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극=어린이극'이라는 편견 깨야 성공한다

12월18일부터 3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디즈니 뮤지컬 <아이다>가 성남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 ‘미키 마우스’나 ‘도날드 덕’과 같은 애니메이션으로 잘 알려진 디즈니는 1990년대 중반 브로드웨이에 진출해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당시 평단과 뮤지컬 관계자들은 디즈니의 진출에 긴장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무대 제작 경험이 없는 디즈니가 애니메이션을 무대화시키는 작업에 성공하지 못할 것으로 판단했다. 첫 작품인 <미녀와 야수>가 1994년 공개되었을 때 평단의 반응은 냉담했다. 그해 토니상도 <미녀와 야수>의 화려한 의상만을 인정해 의상 부문에만 상을 수여하였다. 그러나 관객들의 반응은 달랐다. 가족 단위의 관객들이 <미녀와 야수> 공연장으로 몰려들면서 중년층과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다른 공연장과는 다른 극장 풍경을 연출했다.
1994년 <미녀와 야수>를 성공한 디즈니는 무대화가 불가능하리라고 여겼던 <라이온 킹>을 1997년 두 번째 작품으로 선택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인도네시아의 인형극 양식을 적용해 동물의 가면을 썼지만 배우들의 감성이 드러나는 작품으로 만들었다. 지금까지도 <라이온 킹>은 전 세계에서 공연하는 대표적인 디즈니의 성공작이다.
가족극을 지향하던 디즈니는 2000년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를 현대적으로 바꾼 뮤지컬 버전을 만들었다. 자사의 콘텐츠가 아닌 작품을 만든 것도 처음이지만 본격적으로 성인물에 도전한 것이었고, <아이다>마저 대대적인 성공을 거뒀다. <미녀와 야수>가 초연된 1994년부터 2004년까지 10년간 디즈니가 공연계에서 벌어들인 수익이 7억5000만달러에 달했다.


디즈니, 브로드웨이 부활시켜
세 작품의 연이은 성공으로 디즈니는 브로드웨이에서 새로운 대안이 되었다. 1980년대 브로드웨이 시장은 영국 웨스트엔드에서 넘어온 메가 뮤지컬 <캣츠>와 <오페라의 유령>, <미스 사이공>이 점령했다. 90년대 웨스트엔드로부터 주도권을 다시 찾아온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브로드웨이의 신출내기 디즈니였다. 첫 작품인 <미녀와 야수>를 무시했던 평단도 평가가 달라져 토니상에서 <라이온 킹>은 작품상, 연출상, 안무상, 무대디자인상, 의상상, 조명디자인상을, <아이다>는 의상상, 여우주연상, 작곡상, 무대디자인상, 조명디자인상을 수상했다.
이외에도 디즈니는 지속적으로 자사의 콘텐츠를 토대로 뮤지컬을 제작해왔다. 2004년 우산을 쓰고 온 가정교사 <메리 포핀스>를 뮤지컬계 마이더스 프로듀서 카메론 매킨토시와 합작으로 올렸고, 2006년에 <타잔>, 2007년에 <인어공주>를 연이어 올렸다. 또한 디즈니 TV 채널 인기 영화였던 <하이스쿨 뮤지컬>을 무대화시켜 흥행시키기도 했다. 독일에서 세계 초연한 <노트르담의 꼽추>와, 애니메이션의 노래들을 모아 만든 주크박스 뮤지컬 <온 더 레코드>, 그리고 피터팬 그 이후의 이야기로 꾸민 <피터와 별잡이들>을 포함하면 무려 9개의 프로덕션을 제작했다. 이것이 끝이 아니다. 디즈니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뮤지컬로 제작하고 있으며 <알라딘>과 브로드웨이판 <노트르담의 꼽추>도 다시 제작 중이다.
