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XA손해보험(옛 교보악사자동차보험·이하 악사)은 지난 2007년 5월 교보자동차보험을 인수하며 한국의 다이렉트 자동차보험 시장에 진출했다. 현재 전화와 인터넷만으로 가입하는 다이렉트 자동차보험 시장의 1위 기업이다(오프라인까지 포함하면 6위). 악사의 한국시장 진출 작업을 주도하고 현재까지 안정적으로 이끌고 있는 이가 기 마르시아 사장이다. 사업 초기 “올해부턴 더 돈 내지 마세요”라는 서툰 한국말 대사를 하며 직접 TV광고에까지 출연했던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도 많다.

“당뇨병 보험 등 특화상품으로 승부”

일본 악사의 사장이었던 그는 2000년대 중반, 한국시장의 가능성을 눈여겨보고 프랑스 본사에 한국법인을 만들자고 건의했다. 혼자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날아온 그는 한국의 여러 자동차보험 회사 사람들을 만나 한국시장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고, 제휴나 M&A 등에 대해 논의를 했는데, 이 과정에서 교보자동차보험과 얘기가 잘되어 악사의 한국시장 진출이 이뤄졌다. 교보자동차보험은 2001년에 국내 최초로 다이렉트 자동차보험 사업을 선보인 회사.

“일본 악사가 빠르게 성장을 했죠. 다이렉트 자동차보험 사업이 잘된다는 것이 이미 증명된 상황이었고, 일본에서 비행기로 두 시간 거리인 한국을 보니 IT 기술도 발달되어 있는 데다 자동차 수는 2000만대가 넘고, 보험서비스 관련 인프라나 제도가 일본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어요. 여러모로 다이렉트 자동차보험 시장의 가능성이 커 보이던 한국시장을 외면할 이유가 없었죠.”

신규 설립과 기존 다이렉트 자동차보험 회사 인수라는 갈림길에서 인수를 택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 무렵 한국에서 자동차보험 라이선스 따기도 어려웠고, 생명보험사업이 주력이던 교보그룹 측에서는 적당한 상대가 나타나면 매각을 생각하던 차여서 M&A가 성사됐다고. 인수 당시 교보자동차보험 시절의 직원 1400여 명은 전원 고용 승계됐다.

“인수 후 가장 먼저 마케팅에 힘을 쏟았죠. 다이렉트보험은 매체 광고를 많이 해야 하는데 생명보험 사업 위주였던 교보에서는 다이렉트 자동차보험에 별로 투자를 못 했더군요. 그리고 1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악사그룹이 세계적으로 얼마나 큰 회사인지 한국시장에 충분히 설명하고, 장기적인 관점으로 한국시장에 진출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죠.”

악사그룹은 세계 56개국에서 금융사업(생명보험, 손해보험, 자산운용)을 하고 있다. 1996년에 UAP 그룹을 합병하며 유럽 최대 보험회사로 성장했다.

마르시아 사장은 “금융위기 때도 AIG 등 많은 금융회사들이 어려움에 빠졌지만 악사는 펀더멘털이 튼튼한 회사여서 큰 흔들림 없이 운영됐다”고 설명했다.

한국에서 사업을 시작하면서 한국문화를 익히는 데 힘들지는 않았느냐고 물었더니 “아시아에서 일한 기간만 20년이 넘어 전혀 어렵지 않았다”고 했다.

“다혈질 프랑스인? 저는 달라요”

“전형적인 프랑스인은 매우 감성적이고 다혈질이 많은데, 저는 좀 달라요. 감성적이긴 하지만 차분하고, 감정도 다스릴 줄 압니다. 이것은 오랜 일본 생활을 통해 배운 겁니다. 제약회사 사노피에서 일할 때 경영인 교육 과정 때문에 일본에 처음 가게 됐는데, 그때 4시간 동안 조용히 앉아 있는 시간이 있었죠. 아주 힘들었어요. 하지만 지금 한두 시간씩 가만히 앉아 남의 말을 잘 들을 수 있는 것은 그런 동양문화를 익히는 시간을 거쳤기 때문이죠.”

그는 “경청이 경영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고 했다.

“고객, 직원, 주주의 목소리를 잘 듣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들의 목소리를 잘 듣는 조직은 성공할 수밖에 없죠. 지금도 의사결정을 할 때 혼자서 하지 않고 직원들에게 늘 묻고 의견을 수렴해 결정합니다.”

악사는 지난해 11월부터 회사명에서 교보 브랜드를 떼어냈다. 실적에 별 영향은 없었을까?

“다행히 큰 영향은 없었습니다. 우리도 처음엔 걱정을 많이 했죠. 그래서 브랜드 사용 계약 만료 6개월 전부터 철저히 준비했어요. 사명이 바뀐다고 콜센터 등을 통해 고객들에게 꾸준히 알렸죠. 이름만 달라질 뿐 달라지는 것은 없다고요.”

자동차보험은 교통사고와 밀접한 관련을 지닌 사업분야다. 마르시아 사장은 한국의 운전문화에 대해 “별로 좋지 않다”고 평가했다.

