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대한중석이 전신 … 이스라엘 기업에 인수된 후 급성장

3월17일 정오 무렵 동대구역에 도착했다. 대구시 달성군 가창면에 소재한 대구텍까지는 차량으로 40분가량 걸렸다. 대구텍은 대구에서 경북 청도로 빠지는 외곽지역에 둥지를 틀고 있다. 주변 경관은 쾌적했다. 인근의 주암산과 용계천이 회사를 감싸고 있어 분위기가 아늑했다. 워런 버핏을 맞기 위한 준비로 회사 전체가 분주했다. 인부들은 잔디밭을 가로지르며 나무와 꽃을 심고 수석을 나르고 있었고, 실무를 준비하는 다른 직원들도 바삐 걸음을 움직였다.

대구에선 ‘대한중석’으로 통해
버핏은 세계 최고의 ‘기업감별사’다. 저평가된 우량기업만 골라서 투자하는 그의 가치투자는 세계 투자가들의 교범이다. 그렇다면 대구텍은 얼마나 우량한 회사일까. 모기업인 이스라엘의 글로벌 절삭공구업체 IMC(International Metalworking Companies)가 대구텍을 유한회사로 전환하면서 구체적인 경영실적은 공개되지 않고 있지만 대구시청을 통해 대략적인 정보를 파악할 수 있었다.
대구텍은 대구지역에서 상당한 위상을 자랑하는 중견기업이다. 2010년 매출액은 5000억원 규모로 대구시에 소재한 6000여개 기업 중에서 최상위권이다. 매출액의 65%는 수출로 벌어들인 돈이다. 대구 소재 기업 중에서 수출액 1위다. 게다가 버핏이 투자한 회사인 만큼 외국인투자 유치 실적에서도 1위다. 그의 재방문에 대구시 전역이 들썩였던 이유다.
배영철 대구시 국제통상국 과장의 말이다. “지자체마다 기업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습니다. 대구시도 적극적으로 국내외 기업들을 유치하려고 발벗고 뛰는 상황이죠. 버핏과 대구텍의 관계는 기업들에게 대구시를 홍보하는 데 유리합니다. 이번 방문에서는 대구시장이 직접 버핏을 영접할 정도로 기대가 큽니다.”
대구에서 대구텍은 전신인 ‘대한중석’이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하다. 서석민 대구상공회의소 경제조사팀장의 설명을 들어보자. “대한중석은 1952년 설립된 국내 1호 국영기업으로 텅스텐을 채굴·제련하던 회사였습니다. 냉전 시절 자유진영 최대의 텅스텐 광산으로 불렸던 강원도 상동광산을 운영했지요. 1950년대 매출이 국내 수출액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만큼 사세가 대단했습니다. 1970년대까지도 최고의 직장으로 손꼽혔죠. 지금도 중년 이상 대구시민들은 대한중석 하면 ‘초우량기업’ 이미지를 떠올립니다.”
대한중석은 1968년 포항제철(현 포스코)의 출범에도 크게 기여했다. 정부와 공동으로 출자하면서 설립자금의 25%를 댔다. 당시 단일 기업으로 그만한 투자비를 감당할 수 있는 곳은 대한중석이 거의 유일했다.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도 이 회사 출신이다. 1964년 육군에서 예편한 그는 이곳에서 처음 경영자로 출발했고 나중에는 포스코 설립을 주도했다.
대한중석은 1994년 정부의 민영화 정책에 따라 민간에 매물로 나왔다. 이를 사들인 새 주인은 거평그룹이었다. 하지만 거평그룹은 무리한 팽창으로 1997년 외환위기를 맞으며 해체됐다. 당시 국내 인수합병(M&A) 시장에서는 대한중석을 인수할 여력이 있는 기업들이 드물었다. 그 틈을 타 대한중석의 주 거래처였던 IMC가 1998년 대한중석을 인수했다. 이 회사로부터 절삭공구를 수입하면서 수준 높은 기술력을 눈여겨봤기 때문이다. 그해 대한중석은 대구텍으로 상호가 변경됐다.
대구텍의 기술력을 확인할 수 있는 공장과 R&D센터는 보안이 철통 같은 곳이다. 회사 관계자가 아니면 접근조차 할 수 없다. 2007년 버핏은 이 공장 내부를 견학하며 “세계 최고의 공장이다. 대구텍은 무슨 일이 있어도 안 팔 것”이라면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고 한다. 대구텍의 절삭공구 기술력이 범상치 않은 수준임을 추측할 수 있는 대목이다.

