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울 게 없어 보이는 영국 프리미어 리그 축구스타들에게도 ‘드림카’는 존재한다. 그들이 가장 갖고 싶어하는 차는 바로 벤틀리, 그중에서도 가장 화려한 컨티넨탈 GT다. 빛나는 역사와 화려한 스타일, 폭발적인 성능과 엄청난 가격 등 벤틀리는 ‘성공의 척도’로 꼽을 만한 가치를 한가득 지니고 있다. 스마트폰과 태블릿 PC가 횡행하는 21세기에도 변함없이 수제작을 고집하고 있는 브랜드, 그래서 벤틀리는 더더욱 특별하다.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4인승 쿠페

1919년, 영국의 월터 오언 벤틀리(Walter Owen Bentley)는 당시 프랑스에서 차를 수입해 판매하던 동생 호레이스(Horace Bentley)와 함께 벤틀리 자동차 회사를 설립했다. 부유한 데다 엄청난 자동차광이었던 벤틀리 형제는, 처음부터 자동차 경주를 염두에 두고 사업을 시작했다. 대중에게는 자동차가 생소하던 그 시절에도, 부유층은 이미 자동차 경주를 즐기고 있었다. 그들의 의도는 완벽한 성공을 거뒀다. 처음 개발한 차종인 3리터는 세계 최고의 내구 레이스인 르망 24시간 경주에서 1924년과 1927년 연거푸 우승을 차지했다. 그 사이사이에는 성능을 좀 더 높인 고급 모델을 계속 발표했다. 하지만 초창기부터 과도하게 자동차 경주에 집착했던 탓에 사업은 곧 재정난에 직면하게 되었다. 결국 창업 12년 만인 1931년, 벤틀리는 당시 영국 최고의 자동차 회사 중 하나였던 롤스로이스에 매각되었다.

이후 벤틀리는 롤스로이스에 버금가는 최고급 프리미엄 브랜드로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롤스로이스와 기술을 공유하고, 스타일도 롤스로이스와 비슷하게 변해갔다. 물론 얻은 것만큼이나 잃은 것도 많았다. 롤스로이스의 하위 브랜드라는 이미지가 굳어진 것도 잃은 것 중 하나. 그 와중에도 벤틀리는 S시리즈와 T시리즈 등 명차를 계속 내놓았다. 그리고 1980년 이후에는 뮬산느와 컨티넨탈 등 롤스로이스와는 전혀 다른 독자 모델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바로 ‘벤틀리의 부활’이었다.

폭스바겐과의 만남, 명예회복의 전환점



정체성을 되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던 벤틀리에 역사적 전환점이 다가온 때는 1998년. 독일 최대의 자동차 회사 폭스바겐 그룹이 벤틀리 인수를 전격 발표한 것이다. 풍족한 자본과 전폭적인 지원, 고급 인력 등을 단숨에 얻을 수 있게 된 벤틀리는 그날 이후 무서운 속도로 자존심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폭스바겐 그룹 인수 이후 처음 선보인 모델은 아나지. 이후 스포티한 컨티넨탈 GT에서부터 최상급 리무진 뮬산느에 이르기까지 생산차종을 늘려가며 명실상부 세계 최고의 프리미엄 브랜드로 자리를 굳힐 수 있게 되었다.

롤스로이스의 그늘을 벗어난 벤틀리가 본격적으로 자신의 뿌리를 찾기 위해 만들어낸 첫 차가 컨티넨탈 GT다. 지난 2003년 처음 등장한 컨티넨탈 GT는 다른 어떤 브랜드도 흉내 낼 수 없을 고급스러움과 우아함의 극치를 과시하며 벤틀리의 부활을 확실히 알렸다. 그 압도적인 화려함에 도취한 부호들과 유명인사들의 발길도 끊이지 않았다. 벤틀리의 주요 고객 리스트에는 과거의 헨리 포드에서부터 재클린 케네디 여사의 두 번째 남편이자 그리스 선박왕인 아리스토텔레스 오나시스, 그리고 최근의 패리스 힐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유명인사들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

모든 자동차를 일일이 수공으로 제작하는 벤틀리의 생산대수는 당연히 많지 않다. 4천여 명의 직원들이 일하고 있는 영국 크루 공장이 1919년부터 컨티넨탈 GT를 처음 공개했던 2003년까지 만 84년간 만들어낸 생산대수는 고작 1만6천여 대. 소량생산 덕분에 최고급 브랜드로서의 가치는 높일 수 있었지만, 반면 그 바람에 사업성은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2003년 데뷔한 컨티넨탈 GT는 이후 지금까지 7년간 2만3천 대나 팔렸다. 벤틀리로서는 ‘84년간의 기록을 7년 만에 뛰어넘은’ 엄청난 히트상품인 것이다. 컨티넨탈 GT의 대성공은 세계 각국의 부호들이 그만큼 ‘진짜 벤틀리’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방증인 동시에, 이후 벤틀리 브랜드의 가능성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는 계기이기도 했다. 그리고 마침내, 벤틀리는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벤츠로도 만족하지 못한다면, 벤틀리 컨티넨탈 GT를 타라.”

