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리미엄 브랜드의 진가는 최고급 세단에서 드러나는 법이다. 독일과 미국, 일본의 프리미엄 브랜드들이 소형 세단에서 놀라운 성능의 스포츠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모델을 만들어내고 있지만, 그들이 갖고 있는 기술력은 언제나 브랜드를 대표하는 최고급 세단에 집중적으로 구현되기 마련이다. 흔히 기함(Flagship)이라 불리는 최고급 세단은 한마디로 프리미엄 브랜드의 또 다른 이름이자 존재의 이유다.
BMW의 기함인 7시리즈는 가장 대표적인 프리미엄 브랜드의 최고급 세단이면서도 다른 동급 세단에 비해 상당히 독특하다. 보수적인 최고급 세단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앞장서서 트렌드를 이끌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2000년대 초반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던 4세대의 디자인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디자인만 앞서가는 게 아니다. BMW는 7시리즈를 통해 차 안의 모든 시스템을 통합 제어하는 아이드라이브(i-Drive)를 처음 양산화했는데, 이는 이후 고급 자동차들의 필수장비가 되었다. 현행 5세대 7시리즈는 지난 2008년 파리모터쇼를 통해 데뷔했다. 4세대에 비해 디자인은 한층 차분하고 점잖아졌지만, 안팎에는 여전히 혁신적 신기술이 가득하다.

끊임없이 진화하는 혁신적 디자인
BMW는 지붕과 보닛, 도어 등 신형 7시리즈의 차체 곳곳에 알루미늄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차체 무게를 근본적으로 줄여 스포티한 주행성능과 연료 효율성을 모두 잡으려는 포석이다. 알루미늄은 용접 등 가공작업이 어려운 자재. BMW는 브랜드 대표 세단의 품질을 높이기 위해 기술력과 비용을 아낌없이 투입했다.
7시리즈의 엔진은 3.0리터 326마력 트윈터보와 V8 4.4리터 407마력 등 가솔린 엔진을 전면에 내세운다. 더불어 직렬 6기통 3.0리터 터보디젤 엔진과 하이브리드 버전도 선보이고 있다. 국내 시장에는 올해 들어서야 출시되었지만, 3.0 디젤 엔진을 올린 7시리즈(모델명 730d)의 탁월한 성능과 연비는 이미 유럽 등 세계 각국 시장에서 정평이 나 있다. 새로 개발한 3.0리터 터보디젤 엔진은 구형보다 무게를 5kg 줄여 차체 무게 감량과 더불어 다이어트에 성공을 거두었다.
마치 수면 위로 떠오른 고래처럼 늘씬하면서도 거대한 차체지만, 공기역학적인 디자인에 힘입어 730d의 공기저항계수는 0.30에 불과하다. 최상급 스포츠카가 0.27 정도의 공기저항계수를 기록한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차체 길이만 5m가 넘는 이 거대한 차체의 이 같은 공기저항계수는 대단한 수준이라 할 만하다.
세계 최고 디자이너 중 한 명인 아드리안 반 후이동크가 다듬어 낸 신형 디자인은 전체적으로 볼륨감을 강조하면서 차분한 이미지를 표현하는 쪽으로 흐르고 있다. BMW의 상징인 키드니 그릴(좌우 양쪽으로 나뉜 라디에이터 그릴 형태가 마치 사람의 신장처럼 생겼다 해서 붙여진 이름-편집자주)은 이전보다 크기를 더 키웠다.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최대한 강조하겠다는 의도. 전체적으로 크고 작은 변화를 시도하면서도 독특한 형태의 C필러(뒤쪽 도어와 뒤 유리창 사이의 기둥)와 키드니 그릴, 낮고 길게 깔린 프로포션 등 고유의 스타일링 특성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성능과 효율 모두 만족시키는 첨단기술 집약체
실내 디자인도 일부 개선되었다. BMW의 차체 디자인 실력은 세대를 거듭할수록 그 완성도가 높아지고 있다. 2세대로 진화한 아이드라이브는 그 어느 때보다 사용하기 편리한 타입으로 바뀌었다. 아이드라이브 조작 다이얼의 위치도 기어레버 우측으로 옮겨 접근성을 높였고, 연동하는 모니터 사이즈도 10.2인치로 키웠다. 모니터의 화질과 내비게이션 성능은 현재 수입차 가운데 최상위권으로 꼽을 만하다.