광산업에서 절삭공구로 눈부신 사업전환
절삭공구란 금속에 구멍을 뚫거나 자르고 파내는 공구류를 말한다. 자동차, 항공, 조선, 기계 등 중공업 분야에서 부품을 가공하는 용도로 사용된다. 예를 들면 자동차의 실린더헤드와 샤프트, 석유시추드릴, 풍력발전기의 블레이드(날)가 절삭공구로 가공되는 부품들이다. 절삭공구는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미국, 일본, 독일 등 기계공업 강국들이 경쟁력을 발휘하는 첨단 장비다.
텅스텐을 제련하던 대한중석이 절삭공구 사업을 시작한 계기는 무엇일까. 바로 절삭공구의 원료로 가장 흔히 이용되는 것이 텅스텐이었기 때문이다. 유재원 대구텍 지원관리본부장의 설명이다. “텅스텐은 광물 중에서 다이아몬드 다음으로 단단하면서 고온에서도 좀처럼 변형되지 않습니다. 금속과의 마찰에서 발생하는 고열을 견뎌야 하는 절삭공구 소재로 제격이죠. 대한중석은 1970년대 후반부터 절삭공구로 관심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텅스텐을 수출하는 것만으로는 부가가치를 높이기 어려웠기 때문이죠.”
대한중석이 절삭공구에 ‘올인’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다. 그 무렵 중국이 개혁·개방으로 돌아서면서 세계 최대의 텅스텐 산지로 부상했다. 대한중석 입장에선 텅스텐 원자재의 수출 경쟁력이 땅에 떨어진 셈이다. 대한중석은 1994년 상동광산을 폐쇄하고 절삭공구에 집중했다. 현재 대구텍의 국내 시장점유율은 40%로 1위이며 50개국에 절삭공구를 수출한다. 대구텍처럼 한 공장에서 고순도의 텅스텐 정제부터 절삭공구 완제품 생산까지 수행할 수 있는 곳은 세계적으로도 드물다고 한다.
회사도 주인을 잘 만나야 클 수 있다. 거평그룹 계열사 시절은 대구텍의 침체기였다. 하지만 IMC로 인수된 후에는 상황이 반전되기 시작했다. 대구텍은 IMC에 인수된 1998년부터 지난해까지 10년 남짓한 기간 동안 회사 규모가 무려 7배 이상 커질 만큼 고성장세를 유지했다. 세계 65개국에 걸친 IMC의 해외 유통망과 대구텍의 기술력이 강력한 시너지를 발휘한 덕분이다. IMC는 계열사에 대한 투자에도 적극적이었다.
유 본부장의 설명이다. “대한중석 시절 모기업이던 거평그룹은 외형 확장에만 신경쓴 채 계열사의 기술력을 끌어올리는 데는 소홀했습니다. 반대로 IMC는 계열사의 제품과 기술력을 업그레이드시키는 데 많은 공을 들이죠. 이번에 1000억원 규모의 제2공장을 신축하게 된 것도 IMC의 지원 덕분입니다.”
사람 자르지 않는 회사, 충성도 ‘최고’
대구텍의 사무동인 마케팅센터에 들어섰다. 세계 25개국의 지사와 긴밀한 연락을 주고받는 곳이다. 여기서 만난 임직원들은 이 회사 경영의 특징으로 해고가 없다는 점을 첫손가락에 꼽았다. IMC 계열사들은 회사가 위기를 맞더라도 직원들을 내보내지 않는 기업문화를 갖고 있다고 한다.
일례로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IMC의 매출이 전년보다 30%나 떨어졌을 때도 그룹 전체에서 해고자가 단 한명도 발생하지 않았다. 어지간한 기업이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대구텍도 마찬가지였다. 직원수를 줄이는 대신 주 4일 근무로 업무시간과 생산량을 조절했다. 직원들과의 협의 아래 임금 인상분과 상여금을 줄여 인건비를 낮췄다.
수평적인 소통구조도 특징이다. 대구텍에서는 임원실 등 간부급 직원들만을 위한 편의공간이 눈에 띄지 않는다. 책상 배치도 임원과 일반사원이 나란히 앉아서 일하는 구조다. 말단사원이라도 언제든 사장실로 들어가 의견을 전달할 수 있을 만큼 직급간의 문턱이 낮다. 실적이 부진해도 임직원들 사이에서 문책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모셰 샤론 사장의 설명이다. “성과가 미진하더라도 격려를 먼저 하는 문화입니다. 직원들이 마음 편하게 일하면서 잠재력을 발휘하도록 배려하는 것이죠. 직원들의 사기와 애사심이 오르면 회사에 오래 남게 됩니다. 연구개발, 마케팅, 영업 등 각 부서 직원들이 전문가 수준의 실력을 갖추게 되는 것도 그 덕분이죠. 버핏이 2006년 IMC와 계열사들을 인수할 무렵 가장 눈여겨봤던 부분이기도 합니다.”