어떤 면에서 보면 벤틀리는 ‘벤츠보다 더 좋은 차를 만들어내겠다’는 폭스바겐의 야심이 담긴 ‘허영의 산물’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만 보기에는 너무도 탁월한 기술적 특성을 고루 지니고 있기도 하다. 세계 최고 수준의 서스펜션과 플랫폼, 정교한 기어박스와 온갖 전자장비들. 여기에다 편집증에 가까운 완성도가 더해져 최상의 품질을 완성해낸 것이다. 또한 폭스바겐 그룹 인수 이후에는 영국적 전통에 독일식 엔지니어링까지 더해져 가히 완벽에 가까운 수준에 도달할 수 있게 되었다.

컨티넨탈 GT의 도어를 열면 누구나 저도 모를 감탄을 내뱉게 된다. 나무무늬가 아닌 ‘진짜 원목’으로 가공한 대시보드와 최고급 가죽으로 장인들이 하나하나 손질해 만든 시트 등 마치 명품 가구 전시장을 보는듯한 분위기 때문이다. 세월의 변화에 따라 운전석에 마련한 내비게이션이 고풍스러운 분위기와 묘한 대조를 이룬다.

1. 최고급 호화요트 부럽지 않은 컨티넨탈 GT의 실내. 최상급 가죽과 목재가 듬뿍 들어간다.

2. 2010년 파리 모터쇼의 주인공은 단연 2011년형 벤틀리 컨티넨탈 GT였다. 모터쇼 발표 현장.

첨단기술∙깊은 전통이 환상적으로 어우러져



고풍스러운 분위기라고 해서 주행성능마저 그렇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컨티넨탈 GT는 몸살 날 정도로 빠르고, 소름 돋을 만큼 정확하며, 놀라울 정도로 안정적인 거동을 보인다. 특유의 네바퀴굴림 방식은 W12 6.0리터 575마력 엔진이 뿜어내는 폭발적 파워를 너끈히 감당해낸다. 고요하고 부드러운가 하면, 격동적이고 힘찬 게 컨티넨탈 GT의 주행감각이다.

컨티넨탈 GT의 고객층은 다른 브랜드의 경쟁차종 고객보다 연령대가 다소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만큼 설익은 연예계 반짝스타나 벼락부자보다는, 오랜 세월에 걸쳐 조용히 성공을 거둔 인사들이 많다는 얘기. 가격으로 보면 컨티넨탈 GT와 맞먹을 고급차들도 많지만, 품격으로 따지자면 이 차를 따라올 만한 차가 드물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컨티넨탈 GT는 태어난 이후 지금까지 드러나지 않게 소소한 변화를 거쳐 왔다. 점잖은 고객들이 조용히 지적한 문제점들은 신속하면서도 완벽하게 개선했다. 고급성과 함께 그에 걸맞은 성능도 계속해서 끌어올렸다. 그리고 이제, 2011년형 컨티넨탈 GT가 데뷔했다. 머지않아 한국 시장에서도 출시할 예정인 2011년형은 한결 세련되게 다듬은 디자인에 엄청난 엔진을 올려 본격적인 ‘슈퍼 스포츠’를 예고하고 있다. 최고속도는 시속 319km,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 가속은 단 4.6초에 끝낸다. 성능은 높이는 대신 알루미늄을 풍성하게 써 차체 무게도 65㎏이나 줄였다. 시장 판매를 책임질 V8 엔진도 곧이어 등장할 예정이다. 2011년형 컨티넨탈 GT의 국내 시판 가격은 3억원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  Tip. 2011년형 벤틀리 컨티넨탈 GT  |

성능∙품격 모두 충족시키는 프리미엄 쿠페

2011년형 벤틀리 컨티넨탈 GT는 V6 엔진 2개를 가로로 이어 붙인 W12 6.0리터 트윈 터보 엔진을 장착해 엄청난 파워를 만들어낸다. 575마력의 최고출력은 현재 국내 시판 중인 W12 모델보다도 15마력이나 더 올라간 수치.

