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획일적 정책과 규제는

노벨경제학상이 제정된 지 42년이 흘렀고 2008년까지 총 61명의 경제학자가 수상했다. 하지만 61명의 수상자 중 여성은 한명도 없었다. 영국의 경제학자 조안 로빈슨(Joan Violet Robinson)이 노벨상 수상에 가장 근접한 여성 경제학자라는 말도 있었지만, 결국 노벨상을 받진 못했다. 하지만 2009년 첫 여성 노벨경제학상 수상자가 탄생했다. 엘리노어 오스트롬(Elinor Ostrom, 1933~)이다.

전통적으로 경제학 이론은 거의 시장이론, 특히 시장가격에 대한 이론이었다. 하지만 경제학이 가격이론의 틀을 뛰어넘어 영역을 확장해야 하는 이유는 존재한다. 많은 이유 중의 하나가 적절한 계약과 이에 대한 이행을 담보할 수 없어 시장이 존재하지 않거나 적절하게 기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자원이 공동 소유이거나, 공동으로 이용되는 경우 기존의 시장가격이론은 적절한 해법을 제시하기에 한계가 있다. 천연자원의 이용과 관리, 환경 등의 관리가 그 예라 할 수 있다.

오스트롬은 경제학의 ‘거래비용’ 이론으로 유명한 올리버 윌리엄슨(Oliver Williamson)과 노벨경제학상을 공동수상했다. 특히 오스트롬은 이용자 집단에 의해 지배·관리되는 공동자원의 이용에 대한 규칙 및 실행 메커니즘에 대한 경험적 증거를 제시한 것을 중요한 공로로 인정받았다.

어장, 초원, 초목, 호수, 지하수와 같은 많은 천연자원은 공동자원이라 불린다. 다시 말해 많은 사용자들이 이런 공동자원에 접근할 수 있다. 그런데 공동자원에 대한 공동소유는 자원의 과도한 이용을 수반하게 된다. 이는 공동자원의 모든 이용자들이 오로지 자신의 편익과 비용 기준에 의해 행동하고 다른 이용자의 편익과 비용에는 무관심하기 때문이다. 결국 공동자원은 개인의 이기적인 행동의 결과로 황폐하게 된다. 이는 ‘공유지의 비극(The tragedy of commons)’이란 경제적 용어로 잘 알려져 있다.

국가와 시장을 통한 이분법적 해법

1968년 생물학자 개럿 하딘(Garrett Hardin)이 발표한 동일제목의 논문은 공유의 목초지에 양들을 마음껏 뛰어놀게 한다면 결국 풀이 고갈돼 사용자 모두가 손해를 볼 것이란 비유로 유명하다. 인간과 환경의 상호작용 때 이 공유지의 비극은 언제나 발생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없을까. 하딘은 공동자원의 과도한 이용에 대한 해결책으로 두 가지를 들었다. 세금·할당 등의 정부규제나 사유화 혹은 소유권의 확립을 통해 자원의 과대이용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먼저, 공유자원에 대한 정부의 직접적인 관리라는 해법이 있을 수 있다. 오스트롬은 다수 정부의 실패사례를 들어 직접적인 정부 관리의 한계와 그 원인을 제시했다. 오스트롬은 아시아대륙의 내부초원을 논증 사례로 들었다. 과학자들은 몽골과 몽골주변의 중국, 러시아 지역의 위성사진을 연구해왔다. 이들 지역은 수세기 동안 가축들이 대규모로 초원의 풀을 뜯어먹던 곳이다. 또 이들 지역의 유목민들은 계절에 따라 가축들과 함께 이동한다. 몽골에선 이런 역사적인 유목생활이 1990년대 중반까지 그대로 유지돼 왔다. 인근지역인 러시아와 중국에서는 다른 관리체계로 급격하게 변했다. 이들 지역의 중앙정부는 국가소유의 집단농장을 만들어놓고 유목민들을 영구적으로 정착시켰다. 결과적으로 이들 지역의 토지품질은 급격히 쇠퇴했다.

오스트롬은 말한다. 각지에 흩어져 있는 공유자원은 각각 다른 독특한 특성을 갖는다. 다시 말해 공유자원의 상황적 특성을 잘 파악해야만 관리를 잘 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러한 특성에 대한 정보를 모두 정확히 획득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에 따라 정부의 획일적인 정책이나 규제는 상황 특수적 공유자원의 현실과 동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정부의 정책과 규제의 획일성은 공유자원의 효율적인 관리를 떨어뜨릴 수밖에 없다고 오스트롬은 주장한다.

또 정부의 인원과 예산문제도 추가된다. 공유자원의 효율적 관리를 위해선 무임승차 문제 등의 방지를 위한 감시와 처벌이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이를 위해선 인원과 비용이 필요하며, 이는 예산상의 제약에 구속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대대로 공유자원에 대한 지역공동체들이 자치적으로 잘 관리해오던 공유자원조차도 국유화 이후 감시 소홀, 관리자의 부패 등으로 오히려 접근이 자유로운 공유재로 변질됨으로써 더욱 황폐해질 수 있음을 주장했다.   

- 엘리노어 오스트롬은 공동자원의 이용에 대한 규칙과 실행 메커니즘에 대한 연구로 2009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다.

