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5년 도입된 퇴직연금은 2010년 12월 1일부터 근로자 1인 이상 사업자로 확대·적용됨에 따라 직장인에게는 국민연금처럼 필수적인 연금이 됐다. 가입자수도 많이 늘어 200만명을 넘어섰다. 근래 들어 근로자가 직접 퇴직연금 상품을 골라 운용할 수 있는 확정기여형이 크게 늘고 있다. 만약 회사에서 확정기여형을 선택했다면, 자신에게 알맞은 퇴직연금 상품을 고르는 것이 재테크의 주요한 한 축을 이루게 된 것. 그렇다면, 내게 맞는 퇴직연금은 어느 것일까. 확정기여형의 경우 어떤 퇴직연금 상품을 선택하는 것이 좋을까.
- 최근 중국 등에 투자하는 신흥국펀드, 원자재펀드 등 다양한 퇴직연금 상품이 잇달아 나오고 있다.

대기업에 다니는 김모 과장은 얼마 전 회사로부터 퇴직연금 전환에 따른 안내문을 받았다. 이 회사는 최근 퇴직연금에 확정급여형뿐만 아니라 확정기여형도 도입함에 따라 직원들에게 전환 절차를 고지한 것. 김 과장은 고민을 거듭하다 금융회사가 내놓은 고금리 정기예금과 원자재펀드를 떠올리며 확정기여형으로 전환하기로 결정했다. 좀 더 많은 퇴직급여를 받을 수 있다고 예상한 것이다.

퇴직연금 시장이 점차 바뀌고 있다. 펀드 등에 투자해서 생긴 수익으로 퇴직급여(퇴직일시금 또는 연금)가 정해지는 확정기여형의 비율이 높아지고 있는 것. 퇴직연금은 회사가 퇴직금을 계속 적립한 뒤, 퇴직할 때 한꺼번에 지급하는 퇴직금과 달리 회사 밖의 금융기관에 맡겨 운용하게 한 뒤 퇴직할 때 연금이나 일시금으로 지급하는 것이다.

퇴직연금의 유형은 확정급여형(DB)과 확정기여형(DC) 두 가지다. 도입 초기에는 급여형이 90%를 넘었으나, 올해 초 KT·호남석유화학·ING생명보험 등 13개 회사가 기여형을 선택하는 등 기여형의 점유율이 30%까지 높아졌다. 기여형이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김 과장이 다니는 기업처럼 이 둘을 다 도입해서 근로자가 선택하게 하는 기업은 2%가량이다.

확정급여형은 말 그대로 근로자의 퇴직급여가 확정돼 있다. 이에 비해 사용자는 적립금을 운용하고, 그 결과에 따라 사용자의 부담금이 달라진다. 근로자는 퇴직 전 3개월의 평균 급여에 근속연수를 곱한 게 원금이며, 운용수익률에 관계없이 받는 돈이 정해져 있다. 확정기여형은 사용자의 부담금이 사전에 결정된 것이다. 이에 비해 근로자는 적립금을 운용해 그 성과를 퇴직금에 반영한다.

그렇다면 급여형과 기여형을 모두 도입한 회사의 직장인은 어느 것을 고르는 것이 좋을까. 퇴직연금이 처음 도입된 2005년만 해도 기여형은 개념조차 생소해 직접 운용을 해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쉽게 나서는 직장인이 없었다. 우선 알아둬야 할 점은 두 유형을 모두 도입한 회사는 급여형을 선택했더라도 나중에 기여형으로 바꾸는 것을 허용한다. 보통 1년에 한 번 전환 기회를 준다. 그러나 반대로 기여형을 선택했을 경우 급여형으로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유는 원금 산정이 복잡해서다. 기여형은 운용수익에 따라 원금이 달라지기 때문에 회사가 다시 이를 맡아 운용하는 것은 어렵다.

결론을 말하면, 급여형은 급여인상률이 높은 대기업에 다니는 젊은 직장인에게 유리하다. 앞으로 기여형 전환이 가능하고 승진 등으로 급여 인상 가능성이 높아서다. 은퇴가 가까워 오면 그때 가서 기여형으로 바꾸는 것이 낫다. 김성현 산업은행 퇴직연금연구소장은 “사회초년생들이 종종 재테크에 자신 있다는 이유로 기여형을 고르는데 조건을 따지지 않고 무조건 가입하는 것은 잘못된 선택”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급여인상률이 낮은 기업은 기여형을 선택하는 것이 유리하다. 임금피크제(일정 나이에 급여를 삭감하는 대신 정년을 보장하는 제도)를 실시하는 기업도 마찬가지다. 은퇴 직전 평균급여로 산정되는 급여형은 오히려 원금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또한 회사가 도산할 가능성이 있는 경우에도 기여형을 선택해야 한다. 급여형은 원금의 60%만 보장되지만, 기여형은 100% 보장된다.

