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괴적 혁신으로 승승장구 아시아 시장 점유율 ‘넘버원’
시세이도(資生堂)는 올해로 창업 138년을 맞은 노포(老鋪) 중의 노포다. 1872년 일본 최초의 서양식 조제약국에서 출발했다. 긴자(銀座)의 ‘시세이도 약국’이 그 원형이다. ‘미츠코시(三越)에서 쇼핑한 뒤 시세이도 팔러(Parlor:식당)에서 식사하는 것’이 부유층의 전유물로 여겨질 정도로 긴자의 명물기업이다.
시세이도는 오래됐지만 대단한 힘을 가진 기업이다. 일본 최대의 화장품회사이며 아시아 시장점유율에서도 압도적인 1위를 달리고 있다. 글로벌 레벨에선 로레알∙P&G∙에이본 등과 각축을 벌이고 있다. 경쟁사와의 격차도 현격하다. 매출액 6000억엔대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며 일본 화장품시장(시장규모 2조2000억엔대)을 쥐락펴락한다. 2007년 현재 시장점유율 25.3%다. 국내 라이벌은 ‘카오우(花王)&가네보우’다. 2004년 파산한 가네보우를 카오우가 인수한 뒤 덩치가 커졌지만 화장품만 비교하면 시세이도의 시장 장악력이 월등하다.
시세이도의 지향점은 동양과 서양의 장점을 합한 잡종 추구다. 그런데 이 잡종이 이젠 시세이도의 오리지널이 됐다. 요컨대 서양예술과 동양감성의 결합이 시세이도 스타일이다. 예술을 경쟁력의 원천으로 보듯 최대 파워는 디자인이다. 창업 초기부터 ‘미와 건강과 젊음’을 유지하는 생활문화 제안 위주의 사업 전개에 몰두했다.
1888년 일본 최초의 고형치약인 ‘후쿠하라 위생치약비누’를 만들었는데 이게 엄청난 히트를 치며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1897년 본격적으로 화장품 사업에 뛰어들었고 1902년엔 소다수 판매대를 설치하며 외식사업에도 진출했다. 1927년 주식회사로 변경한 뒤 1949년 도쿄증권거래소에 상장됐다.
해외시장에서도 유명기업이다. 1957년 대만 진출을 시작으로 미국∙이탈리아∙싱가포르∙프랑스 등으로 영역을 넓혀나갔다. 81년엔 중국시장에도 뛰어들었다. 2010년엔 그루지야를 비롯해 남아프리카∙콜롬비아 등에서도 화장품 판매를 시작했다. 덕분에 해외매출이 40%를 웃돌며 글로벌 대리점만 2만5000개를 넘긴다.
금융위기에도 불구 착실한 성장세를 실현 중이다. 매출이 좀 줄긴 했어도 여전히 확고부동의 No.1 지위를 유지한다. 2009년 결산 기준(2010년 3월) 매출액 6442억엔에 영업이익 504억엔, 당기순이익 337억엔을 기록했다. 사업별 매출(연결)은 국내화장품(3976억엔), 해외화장품(2366억엔)으로 구분된다. 국내 및 해외매출액은 국내(4076억엔)가 절대적인 가운데 아시아(1153억엔), 유럽(738억엔), 미국(485억엔) 순으로 기여도가 높다.
2010년 예상실적은 고무적이다. 2010년 1분기(4~6월)의 경우 매출액(1458억엔), 영업이익(33억엔)을 기록하며 전년 동기 대비 4.4%, 56.8% 증가했다. 특히 해외매출(585억엔)이 24.5% 증가했다. 순이익은 -7억엔을 기록했는데 이는 기업매수 비용 등 특별손실(-32억엔) 때문이다. 2010년 연간추정은 매출액(7050억엔), 영업이익(505억엔), 순이익(290억엔) 등으로 예상된다. 이렇게 되면 해외비중(3000억엔대)이 42.1%를 차지하게 된다. 모두 77개국에 진출 중이며 R&D 전담인력은 1000명에 육박한다.
