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주택하면 떠오르는 것이 무엇인가. 소형, 중저가 등이 아닐까. 그러나 이것 역시 선입견이라면 선입견일 수 있다. 최고급 주거단지를 임대형으로 개발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관건은 커뮤니티가 얼마나 잘 형성되느냐에 달려 있다. 그렇게만 된다면 세금 부담이 없는 임대형 고급주택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은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 분당 더 헤리티지

서울시 광진구 더 클래식(The Classic) 500 A동 6층 AV룸. 어두운 조명 아래 찰리 채플린의 무성 흑백영화가 나오고 있다. 이날 행사는 더 클래식 500 영화감상동호회 주관으로 건국대 영화학과 송기형 교수가 강사로 나와 찰리 채플린의 <모던타임즈>, <시티라이프>, <키드>의 주요 장면을 소개하는 시간으로 진행됐다.

“채플린 영화를 보면 롱 샷은 희극이고 클로즈업은 비극이에요. 희극 뒤에 감춰진 비극을 그는 무성영화라는 소재로 승화시켰죠. 모던타임즈에서 채플린은 사람이 기계처럼 변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인간이 소외되는 현실을 비판합니다. 그게 채플린이 온 몸으로 표현하고자 노력한 영화철학이었어요.”

송 교수의 설명을 듣고 있던 입주민 조영숙씨는 순간 자신의 유학시절이 떠올랐다. 중절모에 코밑수염, 헐렁한 긴 바지와 지팡이로 표현되는 채플린은 외로움에 힘들어 했던 유학시절 그녀의 든든한 친구였다.

더 클래식 500에는 이같은 동호회 모임이 10여개나 된다. 골프, 바둑, 부부댄스, 노래동호회를 비롯해 건국대 미래지식교육원, 광진구문화예술회관 등과 연계한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또 부대시설 와인 바에서는 와인강습, 북 카페에서는 한방 전통 차 강좌가 이뤄지고 있다. 매월 이틀씩을 ‘문화 데이’로 지정해 클래식음악, 뮤지컬, 가곡, 미술과 관련된 명사들의 강연을 듣는 행사가 열리고 있다. 

현재 건국대 스타시티 내에 건립된 더 클래식 500은 시니어 레지던스를 표방한다. 골든 시니어를 위한 스파, 골프, 피트니스 센터 등 다양한 부대시설을 도심 내 건물 한 곳에서 원 스톱으로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입주민들의 반응이 좋다.

- 더 클래식500 야경(아래)과 서울시니어스타워-가양타워.
- 더 클래식500 야경(아래)과 서울시니어스타워-가양타워.

더클래식 500, 5년 임대보증금 8억

무엇보다 이곳이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은퇴자들에게 인기가 있는 이유는 임대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입주자격은 60세 이상으로 부부의 경우에는 한 명이 60세 이상이어야 입주를 할 수 있다. 5년 임대에 보증금은 8억원이다. 2년 입주를 희망하면 보증금은 8억4000만원이다. 원금보장형으로 운영되고 있어 퇴거 시 입주금 전액을 돌려받을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다. 월 관리비는 평균 120만원 가량 된다. 더 클래식 500은 2개 동으로 구성돼 있다. 각각 지상 50층, 지상 40층의 초고층 건물로 442실 모두 184㎡(옛 56평)이다.

당초 더 클래식 500은 도심형 실버타운이라는 생소한 개념을 내세워 분양에 어려움을 겪었다. 초창기 실버타운은 거의 요양시설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건강한 노부부를 위한 주거단지라는 것이 입소문을 타면서 현재 분양률이 75~80%에 육박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부동산 개발 프로젝트에 있어서 분양률이 70%를 넘어선 경우는 성공작으로 평가받는다.

