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금융권 화제의 중심인물 중 하나가 바로 하나금융그룹의 김승유 회장이다. 그는 짧은 역사를 지닌 하나은행을 7대 시중은행으로 키워낸 금융계의 노련한 CEO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몇 번의 M&A에서 밀리면서 최근까지 3위와 차이가 많이 나는 4위의 금융그룹에 머물러 우려를 많이 사기도 했다. 그랬던 하나금융이 지난 2010년 11월 전격적으로 외환은행 인수 계약을 맺으면서 단박에 국내 3위의 금융그룹으로 뛰어오르는 발판을 마련했다. 김승유 회장은 과연 어떠한 리더십을 통해 지금까지 하나금융을 이끌어 왔을까?

액션 ∙ 스피드 경영으로

하나은행을 ‘금융 3위’로 이끌다

김승유 회장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금융인이다. 하나은행의 전신 한국투자금융 출신인 그는 하나은행을 1997년부터 이끌었다. 그는 외환위기의 파고를 넘는 과정에서 충청은행(1998년), 보람은행(1999년), 서울은행(2002년) 등을 잇달아 인수하며 91년 출범한 신생은행이었던 하나은행이 대형 시중은행으로 성장하는 기반을 마련했다.

90년대 후반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많은 은행들이 무너지고 은행권이 M&A 열풍에 휩싸이면서 은행권의 대형화는 생존을 위해서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고 있었다. 이에 김 회장(당시 하나은행장)은 하나은행의 대형화 동참을 결정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추진, 몇 년 뒤 은행으로 출범한 지 7년밖에 안 된 젊은 하나은행을 7대 시중은행으로 키우는 수완을 보였다.

물론 순풍에 돛을 달고 커온 것은 아니었다. 크고 작은 위기들을 무사히 헤치며 오늘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2003년 2월 SK글로벌(현 SK네트웍스) 분식회계 사건으로 불거진 SK사태. SK글로벌의 주채권은행이었던 하나은행으로서는 처음으로 겪는 대형 사건이었다. 그 이전까지 주채권은행으로서 다뤄본 부실기업 처리 경험은 남광토건, 미주제강 정도 규모였던 터라 하나은행으로서는 대기업 처리 능력을 시험받는 자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김 회장은 SK 사태를 성공적으로 해결하며 주위의 우려를 불식시켰다. SK(주)의 8500억원 출자전환 및 SK텔레콤으로부터 SK글로벌과의 정상적인 거래 유지 약속을 끌어내고, 국내 채권단보다 특혜를 받아오던 해외 채권단과 동등한 대우를 한다는 원칙을 관철시켰다. 채무조정에 반대하는 채권금융기관이 구조조정에 참여하지 않고 빠져나갈 수 있도록 캐시바이아웃(CBO ∙ 채권현금매입)이라는 새로운 구조조정 방식을 도입하기도 했다.

SK사태를 원만하게 해결한 김 회장은 숨 돌릴 틈도 없이 그해 말 하나은행 임직원들에게 미래의 청사진을 제시했다. ‘창립 50년이 되는 2009년까지 자산, 기본자본 및 시가총액 기준 등 모든 부분에서 세계 100위 이내에 진입하며 초우량 금융서비스 그룹이 되자’는 비전이었다. 당시 하나은행으로서는 쉬운 목표가 아니었다. 그 무렵 하나은행의 시가총액은 4조원대였는데, 목표를 맞추려면 24조원대로 6배가량 성장해야 했다. 2003년 말 기준으로 3조2000억원이던 순자산은 50%가량 불어난 4조8000억원이 되어야 했다. 하지만 김 회장은 이미 경쟁 은행들이 대형화를 완료한 데다 선진금융자본들의 국내시장 진입이 코앞에 다가온 상황에서 현실 안주는 곧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판단에 승부수를 던졌다.