실내공간은 두말할 나위 없이 넉넉하고 편안하다. 여기에서도 BMW만의 독특한 성격이 드러나는데, 운전석은 앉는 순간 드라이브 욕구가 흠씬 일어나는 분위기로 마무리한 반면, 뒷좌석은 어지간한 최고급 거실용 소파보다 더 편안한 승차감을 자랑한다. 특히 롱 휠베이스 버전(앞바퀴와 뒷바퀴 사이를 길게 늘여 실내공간을 넓힌 리무진 버전)의 뒷좌석은 키 180cm 정도인 성인 남성이 다리를 편안히 뻗거나 꼬고 앉아도 공간이 남아돌 정도로 엄청나게 넓다. 도어와 뒤 유리창에 전동식 햇빛가리개까지 갖춘 롱 휠베이스 버전은 가히 프리미엄 브랜드의 최고급 기함다운 면모를 한껏 과시한다.
BMW는 신형 7시리즈를 발표하면서 코드네임도 새로 바꾸는 등 혁신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였다. 이전까지 7시리즈의 코드네임은 알파벳 E로 시작하는 일련번호를 사용해 왔으나, 신형의 코드네임은 F01(표준형)과 F02(롱 휠베이스 버전) 등으로 명명했다. 중요하지 않아 보일 수도 있으나 코드네임 변화는 곧 ‘같은 시리즈일지라도 구형과는 전혀 다른 콘셉트’라는 의미다.
이 같은 의지를 담고 태어난 현행 5세대 7시리즈는 초고유가 시대를 맞아 대형 최고급 세단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에 대한 고심의 흔적 역시 고스란히 품고 있다. 최근 들어 BMW가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이피션시 다이내믹스(Efficiency Dynamics)’는 이런 의도를 분명히 보여주는 단서라 하겠다.
그런 점에서 국내 시장에 새로 선보인 730d는 고성능과 효율성, 경제성과 고급성을 모두 충족시키는 최고급 세단이라 할 수 있다. BMW의 기술력을 총동원한 3.0리터 디젤 엔진은 속도가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조용해지고, 승차감은 어떤 주행상황에서도 흐트러지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리터당 13.5km에 달하는 공인연비를 자랑한다. 가히 첨단기술의 집약체라 부를 만한 730d의 국내 시판가격은 1억3550만원이다.
Tip | BMW 기술력의 상징, 아이드라이브
운전자와 자동차 소통 다이얼 하나로 ‘끝’

●● 지난 2001년, BMW가 4세대 7시리즈와 함께 발표했던 아이드라이브는 이후 자동차 업계에 일대 혁명을 불러일으킨 첨단장비다. 운전자와 자동차 간의 모든 소통을 단 하나의 통로(제어 다이얼)로 조작하는 것은 신선한 충격이다. 조그셔틀이라 부르는 다이얼을 돌려 내비게이션과 오디오, CD 플레이어, 그 외 각종 메뉴 등 온갖 기능을 입맛대로 골라 사용할 수 있다는 게 이 시스템의 강점. 초기에는 접근하기 어려운 조작감으로 큰 환영을 받지 못했으나 문제점을 개선하고 기능을 업그레이드한 현행 2세대 아이드라이브는 ‘인터페이스 시스템’으로서의 기능을 완벽하게 수행하고 있다. 특히 모든 기능이 한글로 지원된다는 점은 국내 소비자 입장에서 무척 반길 만한 요소. 주정차를 할 때면 10.2인치 모니터에 마치 차를 위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이미지가 떠 주차하기 수월하다.
미니 시승기
“경제성·성능 모두 충족시키는 트렌드세터”

BMW 7시리즈는 프리미엄급 세단으로서는 보기 드문 트렌드세터다. 뒤에서 무게 잡으며 점잖게 서 있는 건 당최 이 차의 적성에 맞지 않는다. 남들보다 앞선 디자인과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신기술, 그리고 가슴속까지 후련해지는 통쾌한 가속성능 같은 요소를 모조리 독차지해야 직성이 풀린다. 그렇다고 해서 과도하게 튀는 건 아니다. 시대적 흐름을 리드하는 건 7시리즈와 같은 최고급 세단에게 주어진 또 다른 역할이다.
