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심리 이해 없는 경제정책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 인간의 심리적인 면을 배제한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효과가 크지 않다.

표준경제학에서는 인간들이 합리적인 경제인이라는 가정하에 현실생활을 분석한다. 그러나 경제학에서 전제하는 인간들이 종종 합리성에 벗어나는 행동을 하는 경우도 있다. 흔히 복권은 당첨확률이 극히 낮기 때문에 복권을 사는 행위는 합리적인 경제인이 하는 행위라고 볼 수 없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복권을 산다. 표준경제학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이처럼 비합리적인 경제행위가 일어나기 때문에 합리적인 행동 양식에 근거한 정책은 종종 정책결정자들이 전혀 예측하지 못한 결과를 초래한다. 이는 경제정책이 인간의 심리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수립돼야 한다는 것과 경제학에서 가정하는 인간의 합리성도 심리학적 측면에서 새롭게 정의돼야 함을 말해준다.

경제학에 대한 심리학적 접근은 행동경제학(Behavioral Economics)이란 분야를 탄생시켰다. 행동경제학은 인간이 실제 어떤 근거로 경제활동을 하고, 그 결과가 어떻게 사회현상에 반영되는지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은 행동경제학에 대한 공헌으로 2002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다. 그는 비경제학 학위 수여자 중에서 최초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학자다.

- 대니얼 카너먼은 행동경제학에 대한 공헌으로 2002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다.
- 대니얼 카너먼은 행동경제학에 대한 공헌으로 2002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다.

제한적인 인간의 합리성

합리적 인간이란 어떤 선택과 행위를 함에 있어 개인에게 주어지는 편익과 지불해야 하는 비용 등을 정확히 계산할 수 있는 인간을 말한다. 표준경제학의 전제가 바로 이러한 합리적 인간이다. 이때 선택과 행위는 편익과 비용의 계산을 통한 개인의 효용극대화의 결과로 이해된다.

미국의 제도학파 경제학자였던 소스타인 베블런(Thorstein Veblen)은 이런 인간을 ‘쾌락과 고통의 번개 계산기’라고 통렬히 비꼬았다. 그러나 행동경제학을 크게 발전시킨 공로로 역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허버트 사이먼(Herbert Simon)은 인간은 전자계산기와 같은 기계가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개인이 의사결정을 내리는 데 필요한 모든 정보를 완벽히 얻을 수도 없으며, 얻은 정보도 완벽히 처리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떤 기준과 방법으로 선택과 행위를 결정하게 되는 것일까. 사이먼의 인간의 제한적 합리성에 영향을 받은 카너먼은 “인간은 ‘휴리스틱(heuristic)’이라 불리는 규칙을 통해 의사를 결정한다”고 말한다. ‘휴리스틱’이란 불확실한 상황에서 판단을 하는 경우 사용하는 것으로 우리말로 하면 ‘어림셈’ 정도로 표현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인간은 모든 정보를 사용해 정확한 손익계산을 통해 선택과 판단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직관 등과 같은 방법에 의존해 최적이 아닌 대략적인 해법을 찾는다는 말이다.

대표적인 것으로 ‘이용가능성 휴리스틱’이라는 것이 있다. 예를 들어, 광우병 파동으로 쇠고기의 소비가 감소하는 것은 최근에 발생한 사건을 통해 사람들이 쇠고기를 먹으면 위험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즉, 어떤 사건이 발생했다는 최근의 사례를 생각해내고 이를 근거로 판단을 한다는 것이다. 어느 회사가 학력을 보고 사람을 채용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는 학력으로 응모자의 능력을 판단하는 예로, 이때 학력이 휴리스틱으로 사용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은 절대적 수준보다 상대적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예를 들어 연봉이 2000만원이었던 사람이 3000만원으로 오르는 경우와 연봉이 4000만원이었던 사람이 3000만원으로 내려가는 경우 반응이 다르다. 절대적 연봉수준은 같은 3000만원이지만, 전자의 경우 입가에 흐뭇한 미소를 지을 것이고, 후자의 경우 비참함을 느낄 것이다. 전망이론은 표준경제학에서 널리 알려진 ‘기대효용이론’의 대체이론이다. 이 이론은 카너먼과 트버스키(Amos Tversky)가 제창한 것으로, ‘인간은 변화에 반응한다’는 것이 전망이론의 출발점이다.

전망이론의 중요한 개념은 ‘준거점 의존성’이다. 준거점이란 행위자의 평가기준이 되는 것으로, 행위자의 현재 위치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위의 예에서 전자는 2000만원이, 후자는 4000만원이 준거점이다. 따라서 3000만원으로의 인상은 기쁨의 증가를, 인하는 고통의 증가를 초래한다. 즉, 효용이라는 것은 그 당시의 절대수준인 3000만원을 기준으로 평가되는 것이 아니라, 3000만원으로 변화한 방향과 양에 의존한다는 주장이다.

