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금융사에서 전대미문의 사건이 잇달아 터졌다. 서민은행인 농협(NH뱅크)이 사이버테러를 당해 전산장애로 일주일 넘게 업무가 제대로 처리되지 않았던 것. 그런가 하면 카드·캐피털업계에서 새바람을 일으키던 현대캐피탈이 고객 정보를 해킹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두 회사는 업계 최상위권이어서 이들의 시스템 오류나 보안의 허술함은 고객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과연 이들을 믿고 거래를 할 수 있냐는 것이 고객들의 생각이다. 4월 한 달간 이런 대형사고가 연속으로 발생한 것은 왜일까. ‘잔인한 4월’을 맞고 있는 농협과 현대캐피탈의 전산망사고의 전말을 추적해봤다.

직장인 정승기씨(42)는 지난 4월 19일 동문회비 10만원을 전산장애를 겪었던 농협의 계좌로 보내면서 찜찜함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장애가 완전 복구됐다고는 하나 혹시나 농협 계좌로 들어가는 과정 중 오류가 나면서 송금 안 한 것처럼 될까봐서다. 그는 얼마 전부터 ㅅ은행을 주거래은행으로 하고 있어 농협 사태를 보면서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정씨도 얼마 전까지 농협을 주거래은행으로 이용했기 때문이다.

지난 4월 12일 오후부터 전국에 지점이 1000개가 넘는 농협이 전산장애로 은행 업무에 따라 짧게는 이틀 길게는 일주일 넘게 스톱이 됐다. 인터넷뱅킹은 먹통이 된 데다, 자동화기기(ATM)도 작동하지 않아 지점 창구에서 통장으로 입·출금, 송금을 해야 했다. 게다가 신용카드마저도 무용지물이 되는 등 금융기관으로서는 사상초유의 사건이 발생했다. 농협은 해킹인지 내부 소행인지 파악하지 못한 채 우왕좌왕했다. 특히 철저한 관리가 필요한 금융거래 원장마저 일부 훼손되면서 완전 복구하는 데 일주일이 넘게 걸렸다.

사건의 시작은 이렇다. 농협은 지난 4월 12일 오후 5시경에 시스템 상황을 감시하던 중 주체가 불분명한 ‘시스템 파일 삭제 명령’이 실행되고 있음을 감지했다. 농협은 고객의 개인정보와 금융거래 원장을 보호하기 위해 주요 업무시스템의 거래를 모두 차단했다. 이로 인해 이날 오후 5시10분부터 거래는 전면 중단됐다.

전산 장애의 원인은 농협중앙회 IT본부 내에서 상주하던 협력사 직원의 노트북PC에서 ‘시스템 파일 삭제 명령’이 내려졌고, 이 노트북PC를 경유해 각 업무시스템을 연계하는 중계서버에서 이 명령이 실행됐기 때문이다.

농협은 이 명령을 발견한 즉시 중단시켰다. 그러나 총 553개 중개서버 중 협력사 노트북PC와 연결된 서버는 320개인데, 명령이 이미 실행된 약 5분 동안 이 중 275개에서 파일이 전부 또는 일부 삭제됐다. 중계서버는 고객정보와 거래내역 등이 담긴 메인서버와 전국 각 지점이나 현금인출기(ATM), 카드 가맹점 등을 중계하는 역할을 하는 서버다.

농협은 피해를 본 서버뿐만 아니라 553개 모든 중계서버의 재부팅을 실시했다. 서버의 안정성을 모두 확보하기 위해서다. 또 이들 중계서버에 시스템 프로그램을 다시 설치하면서 발생하는 에러까지 일일이 다시 조정했다. 이로 인해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그러나 사태가 터진 후 무려 사흘이 지나서도 체크카드 거래와 신용카드 현금서비스 등 일부 처리가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았다. 결국 최원병 농협중앙회 회장이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하기에 이르렀다. 일부 서비스가 일주일이 지나도 원활하지 않았던 것은 나중에 밝혀졌지만 카드 고객거래 기록을 저장하는 원장과 백업본이 일부 훼손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를 복구하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 농협전산망이 사이버테러로 전산장애를 일으켜 금융거래가 일주일 넘게 정상화되지 못했다.
- 농협전산망이 사이버테러로 전산장애를 일으켜 금융거래가 일주일 넘게 정상화되지 못했다.