되레 주택을 소유하지 않는 임대형 단지라는 점도 성공요인으로 볼 수 있다. 임대주택의 의미가 중소형 주택에 국한돼 있는 상황에서 중대형인 데다 고가인 더 클래식 500의 성공은 앞으로 임대주택 트렌드가 고급주택으로도 확대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다주택 보유에 따른 세금 부담도 이들이 임대형 단지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다. 현 정부 들어 종합부동산세, 양도세 관련 부담은 참여정부 시절보다 대략 30~50% 줄었지만 증여, 상속세 규정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세무법인정상 신방수 세무사는 “흔히 부자라고 불리는 세대는 60~70대 은퇴 세대로 이들의 걱정거리는 종합부동산세, 양도세가 아니라 사후, 사전 재산을 자녀에게 양도하는 상속, 증여세”라면서 “심한 분들은 주택 한 채 매입하는 것을 혹 붙이는 것으로까지 볼 정도”라고 전했다.

참고로 현행 상속세 규정을 살펴보면 사후 배우자 공제세액이 10억원이며 초과금액에 대해서는 10~50%의 세율이 적용돼 세금이 부과된다. 가령 12억원짜리 주택을 양도한다고 치면 10억원은 공제되고, 나머지 2억원 중 1억원은 10%의 세율이 적용돼 1000만원, 그 나머지 금액에는 2000만원 가량의 세금이 부과된다. 증여세도 배우자의 경우 6억원이 공제되고 자녀가 미성년자인지 성인인지에 따라 과세액이 다른 것을 제외하고는 상속세와 비슷하다.

단국대 부지 재개발 ‘한남 더힐’

지난 2009년 1월에 분양한 한남동 금호 더 힐도 고급형 임대주택이다. 단국대 한남동 부지를 재개발하는 이 단지는 분양가 상한제 탓에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임대형식을 채택했지만 최고급 주거단지라는 점이 소비자들의 관심을 받으면서 예상을 뛰어넘는 4.3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평형별 최고 경쟁률은 12가구를 선보인 332㎡형(펜트하우스)으로 51.3대 1을 기록했다. 접수 청약금만 702억원에 달했다.

단지 규모는 총 32개동 600세대로 86~87㎡형 133세대, 215㎡형 36세대, 246㎡형 131세대, 276~278㎡형 204세대, 300~302㎡형 60세대, 330~ 332㎡형 36세대다. 330~332㎡형 36세대는 복층형 펜트하우스와 일반형 펜트하우스가 들어선다. 보증금은 15억~25억원이며 월 임대료는 240만~430만원이었다.

당시 금호건설은 이 단지를 ‘블라인드(비공개) 방식’으로 분양해 마케팅 방식부터 차별화를 꾀했다. 모델하우스를 방문하려면 사전에 자신의 인적사항을 시행사에 알려주고 사전 예약을 해야 모델하우스를 방문할 수 있을 정도로 입주민 선별에 만전을 기했던 것이다. 금호건설 홍보팀 심원보 과장은 “고급단지를 임대방식으로 판매하는 것에 대해 상당한 부담이 느껴졌지만 세입자들의 경우 분양 전환 시까지 취 ∙ 등록세 및 재산세, 종합부동산세 등을 전혀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또한 100% 임대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다는 점도 분양 성공 요인으로 꼽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단지는 입주 후 최장 5년까지 임대아파트로 사용할 수 있다. 입주한지 2년6개월 이후부터 매입이 가능하다. 한남 더 힐은 1월 말 내지는 2월 초부터 입주에 들어간다. 따라서 이 단지의 분양 전환율이 얼마인지도 초미의 관심거리다. 분양 전환율이 높다는 것은 그만큼 이 단지의 미래 자산 가치를 높게 본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호반건설이 지난해 11월 분양한 고급형 주상복합 써밋 플레이스는 임대형으로 분양된 케이스다. 판교신도시에서도 중심부에 위치한 판교역 부근에 지하 2층, 지상 18층 3개동 178가구로 구성된 써밋 플레이스는 전용면적 131~134㎡(옛 50평)로 구성돼 있다. 이 단지는 임대라는 방식으로 입주민을 모집한 결과 1순위 청약에서 최고 17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고 5일 만에 100% 계약이 완료됐다. 판상형 구조로 단지를 배치해 세대 내 통풍, 환기 문제를 해결했다. 하이브리드 창호를 사용한 것과 전 세대를 남동, 남서향으로 배치한 것 등도 인기 이유였다. 주상복합으로 지어 전용률을 80%까지 끌어올렸다. 이 회사 홍보팀 정우종 과장은 “보증금 7억원에 월 임대료가 160만원이며 만약 2년6개월 이후 분양전환을 선택하면 그동안 납부한 월 임대료는 100% 모두 환불해준다는 조건을 내걸었는데 결과적으로 반응이 좋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 과장은 “분양전환 후 분양가를 현재 정확하게 추산하기는 힘들지만 주변 아파트 시세가 3.3㎡당 2400만~2500만원인데, 우리 단지는 이보다 70~80%선에서 분양가를 결정할 것이기 때문에 투자목적으로 접근한 고객이 상당수”라고 전했다.