“갈증을 느끼는 사람이 세상 바꾼다”



그는 당시 비전 선포식에서 “그동안은 규모의 경제를 위한 양적성장을 지향했지만 이제는 질적인 지표에 있어서도 세계적인 은행이 되어야 할 때”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현실에 안주하여 변화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은 갈증을 느끼지 않는다. 갈증을 느끼는 사람만이 땀 흘려 우물을 파는 의지와 강줄기를 찾아 먼 길을 떠날 용기를 갖고 있고, 이런 사람들로부터 세상을 바꿔가는 힘과 지혜가 나온다.”

비전을 선포하는 자리에서 천명했듯이 ‘변화’는 김 회장의 경영 방침을 이해하는 대표적인 키워드 중 하나다. 그의 집무실 벽에는 ‘시장과 상품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은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는 어떠한 기업도 파멸시킬 수 있다’는 경구를 담은 액자가 반듯하게 걸려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자동차 회사 제너럴모터스(GM)의 알프레드 슬론 전 회장의 말이다. 김 회장은 “직장 생활 중 슬론의 교훈을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으며, 내 임기가 끝나는 날까지 간직할 것”이라고 밝힌 적이 있다.

김 회장의 ‘변화 경영’ 사례 중 2008년 3월에 금융권 최초로 도입한 매트릭스 조직 체제를 빼놓을 수 없다. 금융그룹으로 출범한 후 그룹사 간의 시너지를 고민해온 김 회장은 하나금융프라자, 빅팟, 하나 캐시백 등의 상품·서비스를 내놨지만 법인 혹은 사업본부의 장벽을 넘어서 사업을 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아예 고객이 받을 서비스를 중심에 두고 은행, 증권, 보험, 카드 등을 총 망라해 그룹 내 비즈니스 유닛(BU)을 별도로 출범시킨 것이다.

이제 3년가량 운영된 BU는 아직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인 듯하다. 구성원들에게 확실히 체득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김 회장은 그래서 “법인이나 사업 본부의 벽을 허무는 것뿐만 아니라 구성원들의 마음의 벽을 허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당부하고 있다. 고객에 대한 통합 서비스를 제대로 제공하기 위해서는 팀워크가 잘 이뤄지는 것이 먼저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김 회장을 이해하는 또 다른 키워드는 ‘액션&스피드’다. “탁상에서 고민하기보다는 현장으로 뛰어나가고 소모적 명분 논쟁보다는 신속히 대응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팀 하나’의 일하는 방식이 되어야 합니다. RUN! 뛰면서 생각합시다.” 지난 2010년 신년사에서 강조한 말이다. “전략적 방향의 설정도 중요하지만 실제 승부는 생각을 행동으로 연결하는 속도의 싸움”이라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그의 ‘액션&스피드 경영론’은 최근의 외환은행 인수 계약 과정에서도 볼 수 있었다. 그야말로 전 업계를 깜짝 놀라게 한 액션과 스피드였기 때문이다. 매물로 나와 있던 우리금융과 외환은행에 대한 M&A 가능성을 가늠해 보고자 TFT를 운영하던 김 회장은 양쪽을 저울질하다가 결정적인 순간 외환은행으로 방향을 잡고 영국 런던으로 날아가 외환은행의 대주주 론스타와 인수계약을 체결했다.

김 회장은 M&A와 관련해 “대놓고 연애한다는 사람치고 결혼하는 것 못 봤다”고 말하곤 한다. 실제로 그는 이번 인수 과정에서 ‘액션&스피드 경영’에 ‘비밀 엄수’라는 비기를 더하는 놀라운 솜씨를 보였다. 그리고는 일시에 국내 3위의 금융그룹으로 뛰어오르며 2010년 금융계에 기억할 만한 한 장면을 보여줬다. (물론 하나금융이 외환은행을 성공적으로 인수하기 위해서는 자금 조달 부분에 대한 시장의 우려 해소 및 외환은행 노조의 반발을 무마시키는 작업 마무리라는 과제가 남아 있다.)