농협, 허술한 보안체계 고스란히 드러나

그런데 농협은 사건이 터진 후 일주일이 넘도록 누가, 왜 노트북PC에 접근해서 시스템 파일 삭제 명령을 내렸는지, 전혀 밝혀내지 못했다. 허술한 보안체계가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다. 더욱이 사건 당일 한 달 전부터 문제의 노트북PC에 삭제 명령 파일이 단계적으로 심어진 것으로 검찰 결과 드러났다. 즉, 한 달간 보완체계가 완전히 뻥 뚫려 있었다는 얘기다.

검찰은 일단 보안체계를 잘 아는 내부자 소행일 것이라는 쪽에 무게를 두고 관련 직원 가운데 의심 인물을 조사하고 있으나 외부 해커와 공모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검찰 수사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수도 있다.

농협 전산시스템의 사이버테러보다 일주일 먼저 터진 현대캐피탈의 해킹에 의한 고객정보 유출 사건도 미증유의 사건이라 큰 충격을 안겨줬다. 해킹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지난 4월 7일 현대캐피탈은 한 사람으로부터 이메일을 받았다. 그는 현대캐피탈에 5억원의 돈을 요구했다. 자기들이 고객정보를 해킹했고, 이를 돌려받으려면 돈을 달라는 것이었다.

사실을 확인한 결과, 이는 실제 상황이었다. 약 43만명의 이름, 주민등록번호, 휴대전화 번호가 유출됐고, 이 중 36만명은 이메일이 함께 해킹 당했다. 해커들은 지난 2월에 이미 고객정보를 빼갔다. 현대캐피탈은 그동안 해킹 당한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다가 협박 이메일을 받고서야 해킹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이것이 현대캐피탈 해킹사건의 시작이다.

현대캐피탈은 고민에 빠졌다. 해킹사실을 외부에서 모르게 해결하고 싶었다. 이미지 손상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묘책을 생각해냈다. 해킹 사실을 즉시 경찰에 신고하고, 1억원을 송금했다. 경찰 추적으로 돈을 찾아가는 해커 일당을 잡을 수 있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현대캐피탈의 예상은 빗나갔다. 해커 일당은 1억원 중 4200만원을 필리핀 등에서 인출해 수사망을 빠져나갔다. 결국 현대캐피탈은 다음 날인 지난 4월 8일 확인요청을 하는 일부 언론에 이 해킹사건을 시인했다.

양 당사자들이 해결해서 외부에서는 알 수 없는 사건도 존재하겠지만, 바깥에 알려진 금융사의 해킹은 현대캐피탈이 사상 처음이다. 그동안 이는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이야기로 통했다. 옥션에서 고객정보가 해킹되어 유출된 적이 있었으나, 금융사가 아닌 마켓플레이스였다.

게다가 현대캐피탈 고객 상당수가 현대카드를 소지하고 있는 데다 서비스까지 연계돼 있어 현대카드 역시 해킹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에서 우려를 낳았다.

현대캐피탈과 현대카드는 이 사태로 ‘공황’에 빠졌으나, 의외로 침착하게 대응해 나갔다. 우선, 노르웨이에 출장을 갔다가 급거 귀국한 정태영 사장이 4월 10일 기자회견을 갖고 고객정보 유출 사실을 고객에게 공개했다. 정 사장은 해커와의 협상을 거부하고, 정면돌파를 선택한 것이다. 정 사장은 숨기는 것보다 금융회사가 해킹 당했다는 사실을 사과하고 고객정보 보호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을 보여주는 게 최선이라 판단했다고 한다.