이번에 새로 선보인 BMW 신형 730d는 고유의 강력한 주행성능은 절대 놓치지 않으면서 최근 트렌드에 맞춰 경제성까지 높이려는 욕심쟁이 고급 세단이다. 이 차에 올라간 직렬 6기통 3.0리터 터보디젤 엔진은 최고출력 245마력, 최대토크 55.1kg·m의 좋은 성능을 낸다. 특히 저속에서부터 풍성하게 터져 나오는 강력한 토크는 디젤 엔진의 강점을 극대화해 주는 요소.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도심지에서도 스트레스 없는 주행감을 연출하고, 고속주행과 추월을 반복하는 자동차 전용도로에서는 다른 차들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한 가속성능을 이끌어 낸다. 이 엔진과 조합을 이룬 기어는 독일의 세계적인 트랜스미션 제작업체 ZF가 만든 6단 자동기어다. 최근 들어 BMW가 8단 자동기어의 적용에 적극적인 점을 감안하면, 730d에도 머지않아 8단 기어로 올라갈 가능성이 크다.
730d의 시동음은 디젤 엔진에 대한 모든 선입견을 단박에 깨뜨릴 정도로 조용하고 부드럽다. 만약 일부러 말하지 않는다면, 옆자리 동승자는 이 차를 하루 종일 타고서도 디젤 엔진인지 알아채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그 정도로 매끈한 작동감을 자랑한다. 조용하게 돌아가면서도 압도적인 파워를 전혀 잃지 않는 주행성능은 압권이다.
제원상 730d의 시속 100km 가속시간은 단 7.3초. 실제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걸고 가속 페달을 밟아 첫발을 떼는 순간, 이미 불끈거리는 힘이 온몸으로 전해 온다. 점잖은 최고급 세단이지만, 운전석에서는 스포츠카를 모는 기분이 드는 이유도 그래서다. 앞이 탁 트인 고속도로에서 가속 페달을 있는 힘껏 밟자 시속 200km를 순식간에 돌파한다. 어지간한 차들이 시속 100km에 도달하는 것보다도 더 빠르게 느껴질 정도. 강력한 추진력을 숨기지 않고 운전자에게 낱낱이 전달해 주는 직관성도 훌륭하다. 시속 200km를 넘기고 나서도 속도계는 꾸준히 상승곡선을 그린다. 운전석에서 앞만 바라보고 있어도 앞 유리창에 주행속도 등 기본정보를 띄워 보여주는 헤드업 디스플레이는 고속주행 때 더욱 빛을 발한다. 시야를 전혀 흐트리지 않은 채 오직 운전에만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직진 가속력만 탁월한 게 아니다. 코너링 솜씨도 발군이다. 큰 차체지만 빠른 속도로 코너에 접어들면 마치 날렵한 스포츠카 같은 제어능력을 보인다. 어떤 상황에서도 거침없이 달리고, 그러는 와중에도 실내는 조용하고 차분하기만 하다. 묵직한 시트는 도로 상황이 어떻든 운전자와 탑승자들의 몸을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튼실하게 받쳐준다. 730d의 주행모드는 다른 BMW 7시리즈 차종들과 마찬가지로 노멀과 컴포트, 스포츠, 스포츠 플러스 등 네 가지 모드 중 필요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 특별한 경우를 빼고 일반적으로 타기에는 컴포트 모드가 이 차의 성격과 가장 잘 어울린다.
고가의 최고급 세단 730d는 품질이나 승차감, 주행성능이나 첨단장비 등 모든 면에서 그 지위에 걸맞은 면모를 뚜렷이 보여준다. 화끈한 성능을 유지하면서도 이 정도 대형 프리미엄 세단으로서는 최고 수준의 연비도 갖추고 있다. 복잡한 서울 도심과 수도권 외곽도로 주행을 연거푸 반복하는 와중에도 리터당 11km 이상의 연비를 기록한다. 모든 요소를 충족시켜야만 직성이 풀리는 프리미엄 브랜드의 진가가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