“성공 가능성 60%면 당장 실행하라”
시세이도의 끊임없는 성장행진은 위기 당시 등판한 구원투수 덕분으로 평가된다. 90년대 이후 고질적이던 성장지체의 악순환을 무명의 내부 승진 결정 이후 끊어내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마에다 신조(前田新造) 사장이다. 2005년 당시 경영기획실장에 불과하던 그의 사장 발탁은 한 마디로 충격이었다. 오너 가문이 아닐 뿐더러 사내서열을 훌쩍 건너뛴 깜짝 인사여서다.
하지만 이사회의 선택은 옳았다. 신임사장은 강력한 개혁의지를 내걸며 현장혁신을 요구했다. 이때 나온 게 ‘즉결주의’다. 60%의 가능성과 찬성만 있다면 40%의 위험은 무시하고 즉각 실행하란 경영방침이다. 일단 시작한 뒤 조금씩 수정하는 게 차일피일 미루는 것보다 낫다는 이유다. “40%의 난관 때문에 타이밍을 놓치느니 뛰어든 뒤 성공확률을 60%에서 100%로 높이는 게 필요”하다는 게 신임사장의 취임 일성이었다.
첫 개혁은 브랜드 통합작업이었다. 그는 파괴와 창조를 염두에 두고 ‘회사를 일단 깨버린 뒤 다시 고쳐 세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초의 타깃은 과다한 브랜드였다. 쪼개진 브랜드 탓에 자금∙노력 등이 분산되는 건 물론 제품의 차이를 알지 못한 고객항의가 잇따랐기 때문이다. 신임사장은 기존브랜드를 통합해 ‘굵고 두터운 브랜드’로 재조합했다. 반대가 잇따랐지만 선 굵은 신임사장의 결단은 요지부동이었다. 결국 방목상태에서 우왕좌왕하던 브랜드들이 6대 메가브랜드로 통합됐다. 과다한 브랜드가 경영압박의 원인이었음은 통합 직후 개선 효과로 확인됐다. 핵심브랜드의 시장독주가 확연해진 것이다. 가령 7개의 샴푸브랜드를 합해 ‘츠바키(동백)’라는 통일제품을 내놨는데 출시 3개월 만에 해당부문 1위에 랭크됐다. 파격적인 마케팅도 한몫했다. 신임사장은 2006년 미모 순위 1~6위까지의 여배우 모두를 단일상품에 기용했다. 그해 광고비만 50억엔을 썼다. 한 명도 부담스런 판에 최정상 여배우 전원을 집합시킨 광고 발상은 공전의 히트상품을 키운 일등공신이었다.
메가브랜드 전략은 당시로선 획기적이었다. 고객 니즈가 다양화되면서 시대 트렌드를 읽어가며 개별 브랜드를 확대하는 게 일반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장축소 앞에 이 전략은 설명력이 줄어들었다. 그 대안인 메가브랜드 전략은 선전겿퓔택個坪?특정 브랜드로 집중시켜 업계 상위를 노리는 것이다. 이 결과 시세이도의 브랜드는 크게 ▷메이크업(Maquillage) ▷남성화장품(uno) ▷스킨케어(aqualabel) ▷샴푸 ∙ 린스(tsubaki) ▷메이크업(Interrate) ▷스킨케어(Elixir) 등으로 나뉘었다. 동일품목이라도 괄호 안의 브랜드처럼 특징별로 나눠 어필이 되도록 했다.
가격대는 중간인 2000~5000엔대를 중심으로 조정했다. 이는 브랜드 특징을 유지하면서 광범위한 소비층에 어필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를 판매할 판매사원의 업무평가도 양적 매출항목 대신 질적인 서비스 부문으로 대체했다. 역시 놀랄 만한 개혁이었다. 판매사원 목표할당제야말로 업계상식이었기 때문이다. 매출에 얽매여 고객 만족을 소홀히 할 여지를 없애버린 것이다. 이후 고객 만족은 업그레이드됐다. 만족감을 표하는 고객엽서가 눈에 띄게 급증했다.
공격적인 중국진출 ‘대성공’
브랜드 재구축과 함께 외부적으론 글로벌 진출에 포커스를 맞췄다. 중국 진출이 대표적이다. 시세이도의 중국 진출은 제2의 창업선언과 마찬가지다. 이 숙제는 신임사장이 간부였던 시절부터 도맡은 업무라 누구보다 밝다.
