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9년 미국 의회에서 금융서비스현대화법(Financial Services Modernization Act)이 통과되고 지주회사 방식의 겸업화가 허용되면서 미국 은행은 대형화, 겸업화의 길을 걷게 된다. 뱅크 오브 아메리카(이하 BoA)도 2001년 켄 루이스(Ken Lewis)가 새로운 CEO로 취임하면서 상업은행에서 유니버설 뱅킹으로 진화해 나갔다.
2004년 BoA는 당시 미국 내 시장점유율 7위이며 미 동부지역에서 강력한 영업기반을 구축하고 있던 보스턴 기반의 플리트보스턴 파이낸셜(FleetBoston Financial)을 470억달러에 매입할 것을 발표했다. 한편 거대 신용 카드 회사 중 하나인 MBNA를 350억달러에 매입하여 2006년에 합병을 마무리했다. 그 결과 합병 회사는 4000만 개의 카드 계좌를 확보하게 되었다. 2007년에는 ABN 암로로부터 일리노이, 미시간, 인디애나를 기반으로 한 라살레 뱅크(LaSalle Bank)를 210억달러에 인수, 1조7000억달러의 자산을 보유하게 되었다.
2008년 BoA는 모기지 시장에 강점을 가지고 있는 컨트리와이드 파이낸셜(Countrywide Financial)을 41억달러에 매입할 것을 발표했다. 이로써 BoA는 주택 모기지 시장에서도 25%에 가까운 시장점유율을 보유하게 되었다.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리먼 브라더스(Lehman Brothers)가 파산할 때 BoA는 메릴린치를 인수하여 세계 최대의 금융기관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하지만 메릴린치의 지속적인 손실로 곤경에 처하게 되었고, TARP(Troubled Asset Relief Program) 자금 지원을 받는 상황에 이르렀다. 미 재무부의 자금 지원 이후 BoA는 2009년 63억달러의 순이익을 기록하며, 2009년 12월 TARP 프로그램의 종료를 선언하였다.

뱅크 오브 아메리카 성공 요인
2010년 7월 <더 뱅커>가 발표한 세계 1000대 은행 자료에 따르면 BoA는 1604억달러의 기본자본을 기록, 기본자본 기준 세계 최대은행에 등극하였다. 세계 최대은행으로 오르기까지 BoA는 인수합병(M&A)으로 대표되는 외부 성장 전략과 식스 시그마로 대표되는 내부 혁신 전략이 중점적으로 추진되었다.
끊임없는 M&A를 통한 외연 확장
2000년대 BoA는 취약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M&A를 지속적으로 추진하였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의 대표적인 M&A 사례로 2004년 플리트보스턴과의 합병, 2006년 MBNA와의 합병을 들 수 있다. 2004년 플리트보스턴과의 합병 후 BoA는 영업 주와 지점 수에 있어 전미 1위의 위치를 확보하게 되었다. 이 합병은 JP 모건 체이스와 뱅크 원의 합병과 함께 미국의 대형 금융 그룹이 재편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MBNA와의 합병은 미국 신용카드 시장에서의 고객확보 경쟁을 바탕으로 하였다. 당시 미국 신용카드 시장은 씨티그룹이 미국 백화점업계 1,2위인 페더레이티드와 메이로부터 약 1700만 개의 카드계좌를 인수하였고, 워싱턴뮤추얼(현 JP 모건 체이스)이 프로비디언 파이낸셜(Providian Financial)을 인수하는 등 대형 금융기관들이 신용카드 사업을 적극 강화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당시 신용카드 시장 5위 사업자였던 BoA는 1위 신용카드사로 도약하기 위해 2006년 미국 신용카드 시장점유율 3위를 차지하고 있던 독립계 신용카드 회사인 MBNA와 합병하였다. MBNA는 어피니티 카드(Affinity Card: 교육, 종교, 시민, 스포츠 등의 단체와 제휴하여 단체의 회원을 대상으로 발급하는 카드) 분야에 강점을 보유하고 있던 전업계 카드회사로 양사의 합병은 신용카드 고객확대에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하였다.
글로벌 금융위기 중인 2009년의 메릴린치 인수는 BoA를 상업은행의 강자에서 유니버설 뱅킹의 강자로 변모하게 해준 사건이다. 인수 전 BoA는 연이은 M&A에 성공하며 상업은행에서 두각을 나타냈으나 투자은행 부분에서는 이렇다 할 성과를 보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메릴린치를 인수하며 BoA는 상업은행과 투자은행간의 시너지를 창출하면서 투자은행 사업부분에서만 2010년 9월 누적기준 38억달러의 이익을 거두며, 미국 내 1위, 전 세계 2위의 투자은행으로 자리매김하였다.