민간차원 관리도 대안 될 수 있어

정부에 의한 해결이 아니면 공유자원에 대한 민간의 관리를 대안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즉, 공유자원에 대한 사적소유권의 확립으로 해결된다는 논리다. 목초지를 예로 들자면 공유자원인 목초지를 이용자들에게 고르게 나눠 준다면, 목초지가 말라붙어 황폐해질 때까지 자신의 소에게 풀을 뜯게 하지 않을 것이니 문제는 해결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논거는 사유화된 공유재의 관리와 유지에 소요되는 비용을 과소평가한다고 오스트롬은 말한다. 예를 들어 목초지를 개인들에게 분양한다면, 개인들은 다른 사람의 이용을 막기 위해 우선 울타리를 치고, 도둑을 감시하는 비용을 내야 한다.

앞에서 언급한 내부초원의 예에서 1980년대 초기 집단화로 인한 토양 쇠퇴를 막고자 중국정부는 집단농장을 해체하고, 내몽골지역의 초원 중 상당부분을 민영화시켰다. 개별가구들은 땅에 대한 소유권을 갖게 됐다. 하지만 결과는 집단화의 그것과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이 유목하는 대신 주어진 토지에 영구적으로 정착함으로써 더 심한 토양 쇠퇴를 낳았다.  

경우에 따라서는 물이나 해양자원과 같이 정체되지 않는 자원에 대한 소유권의 확립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조차 불분명한 경우도 있다. 이럴 경우 공유지의 비극 문제는 피해갈 수 없거나, 더 막대한 비용을 지불해야 할 수도 있다.

오스트롬이 주장하는 바는 요컨대, 공유자원의 관리를 위해 정부냐 시장이냐의 이분법적 논리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노벨상경제학상 선정위원회가 오스트롬에게 노벨경제학상 수상을 결정한 이유는 전통적인 견해, 즉 사유화나 정부의 직접 관리에 대한 주장에 대해 도전하면서, 자율적 지역공동체들에 의해 잘 관리된 성공적인 사례를 발굴·제시하고, 이를 이론적으로 분석한 공로를 인정했기 때문이다.

공동자원의 이용자 집단에 의한 공동자원 관리가 외부자에 의한 관리보다 성공적인 것 중의 하나로 오스트롬은 네팔의 관개시스템을 예로 든다. 네팔에서는 오랫동안 물을 이용자에게 배분·관리하는 성공적인 지역 관개시스템을 보유하고 있었다. 당시 댐들은 매우 초보적인 수준이었으며 규모도 작았다. 그러나 외국자본의 도움을 받은 네팔 중앙정부는 콘크리트와 철근으로 현대식 댐들을 여기저기 건설했다. 기술적인 결함이 없음에도 대다수의 댐 건설 프로젝트는 결국 실패로 끝났다. 왜 실패했을까. 그 이유는 견고한 댐 건설이 상부 이용자들과 하부 이용자들의 단절을 초래했기 때문이다. 댐이 워낙 견고했기 때문에 이들 이용자는 수자원 유지를 위해 협력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경작지에서의 산출은 원래 초보적 수준의 댐만 있을 때보다 굳건한 콘크리트 댐으로 변신했을 때가 더 좋지 않게 나왔다.

자율적 관리의 토대가 마련돼야

우리나라에도 수많은 공동자원이 있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나라로선 해양자원은 무시 못할 공동자원이다. 오스트롬은 특히 한국발전의 원동력으로 해양자원을 지목하고 어장이나 수자원 관리 등에 주력할 것을 주문한 바도 있다. 2009년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는 오스트롬은 공유자원의 성공적인 관리를 위해선 관리를 위한 규율을 만들고 이에 사람들이 적응하도록 하고, 또 시간이 지나면 바꿀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공유자원을 둘러싼 분쟁을 해결할 능력을 배양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해양자원 외에 환경이나 하천 등도 우리에겐 매우 중요한 공동자원이다. 환경문제에 대한 그의 견해는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전 세계인의 지역적 단위에서의 환경 보호를 위한 자발적 노력이 가장 빠르고 효율적인 방법임을 강조한다.

하천문제에 있어서 정부에서 추진 중인 ‘4대강 살리기’ 사업 또한 오스트롬류의 입장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천과 같은 공유자원은 인근 지역 공동체의 주민들이 자율적으로 관리하게 하는 것이 최선이지만, 정부에 의한 획일적이고 전국적인 사업은 자칫 공동체의 특수성을 무시함으로써 오히려 공유자원을 망치는 결과를 낳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그것이다. 물론 오스트롬은 이용자 집단에 의한 관리가 언제나 효율적이라고 주장하진 않는다. 그의 연구가 주는 교훈은 공동자원이 종종 오랜 기간 진화돼 온 규칙과 절차에 기반을 둘 때 잘 관리된다는 사실이다. 규칙과 절차를 점진적으로 개선하는 과정에서 구성원들 사이의 신뢰가 높아지면서 성공적으로 공유자원의 관리를 담보할 수 있는 ‘사회적 자본’이 조성된다는 점 또한 그의 연구가 주는 교훈이 아닌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