중국전용 백화점브랜드 ‘오프레(aupres)’는 지금이야 중국의 국민브랜드로 성장했지만 10년 전만 해도 불모지나 마찬가지였다. ‘자동차교습소라도 지을 작정이냐’는 반대도 있었지만 그래도 그는 공장을 지었다. 공장이 없었다면 수요충당 자체가 어려웠을테니 그의 판단이 적중한 셈이다. 현재 도입점만 800개 점포에 화장품 전용점포 계약점도 4500개에 육박했기 때문이다. 제3의 판매망인 약국채널은 연내에 취급점포를 600개까지 늘릴 계획이다.
중국은 이제 회사의 주력시장으로 자리를 굳혔다. 81년 최초로 진출한 덕분에 글로벌 경쟁사를 제치고 고급화장품의 대명사로 대접받는다. 진출 당시 ‘아시아인의 피부는 아시아인이 제일 잘 안다’는 콘셉트를 내세운 게 적중했다.
전망도 밝다. 아시아권의 경우 2020년 4억6000만 세대로 추정되는 연간 1만달러 이상 소득 세대의 78%가 중국에 집중될 것으로 전망된다. 2014년까지 아시아에서 압도적인 존재감을 확보한 후 2017년 글로벌 플레이어로 안착하는 게 시세이도의 목표다.
직원만족 으뜸…‘내 딸은 시세이도로’
시세이도는 임직원의 높은 근무만족도에서도 명성을 자랑한다. 근무환경이 그만큼 탁월하다. 2010년 8월 ‘리크루트’가 조사한 ‘딸이 들어갔으면 하는 입사희망 기업순위’1위에 랭크됐다. 산전수전 다 겪은 샐러리맨 아버지가 딸에게 추천한 결과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첫 월급은 20만5650엔대(근속자 평균연봉은 705만엔)로 대기업 평균수준이지만 그 외의 혜택이 상당하다. ‘다닐 만한 회사 환경을 위해 가능한 모든 노력을 다 한다’는 게 회사의 기본방침이다.
경기침체라도 인건비만큼은 절감 대상이 아니다. 이후를 대비해 오히려 더 투자해야 한다고 봐서다. 직원만족도 조사도 연례행사다. 활력 넘치는 조직풍토 실현을 위해 계약∙파견사원도 조사에 포함된다.
시세이도는 여성천국이다. 고객의 90%, 사원의 80%, 주주의 50%가 여성인 기업답게 여직원을 위한 근무환경이 잘 조성됐다. 사실 시세이도도 예전엔 결혼∙출산∙육아 등의 이유로 회사를 그만두는 여직원이 많았다. 하지만 이젠 그런 이유로 회사를 그만두는 일이 드물어졌다. 덕분에 2004년엔 균등추진기업표창까지 받았다. 또 ‘젠더프리(Gender Free)’를 사내방침으로 내걸고 전체사원에게 관련책자를 배포했다. 사원의 의식개혁을 통해 여성채용 및 등용을 추진하기 위해서다.
여직원 채용증가 등 성과도 좋다. 관리직 여성비율도 20%에 육박한다. 이는 일본기업 평균(10%)의 2배다. 남녀∙연령∙자녀 유무 등과 무관한 근무형태의 실현이다. 그래도 갈 길이 멀다는 게 회사판단이다. 여성이 관리직의 절반 정도는 돼야 여성중심 화장품업계의 세계표준이란 입장에서다.
시세이도 근무만족의 핵심개념은 남녀평등적인 ‘일과 생활의 조화(WLB=Work Life Balance)’로 요약된다. 지금이야 널리 알려졌지만 시세이도는 WLB 개념조차 희박했던 90년대 초반부터 여기에 공을 들였다. 결과적으로 퇴직사원도 감소세다. 대체요원은 계속해서 늘려 1000명 체제를 유지한다는 게 방침이다. 인건비는 늘지만 경험 많은 여성판매원이 계속 근무하는 게 효율성 측면에서 유리하다는 이유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