신발 브랜드 중 최고의 성장률을 기록했다고 분석했다.

현재 트렉스타는 일본, 중국, 대만 등 아시아 시장뿐만 아니라 미국, 캐나다 등 미주시장과 스페인을 포함한 유럽지역까지 세계 20여 개국에 진출해 있다. 권 사장은 “내년에는 글로벌 톱 10에 진입하고, 2014년에는 세계 랭킹을 5위까지 끌어 올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신발 산업 침체기에 회사 설립

권 사장이 트렉스타의 전신인 동호실업을 설립한 것은 1988년 8월8일 오전 8시8분. 100년에 한 번 찾아온다는 중국의 길일로 ‘쯔파’라고 불리는 날이었다. 하지만 당시 부산의 신발산업은 암울하다 못해 이제 끝났다는 인식이 팽배하던 시기였다. 신발 공장들도 하나둘씩 문을 닫기 시작하던 때였다.

나이키와 아디다스 등 글로벌 브랜드에 OEM 생산을 하던 중소 신발업체에서 영업을 담당했던 권 사장의 생각은 달랐다.

“사양산업화되고 있는 신발산업에 왜 뛰어드느냐고 만류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하지만 저는 인류가 생존하는 한 신발산업은 계속 성장할 것이라고 봤어요.”

그러나 초기 시장 진입은 쉽지 않았다. 신생 업체에 제품 생산을 맡기려 하지 않았기 때문. 트렉스타는 등산화의 핵심부품인 ‘아웃 솔’(신발 밑창) 시장에서 먼저 기술력을 인정 받은 후 신발 완제품 시장 개척에 나섰다. 세계 최경량 아웃 솔, 얼음이나 기름에 미끄러지지 않는 아웃 솔 등 차별화된 기술을 개발하자 글로벌 기업들이 OEM 생산을 맡기기 시작했다. OEM 생산만으로도 안정적인 사업은 가능했다. 하지만 권 사장은 가시밭길을 택했다. 자체 브랜드로 세계 시장 도전에 나선 것.

트렉스타라는 브랜드로 첫 등산화를 내놓은 것은 1994년. 290g의 경등산화였다. 당시 대부분의 등산화는 통가죽으로 만들어져 무겁고 딱딱했다. 권 사장은 기존 제품과 차별화하기 위해서 통가죽 대신 가죽과 천으로 소재를 바꿨다. 천 소재여서 방수가 잘 안 되는 단점은 ‘고어텍스’를 활용해 보완했다.

하지만 경등산화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차가웠다. 트렉스타 브랜드는 등산화가 아니고 운동화라는 비아냥거림도 나왔다. 권 사장은 트렉스타를 들고 유명 등산로의 입구를 찾았다.

“등산객들이 직접 신어 보게 했어요. 등산로 입구에서 무거운 등산화를 맡아두고 트렉스타를 신고 등산을 하게 한 거죠. 등산을 마치고 나오면 되돌려받는 식이었어요. 직접 경험해 본 등산객들이 놀라워하더군요. 간혹 트렉스타를 신고 가버리는 등산객이 있을 정도였어요. 등산객을 중심으로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죠.”

입소문은 대박으로 이어졌다. 트렉스타의 국내 등산화 시장 점유율은 3년 만에 65%로 치솟았다. 하지만 탄탄대로를 걷던 트렉스타에도 위기가 찾아왔다. 사업 초기 화재로 인해 공장이 잿더미가 된 적도 있었고, 그 이후에는 더 큰 위기가 기다리고 있었다.

쇠퇴의 길을 걷던 부산의 신발산업이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 거의 붕괴 직전에 이른 것이다. 국내 신발업체들이 중국과 동남아로 이전하면서 부산 지역의 신발 산업은 거의 초토화가 되다시피 했다.

권 사장은 “바이어들은 전부 중국이나 동남아로 몰려가고 부산에는 오지도 않았다”며 “국내 인건비가 높아지면서 채산성을 맞추기도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다행히 ‘소프트 부츠 인라인스케이트’가 돌파구가 됐다. 기존의 딱딱한 플라스틱 소재의 인라인스케이트에 경등산화 기술을 접목한 인라인스케이트가 대박을 터뜨린 것. 플라스틱 소재 제품과 다르게 가죽과 천을 이용한 이 제품은 오래 신어도 불편함이 없어 큰 인기를 끌었다. 미국의 스프츠 브랜드인 K2에 OEM 생산방식으로 납품도 하고, 자체 브랜드로도 생산을 하면서 인라인스케이트로만 3년 동안 1000억원을 넘게 벌었다.

그러나 대박이 쪽박이 되는 것도 한순간이었다. 인라인스케이트 열풍이 갑자기 식으면서 창고에 재고가 쌓이기 시작했다. 재고는 35만 켤레에 달했다. 2004년까지 입은 손실만 200억원이 넘었다. 거의 망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잘 나갈 때 위기도 함께 잉태된다는 것을 그때 알았죠. 저 자신부터 직원들에 이르기까지 모두 매너리즘에 빠졌고, 위기가 다가오는 것을 간파하지 못했어요.”

권 사장은 혹독한 구조조정에 나섰다. 연구부문을 제외한 모든 부서의 팀장급 이상 임직원들은 모두 내보냈다. 타고 다니던 차도 팔았다. 그리곤 1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일을 했다. 인라인스케이트 사업을 접고 등산화에만 매진했다.