그렇다면 기여형에 가입한 직장인들이 선택할 만한 퇴직연금 펀드상품은 어떤 것이 있을까. 종전에는 퇴직연금은 무조건 안전해야 한다는 이유로 채권형 펀드를 선호했지만, 수익성에 목마른 투자자들을 겨냥해 신흥국 펀드, 원자재·농산물 펀드 등이 잇달아 출시됐다. 퇴직연금 상품은 일반 상품과 별도로 판매된다. 일반 상품과 비교해 이자율(정기예금 상품) 등에서 차이가 있다.

현재 운용되는 퇴직연금 펀드상품은 총 325개다. 전체수익률은 지난 4월 14일 기준으로 1년 9.37%, 3년 32.76%를 각각 기록했다. 퇴직연금 펀드는 일반 펀드와 마찬가지로 가입과 환매가 자유롭다.

중요한 것은 안전형(원리금보장형)과 실적형(실적배당형) 중에서 어느 것을 선택할지, 실적형이라면 채권과 주식의 비중을 어떻게 가져갈 것인지 결정하는 것이다.

맹민재 미래에셋증권 퇴직연금추진본부장은 “개별상품의 수익률만 보지 말고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짜는 것이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실제 사례를 살펴보자. 외국계 컨설팅회사에 다니는 최모씨는 국내채권혼합·중국인도펀드에 50%씩 2007년부터 납입해 왔다. 그런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17.4%의 손실이 나자 전액환매를 하고 1년 만기 정기예금에 100%를 예치했다. 2년이 지난 2010년 2월까지도 여전히 1.2%의 손실을 기록해 원금손실은 회복되지 않고 있다.

반면 국내 대기업에 다니는 정모씨는 채권혼합·브릭스펀드에 6대4로 투자했다. 2년 후인 2008년 역시 8.65%의 손실이 났지만 채권혼합을 20%로 줄이고 브릭스·신흥국펀드에 40%씩 분산투자해 지난해 2월 말에는 14.53%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최씨처럼 단기적으로 원금손실을 입었다고 해서 퇴직연금 상품을 안정형인 정기예금에 모두 넣는 것은 오히려 리스크를 키울 수 있다.

금융투자업계는 또 투자경험이 부족한 기여형 가입 근로자를 위해 포트폴리오를 대신 짜주는 시스템을 개발했다. 자동분할 매수와 포트폴리오 구성을 시스템화한 것으로 이를 활용하면 개인의 투자성향에 맞춰 자산배분이 된다. 지난해 인기를 끌었던 자문형 랩어카운트를 퇴직연금에 접목시킨 것. 이 경우 퇴직연금 상품과 랩어카운트 계약서를 따로 작성해야 한다. 미래에셋증권과 우리투자증권이 지난해부터 운영하고 있으며, 한국투자증권·대우증권·산업은행·외환은행도 준비 중이다.

 

  Tip | 퇴직연금 근로자 인식 설문 조사

급여형·기여형 동시 도입 찬성 79<%/FONT>

대다수 근로자들이 급여형과 기여형 동시 도입을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코노미플러스>가 공공기관과 대·중소기업에 다니는 120명의 직장인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기여형과 급여형 중 어느 것을 선택하거나 선택할 의향이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 기여형이 58%(69명)로 집계됐다.

또 회사가 급여형과 기여형을 동시에 도입하는 것이 좋은지, 둘 중 하나만 선택하는 것이 좋은지를 묻는 질문에는 둘 다 도입하는 편이 낫다고 답한 직장인은 79%(95명)에 달했다. 이는 향후 시장상황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기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

퇴직연금 상품에서 안전형과 실적형을 고르는 부분에서도 실적형인 주식·펀드투자를 원하는 직장인이 59%(71명)로 더 많았다. 나머지는 이자수익이 아무리 적어도 안전한 게 좋다는 입장이었다. 실적형을 고른 직장인 중에서도 원금보장이 안 되면 다시 한 번 고려하겠다는 의견도 있었다. 이는 우리나라 근로자의 투자성향이 대체로 보수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조사에는 20~30대 중반이 62명(52%), 30대 후반~40대 40명(33%), 50대와 은퇴 직전의 직장인 18명(15%)이 참여했다. 설문조항은 퇴직연금유형의 선택, 동시 도입에 대한 찬반, 퇴직연금 투자성향 등 3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