현재 경찰은 수사망을 좁혀 해커 신모씨(37)를 용의자로 지목하고, 검거에 나섰다. 신씨는 다음커뮤니케이션을 해킹하는 등 사이버범죄 4건을 포함해 전과 11범으로 알려졌다.

- 정태영 현대카드·캐피탈 사장(왼쪽)과 최원병 농협중앙회 회장이 자사의 전산망 해킹·사이버 테러와 관련 사과문을 발표한 뒤 고개를 숙이고 있다.



2008년 이후 국내 금융사들은 보안 시설에 상당한 신경을 써왔다. 그해에 옥션에서 고객 정보가 대량 유출된 후 보안 시설을 보강하거나 신형으로 교체를 했던 것. 하지만 워낙 빠르게 발전하는 해킹을 막기 위해서는 계속 보안 설비를 업그레이드해야 하지만 안이한 금융사들이 이를 하지 않았던 것. 따라서 보안 면에서 취약할 수밖에 없다. 현대캐피탈도 2009년 이후에는 장비를 신형으로 교체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보안 관계자들은 “해킹 기술은 계속 발전하기 때문에 보안 설비를 계속 업그레이드하지 않으면 예전에 투자한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고 지적했다.

전산망 마비사태까지 초래된 농협도 현대캐피탈처럼 IT 보안에 큰 신경을 쓰지 않았다. 농협은 IT보안 분야에 2009년 71억5000만원을 투입했으나 지난해에는 시스템 구축이 완료됐다는 이유로 23억5000만원을 삭감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내부에서 삭제 명령이 내려졌다는 것은 보안 체계가 얼마나 엉망이었는지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농협·현대캐피탈 사건은 후폭풍도 상당히 거세게 휘몰아칠 전망이다. 우선 고객들이 더 이상 이들 기관과 거래를 안 하겠다며 거래 금융사를 바꾸고 있다. 농협의 고객수는 3000만명에 이른다. 게다가 농협으로 송금하려는 타 금융사 고객들도 농협에는 송금을 안 하려고 해 이탈 고객수는 앞으로 대폭 늘어날 수도 있다.

현대캐피탈 사태는 카드업계 2위를 달리고 있는 현대카드로도 불똥이 튄 것이 문제다. 비록 독립된 별개의 기업으로 고객정보를 따로 관리하고 있고 서버도 물리적으로 다르다고 하지만, 현대자동차를 사는 고객 대부분이 현대카드를 이용하고 현대캐피탈에서 할부를 받기 때문에 고객이 겹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 때문에 현대카드 고객 중에는 탈퇴하는 이들도 있다. 현대캐피탈 고객들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현대카드를 떠나는 고객들인 셈이다. 현대카드 회원은 약 900만명으로 현대캐피탈(180만명)의 5배에 달한다.

고객의 이탈 외에도 후유증은 더 있다. 피해 보상 소송이 줄을 이을 것이기 때문이다. 금융소비자연맹은 “현대캐피탈과 농협의 피해 사례를 모집해 합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집단소송을 추진할 것”이라며 벌써부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현대캐피탈에는 정보 유출 피해보상 소송을 제기할 것으로 예상된다. 2006년 LG전자 신입사원 공채시험에 응시한 강모씨 등 31명의 입사지원서가 해킹돼 응사자의 학력, 자기소개 등이 담긴 입사지원서가 인터넷 카페에 돌았고, 이들은 LG전자를 상대로 집단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2심 재판부는 “1인당 30만원씩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지난 2008년 1월 고객 1000만명의 정보가 유출된 옥션 고객정보 유출 사건은 손해배상 청구 집단소송이 진행 중이며 하나로텔레콤, GS칼텍스 개인정보 유출 사건에서도 손해배상 청구소송이 제기됐다. 다만, 현대캐피탈의 경우 아직까지 고객정보가 인터넷에 유출됐다는 피해사례가 없어 실제 소송까지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 전국농협노조 등 농협 관련 3개 노조는 지난 4월 19일 서울 충정로 농협중앙회에서 최원병 농협중앙회 회장의 사퇴를 촉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 전국농협노조 등 농협 관련 3개 노조는 지난 4월 19일 서울 충정로 농협중앙회에서 최원병 농협중앙회 회장의 사퇴를 촉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금융업계, 이번 사태 반면교사 삼아야”