카너먼은 인간의 손실과 이익에 대한 반응을 도출하기 위해 여러 가지 실험을 했다. 그 실험 중 하나가 당첨확률이 20%인 105만원인 복권과 현금 20만원이 있을 경우 당신은 어떤 것을 선택하겠는가라는 것이다. 이 실험에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후자를 선택한다. 기대이익은 전자가 21만원으로 후자의 20만원보다 만원 더 높은데 말이다. 이처럼 확실한 선택 대안이 과대평가되는 것을 카너먼은 ‘확실성 효과’라 불렀다. 즉, 인간은 기대이익이 불확실한 대안보다 이득이 확실한 대안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또 카너먼은 실험을 통해 인간은 이익에 비해 같은 정도의 손실에 더 강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를 ‘손실회피성’이라 부른다. 즉, 손실액으로 인한 ‘고통’이 같은 액수의 이익액이 가져다주는 ‘기쁨’보다 더 크게 느껴진다는 말이다. 사람에게는 연봉이 1000만원 하락한 경우의 ‘고통’이 1000만원 상승한 경우의 ‘기쁨’보다 더 크게 평가되는 것을 ‘손실회피성’이라 말할 수 있다.

카너먼은 인간은 보유의식이 특히 강함을 발견했다. 그는 어떤 사람이 자신이 보유한 것을 처분하고 손에 얻기를 원하는 가격(수취의사액)과 자신이 보유하고 있진 않지만 그것을 얻기 위해 지불하고자 하는 가격(지불의사액)의 차이를 조사했다. 그 결과 전자가 적게는 2배에서 크게는 17배까지 크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카너먼은 이와 같은 현상을 ‘보유효과’라 명명했다. 

- ‘비용보다 편익이 높다’는 정부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4대강 사업이 만만치 않은 비판에 맞닥뜨린 것은 심리적인 요인이 원인일 수 있다.
- ‘비용보다 편익이 높다’는 정부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4대강 사업이 만만치 않은 비판에 맞닥뜨린 것은 심리적인 요인이 원인일 수 있다.

경제정책, 인간의 심리에 기초해야

‘보유효과’가 강력한 영향을 발휘할 경우 원활한 시장의 거래기능을 저해할 수 있다. 시장에서는 재화와 용역의 수취의사액과 지불의사액이 일치할 때 거래가 성립한다. 표준경제모델은 보유효과를 무시하고 예측을 수행하지만, 보유효과가 있을 경우 실제의 거래량은 표준경제이론이 예측한 경우보다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인간의 선택과 행위의 기준과 그 영향에 대한 카너먼의 분석은 정책결정에 많은 참고가 된다. 우리는 집값이 하락하는데도 거래가 전혀 없다는 말을 귀가 따갑도록 들어왔다. 이 때문에 정부는 부동산거래 활성화를 위한 많은 대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기대한 만큼 효과는 크지 않았다. 이 이유는 카너먼의 ‘보유효과’로 설명이 가능하다. 보유효과로 인해 주택 소유자의 수취의사액과 주택 구입자의 지불의사액, 매도호가와 매수호가의 괴리가 상당하기 때문에 거래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정부가 정책입안과 집행에 있어 인간의 심리적인 면을 배제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제한적인 결과라 풀이할 수 있다.

또 정부가 어떤 사업을 할 때 편익이 비용보다 크면 사업실시가 타당성을 갖는다는 것이 ‘비용편익분석’이다. 하지만 사업으로 인해 사람들이 자신의 재화나 자원이라 여기는 것이 없어질 경우, 또 사업으로 인해 비용이 금전적 이익을 훨씬 상회할 경우 기존의 ‘비용편익분석’은 중대한 의문점을 갖게 한다.

예를 들어, 정부는 4대강 사업이 비용보다 편익이 크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사업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그 우려의 목소리를 내는 배경이 카너먼이 말한 심리적인 요인일 수 있다. 즉, 기존의 하천을 자신들의 공유자원이라 생각할 경우 정부가 생각한 만큼 비용대비 편익이 클까 하는 의문이 그것이다. 물론 보유효과로 인해 사람들이 현상 유지의 가치를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고 해서 현상을 반드시 유지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카너먼의 인간심리가 경제행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통찰력 있는 분석은 우리나라의 경제정책 결정가나 집행가, 더 나아가 합리적 경제행위를 추구하는 소비자 등이 다 같이 귀 기울여야 할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