대구텍의 제2공장 신축 부지에 들어섰다. 낡은 아파트와 단층 주택들이 드문드문 남아 있는 공터였다. 버핏이 3월21일 기공식에 다녀간 후 본격적인 신축 공사가 진행된다. 대구텍은 신설될 제2공장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샤론 사장의 말이다. “국내 경기가 회복되는데다 중국을 필두로 신흥시장에서 중공업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중공업 분야의 핵심부품들을 가공하는 절삭공구 수요도 늘어나게 되죠. 올 연말 제2공장이 가동에 들어가면 생산 용량이 두 배로 증가합니다. 세계적으로 급증하는 수요에 발맞출 수 있게 됩니다.”
Mini Interview
모셰 샤론 대구텍 사장
“대구텍은 글로벌 IMC의 4대 핵심 계열사”

모셰 샤론(63) 대구텍 사장은 이스라엘 출신으로 한국말이 서툴다. 그러나 “나는 ‘한국인’이며 ‘대구시민’”이라고 강조할 만큼 대구시와 대구텍에 강한 애착을 드러냈다. 그는 대구텍에서 올해로 10년째 사장으로 재직중이다. IMC 전체 재직기간의 3분의 1을 한국에서 보냈다. 대구텍과 IMC 양쪽 사정에 두루 정통한 인물이다.
한국인들에게 IMC는 다소 낯설다. 어떤 기업인가.
스웨덴의 샌드빅에 이어 세계 2위 절삭공구 업체다. 본부는 이스라엘이지만 세계 65개국에 100개 이상의 자회사를 거느린 다국적기업이다. 정제된 텅스텐 분말과 산업자재, 절삭공구 등 텅스텐으로 제조하는 제품들을 생산한다. 워런 버핏이 투자한 회사들 중에서 최초의 비(非)미국계 기업이기도 하다.
버핏은 IMC 지분의 80%를 소유한 최대 주주다. 그의 의사가 IMC와 계열사인 대구텍에도 영향을 주는가.
버핏은 자신이 투자한 회사의 경영에 관여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IMC와 계열사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2006년 IMC에 투자하면서도 “나를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생각하라”고 당부했다. 시장을 전망하고 경영에 필요한 전략을 결정하는 것은 IMC와 계열사들이 각자 알아서 하는 부분이다.
대구텍이 IMC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어느 정도인가.
이스카(Iscar), 잉거솔(Ingersoll), 탕가로이(Tungaloy)와 함께 IMC의 4대 핵심계열사로 꼽힌다. 주력사업인 절삭공구 기술력은 IMC 계열사들 중에서도 최고 수준이다. 그룹 내에서 가장 중요한 회사라고 자부한다.
대구텍의 경쟁력은 어디서 오는가.
세계 최고 수준의 생산설비와 연구개발 역량이다. 1100명의 대구텍 직원 중 10%가 연구개발 인력이다. 또한 매년 매출액의 10%를 연구개발에 투자한다. 글로벌 마케팅도 회사의 강점으로, IMC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이용한다. 직원들이 한국인 특유의 높은 교육수준과 적극적인 태도로 업무능력이 뛰어난 점도 세계 시장에서 통하는 비결이다.
앞으로의 계획은.
절삭공구는 첨단산업이다. 연구개발을 게을리 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 절삭공구 업계뿐 아니라 중공업 분야의 기술혁신을 이끌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연구개발 부문의 투자를 늘릴 계획이다.
■대구텍 주요 연혁
1952년 대한중석광업 설립
1961년 종합연구소 설립
1964년 박태준 제8대 사장 취임
1968년 포항종합제철 합작투자
(정부 75%, 대한중석 25%)
1977년 텅스텐 종합가공 공장 준공
1994년 민영화로 거평그룹이 인수
1998년 IMC가 인수. 대구텍으로 상호 변경
1999년 서울 본사 대구로 이전
2000년 종합기술연구소 완공
2006년 버크셔 해서웨이가 IMC 인수.
대구텍은 손자회사로 편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