단지 빠르기만 하다면 그것은 컨티넨탈 GT의 진정한 가치가 아니다. 컨티넨탈 GT는 세상에서 가장 편안하게 시속 300㎞에 도달할 수 있는 차로 꼽힌다. 또한 빠른 속도에서만 진가를 발휘하는 것도 아니다. 몇 년 전 벤틀리를 생산하는 영국 크루 공장을 방문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 주변의 좁고 꼬불꼬불한 시골길에서도 안락하고 느긋한 성격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고속주행과 저속주행, 고속도로와 비포장 시골길 등 어떤 운전 환경에서든 최상의 승차감과 성능을 유지하는 차가 바로 컨티넨탈 GT다.

이번 신형은 차체 디자인을 더욱 예리하게 다듬고 좀 더 단호한 디테일을 부여해 본궤도에 오른 자신감을 거침없이 표현했다. 21인치 초대구경 휠이 어울릴 정도로 휠 하우스는 거대하며, 헤드램프에는 최근 경향에 따라 LED 램프를 더했다. 실내의 각종 버튼이나 레버는 이전보다 얇고 가볍게 만들어 현대화에 동참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아무리 고속으로 달려도 탑승자의 귀에는 바람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탐방 영국 크루 공장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드림 팩토리”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붉은 벽돌 건물. 영국 크루의 벤틀리 공장은 지난 1939년 7월 문을 연 유서 깊은 곳이다. 벤틀리의 역사를 고스란히 함께 해온 공장.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영국 공군의 희망이었던 스핏파이어 전투기 엔진을 이곳에서 만들기도 했다. 지금은 컨티넨탈 GT와 컨티넨탈 GTC(GT의 컨버터블 버전), 아나지 등 벤틀리의 모든 차종을 만들어낸다. 본격적인 자동차 생산은 지난 1946년 시작되었다.

맨체스터에서 약 40분 거리에 있는 크루 공장은, 크지는 않지만 무척 단정하고 깨끗한 분위기를 자랑한다. 4천여 명 작업자들의 평균연령은 40세, 평균 근속연수는 22년 이상이다. 다른 브랜드에서 일하다 이곳으로 옮겨온 사람은 거의 없고, 전체 작업자의 90% 정도는 부모 세대에서부터 대를 이어 일하는 사람들이다. 3대째 벤틀리에서 일하는 직원도 전체의 5%에 달한다.

생산라인에 들어서면 맨 먼저 눈길을 끄는 건 출입구 반대쪽의 스티어링 휠 제작라인. 목재를 일일이 손으로 깎고 구부린 다음 그 위를 다시 가죽으로 감싸 한땀 한땀 꿰매는 과정은 보고만 있어도 절로 숙연해질 정도다. 벤틀리의 모든 차에 달리는 스티어링 휠을 이렇게 수작업으로 만드는 이 장인은, 크루 공장에서만 30년 넘게 일하고 있다.

총 길이 200m인 조립라인은 U자형으로 만들어져 있으며, 대략 15~20분에 한 대씩 차가 완성돼 나온다. 보통 1분에 한 대꼴로 차를 만들어내는 일반적인 대량생산라인과는 비교조차 하기 어려울 정도. 이곳의 컨베이어 벨트는 어찌나 천천히 움직이는지 마치 멈춰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핸드 메이드의 진수를 보여주는 셈이다. 제작 중인 모든 차에는 미국과 일본, 한국 등 팔려나갈 각 나라 이름과 세부 주문 내역 등 모든 정보가 붙어 있다. 무척 느리고 답답해 보이지만, 결코 그렇지만도 않은 게 크루 공장의 숨은 내공. 폭스바겐 그룹 합병 이전에는 연간 2000대가량만 만들었지만, 폭스바겐 인수 이후에는 전통적 수제작 방식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효율성을 높여 연간 9000대 이상 만들어내고 있다.

차체와 뼈대를 만들어내는 공정을 빼면, 크루 공장은 자동차 제작라인이라기보다 하나의 거대한 예술작업실처럼 보인다. 수십 년 넘도록 벤틀리와 거래를 해오고 있다는 업체가 납품한 질 좋은 가죽은 차 한 대 분량씩 분류해 보관소에 그윽한 냄새를 풍기며 쌓여 있다. 벤틀리 차 한 대에는 평균 소 12마리분의 가죽과 6.5평방미터 넓이의 목재가 들어간다.

창사 이래 계속되었던 경영난, 그리고 롤스로이스와 폭스바겐 등으로 주인이 바뀌기도 여러 차례. 벤틀리의 역사는 영광만큼이나 지난한 고통으로 점철되었지만, 브랜드의 자존심만은 단 한 번도 무너지지 않았다. 세상은 마침내 그 자존심을 인정했고, 크루 공장의 장인들은 지난 2003년 컨티넨탈 GT로 영광의 부활을 알렸다. 벤틀리는, 전통적인 핸드 메이드 방식과 소량생산을 고수하고, 전통과 현실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며 정체성을 지켜가고 있다. 그리고 크루 공장은 벤틀리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마법과도 같은 공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