(왼쪽 위) 2009년 6월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2009 Asia Society Awards’에서 상을 받은 김승유 하나금융그룹회장(가장 왼쪽)이 다른 수상자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 아래) 매트릭스 조직(BU) 출범식에서 김승유 회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오른쪽) 2010년 11월 외환은행 인수 계약 체결 후 김승유 회장이 외환은행 대주주인 론스타의 존 그레이켄 회장과 악수하고 있다.
(왼쪽 위) 2009년 6월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2009 Asia Society Awards’에서 상을 받은 김승유 하나금융그룹회장(가장 왼쪽)이 다른 수상자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 아래) 매트릭스 조직(BU) 출범식에서 김승유 회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오른쪽) 2010년 11월 외환은행 인수 계약 체결 후 김승유 회장이 외환은행 대주주인 론스타의 존 그레이켄 회장과 악수하고 있다.

 

“뛰면서 스마트하게 생각하라”



김 회장의 ‘액션&스피드 경영론’은 이제 ‘스마트 시대’를 만나 ‘스마트한 속도전략’으로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이종산업들이 결합하는 컨버전스 시대가 된 요즘, 남들을 따라가는 것으로는 생존과 성장을 보장할 수 없는 만큼 창의적인 생각과 행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서로 다른 산업 간의 융합은 꼭 주목해야 하는 메가트렌드라고 강조한다. 하나금융그룹이 SK그룹과 합작해 금융, 통신, 유통을 아우르는 하나SK카드를 출범시킨 것은 그런 그의 생각이 반영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변화와 더불어 김 회장의 경영을 말하는 주요 키워드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Back To The Basic(기본에 충실하라)’이라는 말이다. 이는 곧 리스크 관리에 대한 끝없는 강조로 나타난다. 그는 작은 경고를 무시해 침몰한 타이타닉호 사례나 거꾸로 작은 위기 신호를 놓치지 않고 초기 대응을 잘해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를 비껴간 골드만삭스의 사례를 거론하며 위기에 대한 자그마한 경보 하나도 놓쳐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곤 한다. 실제로 하나금융은 금융위기를 거치는 동안 위험산업의 여신규모를 경쟁그룹 대비 월등히 낮은 수준으로 관리하고 상대적으로 포트폴리오도 양호한 편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 회장은 금융인 가운데 드물게 ‘기업가 정신’에 대해 강조를 많이 한다. 금융인들이 일반기업인들과 비교해 기업가 정신이 부족하다는 점을 항상 아쉽게 생각하는 그는 열심히 하는 직원들의 한 번 실수는 넘어가 준다고 한다. 실수를 두려워하기보다 실수를 통해 경험을 쌓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 때문이다.

아무튼 하나금융그룹이 오늘날 굴지의 금융그룹으로 성장하는 데 있어 김 회장의 리더십은 절대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적절한 시기마다 그룹 임직원들에게 도전 과제를 제시하고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그룹의 역량을 키워나갔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지난 2003년에 2009년 달성 목표로 제시했던 비전은 수치만 놓고 보자면 2010년 말 현재 미완의 상태다. 하나금융그룹이 2009년에 도달하고자 했던 시총 목표는 24조원. 그러나 2010년 12월17일 기준 하나금융의 시총은 9조3000억원이다. 현재 인수 작업을 진행 중인 외환은행의 시총 7조6000억원과 합해도 16조9000억원으로, 아직 하나금융은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