BoA의 2006년 MBNA 인수, 2007년 U.S 트러스트(자산관리회사) 인수 등 은행업이 아닌 타 금융기관의 인수는 미국의 금융규제에 따른 은행의 업무 다각화 노력으로 풀이할 수 있다. 미국의 금융 규제는 미국 내 예금시장점유율이 법정 상한인 10%를 넘어설 경우 추가적인 합병을 제한하고 있는데, 예금 시장점유율이 10%에 육박했던 BoA는 은행이 아닌 카드사, 자산관리회사를 인수해 업무 다각화를 꾀하였다. 이러한 업무 다각화전략은 고객에게 정형적인 금융서비스에서 벗어나 맞춤형 금융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
식스 시그마를 바탕으로 한 내부 혁신 전략
BoA는 추가적인 M&A, 자생적인 성장 등 은행의 대형화로 인해 내부 경영 환경이 복잡해짐에 따라 내부 혁신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BoA는 2005년 기준으로 초당 8000개 이상의 거래를 수행하였고, <포춘> 선정 500대 기업의 98%와 거래하고 있었으며, 미국 내 50개 주에서 30만 개 이상의 기업 고객을 유치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경영진은 고객의 불만을 최소화하고 업무를 고도화하는 동시에 고객만족도를 제고할 필요가 있었다. 식스 시그마가 그 해결책으로 제시됐다.
식스 시그마란 통계 척도를 사용해 모든 품질수준을 정량적으로 평가하고, 품질혁신과 고객만족을 달성하기 위해 전사적으로 품질과 불량률을 관리하는 전략을 말한다. 1980년대 말 식스 시그마는 모토로라 생산현장의 품질혁신을 위한 방법론으로 이용된 이후, GE의 경영 프로세스에 적용되며 경영 전반의 혁신활동으로 자리 잡았다.
BoA의 경우 기존 제조업에서 사용되던 품질 중심의 식스 시그마에서 벗어나 인력개발과 업무처리시스템의 개혁을 통한 품질 및 생산성 향상에 목표를 두었다. 즉, 기존 제조업이 식스 시그마를 품질혁신과 불량률 관리를 위한 하나의 방법론으로 이용한 것과는 달리, BoA는 식스 시그마를 은행 전반 프로세스의 개선에 적용했으며, 프로세스 혁신 및 재무적인 성공은 궁극적으로 고객 만족도의 제고를 가져와 BoA를 식스 시그마의 대표적인 성공기업으로 만들었다.
BoA의 식스 시그마는 2001년 4월 켄 루이스가 새로운 CEO로 취임하면서 추진되기 시작하였다. 시행 초기 직원들의 저항을 극복하기 위해 켄 루이스는 식스 시그마 프로젝트를 직접 실행하였으며, 모든 경영진이 식스 시그마의 리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그린벨트 자격을 취득하였다.
BoA 식스 시그마의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로 ‘고객 대만족(Customer Delight)’이라는 전사 차원의 새로운 혁신 지표 개발을 들 수 있다. 이 지표는 기존 5단계의 고객만족도 조사에서 벗어나 고객의 만족 수준을 10단계로 세분화한 것으로, 은행 서비스에 대한 만족을 넘어 다른 사람들에게도 BoA와 거래할 것을 권유할 수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게 하였다.
BoA는 이 지표를 통해 대만족한 고객이 만족한 고객보다 BoA와 깊은 관계를 형성하며, BoA를 더 많이 추천한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한편 이 지표를 통해 고객이 BoA와의 거래에서 만족 또는 불만족하는 요인을 자세히 파악하고, 이를 직원 교육 프로그램에 반영하여 회사 전반에 적용할 수 있었다.
BoA의 식스 시그마는 대형화 과정에서 고객 중심, 고객 만족이라는 명제하에 업무 프로세스가 정착된 성공적인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BoA와 플리트보스턴과의 PMI 과정에서도 식스 시그마는 양행간의 이질적인 프로세스 및 조직을 통합하는 방법론으로 정립되어 재무적, 비재무적 효과를 가져오는 데 성공한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BoA의 전략이 국내 금융기관에 주는 교훈
최근 국내 금융기관들은 아시아 금융권을 선도하는 금융기관이 되겠다는 비전을 갖고, 대형화, 국제화, 다각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은행산업의 경우 대형화와 더불어 투자은행 부문의 확대도 추진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상업은행으로의 성공, 투자은행 인수, 글로벌 금융위기 하에서의 성장전략, 금융위기 이후의 위기를 극복한 BoA의 사례는 지속적인 성장을 꾀하고 있는 국내은행들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편, 국내 금융기관에서도 BoA의 성공사례를 바탕으로 식스 시그마를 통한 업무 프로세스 개선을 추진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났으며, 실질적인 재무성과를 거두기도 하였다. BoA의 식스 시그마 사례에서 보듯, 국내 금융기관들은 프로세스 개선의 궁극적인 목표가 효율성, 내부 통제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고객 만족 제고에 있음을 확인하고, ‘고객 대만족’을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