한편 농협의 경우 정확한 피해규모를 산정하기 어려운 점이 있어 어떤 식으로 해결의 가닥을 잡아갈지 불확실하다. 물론 전산 장애로 인해 카드대금·관리비·공과금·대출금 등의 연체는 집계가 확실해 이를 보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보상 규모도 그리 많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농협은 타행 송금이 안 돼 생긴 피해도 보상할 계획이다. 농협은 카드 연체와 관련된 부분에 대해서 이미 다른 금융사에 협조를 구한 상태다. 연체대금은 발생하지 않는 방향으로 협의를 진행했고, 발생한다 하더라도 농협에서 전액 부담할 예정이다. 대출이자를 내지 못한 고객은 타 금융사와 협조해 연체 여부를 삭제한다는 게 농협 측 방안이다. 농협은 또 전산망 장애 때문에 카드대금 연체자가 됐거나 대출이자 연체자로 등록된 사람의 신용등급 영향을 최소화할 방침이다.

하지만 농협의 문제는 고객들의 피해 중 대부분이 ‘거래해야 할 것을 못 해서’ 일어난 기회비용이다. 가령 주식에 투자하려다 못 한 것이다. 이에 대한 피해를 증명하는 것은 녹록지 않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두 회사 모두 손해배상 등에 의한 금전적인 피해보다는 평판이나 브랜드 이미지 타격이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올 하반기에 농협은 신용부문과 경제부문 분리를 통해 금융지주사를 출범시킬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유야 어찌됐든 일주일이 넘게 시스템 장애를 완벽하게 해결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바람에 금융기관으로서 치명적인 이미지 손상을 가져왔다.

특히 농협은 처리과정에서도 투명하지 못한 행태로 신뢰 하락을 부추겼다. 최원병 농협 회장은 전산장애 발생 이틀 후인 지난 4월 14일 “고객정보와 금융거래 원장은 모두 정상이며, 전혀 피해가 없었다”고 했지만 금융거래 원장이 일부 훼손된 사실이 밝혀지면서 신뢰 상실을 자초했다.

현대캐피탈은 현대카드의 자매회사여서 현재 고객이나 잠재고객이 가질 현대카드에 대한 불신과 이미지 추락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게다가 신용평가사인 S&P(스탠더드 앤드 푸어스)는 당장 현대캐피탈의 신용등급 하락은 없겠지만 집단 피해청구 소송이 벌어져 재무 상태에 부담을 주는지를 주시하겠다고 했다.

이번 농협·현대캐피탈 사태는 금융권의 보안수준을 알려주는 리트머스 시험지 역할을 했다. 두 금융사가 재수 없게(?) 시험을 보게 됐고, 이를 제대로 통과하지 못했다. 고객들은 개인정보와 돈을 농협·현대캐피탈은 물론이거니와 다른 금융기관들도 제대로 관리할 수 있을지 극도로 불안해하고 있다. 따라서 농협이나 현대캐피탈은 완벽한 보안 대책을 마련하지 않는 한 떠나간 고객들을 다시 불러오지 못할 것이며, 다른 금융기관들도 고객들의 불안을 해소시킬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불가피해 보인다.

어쨌든 보안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금융업계 전체에 반면교사 역할을 해 제2의 농협이나 현대캐피탈 출현을 막아줄 것이라는 점에서 수확도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