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인들 각자는 스스로의 사소한 의도와 행동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행동은 다른 사람들의 의도와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다른 사람들의 의도와 행동은 다시 자신의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개인들의 의도와 행동이 결합하게 되면 나중에는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즉, 사회나 경제 분야에서 각각의 행위자들의 미시적 행동이 엉뚱한 거시적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그 결과는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며, 사회적 분리·갈등이라는 현상으로 나타날 수 있다.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갈등의 예로는 내적으로는 세대 간 갈등, 4대강사업 및 무상급식 등 정책을 둘러싼 논쟁, 지난 지방선거에서 보였던 잘사는 동네와 그렇지 않은 동네 간의 표심의 분리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또 외적으로는 지난해 연평도 포격사격 때 절정에 달했던 북한과의 갈등이 있을 것이다.
토마스 셸링은 ‘협조적 게임이론’에 관한 이론적 공헌으로 2005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는데, 아마도 우리 사회가 처한 내·외적 갈등 문제에 대한 원인과 해법을 제공할 수 있는 경제학자가 아닌가 한다.

개인의 선호에 의해 거주지 분리
셸링은 게임이론의 대가다. 그가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이유도 이와 관련이 있다. 게임이론은 여러 선택대안이 주어지는 경우 개인들의 선택은 다른 사람의 선택에 어떻게 영향을 받고, 어떠한 선택을 하게 되는가에 대해 연구하는 분야다. 셸링은 이러한 사람들 행동의 상호의존성에 착안해 주거지의 분리(Segregation)현상이 왜 생기며, 또 그 결과는 어떠한지를 명쾌하게 설명한다.
다음과 같은 상황을 상상해보자. 만약 어떤 백인이 내 이웃은 모두 백인이어야 한다는 식의 강한 선호의식을 갖지 않는다고 하자(셸링은 인종을 예로 들었지만, 인종이 아닌 경제적 배경의 상위계층과 하위계층이라 생각해도 상관이 없다). 그러나 이웃의 피부색이 무슨 색이든 관심이 없지만, 동네에서 소수파가 되기는 또 원치 않는다고 하자. 그러한 상태에서 백인과 흑인이 균등하게 분포한 균형은 <그림 1>과 같이 나타낼 수 있다(이를 체스판 모델이라 부른다). <그림 1>에서는 백인과 흑인이 같은 수의 이웃을 두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균형 상태에서 몇몇 사람이 이사를 가거나 오게 되면 어떻게 될까? 먼저 몇 사람이 균형 상태에서 이사를 간 경우를 나타낸 것이 <그림 2>이고, 그 후 몇 사람이 이사를 온 경우를 나타낸 것이 <그림 3>이다. 하지만 위와 같은 거주지 형태는 균형으로 유지될 수 없다. 곧 사람의 선호, 즉 자신과 이웃을 포함해 자신의 피부색깔을 가진 사람들이 소수가 되기를 원치 않는 선호로 인해 (체스판 안에서의) 이사를 유발한다. 또 한 사람의 이사는 다른 사람의 이사를 추가로 낳는다. 결국 이와 같은 연속과정의 결과로 얻어지는 결과가 <그림 4>이다.
<그림4>는 초기의 거주지 균형과는 달리 안정적 균형이다. 즉 누구도 자신의 선호에 따라 다른 지역으로 이주할 유인을 갖지 못한다. 하지만 결과는 흑인과 백인의 완전한 분리다. 셸링은 이처럼 이웃들의 문화나 피부색에 따른 싫고 좋음에 대한 선호가 그리 크지 않아도 결국엔 매우 강력한 거주지의 분리가 발생할 수 있음을 보였다. 이런 사회현상 분석에 대한 셸링의 날카로운 학자적인 설명을 담은 역작이 바로 <미시적 동기와 거시적 행동(Micromotives and Macrobehavior)>이다. 서명에서도 알 수 있듯 그는 이처럼 매우 자기중심적이고 근시안적인 동기들이 어떻게 거시적인 패턴을 가진 행동으로 나타날 수 있는지를 복잡한 수학에 의존하지 않고 매우 직관적으로 명쾌히 설명했다.