이러한 실패의 경험은 트렉스타를 더욱 탄탄하게 만들었다. 현재 이 회사의 국내 아웃도어 등산화 부문 시장 점유율은 약 45%에 달한다. 일본 1위, 대만 1~2위, 중국 5위 등 아시아시장에서 강자로 올라섰다. 설립 당시 6명에 불과했던 직원 수는 200여 명으로 늘었다. 중국 천진의 제1·제2공장의 사원수만 3000명에 이른다. 트렉스타의 연간 생산량은 350만 켤레에 달하는데 이 중 70%가 자체 브랜드 신발이다. 올해 매출 목표는 지난해보다 65%가량 늘어난 1500억원으로 잡고 있다.

성공 요인1 | 혁신적인 기술로 업계 선도

트렉스타의 눈부신 성장은 끊임없는 기술혁신에서 비롯됐다. 통가죽의 무거운 등산화만 있던 등산화 시장을 기존 등산화의 기능을 유지한 경등산화 시장으로 전환시킨 일등 공신은 트렉스타였다. 2008년에는 신발을 더욱 편하게 신고 벗을 수 있도록 신발끈을 다이얼식으로 조이는 등산화를 출시하기도 했다.

지난 3월 출시한 네스핏 역시 등산화에 일대 혁신을 몰고 온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네스핏은 사람의 발과 가장 비슷한 모양으로 만들어져 관절과 근육이 편한 신발, 독특한 디자인과 공법, 밑창의 3가지 특허를 바탕으로 탄생했다. 트렉스타는 네스핏 개발을 위해 국내외 2만 명의 발 모양을 직접 조사했다. 일본과 유럽 등지의 유명산은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였다. 이렇게 모은 자료로 철저한 검증과 필드 테스트를 지속하며 연구를 거듭한 결과 네스핏 기술이 탄생했다.

내년에는 손대지 않고 신발끈을 묶고 풀 수 있는 기술을 선보일 예정이며, 2012년에는 한국한의학연구원·카이스트와 공동 개발한 ‘뇌 활성화 신발’을 내놓을 계획이다.

트렉스타의 본사와 중국 공장에 있는 연구소의 연구 인력은 모두 130여 명. 이들이 한 해 개발하는 모델은 모두 500여 종에 달한다. 이 중에서 채 절반이 되지 않는 200여 종이 제품화된다.

권동칠 사장은 “다른 브랜드의 제품을 베끼거나 그대로 따라 한 적은 한 번도 없다”며 “지속적인 연구개발을 통해 글로벌 기업들이 쌓은 진입 장벽을 무너뜨렸다”고 말했다.

성공 요인2 | 현지화 전략 앞세워 글로벌 시장 개척                    

트렉스타가 해외 시장 공략에 나선 것은 자체 브랜드를 내놓은 그 다음해인 1995년부터다. 첫 해외 시장 공략 대상은 일본. 글로벌 아웃도어 브랜드의 각축장이었던 일본 시장에서 성공하면 세계 어디에서라도 성공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글로벌 브랜드가 이미 장악하고 있던 일본 시장을 뚫기란 말처럼 쉽지 않았다. 진출 초기 품질이 가장 좋은 제품만을 골라 일본으로 보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전체 물량의 절반 이상이 되돌아온 것. 박음질 간격이 조금만 달라도 품질 불량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세계 어디 내놔도 품질만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자부했던 권 사장에게는 충격이었다. 하지만 이것이 오히려 약이 됐다. 세세한 부분의 품질까지 신경을 쓰게 된 계기가 된 것이다.

권 사장은 품질을 높이는 한편 시장 개척을 위해 철저한 현지화 전략을 구사했다. 일본의 유명산을 찾아다니며 소비자 조사를 거쳐 일본 전용 모델을 개발했다. 현지의 유명 등산로에서 체험 마케팅도 펼쳤다. 트렉스타를 신고 등산을 하다 미끄러진 등산객을 찾아 사과도 했을 정도로 3년 동안 온갖 고생을 한 결과 일본 시장에 안착할 수 있었다.

지난해부터 본격화한 유럽 시장 공략도 마찬가지였다. 유럽인의 발 모양을 조사해 이를 제품에 반영했다. 이러한 현지화 전략을 통해 글로벌 브랜드도 시장 공략에 5년 정도가 걸린다는 스페인 시장은 진출 6개월 만에 뚫을 수 있었다. 브랜드보다 실용성을 따지는 해외 시장의 소비트렌드도 성공 요인이었다.

권 사장은 “해외 시장에서는 글로벌 브랜드와 비슷하면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할 수 없었다”며 “전략적인 현지 마케팅에 매진한 것이 성공의 기반이 됐다”고 말했다.

성공 요인3 | 평생 A/S로 고객층 넓혀

트렉스타는 ‘평생 A/S’를 슬로건으로 내세우고 있다. 밑창 교환을 제외하고 제품의 불편에 따른 모든 수선 서비스는 무료다. 제품의 수선 정도에 따라 다르지만 10년 이상 된 등산화도 일주일 정도면 새 신발처럼 수선해준다. 다른 등산화 업체들이 트렉스타의 A/S 때문에 죽겠다고 하소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트렉스타는 고객의 입장에서 미리 불편 요소를 발견하고 고객이 느끼기 전에 이를 제거하기 위해 사전 현장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주요 등산로 입구에 A/S요원을 배치해 미리 등산화를 점검하고, 필요한 경우 수선도 해준다. 이러한 현장 서비스는 국내뿐만 아니라 일본, 유럽 등 해외에서도 이뤄진다.

권 사장은 “등산 마니아들은 오랫동안 신던 편안한 등산화를 아끼는 경향이 많아 평생 A/S로 인해 고객층은 더욱 두터워지고, 재구매율도 더 높아졌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