하나금융은 2000년 제일은행(현 SC제일은행) 인수전과 2006년 LG카드(현 신한카드) 인수전 등에서 고배를 마신 적이 있다. 2010년 12월17일 현재 LG카드를 가져간 신한금융의 시총이 공교롭게도 24조5000억원을 기록하고 있다. 만일 과거 두 건의 M&A에서 매물들을 놓치지 않았다면 하나금융이 당초 목표로 했던 비전을 보다 빠르게 이룰 수 있는 여지가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하나금융그룹의 목표는 국내를 넘어 아시아를 이끄는 리딩 뱅크 플레이어가 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몇 년 전부터 중국,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에서 차근차근 기반을 닦고 있다. 지난 2010년 7월에는 중국 상하이에서 이사회를 개최하며 아시아 시장에 대한 깊은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현재 김 회장은 금융권 최장수 CEO로서 남은 임기는 2011년 3월까지다. 하나금융과 비슷한 지배구조를 지니고 있던 신한금융 경영진들의 상호 고소 파문과 관련해 김 회장의 거취에 대한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김 회장은 과연 앞으로 하나금융이 아시아의 리딩 플레이어가 되는 과정을 더 이끌 수 있을까.

| Tip. 김승유 회장과 사회공헌 |

“지속성장 위해선 지역사회로 부터 성원이 필수적”

김승유 하나금융그룹 회장은 금융회사의 사회공헌에 대해 깊이 있게 고민하고 의미 있는 실천도 보여주는 인물이기도 하다. 지난 2006년 5월 모교인 고려대에서 명예 경제학박사학위를 받는 자리에서 그는 이런 얘기를 했다.

“기업이 지속적인 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주주, 직원, 고객의 전폭적인 지지와 성원뿐만 아니라 기업이 속한 지역사회로부터의 성원이 필수적이다. 한 기업의 브랜드 네임 가치는 기업이 갖고 있는 내재가치뿐만 아니라 지역사회로부터의 존경과 사랑에 더욱 좌우되기 때문이다. 이제 깨어있는 자본주의의 모습이 다가오고 있다. 더 높은 사회적, 환경적 표준뿐만 아니라 성실성과 정직성, 투명성을 확보하고 선진화된 기업지배구조를 달성해가는 것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의 모습이며, 이를 통해 우리가 지향해야 할 자본주의 체제가 유지된다. 이렇게 자본주의가 진화하는 과정에서 금융기관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나? 금융은 본연의 심사기능 과정에 환경 리스크와 매니지먼트 리스크, 기업에 대한 사회적 평판 등을 반영해 장기적으로 효율적인 자금 배분이 이뤄지도록 할 수 있다. 정보화 시대의 양극화로 인한 갈등현상을 완화시키거나 마이크로 파이낸스(가난한 이들을 위한 소액금융)와 같은 분야에서도 기여할 수 있다.”

김 회장은 그해 월간 하나금융 6월호에 이 내용을 정리한 <자본주의 진화과정에서 금융의 역할>이라는 기고를 하기도 했다. 그가 한국형 마이크로 파이낸스인 미소금융재단 이사장을 맡아 이끌고 있는 것은 이 같은 그의 철학이 배경으로 자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일주일에 두세 번은 서울 종로의 미소금융중앙재단에 들러 두세 시간씩 업무보고를 받고 일을 처리한다. 수시로 지방 출장길에도 나설 만큼 에너지를 쏟아 붓는다. 언론에서 하나금융 경영과 관련해 요청한 인터뷰는 거절해도 미소금융재단 일에 대한 인터뷰는 흔쾌히 받아들이기도 한다.

한편, 김 회장은 최근 혼자서 동네 탁구장에서 운동해온 소탈한 일상이 알려져 화제를 모았다. 그를 은퇴 후 운동 삼아 나오는 점잖은 노신사로만 알고 있던 탁구장 주인이 녹차나 커피를 대접하며 그와 인생사를 나누는 등 친분을 쌓았다고 한다. 그런데 얼마 전 하나금융의 외환은행 인수 계약 건으로 TV 뉴스에 나온 김 회장의 얼굴을 보고 탁구장 주인이 깜짝 놀랐고, 그가 그간의 사연을 인터넷에 올리며 이 사연이 알려지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