판교 주상복합 ∙ 시니어스타워 “임대가 좋아”

단지 바로 옆에 들어서는 신분당선 판교역은 오는 9월 개통예정인 노선 중 한 곳으로 1구간이 개통되면 강남까지 4정거장 약 15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또 분당~내곡 간 고속도로, 서울외곽순환도로, 서울~용인 고속도로 등을 이용하기에 편리하다.

이밖에 고령자를 위한 실버주택들도 판매방식을 분양에서 임대방식으로 바꾸고 있다. 그동안 국내에 소개된 실버주택들은 고가인 데다 일괄 분양 방식으로 판매돼 입주 후 관리에 어려움을 겪어 왔다. 그러나 용인 노블카운티 등 오히려 임대방식으로 단지를 운영한 실버주택들이 노년층 사이 인기를 모으면서 분양 방식에 다소 변화가 일고 있다. 분당에 있는 더 헤리티지는 노인전문 의료시설 보바스기념병원을 설립한 늘푸른의료재단이 운영하는 실버타운으로 분양가와 임대보증금이 같다. 83㎡(옛 25평)가 4억원, 132㎡(옛 40평) 7억원, 172㎡(옛 52평) 11억원, 195㎡(옛 59평) 14억원, 228㎡(옛 69평) 16억~17억원이다.

2년 후 구입을 희망할 경우에는 초기 분양가로 구입할 수 있다. 중간에 임대를 해지하면 보증금을 전액 돌려받을 수 있다. 임대는 최장 5년까지 가능하다. 관리비는 3.3㎡당 8000원 꼴이다. 더 헤리티지 김준현 기획팀장은 “최근 입주를 문의해 오는 고객들은 대부분이 임대를 희망하고 있다”면서 “임대 만료 이후까지 신경 써야 하기 때문에 관리업체로선 시설 관리에 더 만전을 기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명지 엘펜하임은 경기도 용인시 명지대 캠퍼스 뒤편에 위치한 실버타운으로 관동의대 명지병원과 연계된 의료서비스가 제공되고 있다. 2년 임대이며 추가로 2년씩 재연장할 수 있다. 139㎡(옛 42평) 보증금이 1억4700만원, 159㎡(옛 48평)가 1억6800만원, 188㎡(57평)는 1억9950만원이다.

월 관리비는 139㎡가 95만원, 159㎡는 107만원, 188㎡는 128만원이다. 송도병원이 운영하는 서울시니어스타워는 서울타워, 강서타워, 분당타워, 가양타워 등 서울 수도권 총 4곳에 들어서 있다. 각 지역별로 임대규정이 영구임대, 10년, 7년, 5년 임대로 세분화돼 있는 것이 특징이다. 월 관리비는 47만~113만원까지 다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