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이제 시작단계인 4세대(G) 이동통신시장을 선점할 기회를 잡게 됐다. ‘꿈의 기술’로 불리는 ‘롱텀에볼루션 어드밴스트(LTE-A)’ 개발에 성공했기 때문. 세계적으로 4G 주도권 경쟁이 가속화하고 있는 시점에 가장 먼저 꿈의 모바일 기술을 선보였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지난 5년 동안 숱한 밤을 새우며 이 기술을 개발한 주역은 박애순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차세대이동단말연구팀장. 지난 2월10일 대전 ETRI에서 박 팀장을 만나 기술 개발 뒷얘기를 들었다.

지난해 국내 통신업계는 쓴소리에 시달려야 했다. 세계적으로 급변하는 통신환경에 발맞추지 못했다는 평가다. 3세대에 머물던 국내 이동통신기술은 스마트폰이 본격적으로 보급되고서야 대용량의 데이터를 주고받는 3.5세대로 전환됐다. 그 사이 미국과 일본은 새로운 기술표준으로 3.9세대 LTE를 상용화하며 속도경쟁에서 우리를 멀찍이 앞서갔다. 

지난 1월 국내 통신업계의 그간 설움을 단번에 날려버린 기술적 쾌거가 이뤄졌다. 세계 최초의 4세대 이동통신 ‘LTE어드밴스드’가 국내 기술로 개발된 것. ‘어드밴스트(advanced, 향상된)’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은 기존 LTE보다 6배 이상의 빠른 속도를 자랑하기 때문이다. 차세대 이동통신을 향한 ‘아우토반급’ 정보고속도로가 뚫린 것이다.

주역은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차세대이동단말연구팀(이하 연구팀)이다. 연구를 총괄한 박애순(47) 팀장은 단숨에 통신업계의 스타로 부상했다. “이번 4세대 기술이 세계시장의 기술표준으로 채택되면 한국은 차세대 이동통신 시장을 호령하게 됩니다. 막대한 생산 효과가 유발되기 때문이죠. 지금의 스마트폰과 비교가 안 될 ‘제2의 스마트 혁명’이 도래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 4세대 이동통신기술을 적용하면 달리는 차 안에서도 3차원(3D) 영상을 실시간으로 스트리밍할 수 있다. LTE어드밴스트 시연 장면.
- 4세대 이동통신기술을 적용하면 달리는 차 안에서도 3차원(3D) 영상을 실시간으로 스트리밍할 수 있다. LTE어드밴스트 시연 장면.

4세대 이동통신, 360조원 부가가치 창출      

4세대 기술이 몰고 올 변화는 무엇일까. 스마트폰에 적용되면 지금과 질적으로 다른 모바일 서비스를 접하게 될 전망이다. 데이터 전송속도가 지금보다 40배 이상 빨라지기 때문이다. 우선 저화질의 현재 영상통화가 풀HD급으로 끊김 없이 진행된다. 모바일 인터넷에서 3차원(3D) 영상의 실시간 스트리밍도 가능해진다. 

“길안내나 지표검색 같은 위치정보서비스(LBS)들을 ㎝단위의 초정밀도로 구현할 수 있죠. 병원에 가지 않고도 스마트폰으로 검진하는 ‘모바일 u-헬스케어’도 실현되고요. ‘스마트 라이프’가 완연히 꽃을 피우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산업측면에서도 막대한 생산 유발효과가 따를 것으로도 기대된다. 세계시장에서 기술표준으로 자리잡으면 2021년까지 360조원의 부가가치가 창출된다고 한다. ETRI는 특허수입으로만 4000억원을 벌어들이게 된다. 4세대 기술을 두고 각국 정부와 기업들의 개발경쟁이 치열한 이유다.

ETRI는 국내 IT신기술 개발의 전진기지다. 통신에서도 마찬가지다. 과거 케이블TV 관련 광통신 기술을 국산화하고 세계 최초로 2세대 이동통신 CDMA를 상용화했다. 3세대 이동통신 표준기술인 와이브로도 이곳에서 개발됐다. 박 팀장이 ETRI에 합류한 것은 1988년. 유·무선통신을 통틀어 대부분의 ETRI 기술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국내 통신기술 변천사의 산증인인 셈이다. 

이런 박 팀장에게도 4세대 기술은 버거운 과제였다. 개발기간만 5년으로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분 단위로 계획을 수립할 정도로 초조하게 진행됐다. 목표시한이 다가올수록 연구는 귀가할 엄두도 못 낼 만큼 긴박했다.   

“국책연구기관에서는 ‘속도’가 생명입니다. 산업의 뼈대를 이루는 표준기술들을 개발하기 때문이죠. 국가간 기술경쟁에서 조금이라도 뒤처지면 막대한 기술료가 타국으로 유출됩니다. 연구시한을 넘겨서는 안 되는 이유죠.” 

4세대 기술개발에 동원된 70명의 연구진은 대부분 기혼자들이다. 연구원들만큼이나 그 가족들의 마음고생도 컸다. 박 팀장만 해도 매일 두 자녀들의 볼멘소리를 들어야 했다. “가정적인 성격이라 외식하는 것도 싫어해요. 직접 식구들에게 밥을 해먹여야 마음이 편한 ‘보통 아줌마’죠. 새벽에 퇴근하고도 아침에 출근할 때마다 제 손으로 아침밥을 지어주면서 가족들을 달랬죠.”

일할 때의 박 팀장은 어떤 리더일까. 그의 팀원들은 통신 분야에서 국내 내로라하는 엘리트들이다. IT업계에서 스카우트 ‘0순위’로 거론될 만큼 자부심도 대단하다. 이들을 휘어잡는 박 팀장을 ‘용장’ 스타일의 저돌적 리더로 오해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 ‘ETRI의 박칼린’이라는 별명답게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구사한다.

“팀원을 다그치기보다 다독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ETRI는 남성 연구원들이 대부분이지만 연구팀의 리더로 여성인 저를 임명한 것도 ‘감성형 리더’이기 때문인 것 같아요. 여성이 남성보다 공감 능력이 뛰어나잖아요.”

지난 10년 무색한 신기술 ‘준비 중’

차세대 기술개발에 성공했다고 해서 박 팀장과 연구팀이 한가해진 것은 아니다. 이미 다음 세대를 준비하기 위한 기술개발에 뛰어들었다. 현재 목표는 4세대를 넘어선다는 의미의 ‘비욘드4G(B4G)’ 기술이다. 4세대 기술보다 10배 이상 빠른 데다 에너지 절감 효과까지 고려한 미래형 통신기술이다. 

“B4G 통신환경에서는 사람들끼리만 소통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들끼리도 스스로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어요. 정보전송 속도도 4세대보다 10여배 이상 빨라지고요. SF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광경들이 교육, 의료, 보안, 교통 등 생활 속에서 실현될 것입니다. 지난 10년의 변화를 무색케 할 만큼 신기술들의 ‘퀀텀점프’가 거듭될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