디즈니의 애니메이션들이 뮤지컬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꿈과 환상 그리고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하는 해피엔딩’을 다루는 디즈니의 작품들과 뮤지컬의 성향이 잘 맞기 때문이다. 게다가 디즈니의 자금력은 동화 속 판타지를 무대화하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드넓은 초원에서 뛰노는 아프리카 동물들을 무대 위에서 재현할 수 있었던 것은 줄리 테이머의 천재적인 재능이 절대적으로 공헌했지만 그녀의 재능을 전폭적으로 지원한 디즈니의 재정이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성공을 장담할 수 없었을 것이다. <라이온 킹>은 제작비만 2000만달러가 들어 당시까지 브로드웨이 최대 제작비를 기록했다. 게다가 알란 멘켄, 엘튼 존 등 뛰어난 작곡가가 만든 익숙한 곡들은 대중들을 사로잡았다.
비록 <타잔>과 <인어공주>가 전작에 못 미치는 흥행을 기록하며 최근 디즈니의 성공률이 저조하지만 여전히 디즈니는 브로드웨이의 핵심 제작자로서 중요한 입지를 차지하고, 디즈니의 작품들은 세계 전역에서 공연되고 있다.
이번 성남아트센터에 올라가는 <아이다> 공연은 2005년 LG아트센터에서 공연한 후 재공연하는 것이다. 이미 국내에선 지금의 디즈니를 있게 해준 디즈니 뮤지컬 3인방(<미녀와 야수>, <라이온 킹>, <아이다>)이 모두 소개되었다. 그러나 브로드웨이의 새로운 희망인 디즈니 작품들이 국내에서는 그다지 좋은 성적을 기록하지 못했다. 2004년 소개된 <미녀와 야수>나 2005년 <아이다> 그리고 일본 시키가 들어오면서 사회적인 이슈를 만들었던 <라이온 킹>까지 국내 시장에서는 수익을 내지 못했다. <라이온 킹>이 1년 만에 적자를 내고 막을 내린 나라는 없다. 적어도 2~3년 장기 공연이 가능한 프로덕션인데 국내에서는 전혀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디즈니의 작품들이 국내 시장에서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 작품마다 조금씩 개별적인 차이가 있을 것이다. <미녀와 야수>의 경우 주인공 배우의 외모가 논란이 됐고, <아이다>는 처음으로 8개월 동안 공연했으며, <라이온 킹>은 일본 극단의 제작으로 캐스팅이나 마케팅적인 면에서 국내 시장 흐름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
가족극에 대한 편견 짙은 한국
이러한 개별적인 문제들이 있었겠지만 디즈니 작품들이 한국 시장에서 고전하게 된 공통된 원인은 아직 가족 공연이 한국 공연 시장에서 자리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가족 공연’이라고 하면 ‘어린이 공연’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디즈니의 뮤지컬들은 남녀노소 누가 봐도 즐길 수 있다는 의미의 가족 공연인데, 국내에서는 어린이 공연이라는 인식을 깨끗이 지우지 못했다. 대부분의 관객층인 성인 관객층을 끌어들이지 못하고, 심지어 가족 관객까지도 아이들만 공연장에 들여보내고 어른들은 밖에서 기다리는 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어린이 공연에 10만원(R석 기준)에 상당하는 티켓 가격을 지불하기가 녹록지 않았다.
물론 <아이다>는 디즈니가 성인을 대상으로 만든 첫 뮤지컬이고, 국내 시장에서 가장 적은 손해를 본 작품이다. 제작사 측에서도 디즈니 작품임을 전면으로 내세우지 않았고 뮤지컬 <아이다>라는 브랜드를 부각시키려고 마케팅한 것도 다 그런 이유 때문이다. 5년 만에 다시 올라가는 이번 <아이다> 공연은 디즈니의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엘튼 존의 음악, 토니상에서 인정한 무대와 조명, 옥주현, 정선아, 김우형 등 국내 정상급 뮤지컬 배우 등 작품 내적으로는 무엇 하나 빠지지 않는다. 성남이라는 서울에서 멀어진 공간과 디즈니 뮤지컬(가족 뮤지컬)이라는 이미지의 핸디캡을 얼마나 벗어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