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책임 중시한‘타고난 장사꾼’
‘인화·성실’로 두산 100년 토대 구축
박두병 회장은 1910년 두산의 창업주인 매헌 박승직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1936년부터 부친이 운영하던 박승직 상점의 경영에 참여했다. 해방 후 박두병 회장은 운수업을 시작하면서 새 상호인 두산상회로 이름을 바꿨다.
“네 이름의 가운데 자인 말 ‘두(斗)’ 자에 뫼 ‘산(山)’ 자를 붙여 두산이라고 하는 것이 좋겠다.” 두산은 매헌이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는 박 회장에게 지어준 상호였다. ‘한 말 한 말 차근차근 쉬지 않고 쌓아 올려 산같이 커져라’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그렇다고 상호에 재화의 축적을 바라는 뜻만 있는 게 아니었다. 사업을 번창시키되, 투기적인 재화 축적이 아니라 점진적이고도 단계적인 발전을 도모하라는 뜻도 담겨 있었다.
운수업은 당시로서는 신사업이었다. 신사업 진출에 맞춰 새 상호를 붙인 데는, 세대교체라는 의미뿐만 아니라 면포 상점이라는 가업으로부터 새 시대에 맞는 새 업종으로 전환을 인정하는 의미 또한 적지 않았다.
경영을 체계적으로 배운 엘리트
박 회장은 부친과 달리 경영을 체계적으로 배운 당시로서는 보기 드문 엘리트였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경성고등상업학교(현 서울대 상대)에 들어간 그는 졸업 후 조선은행(현 한국은행)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조선은행 입사는 “남의 밥을 먹어봐야 한다”는 부친의 의지에 따른 것이다.
박 회장은 경영철학에서는 인화, 근검, 정직, 신용을 실천한 부친의 길을 따랐으며 부친의 경영이념을 본받아 평소 기업경영에서 사람을 중요하게 여겼다. 그는 “반목은 결국 파멸을 가져오고, 화목은 영원한 발전을 의미한다”며 인화를 항상 강조했다.
인화는 상하좌우의 모든 사람과 참된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뜻이다. 박 회장은 강요된 인화가 아닌 구성원 각자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인화가 참된 인화라고 강조했다. 그는 “하늘이 도움을 주는 시기를 기다리는 것은 땅에서 이익을 얻는 것만 같지 못하고, 땅에서 이익을 얻는 것은 인화만 같지 못하다”며 인화의 정신을 강조했다.
인재 육성을 위해 이미 1950년대에 독일과 미국 등지로 직원을 유학 보낸 것은 그가 인재 중시 경영에 얼마나 일찌감치 눈 떴는지를 읽게 한다. 현재 ‘사람이 미래다’라는 메시지도 사실 박 회장의 경영철학에서부터 출발했다.
박 회장은 또한 성실함을 강조했다. 순리에 어긋나는 과욕과 무리야말로 가장 경계하는 것이었다. 지나친 욕심은 반드시 무리한 행위를 낳고, 결국은 자신을 파멸시키게 된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었다.
정직도 중요한 경영철학 중 하나였다. 박 회장은 중화학공업 진출을 원했었다. 그는 1960년대 중반부터 6년간 외자도입심의위원회 위원으로 있으면서 외국 자본을 들여올 수 있었다. 더욱이 당시 경제정책 자문을 위해 자주 대통령을 만나볼 수 있었다. 기간산업 진출을 이룰 수 있는 기회가 많았던 것이다. 하지만 외자도입심의위원회에 있으면서 그러한 신분을 이용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신조였다. 그만큼 정직과 도덕성을 중시한 것이다.
박 회장은 기업인의 사회적 책임 이행을 강조하고 실천한 기업인이었다. 그는 기업을 합리화하고 발전시킴으로써 값싸고 품질 좋은 상품을 소비자에게 공급하는 것이 곧 기업인의 사회적 책임 이행이라 생각했다. 나아가서는 기업 이윤의 사회적 환원을 실천하는 것이 보다 더 적극적인 사회적 책임 이행이라고 믿었다.
박 회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기가 갖고 있는 사업체가 절대로 자기 개인 것이 아니고 사회의 것, 나라의 것이라는 생각을 모든 기업인이 가져야 한다”며 “기업 이윤은 사회로 환원시킨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국인 최초 아시아상공회의소연합회장 역임
경영철학대로 꾸준히 두산을 키운 박두병 회장은 대한상공회의소 제6대 회장으로 선출된 1967년부터 국제 활동에도 힘을 쏟았다. 특히 한국인 최초로 1970년 아시아상공회의소연합회 회장에 피선돼 일본·대만·필리핀 등 아시아를 대표하는 재계의 리더로 자리매김하며 한국 기업의 국제적 위상을 한층 높였다.
박 회장의 세계화 노력은 경제성장기 한국 경제와 상공업계의 발전을 떠받치는 기둥이 됐다. 이후 폐암이 발병한 박 회장은 1972년 11월 수술을 받고도 이전과 다름없이 대한상의에 나와 집무를 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몸을 생각하시라’고 간곡히 만류했다. 그러나 박 회장은 “나의 병이 무엇이고 앞으로 어찌 될 것인지는 누구라도 다 아는 것 아닌가. 그나마 여력을 아껴 무료히 지낸다면 이야말로 오히려 안 되는 것이다. 끝까지 내가 할 일에 대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고, 지금의 나에겐 일하는 것이 더 좋다”고 답했다.
박두병 회장은 두산의 기반을 닦은 뒤 상공업계 발전에 온 힘을 쏟은 진정한 경영인이었다. 그가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만일 내가 다시 태어난다면 무엇이 되고 싶을까. 정치가, 학자, 군인도 있지만 역시 내게는 장사꾼밖에는 어울리는 게 없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