“한국은 역동적이고 혁신적인 나라입니다. 경제위기도 그래서 빨리 극복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운전습관이 별로 좋지 않아요. 한국의 월별 자동차 사고율은 30%가 넘는데, 미국·영국(약 15%), 일본(10% 이하)과 비교해 상당히 높죠. 이건 단순히 수치가 높다 낮다의 문제가 아니라, 해마다 6000~70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차 사고로 생명을 잃는다는 겁니다. 운전할 때 안전띠를 꼭 매고, 음주운전을 하지 않는 등의 좋은 운전습관을 익힌다면 한국의 자동차 사고 사망률이 10% 이상 줄어들 거라고 봐요.”

높은 사고율은 자동차보험사업에도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한다. 다이렉트보험사들은 손해율이 76% 정도면 이익을 낼 수 있는데, 현실에서는 손해율이 이보다 높아서 어려움이 있다고.

“한국의 자동차보험은 사고 빈도에 비해 보험료가 너무 낮아요. 그리고 한국인들은 자동차보험에 가입했으니까 사고가 나도 상관없다는 모럴 해저드도 있는 것 같습니다. 교통체계, 단속 부족, 운전자 인식 등 교통사고와 관련한 여러 분야가 조금씩 문제를 안고 있죠. 이런 부분이 개선되어야 손해율이 줄어들 것 같아요.”

마르시아 사장은 “한국은 OECD 국가 가운데 사고율은 선두권인데, 보험료는 상대적으로 낮다”며 “과거에 자동차보험을 공기업이던 한국자동차보험 한 곳에서만 팔 때 자동차보험을 공공재같이 취급해 가격을 낮게 책정했던 문화가 지금까지 이어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다 보니 차종이나 고객 특성에 따라 보험상품을 차별화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고객들이 낮은 보험료에 익숙한 데다, 자동차보험을 세금처럼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서 무조건 싼 보험만 찾기 때문이라고.

이런 사업 환경 속에서 악사는 올해 초 신상품으로 당뇨보험을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당뇨병 환자의 암 발병률 및 사망률이 일반인의 두 배 가까이 되는데도 모든 암보험에 가입이 안 된다는 점을 감안해 내놓은 틈새 상품이다. 당뇨 환자에게 가장 발생하기 쉬운 합병증인 뇌졸중과 말기신부전증, 질병실명, 족부절단 등의 질병에 대해서도 각 1000만원에서 최고 2000만원까지 집중 보장하도록 설계됐다.

“당뇨보험은 프랑스에서도 판매되는 상품입니다. 당뇨보험에서 볼 수 있듯이 선진국 시장으로 갈수록 보험 상품은 세분화 되어 있습니다. 한국은 혁신적인 나라인데 자동차보험 상품의 종류와 커버리지(보장 내역)는 다소 빈약해 아쉽습니다. 당뇨보험 같은 경우에도 해외에서는 꽤 큰 시장인데 없어서 놀랐죠.”

다이렉트보험은 온라인에서 가입부터 보상 처리까지 모든 업무가 이뤄진다. 그만큼 IT 기술과도 밀접한 비즈니스다. 마르시아 사장은 우리나라의 IT 업무환경에 대해서도 찬사를 보냈다.    

“여성질병등 특화서비스상품 내놓겠다”

“한국에서는 상담 후 계약, 보상˙지급 프로세스 등 전 과정이 온라인으로 해결되는 것이 일상화돼있지만, 해외에서는 이게 흔한 일이 아니거든요. 한국시장에서 8년 만에 자동차보험 시장에서 다이렉트가 21%나 차지하게 됐다는 건 참 대단한 일입니다.” 

다이렉트 자동차보험 시장은 현재 오프라인 중심의 기존 자동차보험사들이 잇달아 다이렉트시장에 진출하면서 춘추전국시대를 맞았다. 경쟁이 점점 치열해지고 있다는 뜻이다. 다이렉트 시장 1위로서 수성을 해야 하는 마르시아 사장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

“나폴레옹이 ‘최고의 방어는 공격’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공격은 ‘혁신’입니다. 다이렉트보험을 주력으로 하는 악사손해보험 자체가 혁신으로 생긴 회사이고, 그동안 당뇨보험 등 새로운 서비스를 꾸준히 한국 시장에 선보였죠. 대형사들은 종합보험, 장기보험 상품을 많이 판매하고 있는데요, 악사는 장기보험을 하고는 있지만 입원비, 치료비, 여성 질병 등 특화된 상품을 많이 내놓고 있어요. 유럽 시장도 손해보험 상품들이 점점 특화되는 추세죠.  앞으로도 이렇게 혁신과 서비스를 통해서 자리매김하려고 합니다.”

오프라인 자동차보험사들이 다이렉트 시장을 침범하는 상황에서 오프라인 사업에는 관심이 없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다이렉트 사업만 하는 것은 우리가 한국 자동차보험 시장의 후발주자여서가 아니라, 다이렉트 시장이 더 커질 것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모바일, 인터넷, 쌍방향 TV 등 기술의 발달로 대면 방식의 보험 시장은 언젠가는 사라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마르시아 사장은 “보험 시장 전체적으로는 지난 40여 년간 이렇다 할 성장이란 게 없었는데, 다이렉트 부문만은 눈부신 성장을 하고 있다”며 “금융위기 중에도 다이렉트 시장이 커졌듯이, 합리적인 가격의 다이렉트 보험의 미래는 밝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