차별과 억압으로 이어지는 거주지의 분리에 대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음에도 분리는 선진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안정적인(좀처럼 불식되지 않는) 사회현상 중 하나다. 우리나라의 강남, 강북의 경제적 분리의 문제도 심화되고 있는 듯하다. 강남 문제는 왜 야기됐고, 못 사는 사람들은 소위 달동네에 몰려 사는지 등과 같은 한국사회의 거주지 분리 문제 등은 단지 개인적 선호에 의한 결과로만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개인들의 사소한 동기와 특유의 선호하는 것이 서로 영향을 주어 거시적인 사회의 분리와 갈등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에 대한 셸링의 분석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더 나아가 정부가 정책을 전개하기 전에 개인들의 동기와 정책에 대한 반응을 예측하고 그 결과에 대한 분석 없이 정책이 효과를 볼 수 없을 것임을 셸링의 이론은 시사한다.
영어의 ‘치킨(chicken)’은 속어의 의미로 ‘겁쟁이’라는 뜻도 있다. 치킨게임이란 바로 누가 더 용감하고, 누가 더 겁쟁이인가를 가리는 게임이다. 내용은 이렇다. 두 사람이 누가 더 겁쟁이인가를 가리기 위해 다음처럼 게임을 한다. 각각 자동차에 올라탄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해 차를 몰아 돌진한다. 서로를 향해 돌진하다 먼저 핸들을 돌려 차의 정면충돌을 피한 사람이 지는 게임이다. 이때 충돌을 무서워해 핸들을 돌린 사람은 겁쟁이라는 오명을, 끝까지 버티거나 늦게 핸들을 꺾은 사람은 용감하다는 평판을 듣는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이 수치를 당하는 일을 피하면서도 충돌하지 않게 하는 전략은 없을까. ‘족쇄전략’이 바로 그 해답이다. 족쇄전략이란 자신의 선택의 여지를 줄임으로써 자신의 협상력을 강화시키는 전략이다.

치킨게임 해결책…“핸들을 뽑아 밖으로 내버려라”
위의 예로 얘기하자. 만약 치킨게임에서 어느 일방은 자신의 선택지, 즉 자신의 핸들을 꺾을 수 있는 선택지를 의도적으로 줄임으로써 상대방에게 선택을 강요하는 방법이 있다. 즉 출발과 함께 자신의 핸들을 아예 뽑아서 상대방이 잘 보이도록 창문 밖으로 던져버리는 전략이다. 상대방의 이런 행위를 본 다른 상대는 충돌로 인해 둘 다 사망에 이르든지, 아니면 자신의 핸들을 꺾든지 선택해야만 한다. 죽음보다 수치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한 정면충돌은 없어지게 되는 것이다.
셸링은 이처럼 자신의 선택지를 축소 또는 제거함으로써 자신의 협상력을 높일 수 있는 전략과 상황에 대한 설명을 통해 구속력이 있는 약속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상대방을 꼼짝 못하게 제약할 수 있는 힘은 스스로를 제약할 수 있는 힘에 의존한다.”
이와 같이 셸링은 자신의 대안을 제한하는 전략이 때에 따라 어떻게 이로운 정책이 되는지를 명료하게 보여준다.
의사소통 채널이 없는 북한과의 협상에서 셸링의 구속력 있는 약속의 개념(족쇄전략)은 유용하다. 북한의 대외 및 남한에 대한 외교정책은 핵과 미사일을 무기로 한 ‘공갈협박전략(blackmail strategy)’이었다. 이러한 북한의 공갈협박전략은 미국과의 대화를 이끌어내는 데 유용한 수단임을 증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의 입장에서 외교정책 담당자들이 이러한 북한의 태도를 너무 지나치게 과신한 건 아닌지 셸링의 입장에서는 반문할 것이다. 오히려 우리가 너무나 많은 대안을 보여줌으로써 치킨게임에서 상대방으로 하여금 자의적 해석의 여지를 남겨둔 건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셸링은 2차 세계대전 이후 핵 보유국이 핵무기를 실전에서 사용한 적이 없다면서 북한도 예외가 아닐 것이라고 단언한다. 몇 년 전 한국에서의 강연에서 셸링은 “한국전쟁이나 쿠바 미사일 위기 등에서 상대방 국가로부터 보복과 응징을 당할 수 있다는 합리적인 판단이 작용했기 때문에 핵카드가 사용되지 않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연평도 사건은 셸링이 말한 대로 자신의 선택지를 축소해 실행에 옮김으로써 상대방에 보복을 할 수 있는 확신을 심어주기 위한 북한의 전략에서 비롯된 것인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의 외교적 어구들이 북한에 얼마나 확신을 심어줄 수 있는 것이었는지, 또 얼마나 확실하게 보복할 수 있는지 보여줄 수 있는지가 연평도 사건에 의문을 던지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